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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소문에 흔들릴 이유가 없으니

Author: 훌리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5 09:02:07

8화

프레데리크는 잠시 침묵했다.

침실. 그 단어가 정원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제멋대로 겹쳐지며, 원치 않는 상을 그렸다. 목덜미 아래로 열이 훅 오르는 걸 느끼며, 그는 떠오른 것을 구겨버리듯 미간을 좁혔다.

“시끄럽군.”

그는 짧게 말했다.

“그런 일은 다시 내게 보고하지 마라. 그런 소문에 흔들릴 이유가 없으니.”

랑베르는 고개를 숙였다.

“다른 일은?”

“특별한 외출로는 신전 방문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예전처럼 매일 귀족 연회에 참석하셨습니다.”

“필요한 정보만 보고해. 감상은 빼고.”

집무실을 물러 나온 랑베르는, 닫힌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황녀 전하가 대공 각하에게 사랑에 빠졌다니…….’

과거 황녀가 궁정 악사를 사모한 일 이후, 궁정 안팎으로는 그녀의 감정이 또다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정략적 만남이기는 하나, 대공 프레데리크 베라트와의 대면 이후 황녀가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었다.

대공은 과묵한 기사들 중에서도 유난히 입이 무거운 인물이었지만, 그의 단단한 체격과 단정한 미모는 황녀와 나란히 세워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귀족들의 평이었다.

몇몇 귀족 부인들은 황녀가 언제 대공에게 반할지를 두고 몰래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 불씨에 기름을 부은 건, 황녀가 얼마전 대공에게 순애보를 바쳤던 동부의 백작 영애를 찾아갔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은 은밀히, 그러나 빠르게 퍼졌다.

‘적을 가까이 두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랑베르는 스스로 생각을 멈추었다. 판단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대공 프레데리크를 어린 시절부터 보좌해 온 랑베르 하튼 백작은, 베라트 가문을 지키는 북부 귀족들 중 가장 가까운 가신이었다.

대공이 유년기에 동부 클레브 백작에게 도움을 받았던 일도, 클레브 백작의 딸인 레오노라 영애가 대공을 가슴에 품고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랑베르는 늘 대공과 레오노라의 결합을 기대해 왔다. 그러나 그 바람은 번번이 어긋났다. 정작 당사자인 대공은 결혼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신들이 거듭 요청했음에도 그는 마치 죽음을 각오한 자처럼 침묵으로 일관했고, 실행에 옮기려는 기색조차 없었다.

이번 수도 방문 역시 그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공의 결혼이 지체되는 데 대해 귀족 의회와 황후는 우려를 표했고, 결국 대공은 황후의 부름을 받고 마지못해 움직였다. 몇 달에 걸친 압박 끝에, 마침내 황녀와의 대면이 이뤄졌다.

랑베르는 북부의 가신 대표 자격으로 대공을 수행해 황궁에 들어섰고, 그곳에서 황녀를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눈부신 미모도 미모였지만, 그녀의 첫 마디는 랑베르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힐 만큼 강렬했다. 황족은 역시 다르다는 감탄과 함께, 인간이라기보다 어떤 성스러운 존재 같다는 거리감이 피어올랐다.

그렇지만 결국 황녀가 대공비가 된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베라트 가문의 후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외의 문제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대가라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황녀 쪽에서 먼저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서는 마당에, 굳이 걱정을 거듭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랑베르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오랜 시간 눌러 왔던 한숨을 조심스레 내쉬었다.

***

그 시각, 지빌라는 수도가 제 소문으로 술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기색 없이, 황후의 부름을 받아 궁을 나서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이름 모를 시녀 네다섯이 따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에르나 하나만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도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걷잡을 수 없이 부풀었다. 에르나는 이마를 짚은 손에 힘을 주며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황녀를 둘러싼 소문이야 늘 있어 왔지만, 이번에는 결이 달랐다. 부풀리는 입들에, 악의가 섞여 있었다.

출처를 짐작 못 할 에르나가 아니었다. 황녀의 곁을 그림자처럼 오가는 시녀들, 황후궁과 일황자궁에 줄을 댄 그 입들이 정원에서의 한마디를 물어다 제 주인들의 입맛대로 빚어내고 있었다. 문제는 이번 소문의 대상이 하필, 정략혼이 예정된 대공 프레데리크라는 점이었다.

소문은 이내 “황녀의 투기가 벌써부터 시작됐다”는 말로 덧씌워졌고, 이는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다.

제국은 오랜 세월, 여인의 질투를 무엇보다 경계해 왔다. 황제들은 대대로 황후 외에도 여러 황비를 두었고, 귀족들 또한 수많은 후처를 거느리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황녀가 아직 혼인도 하기 전에 대공과 각별한 친분을 맺었고, 미혼인 레오노라 클레브 영애를 의심해 직접 찾아갔다는 소문은, 그녀의 권위에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을 수 있었다.

설령 레오노라 영애가 진심으로 대공을 사모하여 혼인을 미룬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이 황녀의 체면을 지켜주는 방패가 되지는 못 했다.

지빌라는 에르나의 근심이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회귀한 이후, 그녀는 의도적으로 '무해한 황녀'의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각별히 애써왔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그녀는 황위에 전혀 관심 없는 인물이라 믿게 만들어야 했다. 그녀를 향한 경계심을 허물기 위해서였다.

‘피곤해…….’

이 모든 게 다 계획의 일부라는 사실조차, 그녀를 지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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