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역적의 딸이 된 날, 윤해원은 기루 청월각에 팔렸다. 아버지를 잡아간 대장군 강무진은 그녀를 감시했고, 구원자인 줄 알았던 서이준은 정혼녀를 위해 그녀를 버렸다. 끝내 뱃속의 아이마저 잃은 해원 앞에, 가문을 멸문시킨 왕이 나타났다. “내 여자가 되면 네 죄를 용서하마.” 해원은 피 묻은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왕이 빼앗은 것은 이름과 가족, 사랑만이 아니었다. 살아갈 이유까지 짓밟힌 그녀는 기루로 돌아가 권세가들의 비밀을 모으기 시작한다. 천하의 남자들이 무릎 꿇는 기생이 되어, 마침내 왕을 버리기 위해. 버린 남자는 용서를 빌고, 그녀를 가뒀던 장군은 왕에게 칼을 겨눈다. 그러나 해원이 원하는 것은 남자의 품도 아니다. 왕좌를 무너뜨리고 빼앗긴 이름을 되찾는 것. 청월각에 마지막 연회가 열린다.
View More윤해원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형리가 칼을 들어 올리는 순간, 뒤에 서 있던 포졸이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땅바닥에 처박았기 때문이다. 이마가 돌바닥에 부딪쳤고, 입안으로 흙이 밀려들었다. 해원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형장 앞에 모인 백성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는 역적이 마땅한 벌을 받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어린 딸이 불쌍하다며 혀를 찼다. 그 소리들 사이로 형리가 칼에 묻은 피를 털어 내는 모습이 보였다.
해원은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있던 자리로 기어갔다. 손바닥으로 돌바닥을 짚을 때마다 살갗이 벗겨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그곳에는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씀하려 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아버지 시신만이라도 거두게 해 주십시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제발…….”
포졸이 해원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역적의 시신을 누가 함부로 거두라 하더냐.”
“다른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장례만 치르게 해 주십시오.”
포졸은 대답 대신 품에서 문서 한 장을 꺼냈다. 관인이 선명하게 찍힌 종이에는 윤승학의 가산을 몰수하고 가족을 관노비로 편입한다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해원은 그 글자를 읽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익숙한 글자들이 눈앞에서 흩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포졸이 그녀의 손목에 포승줄을 감았다.
“윤승학의 딸 윤해원. 오늘부로 관비다. 청월각으로 배속하라는 명이 내려왔다.”
“청월각이라니요?”
“기루 이름도 모르느냐?”
해원은 포승줄이 조여드는 것도 잊고 포졸을 바라보았다.
“저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포졸이 비웃었다.
“네 아비도 마지막까지 그 소리만 하더라.”
해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가 억울하다고 외쳤다는 사실을 이 사내는 알고 있었다. 알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포졸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걸어라. 해 지기 전에 넘겨야 한다.”
해원은 몇 걸음 끌려가다가 다시 멈췄다. 형장 가장자리에 아버지의 짚신 한 짝이 뒤집힌 채 놓여 있었다. 아침에 집에서 끌려 나가실 때 신었던 것이었다.
“저 신발만이라도 가져가게 해 주십시오.”
포졸은 신발을 한 번 보더니 해원의 등을 밀었다.
“죽은 사람 신발이 네게 무슨 소용이냐.”
해원은 포승줄에 끌려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형장이 담장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아버지의 짚신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
청월각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다.
대문 앞에는 화려한 가마가 줄지어 서 있었고, 안쪽에서는 가야금 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인들은 손님들이 가져온 술독을 나르느라 분주했다.
포졸은 해원을 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관에서 보낸 계집이다. 행수를 불러라.”
잠시 후 비단 치마를 입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월각의 행수 옥매향이었다.
그녀는 포졸이 내민 문서를 받아 들고 한참 동안 읽었다. 그러고는 해원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살폈다.
“윤승학의 딸?”
옥매향은 해원의 턱을 들어 올렸다. 뺨에 묻은 흙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지우더니 입술을 벌려 치아까지 살펴보았다.
해원이 얼굴을 돌리자 옥매향의 눈썹이 올라갔다.
“아직도 양반집 규수인 줄 아는 모양이지?”
그녀는 문서를 다시 펼쳤다.
