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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8화

Author: 경옥
심서준이 이씨촌으로 향했다는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원길의 귀에 들어갔다.

주원길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세게 움켜쥐었다. 잔 속의 찻물이 출렁였고, 가라앉은 두 눈에는 음산한 빛이 어렸다.

곁에 있던 진 참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아무래도 끝까지 조사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게다가 진 참장까지 붙잡아 가두었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원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뒷짐을 지고 방 안을 서성였다.

심서준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태후의 친정인 영청후부조차 심서준에게 속속들이 파헤쳐져 가산을 몰수당하고 유배까지 갔다.

심서준이 조사를 계속한다면 자신이 감춰 온 죄도 결국 낱낱이 드러날 터였다. 그동안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자신뿐 아니라 삼족까지 멸문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주원길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끝내 분수를 모르고 이곳을 뒤엎으려 한다면, 경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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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234화

    계연수는 담담한 눈으로 심태숙을 바라보았다.“저는 우리가 한 식구인 줄 알았어요. 제가 아이를 낳을 때면 다들 한 번쯤은 안부를 묻고, 제 쪽 사정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실 줄 알았지요. 하지만 그날, 제 처소 근처에는 누구도 와 보지 않았어요.”“모두 형수님 말만 믿으셨지요. 결국 제가 아이를 낳는 일을 그만큼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던 거예요. 외면하고 방관한 것도 잘못이에요. 하지만 이제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아주버님도 더는 꺼내지 마세요. 제게는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니까요. 더 드릴 말씀도 없어요.”방 어멈은 진작부터 심태숙을 내보내고 싶었다.큰 대감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 정말 걱정했다면 직접 와 봤어야지, 입으로 걱정한다는 말만 하면 그만인가?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자신도 하루에 수백 명쯤은 걱정해 줄 수 있었다.계연수의 말에 축객의 뜻이 담기자, 방 어멈은 곧장 심태숙 앞으로 나섰다. 그를 마주한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큰 대감, 이만 돌아가시지요.”“부인께서 지금 어떤 몸 상태이신지는 대감께서도 보셨을 겁니다. 그날 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도왔더라면, 부인께서 이 지경까지 되셨겠습니까?”“부인께서 아이를 낳으실 때는 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노부인께서 정신을 잃으셨는데도 큰방에서는 누구 하나 와서 살피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제 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도리어 저희 부인께서 잘못하셨다는 뜻입니까?”방 어멈은 비록 하인이었으나 심서준의 유모이기도 했다. 심서준조차 예우하는 사람이니 집안에서의 지위도 여느 하인과는 달랐다. 지금 하는 말이 다소 분수를 넘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 어멈은 조금도 심태숙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일이 이 지경에 이를 줄은 몰랐던 심태숙은 망연한 얼굴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한참 만에 그가 나직이 물었다.“제수씨, 정녕 조금의 정리도 남겨 두지 않겠다는 거요?”계연수는 눈을 내리깐 채 대답하지 않았다.더는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심태숙은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 주문춘귀   제1233화

    심태숙이 가증스러운 것은 악의가 없으면서도 어느 일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겉으로는 모든 일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듯했지만, 그 근원을 따져 보면 그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계연수는 눈앞의 심태숙을 보면서도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 모두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그녀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제 일조차 어쩌지 못하는 제가 누구를 돕겠어요. 형수님이 무슨 말을 하든 제가 시킨 일이 아니에요. 정 억울하시다면 형부의 대인이나 태자 전하께 가서 호소하세요. 제게 말씀하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혹시 아주버님께서 마음 편히 지내시려고 제게 형수님을 한 번만 봐 달라 청하러 오신 거라면, 그 생각부터 버리세요.”계연수는 몸을 지탱하며 조금 일어나 앉았다. 긴 머리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침상 가장자리를 짚은 채 심태숙을 똑바로 바라보던 그녀가 짧게 기침했다. 이윽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말을 이었다.“저는 백씨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제 손으로 죽일 수만 있다면,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해요. 하루라도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누구 사정도 헤아릴 여력이 없어요. 저를 해친 사람은 누구도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심태숙의 얼굴이 굳었다. 계연수의 눈빛은 섬뜩하리만큼 차가웠다. 입 밖으로 내놓은 말보다 더 매정한 것은 그 눈빛이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돌이킬 여지는 없다고, 그녀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이제 계연수에게 가족의 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그녀는 더 이상 그 정에 얽매일 생각이 없었다.심태숙은 잠시 망연해졌다. 그토록 오랜 세월 아등바등 살아왔다. 남은 평생은 부귀를 누리며 평안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믿었건만, 결국 부인 하나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계연수의 눈에 서린 증오를 보고 있자니, 그녀가 매정하다고 탓할 수도 없었다. 서준이의 유일한 적자가 백씨의 손에 희생되었다. 그런 일을 겪고 누가 쉽사리 용서할 수 있겠는가.심태숙의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 주문춘귀   제1232화

