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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축복 연회, 용병왕 카이사르

Author: 훌리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5 13:41:25

12화

낮고 묵직한 목소리.

지빌라가 다시 돌아보았다. 프레데리크는 말을 잇지 못 했다. 단정한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가, 이내 다시 굳어졌다.

“……아닙니다. 축복연회에서 뵙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그는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뒤돌아 신전의 기둥 너머로 사라졌다. 지빌라는 잠시 그 자리에 머물렀다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답지 않네. 레오노라 때문일까?’

지빌라는 대공이 무슨 말을 더 이으려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려다가 관두었다. 그의 입장에서 지빌라가 하려는 모든 일이 예상밖의 일일 테니 난처할 뿐이란 걸 모르지 않았으므로.

한편, 돌아선 프레데리크는 황녀를 보면 볼수록 소문의 한가운데 있던 사치스럽고 사랑에 쉽게 빠지는 가벼운 여인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보면 으레 한눈에 그 사람을 파악했던 저로서도 황녀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표정도, 행동도, 옷맵시도… 전부 연극처럼…. 그런데도 눈을 뗄 수 없다는 게, 그로서는 더 낯설었다.

‘그 눈은…… 왜 사람을 헷갈리게 하지?’

그가 전하려던 말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자칫 제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들릴까 싶어, 그는 말문을 닫았다. 그 순간 그가 그녀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거슬렸다.

***

초여름 제국 황궁 대연회장.

둥근 유리 천장을 통과해,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연회홀 상단에는 왕국 사신들이 보낸 선물들과 꽃 장식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궁정악단의 선율이 낮게 깔리고, 대리석 기둥 사이로 황금 커튼이 출렁였다.

황후가 가장 먼저 만인의 앞에 우뚝 섰다. 황제 대신 황후가 주관하는 세 번째 축복연회였다. 그리고 황후로서 온전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정치적 무대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지빌라가 1년간 공을 들인 빛나는 드레스를 입고 천천히 입장했다. 긴 드레스 자락이 황실의 권위만큼 따라 들어왔다. 오늘, 그녀는 제국 그 자체였다. 수많은 시선이 그녀에게 꽂혀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늦게 나타난 대공이 그녀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의 검으로 불리는 그 이름값에 걸맞게 차가운 위엄을 품고.

황후의 긴 축사가 이어지고 끝으로 정식으로 황녀와 대공의 약혼이 발표되었다. 지빌라는 짧게 그의 시선을 마주 보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축사가 끝나자 귀족들은 줄지어 황녀와 대공에게 인사를 건넸고, 각국 사절들은 의뭉스러운 축하 인사를 남겼다.

“황녀의 약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대공께서도, 행운을 잡으셨군요.”

일황자와 이황자는 그들의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고, 황후는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미소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정복 차림의 거대한 사내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자가…….”

사신들의 어깨 너머로, 지빌라는 용병왕 카이사르를 알아봤다. 축복연회에 그가 올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흐름이 이번만큼은 달라지길 바랐다.

대륙을 장악한 용병왕 카이사르.

그가 세운 신생국은 아직 국가라 부르기조차 민망했다. 이름뿐인 왕국. 새로 세운 나라는 터를 다지고 정통성을 갖추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런 미완의 국가를 제국의 공식 연회에 초대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었다. 본디, 신생국은 사절단을 보내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외교의 관례였으니까.

그녀는 일황자의 수상한 움직임이 마음에 걸렸다. 회귀 전처럼 몰래 초대한 것이 분명했다.

‘어째서? 내가 저 남자와 다시 엮이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데!’

지빌라는 그녀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만 같아 숨을 삼켰다. 일황자라면, 황태녀였던 그녀만 사라지면 전쟁 대신 다른 방법을 찾으리라 생각했다. 이 넓디넓은 제국이, 일개 신생국 하나에 패망할 것이라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왜!’

어째서 운명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고, 똑같은 길을 향해 나아가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레나토는 스스로 황태자의 자질을 다듬거나, 정정당당하게 황후와 이황자에 맞서 정치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전쟁을 바라고 있었다. 지빌라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레나토가 의도적으로 카이사르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지빌라는 그날의 기억이 혈관을 따라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옆에선 대공 프레데리크도 무언가 감지한 듯 미세하게 움찔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기 전에, 지빌라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이제, 모든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다.

지빌라는 일황자를 볼 때마다 느끼는 불길함을 떨쳐내고 싶었다. 아직 그에게 다가서지 못했지만, 일황자가 카이사르에게 던지는 목소리는 또렷이 들려왔다.

“당신이 용병왕 카이사르인가?”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먼 길 와줘서 우리가 더 영광이지. 그런데 말이야— 무기를 두른 채 나타나다니. 대륙의 풍습은 제국과 많이 다른 모양이군. 설마 겁이라도 난 건가? 용병왕이라 해서 기대했더니… 흠, 고작 이런 졸개라니.”

카이사르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도, 레나토를 내려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그가 이 연회장에 온 이유는 하나, 그의 나라를 국가로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부탁도 하기 전에 이런 천대라니 불쾌함이 치솟았다.

카이사르는 살아오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굴욕을 삼켜야 했다. 그는 당장 이 자의 목을 베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지빌라의 눈에, 일황자 옆에 선 제국 신하들의 낯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들어왔다. 황실 연회장에서, 그것도 제국의 손님에게 공개적인 모욕이라니.

그녀가 직접 보지는 못했던 일들이지만, 이 장면이― 회귀 전, 전쟁의 단초가 된 정확한 그 순간임을 깨달았다.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며 그들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레나토, 내가 대신 용병왕 카이사르님께 사과드려도 될까? 이분은 내가 직접 초대한 손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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