“열아홉. 글을 읽고 거문고를 다룰 줄 안다고 적혀 있군. 오늘 손님들에게 내보내도 되겠어.”
“오늘이라니요?”
“오늘 밤 말이다.”
해원은 숨을 들이켰다.
“저는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못했습니다.”
옥매향은 포졸에게 인수 사실을 확인해 주고 문서를 품에 넣었다. 포졸들이 돌아가자 하인들에게 포승줄을 풀라고 지시했다.
손목이 자유로워진 해원은 얼른 두 손을 맞잡았다. 줄이 파고들었던 자리마다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행수 어른,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는 청이라도 다시 올리고 싶습니다.”
옥매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곁에 있던 하인에게 해원을 가리켰다.
누군가 윤해원을 기루로 보내는 일에 지나치게 서둘렀다. 단순한 우연이라면 형조가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었다.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청월각의 붉은 등불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윤해원은 지금 저 등불 아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아버지를 잃은 날에도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여자였다.강무진은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그가 처음으로 후회한 명령은 윤승학을 체포하라는 왕명을 따랐던 날의 명령이었다.그리고 오늘 밤, 그는 또 하나의 명령을 내렸다.윤해원을 감시하라는 명령.그것이 훗날 자신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지, 강무진은 아직 알지 못했다.***새벽이 가까워졌을 무렵, 옥매향이 다시 찾아왔다.평소 침착하던 행수의 얼굴에 불안이 어려 있었다.“장군,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강무진은 문서를 덮었다.“말해라.”“윤해원에게 손님을 붙이지 말라는 명령은 받들겠습니다. 다만 그 아이의 이름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이름?”“기루에 들어온 관비는 손님 앞에서 본래 이름을 쓰지 않습니다. 청월각에서도 새 이름을 내려 주는 것이 관례입니다.”강무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윤해원.그 이름을 부르면 여인은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유산처럼 자신의 이름을 지키려는 모습이 떠올랐다.“지금 당장 바꿀 이유가 있느냐?”“아직 정식으로 기예를 배우기 전이라 서둘러야 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루의 장부와 손님 명부를 정리하려면 언젠가는 정해야 합니다.”강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관비의 신분과 기루의 관례를 알고 있었다. 왕명이 내려진 일을 장군의 개인적인 호의만으로 뒤집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이름만큼은 빼앗기게 두고 싶지 않았다.“내가 확인할 일이 끝날 때까지는 본래 이름을 그대로 두어라.”옥매향은 고개를 숙였다.“알겠습니다.”그녀가 돌아선 순간, 강무진이 다시 불렀다.“옥매향.”“예, 장군.”“윤해원에게는 내가 감시를 명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마라.”
“윤해원을 함부로 손님 앞에 세우지 마라. 상처가 낫기 전에는 기예를 가르친다는 핑계로 몸을 혹사시키지도 말고.”“명심하겠습니다.”“오늘 형조 관리가 그 여인을 때린 일은 따로 기록해 두어라. 그자가 다시 찾아와 소란을 일으키면 내 군사에게 알려라.”옥매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장군께서 그 아이를 특별히 돌보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강무진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윤승학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해원은 아버지의 서재를 기억하는 중요한 증인이었다.그러나 조금 전 그녀의 노래를 멈추게 한 이유까지 그것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내가 확인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옥매향은 더 묻지 않았다.강무진은 탁자 위의 장부를 다시 펼쳤다.“오늘 밤부터 그 여인을 살펴라.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묻는지 알아두라는 뜻이다. 형조에서 온 사람이 접근하거나 아버지의 사건에 관해 묻는 자가 있으면 바로 알려라.”옥매향은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감시하라는 말씀이군요.”“그렇게 받아들여도 좋다.”“그 아이가 눈치채면 반발할 것입니다.”강무진은 짧게 웃었다.“이미 나를 미워하고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지.”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그는 해원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을 떠올렸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복종은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더라도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자신이 그녀의 모든 선택을 대신하게 될 터였다.강무진은 아직 그 잘못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대신 몸에 손대지 마라. 감시하는 자가 그 여인을 겁주거나 상처 입히면 네 책임으로 묻겠다.”“알겠습니다.”“그 여인이 무엇을 물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거절했는지도 기록해라.”