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9화
지빌라는 황후와 일황자의 눈앞에서는 한 치의 빈틈도 보여선 안 됐다. 그건 매일을 살얼음판 위에 서는 일이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존재는 이황자였다. 황후의 그림자 아래 갇혀 아직 날개를 펴지 못하는, 제 이복동생.
일황자와는 달리, 그는 황제로서의 자질을 타고났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지빌라는 이황자가 대공의 지지를 받아 제국의 황좌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황후의 궁에 도착해 응접실에 있었다. 황후는 품위 있는 자세로 들어서고 있었다.
“폐하, 오늘도 우아하십니다.”
“지빌라… 네가 내게 할 말은 아닌 것 같구나. 너야말로 무척 아름다워. 대공이 널보고 한눈에 반했을 것 같구나.”
“그럴 리가요…….”
황후는 황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지빌라는 오늘도 역시,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할 신비롭고 값을 알 수 없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옅은 하늘빛 실크 위에 은빛 자수가 촘촘히 놓여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반사해 얼음조각처럼 차갑고도 우아한 윤기를 냈다.
황후는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가장 값나가는 보석을 최고의 가격에 팔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좋지 못한 소문은 경계해야 했다.
“약혼식은 축복연회를 빌려 황궁에서 치를 것이다.”
“알아서 잘 해주시리라 믿어요.”
황후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이 정해진 사안인 듯, 반론의 여지는 조금도 남기지 않은 채.
“각국 사절들이 올 것이다. 왕국들마다 속내는 다를 것이고, 어떤 자들은 너의 표정을 훔쳐보며 제국의 약점을 가늠하려 들겠지.”
지빌라는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그날, 너는 완벽해야 한다.”
황후는 시선을 내려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다른 사안을 끄집어내었다.
“대공에 대한 소문 말이다… 아무리 흥미로워도, 관심을 드러내지 말거라. 그는 이제 네 약혼자이기 이전에, 제국의 방패이자 검이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엔 칼날 같은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그의 여인관계에 귀 기울이지 말거라. 말도 꺼내지 말고, 그게 진심이든 연기든… 네 자리는 흔들려선 안 된다.”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질투하는 모습을 드러내면 제국의 권위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대신 침묵하면 신뢰를 주는 법이지.”
황후에게는 대공의 지지가 절실했다. 어렵사리 황제의 대리청정을 이어가며,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이황자를 귀족의회에 추대해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러니 황녀는 대공의 후계자를 낳고, 조용히 제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품위를 유지하거라. 네 불안을 드러낼수록, 주변의 입은 더 가벼워진다. 제국의 황녀는 감정을 흘려서는 안 돼.”
황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결혼은 네가 원해서 추진한 것이 아니냐? 그럼 네가 책임져야지. 대공도, 제국도. 그리고—너 자신도.”
지빌라는 잔잔하게 웃을 뿐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대공과의 결혼을 생각지도 않았다. 황후의 속셈이 뻔히 보였기에, 제 계획을 수정했을 뿐.
결과적으로, 이황자를 황제로 추대하는 데에는 서로 뜻이 일치했다. 그러나 황후가 ‘대리청정’을 구실로 이황자를 꼭두각시로 만들지 않을까, 그 점은 끝내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 일황자의 반란으로 황후와 이황자는 함께 몰락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 이황자가 황제로 오르게 되었을 때 진짜 위험은 황후일지도 몰랐다.
‘앞으로 2년만 버티면,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그녀는 제 미래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아르카나는 끝내 침묵했다. 그 점이 원망스러웠다.
그에 앞서 신전에서 간소한 상견례가 마련될 거라고도, 황후는 알려왔다.
그날 다시 보게 될 대공.
지빌라는 자신도 모르게, 기대 아닌 기대를 품었다.
그녀는 황후와의 만남을 마치고 긴 복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이 코앞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 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잘 지냈어? 누이.”
지빌라는 턱 끝을 올려 장신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몸 안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절반의 피를 나눴건만, 그와 닮은 구석이라곤 없었다.
“레나토…….”
“대공과 약혼이라니. 축하해야겠지?”
“네 축하라면… 기쁘게 받을게.”
“그런데 어쩌지. 난 하나도 기쁘지 않아.”
