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를 버리고, 숙부의 아내가 되었다

세자를 버리고, 숙부의 아내가 되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By:  해월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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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사랑했던 세자에게 버림받았다. 이복여동생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뱃속 아이마저 잃은 끝에 차가운 별궁에서 죽음을 맞은 윤가연. 다시 눈을 뜬 날, 그녀는 세자와의 혼인을 거부하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의 숙부, 진왕 이무혁에게 청혼했다. “전하, 저를 아내로 맞아 주십시오.” 잔혹하기로 이름난 진왕은 뜻밖에도 그녀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자신을 그토록 경멸하던 세자가 미친 듯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가연아, 네가 사랑한 사내는 나였다!” 진왕은 가연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차갑게 웃었다. “이제 네 숙모다. 감히 누구의 여인을 탐하는 것이냐?” 버린 여자를 되찾으려는 세자와 누구에게도 아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진왕. 두 남자의 집착이 마침내 황실 전체를 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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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I took my notebook back from Yale Lawson's desk.

Every page was packed with detailed solutions, common mistakes to watch for, and the concepts each problem was testing.

My deskmate, Jade Lewis, had flipped through it once and stared at me in disbelief.

"Zoe, these notes are insane. You're already number one in our grade. Do you really need to write down this much?"

I'd hidden my flushed face and said, "It makes studying easier."

That wasn't the real reason.

I'd made those notes specifically for Yale. I was afraid he wouldn't understand otherwise.

Yale was good-looking, but he wasn't easy to approach. He never wore his school uniform properly, and his black backpack always hung carelessly from one shoulder. In class, he was either asleep or staring into space.

Whenever a teacher called on him, he would get to his feet with his eyes lowered, stand there in silence for what felt like forever, and finally say, "I don't know."

The teacher would slam a hand against the lectern in frustration, and Yale wouldn't so much as flinch.

He was like a rock. No matter how hard anyone tried, they could never get a reaction out of him.

Normally, someone like that was exactly the kind of person I should have stayed far away from.

Then, not long after freshman year started, a few students from another school cornered me by the back gate and demanded money.

Yale came down the alley carrying a half-finished bottle of ice water. He stepped in front of me and looked at them.

"Move."

One of them didn't take kindly to that and swore at him.

Yale glanced his way.

That one look was enough to make him shut his mouth.

A few moments later, they were gone.

Yale crouched down and picked up the books scattered across the ground, one by one. He dusted them off before putting them back in my arms.

"Thank you," I whispered.

He didn't even look at me.

"What a pain."

That was the day I fell for him.

And after that, I liked him with a kind of hopeless devotion that left me no dignity at all.

If he skipped study hall, I marked all the important material the teacher had assigned so he wouldn't miss anything. If he slept through class, I rewrote every example the teacher had gone over. Whenever he kicked the back of my chair, I knew what he wanted and passed him my notebook.

Sometimes he would mutter, "Thanks."

Most of the time, he said nothing.

I never minded. Everyone at school knew Yale wasn't much of a talker.

Somewhere along the way, I even convinced myself that the fact he borrowed my notes meant I was at least a little different to him.

Then last night, I came across a post on the school forum.

[Did Yale Lawson suddenly start studying because he's trying to get Xandra Xane, the prettiest girl in school?]

[Obviously. Xandra just said she wants to go to Southern University, and now Yale's checking their admissions scores. The school bad boy hitting the books for love? I'm obsessed.]

[But hasn't he been asking Zoe Shaw, the top student in our grade, for her notes every day lately?]

[So what? Yale's just trying to get his grades up so he can go to the same college as Xandra. Zoe's basically just his study mule.]

"Study mule."