옥매향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거절한 것까지 말씀이십니까?”“그렇다.”강무진은 장부를 덮었다.해원은 누구에게나 고개를 숙이는 여자가 아니었다. 원하지 않는 일을 분명히 거절했고, 그 때문에 더 큰 위험을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설명하는 순간 윤승학이 남긴 다른 기억들까지 입 밖으로 흘러나올 것 같았다.그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진실을 해원에게 말할 수 없었다.“다른 것을 불러라.”해원은 고개를 숙였고, 옥매향은 불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살폈다.세 번째 노래가 시작되었다.이번에는 멀리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노래였다.강무진은 첫 소절을 듣자마자 눈을 감았다.그는 수많은 전쟁터에서 그런 노래를 들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가 불렀고,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가 불렀다. 전사자 명부를 들고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누군가는 아직 돌아올 사람이 있다고 믿었다.그 믿음이 얼마나 잔인하게 무너지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여인이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해원의 목소리가 조금씩 흔들렸다.강무진은 눈을 떴다.그녀는 울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소절로 넘어가기 전에 짧게 숨을 들이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손가락이 치맛자락을 움켜쥐었고, 입술은 몇 번이나 움직이다가 겨우 소리를 냈다.그는 더 들을 수 없었다.“그만해라.”세 번째였다.해원이 노래를 멈췄다.잠시 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장군께서는 제가 우스우십니까?”강무진의 가슴이 내려앉았다.“무슨 뜻이지?”“노래를 부르라고 하셔서 불렀습니다. 그런데 세 번이나 중간에 끊으셨습니다.”해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어머니께 배운 노래이고,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노래였습니다. 오늘은 그분들을 모두 잃은 날입니다.”옥매향이 급히 다가갔다.“해원아, 그만하거라.”그러나 해원은 강무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장군께서 원하시면 저는 노래도 불러야 하고, 장군께서 싫으시면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지요?”강무진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제 아버지를 데려가실 때도 그랬습니다. 그만두라고 부탁드렸지만 듣지 않으셨지요.”해원의 눈가가 붉어졌다.“이제는 제가 무엇을 부르고 어디에서 멈출지도 장군께서 정하시는군요.”강무진은 손을 뻗으려다가
강무진은 해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그 일은 장부의 숫자를 고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그렇겠지요. 돈을 잘못 적은 사람은 꾸짖으실 수 있지만, 사람을 잘못 죽인 사람은 누구도 꾸짖지 못하시겠지요.”강무진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기대를 했는지 깨달았다.장부 몇 줄을 고쳐 준다고 해서 그녀의 원망이 줄어들 리 없었다. 북방에서 적장을 무릎 꿇리고 성문을 열게 만들었던 자신이 눈앞의 여인에게서는 감사 한마디조차 얻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그 사실이 불쾌했다.그런데도 해원이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모습은 싫지 않았다.강무진은 그 모순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장부를 덮었다.***“노래를 할 줄 아느냐?”강무진이 물었을 때, 옥매향은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들었다.“이 아이가 양반가에서 자랐으니 노래 한 자락은 알 것입니다. 아직 기루의 법도를 익히지 못했지만…….”“행수에게 묻지 않았다.”옥매향이 입을 다물었다.해원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대답했다.“어머니께 배운 노래가 있습니다.”“불러 보아라.”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지금 말씀이십니까?”“그렇다.”강무진은 자신이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조금 전부터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버지를 원망하는 말도, 자신을 비난하는 말도 아닌 다른 목소리였다. 처형장과 형조, 붉은 봉인에서 벗어난 평범한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그러나 그런 욕망을 해원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해원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옥매향이 눈짓으로 재촉하자 그제야 천천히 허리를 폈다.첫 소절이 흘러나왔다.부드럽고 낮은 목소리였다. 달빛이 내려앉은 뜰에서 먼 길 떠난 이를 기다리는 노래였는데, 강무진은 예상치 못한 맑은 가락에 손을 멈췄다.그는 청월각에서 수많은 노래를 들었다. 기교가 뛰어난 기생도 있었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명창도 있었다. 그러나 해원의 노래에는 그런 계산이 없었다.그녀는 손님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처럼 노래하지 않았다.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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