    “그 뒤로도 당신 형수는 몇 번이나 그 이야기를 꺼냈소. 그때마다 내가 호통을 쳐서 입을 막았지. 그만하면 단념했으리라 여겼는데, 도리어 다른 길로 내몬 셈이었소. 감히 태후와 손을 잡을 줄이야…….”“집안 재산 이야기를 그토록 여러 번 꺼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소. 더는 그 사람을 이 집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걸. 언젠가는 기어이 일을 저지를 거라는 걸 말이오. 그런데도 설마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소. 오랜 세월 부부로 살아온 정도 있었고…….”“제수씨 말이 맞소. 내가 그 사람의 욕심을 키웠고, 제멋대로 구는 걸 보고도 모른 척했소. 제수씨가 살림을 맡은 데 불만이 많다는 것도 뻔히 알면서, 한 번도 경계하지 않았소.”심태숙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제수씨나 서준이를 해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소.”“그런데 지난번에 당신 형수가 자기를 꺼내 달라고 하더군. 구해 주지 않으면 나까지 물고 늘어지겠다고, 나도 함께 일을 꾸몄다고 하겠다는 거요.”심태숙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일그러졌다. 눈물이 하염없이 뺨을 타고 흘렀다.“그 사람이 나까지 끌고 죽겠다는 거요.”“제수씨는 누구보다 총명하지 않소. 내가 정말 집안 재산과 부귀를 탐냈다면, 백씨에게 재산의 절반을 받지 않겠다는 말을 했겠소? 더구나 어찌 이런 천인공노할 짓까지 벌였겠소. 제수씨는 사리 분별이 밝은 사람이니 알 거요. 당신 형수는 나까지 죽이려 하고 있소. 이 못난 아주버님이 가엾다 여기고,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시오.”여기까지 듣고서야 계연수는 심태숙이 자신을 찾아온 진짜 이유를 알았다.아마 그는 먼저 심씨 노부인을 찾아갔을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어머니에게 나서서 백씨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청했으리라. 그러나 노부인이 아무리 사리에 어둡다 한들 그런 요구까지 들어줄 리는 없었다. 오죽 기가 막혔으면 족보에서 심태숙의 이름을 지우겠다는 말까지 했겠는가.어머니에게 매달려도 소용이 없자, 이제는 자신을 찾아와 애원하는 것이었다.계연수는 가만

  • 주문춘귀   제1231화

    미지근한 찻물이 피부 위로 쏟아졌다. 살갗을 데일 만큼 뜨겁지도 않은데, 심태숙에게는 불에 덴 듯 느껴졌다. 그의 손이 저도 모르게 떨리기 시작했다.이윽고 찻잔이 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심태숙은 온몸의 기운이 빠져 의자 아래로 주저앉았다.곁에 서 있던 용춘은 두 손을 모은 채 그 추태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다가가 부축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조금 전 부인의 말씀은 틀린 데가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용춘이 보기에 심태숙은 백씨가 부인을 해치는 데 일조한 공범이었다. 그 역시 결코 무고하지 않았다.이제 와 저런 꼴로 동정을 구하다니. 보고 있자니 불쾌하기만 했다.계연수도 병풍 너머로 어렴풋이 비치는 형체를 통해 심태숙이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그녀는 눈을 감았다. 가슴 깊이 눌러 두었던 말을 쏟아 냈건만, 응어리진 원망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심태숙이 미웠고, 자신도 미웠다.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이제 와 아무리 원망을 토해 낸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무력감이 무엇보다 그녀를 괴롭혔다.계연수는 다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숙여 이마를 짚었다. 목 안이 따끔거리며 기침이 치밀었다. 가까스로 이를 억누른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주버님, 저는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이 일은 평생 잊지 않을 테니, 이만 돌아가세요.”심태숙이 숨을 들이켰다.이곳에 올 때만 해도 마음 한구석에는 실낱같은 기대가 있었다. 온화하고 품위 있는 제수씨라면 혹여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까. 백씨만 미워할 뿐 자신까지 원망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그러나 이제야 깨달았다. 계연수는 겉으로 보이는 그 단아한 모습처럼 마냥 마음이 여린 사람이 아니었다.어떤 면에서는 다섯째 아우를 닮았다. 매정해져야 할 때는 결코 인정에 휘둘리지 않았다.자신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던 백씨의 말이 떠오르자, 심태숙은 당장이라도 옥에 끌려갈 것만 같았다.어머니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고, 이제는 계연수마