I stared at those two words until a chill spread through my hands and f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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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hapters
1화
"문을 열어라! 제발 의원을 불러 다오! 내 아이가 죽어 간단 말이다!"윤가연은 피 묻은 두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벌써 한 시진 가까이 매달린 탓에 손바닥의 살갗이 벗겨졌지만, 그녀에게는 그 아픔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배 속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밀려올 때마다 몸을 웅크렸다가, 잠시 고통이 가라앉으면 다시 문고리를 붙잡고 일어섰다.닫힌 문 너머에는 세자가 보낸 병사 여섯이 서 있었다.갑옷이 부딪히는 소리와 창을 고쳐 쥐는 기척은 들렸으나, 가연의 애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의원 한 사람만 들여보내 달라는 것이다. 내가 이 방에서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제발……."가연은 문에 이마를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아침부터 시작된 복통은 해가 기울면서 더욱 심해졌다. 처음에는 아이가 태어날 때가 다가온 것이라 여겼지만, 치맛자락이 피로 젖기 시작한 뒤부터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두렵게 한 것은 배 속에서 느껴지던 아이의 움직임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평소에는 어미가 손을 얹기만 해도 발길질하던 아이였다. 잠들기 전 배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면 작은 몸을 움직여 대답했고, 가연은 그때마다 웃으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배를 쓰다듬어도 반응이 없었다.가연은 한 손으로 배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여봐라. 내가 잘못했다고 전해 다오. 세자 저하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고, 다시는 그분께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전해 다오."문밖에서 누군가 발을 옮겼다. 병사 하나가 문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에 가연이 고개를 들었다."마마, 저희는 명을 따를 뿐이옵니다.""그 명이 무엇이기에 산모가 피를 흘리는데도 의원조차 들이지 못하게 한단 말이냐?"병사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 앞에 창을 다시 세웠고, 가연은 그 무거운 쇳소리를 들으며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그녀가 세자 이태겸의 아내가 된 지도 어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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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아직도 소란을 피우고 있었느냐."태겸의 말투에는 짜증이 배어 있었다.가연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산모가 피를 흘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아무리 자신을 미워하더라도 의원부터 부르라고 할 줄 알았다."저하, 소란을 피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배 속의 아이가 아까부터 움직이지 않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살펴봐 주십시오."태겸은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그의 옆에 서 있던 여인이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자, 태겸의 시선이 곧바로 그쪽으로 향했다."저하, 저는 괜찮으니 마마를 살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여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가연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겸이 자신의 처소 쪽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았다."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의원을 부르라 했으면 기다리면 될 것을, 저렇게 사람들을 불러 세우는구나.""하지만 마마께서 많이 아프신 듯하여…….""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내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가연은 문을 붙잡은 채 굳어 버렸다.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에게 안겨 주고 싶었다. 그 작은 얼굴을 보여 주면 남편도 한 번쯤은 자신을 다르게 바라봐 주리라 생각했다.그런 기대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그럼에도 가연은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자존심보다 아이의 목숨이 중요했기 때문이다."저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저하께 아이를 핑계로 무엇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문만 열어 주십시오."가연은 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몸을 숙이는 순간 허리 아래로 날카로운 통증이 퍼졌지만, 그녀는 바닥에 두 손을 짚고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아이가 죽으면 저는 어찌 살아갑니까. 저하께서는 저를 미워하셔도 좋으니, 아이만은 살려 주십시오."회랑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태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연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문을 열어 주기만을 기다렸다. 한 번이라도 자신의 얼굴을 보고 피로 젖은 옷자락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는 마지막 희망 때문이었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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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의원은 급히 가연의 맥을 짚었다. 시녀들은 물을 데우고 깨끗한 천을 가져오느라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의원의 굳어진 얼굴을 본 순간 누구도 아이의 안위를 묻지 못했다.가연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었다.누군가 자신의 다리를 받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젖은 옷을 갈아입히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오직 배 속의 아이에게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의원……."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가연은 곁에 있는 사람의 소매를 붙잡았다."아이는…… 살릴 수 있겠습니까?"의원은 대답하지 못했다.그가 시선을 피하는 순간, 가연은 손끝에서부터 피가 식어 가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제발 살려 주십시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제 목숨을 가져가셔도 좋으니 아이만은……."