94화정오. 대공성으로 가는 마차가 멈췄다.프레데리크가 마차의 문을 열고 지빌라에게 물었다.“답답하면 말을 타고 함께 가지.”지빌라는 눈을 크게 떴다. 마차 안에만 갇혀 있었던 것이 사실 답답했다.에르나는 활짝 웃었다.“말씀 마세요. 전하. 저희는 말이 없는데요. 전하의 애마 요제파가 벌써 기다리고 있잖아요.”“북부에 가면 너희들에게도 말을 마련해줄게.”“저는 잘 타지도 못하는 걸요.”지빌라가 레오노라에게 시선을 돌렸다.“…저도요.”그러나 레오노라는 프레데리크의 시선을 살피고 있었다. 그가 그녀가 말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묘하게 걸렸다.프레데리크는 이미 지빌라를 돕고 있었다. 자신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레오노라는 그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다.지빌라는 요제파의 등에 올라탔다. 차가운 계절, 요제파의 콧김이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요제파. 달려볼까?”히이잉―!요제파가 응답하자 지빌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프레데리크도 레오니스를 타고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들은 신호와 함께 달렸다.
93화‘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줘….’그의 진심을 마주하고도 지빌라는 말문이 막혔다. 말 한마디 꺼내면, 지금 막 흔들리기 시작한 균형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무겁고도 얇은 비밀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얽혔다가, 조용히 풀렸다. 방 안의 공기는 어느 때보다 더 깊고, 복잡하게 내려앉아 있었다.마차가 흔들리자 지빌라는 시선을 돌렸다. 창은 꼭 닫혀 있었고, 밖의 찬 공기가 뿌연 김을 만들어 흐릿한 표면만이 시야를 가렸다.멀어지는 산장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아직 떨림이 남아 있었다.맞은편에 앉은 레오노라가 조심스레 물었다.“전하, 목이 마르시면 말씀해주세요.”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차가 든 병이 들려 있었다.“…그래.”짧은 대답을 남긴 지빌라는, 여관에서의 일이 오래 기억에 남으리라 직감했다. 프레데리크가 방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가방에서 작은 파우치를 꺼냈다.병을 들고 몇 초간 고민했다. 마음은 ‘이건 아니야. 안 돼.’라고 말했지만, 손가락은 이미 뚜껑을 열고 있었다.그리고똑똑, 똑.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의 긴장을 찢었다.“…!”놀란 그녀는 병을 떨어뜨렸다
92화먼저 나온 이는 호위도, 시종도 아니었다.문 너머의 어둠을 쪼개고, 프레데리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빛이 그를 비추는 순간,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멈췄다.빛이 난다, 정말로.햇빛이 희미하게 번진 겨울 아침, 그 한 줄기가 그의 어깨와 얼굴을 스치며 서늘한 공기와 대비되는 기묘한 따뜻함을 만들어냈다.검은 외투 자락은 바람에 천천히 흔들렸고, 깊은 눈동자에는 밤새 단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던 어떤 결정이 고여 있었다.표정은 늘 그렇듯 무겁고 침착했지만…… 그가 문턱을 넘는 동작에는 알 수 없는 가벼움이 있었다. 얼어붙은 아침 공기에서 혼자만 온기를 품은 사람처럼.피엘은 숨을 삼켰다. 랑베르는 시선을 피하며, 이유 없이 말방울을 한 번 더 고쳐 쥐었다. 시녀들은 고개를 동시에 숙였지만, 눈동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훔쳐보았다.그의 곁에서는 미세하게, 말로 옮기기 어려운 빛이 감돌았다. 단단한 기세, 긴 밤을 지새운 사람 특유의 차분한 자신감.그 밤의 결과를 굳이 숨기지 않은 남자의 여유. 그 순간,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그가 달라져 있었다. 모두가, 그것을 느꼈다.지금 이 남자는…단지 여정을 재개하려 나온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이미 손에 넣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눈밭 위로 드리운 그림자조차 이제 무언가 깊고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듯 길게 이어졌다.***