  • 주문춘귀   제1230화

    “제가 아이를 낳던 밤은 그토록 위태로웠어요. 아주버님도 돌아와 계셨으면서 형수님이 집안일을 마음대로 처리하고, 사촌 형님들께 소식조차 전해지지 않게 막는 걸 그대로 두셨잖아요. 나중에 문지기에게 들으니 그날 둘째 사촌 형님도 오셨다더군요. 헌데 넷째 형수님께서 돌려보냈다고요.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드셨어요?”“집 안에 태의가 계셨는데도 형수님은 양아를 밖으로 내보내 의원을 불러오게 했어요. 왜 그러는지 한마디도 묻지 않으셨고요. 그날 밤 아주버님이 조금만 더 마음을 쓰셨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계연수의 말이 이어졌다.“결국 아주버님도 아무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안채 일은 형수님이 알아서 처리하는 데 익숙해져서, 신경 쓰지 않고 편히 지내고 싶으셨던 거잖아요.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더라도 더 알아보려 하지는 않으셨겠지요.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사셨는데, 부인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모르셨어요?”“어머님께서 쓰러지신 뒤 그토록 오래 정신을 차리지 못하셨어요. 늘 스스로 효성스럽다 여기셨잖아요. 헌데 왜 이상한 점이 없는지 더 살피지 않으셨어요? 형수님은 어머님 곁의 시녀를 매수해 약에 정신을 가라앉히고 깊이 잠들게 하는 약까지 섞었어요. 조금만 더 살피셨다면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셨을 거예요. 넷째 형수님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요.”“그뿐인가요. 제가 평소 믿고 의지하던 최씨는 다른 곳으로 보내고, 다른 여인들도 모두 제 처소에 머물게 했어요. 제가 아이를 낳느라 가장 절박했던 때에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하고, 건너편 사촌 형님들까지 막아 세웠어요. 대체 왜 그랬겠어요?”“아주버님은 무능하고 마음이 무른 데다, 번거로운 일에 나서기도 싫으셨던 거예요. 제 부군의 일도, 심씨 집안의 일도 그만큼 마음에 두지 않으셨던 거고요. 조금 전 하신 말씀은 전부 그 무능함을 덮으려는 변명일 뿐이에요. 그런데도 스스로 아무 잘못 없는 것처럼 이유를 붙여 가며, 모든 허물을 남에게 돌리고 계시잖아요.”“아주버님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면,

  • 주문춘귀   제1229화

    들어오라는 말을 전해 들은 심태숙은 속으로 안도했다. 그러나 눈앞에 드리워진 발을 보니, 막상 계연수를 마주할 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에 드물게도 몸 둘 바를 몰랐다.심태숙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안으로 들어섰다.안에서 기다리던 시녀가 심태숙을 의자로 안내하고는 몸을 숙여 차를 올렸다. 찻잔을 받아 들자 그윽한 향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방 안에 짙게 밴 약 냄새와 뒤섞인 그 향은 심태숙의 마음을 까닭 모르게 무겁게 짓눌렀다.심태숙은 차를 마시지 않았다. 병풍 너머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병풍에 희미하게 비친 그림자만으로는 안쪽 사정을 알 수 없었지만, 계연수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했다.문득 그날 밤 백씨를 끌고 가던 계연수의 눈빛이 떠올랐다.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은 듯 차갑고 단호했던 눈이었다. 그 생각에 심태숙은 다시 가슴이 조여 왔다.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몸은 좀 나아졌소?”계연수는 막 한바탕 기침을 쏟아 낸 뒤였다. 가슴이 들썩이고 숨이 가빴으며, 온몸의 뼈마디가 은근히 쑤셨다. 감기와 기침에 시달리느라 밤에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계연수는 조금 잠긴 목소리로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럭저럭 지내요.”심태숙은 그 쉰 목소리를 듣고 무릎 위에 놓인 손가락을 어색하게 꼼지락거렸다. 그러고는 병풍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번 일은 우리 큰방이 제수씨에게 못 할 짓을 했소…….”계연수는 입술을 다물었다. 일이 다 벌어진 뒤에 하는 말을 들어 줄 마음은 없었다.미안하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 말로 아이가 제 곁에 돌아올 수 있단 말인가. 태후는 자신과 아이를 함께 죽이려 했다. 그 뜻대로 되었더라면, 뒤늦게 아무리 사죄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계연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 의미도 없는 말에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미간에는 벌써 참기 힘들다는 기색이 어렸다.한참이나 답이 없자 심태숙도 깨달았다. 계연수는 그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두려움이 더욱 커지면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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