91화프레데리크는 그녀를 다시 달구기 시작했다. 지빌라는 눈을 감은 채, 더는 빠져나갈 틈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그가 주는 감각에 몸을 맡겼다.“이제 익숙해 질 거야.”그가 다정하게 입술을 겹쳤다. 그녀가 눈을 내리깔자 기다렸다는 듯 음부를 문질렀다. 그의 혀가 여린 점막을 핥았다. 입안에는 비릿한 맛이 맴돌았고, 타액이 엉겨 혀끝이 부딪혔다.발기한 성기를 밀어 넣고는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하아…….”그의 목에 매달린 채 키스를 받아냈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된 것을 멈추기엔 늦었다. 뜨거워진 음부가 그의 성기를 삼켰다. 몇 번 빼고 넣자, 그녀가 먼저 골반을 들썩거렸다.“흣!”질척한 감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속도가 붙자 찔걱이는 소리가 방 안에 퍼졌고, 성기는 깊숙이 파고들며 내벽을 거칠게 밀어 올렸다. 숨이 가빠지고, 안쪽이 스스로 조여들기 시작했다.“하읏……!”허리를 활처럼 젖히며 가슴을 내밀었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고 자극을 더했다. 떨리는 허벅지 사이에서 그의 성기는 애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신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벽의 부푼 주름을 찍어 올리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그만…… 아아!&rdq
90화본능에 잠식된 몸은 부끄러움도 모른 채, 그의 허벅지에 앉아 아래를 활짝 벌린 채 떨고 있었다. 숨이 끊긴 듯 멎는 순간, 감각이 한 점으로 수축됐다. 소리는 멀어지고, 안쪽에서 부딪히는 젖은 감각만 낮게 지속됐다. 아래에서는 여전히 그의 손가락이 철퍽대며 젖은 소리를 물소리와 함께 쌓아 올리고 있었다.숨조차 제대로 들이마시지 못하는 사이, 그는 가슴의 정점에 입술을 붙였다.“흐으, 으, 흐……!”그녀는 그를 말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허리를 들썩였고, 곧 아랫배가 경련하며 꿈틀거리는 질구에서 투명한 액체가 왈칵 터져 물속으로 스며들었다.프레데리크는 가슴을 놓칠세라 고개를 깊숙이 파묻었다. 붉어진 젖꼭지를 쓸어내린 뒤 다시 한입에 물고 빨아들였다.지빌라는 자극에 몸서리치면서도, 이 모든 것에 익숙해지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자신을 달랬다.일어선 프레데리크는 그녀의 턱을 붙잡고 입술을 강하게 맞비볐다. 붉게 상기된 얼굴의 지빌라는 그의 혀와 얽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입술을 잠시 떼며 타액이 가늘게 이어졌다. 그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며 눅눅한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쾌감에 애액이 거품처럼 이는 것을 느꼈다. 시선이 마주치자 프레데리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 밤은 우리를 위해서라고 했으니까… 도망치지 말아.”그는 그녀를 안아 든 채,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그녀를 안고 침대로 향했다. 남성적인 체향이 공기를 밀어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물기를 닦아냈다.
89화프레데리크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녀의 뼛속 깊은 곳이 먼저 반응했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는지, 몸이 먼저 열리는지 알 수 없었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천천히 내려앉아, 의식보다도 감각을 먼저 흔들었다. 새로운 감각이라기보다, 오래 참아온 감정이 마침내 틈을 찾은 느낌이었다.지빌라는 그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잠깐 시선을 피했을 뿐인데, 그는 그 짧은 틈도 놓치지 않고 따라왔다. 그 눈빛은 격렬함이 아니라,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단단하고 담담했다.숨을 들이켰다.그런데 그 작은 호흡조차 그에게 향하는 것 같아 더 어지러웠다.그저 이름 하나 불렀을 뿐인데, 이토록 달라져버리는 스스로가 두렵고, 동시에 이상하게… 안도되었다. 마치 이제는 숨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그녀는 고개를 살짝 젖혀 그를 바라보았다.빛이 거의 닿지 않는 좁은 방.얇은 벽 뒤의 세상이 그들을 잊은 듯 잠잠했다.그 적막함이 오히려 더 위험했다.그가 다시 입 맞추려는 순간, 지빌라는 본능적으로 그의 입술 위에 손가락을 댔다. 입술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속삭임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소리 들리면 안 돼요.”그 말이 떨어지자 프레데리크의 움직임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그 고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