의원은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시녀들에게 필요한 일을 지시했다.그날 밤, 가연은 아이를 낳았다.그러나 방 안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산고에 지친 가연은 눈을 감았다가, 이상할 만큼 고요한 방 안의 분위기에 다시 눈을 떴다. 시녀들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고, 의원은 한쪽으로 물러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아이는 어디 있느냐?"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가연은 침상 가장자리를 붙잡고 다시 물었다."내 아이를 보여 다오."가까이 있던 시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 품에는 작은 천 보자기가 안겨 있었다.가연은 보자기를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이리 다오."시녀는 차마 다가오지 못했다.가연이 떨리는 손을 내밀자 그제야 보자기를 품에 안겨 주었다. 천을 걷어 내자 작은 얼굴이 드러났다.꼭 감긴 눈과 조그마한 코, 손가락마다 희미하게 잡힌 주름까지.가연은 아이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분명 자신의 아이였다. 열 달 가까이 배 속에 품고 매일 말을 걸었던 아이가 틀림없었다.그런데 아이의 몸에는 온기가 없었다.가연은 손바닥으로 아이의 등을 감싸 쥐었다. 자신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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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아이가 죽은 뒤에도 그녀는 세자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 남편의 냉대는 견딜 수 있었고, 다른 여인이 그의 사랑을 받는 것도 더는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자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사람들 앞에서까지 침묵할 수는 없었다.가연이 억울함을 호소할 때마다 새로운 죄목이 붙었다.왕실의 체면을 손상했다는 말이 나왔고, 세자의 총애를 받는 여인을 시기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누군가는 그녀가 그 여인을 해치려 했다고 증언했으며, 가연이 그런 일을 한 적 없다고 항변하면 오히려 반성할 줄 모르는 여자라 손가락질했다.세자는 끝내 그녀의 편에 서지 않았다.가연이 마지막으로 그를 만난 날에도 태겸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억울하게 내몰린 일을 설명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결론을 내려 놓은 사람처럼 차갑게 말했다.'네가 조용히 지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것이 남편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별궁에 들어온 뒤 가연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헤아리지 않게 되었다. 담장 밖으로 계절이 바뀌는 모습은 보였지만, 자신에게 허락된 것은 작은 방과 하루 두 번 들여오는 식사뿐이었다.그날도 그녀는 창가에 앉아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지고 있었다.오래된 비단은 군데군데 빛이 바랬고, 수놓았던 꽃잎의 실도 느슨해져 있었다. 가연은 손톱 끝으로 풀어진 실을 정리하다가 문밖에서 빗장을 여는 소리를 들었다.궁녀 하나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쟁반 위에는 따뜻한 차가 담긴 백자 잔이 놓여 있었다.가연은 차보다 궁녀의 얼굴을 먼저 살폈다. 별궁에 들어온 뒤 몇 번이나 식사를 가져다주던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손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궁녀가 쟁반을 내려놓자 찻잔이 받침에 부딪혀 가느다란 소리를 냈다."무슨 차이냐?""몸을 보하시는 약차이옵니다, 마마."궁녀는 고개를 숙인 채 한 걸음 물러났다.가연은 찻잔에서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았다. 은은한 약향 사이에 익숙하지 않은 쓴 냄새가 섞여 있었다."누가 보냈느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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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가연은 흐려지는 눈을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내관의 어깨 너머로 붉은 치맛자락이 잠깐 드러났다. 금실로 꽃무늬를 수놓은 옷자락이었고, 기둥 뒤로 몸을 돌리는 여인의 머리에는 꽃잎 모양의 금비녀가 꽂혀 있었다.가연은 그 비녀를 본 순간 손을 멈췄다.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금비녀의 꽃잎 끝이 유난히 뾰족했고, 가운데에는 작은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희미한 등잔빛을 받은 보석이 반짝이는 동안, 가연은 그 문양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그러나 여인은 얼굴을 보여 주지 않은 채 돌아섰다.가연은 입을 열었다."잠깐……."그 목소리는 문밖까지 닿지 못했다.가슴을 움켜쥐는 통증에 몸이 옆으로 기울었고, 차가운 바닥이 뺨에 닿았다. 궁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만, 가연에게는 그 소리마저 점점 멀어졌다.그녀는 품에 안은 배냇저고리를 손끝으로 더듬었다.노란 비단 위에 수놓았던 작은 꽃.한 번도 입혀 보지 못한 옷.그 옷을 만들던 밤마다 가연은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 줄지 고민했다. 아이가 자라면 세자궁의 매화나무 아래에서 함께 놀고, 비가 오는 날에는 창가에 앉아 옛이야기를 들려주리라 생각했다.그 모든 일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가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세자에게 묻고 싶은 말은 많았다. 어째서 자신을 아내로 맞았는지, 아이가 죽던 날 왜 문을 열어 주지 않았는지, 마지막까지 자신을 이렇게 버려야 했는지.그러나 이제 그에게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다.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처음부터 그의 아내가 되지 않을 것이다.그와 혼인하던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누구의 꾸지람을 듣더라도 그 혼서를 받지 않을 것이다.가연은 마지막 힘을 다해 비단을 끌어안았다."아가……."눈꺼풀이 무거워졌다."어미가 미안하다."그 말을 끝으로 윤가연의 손이 바닥에 떨어졌다.별궁의 등잔은 밤새 타올랐다.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아씨, 일어나셔야 합니다. 이러다 정말 늦으시겠어요."누군가 어깨를 흔들었다.가연은 숨이 막히는 듯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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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가연은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기쁘기보다 먼저 아이가 그리웠다.만약 다시 태어날 아이가 그 아이일 수 있다면, 가연은 어떤 고통이라도 견디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세자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이 차갑게 굳었다.닫힌 문과 피 묻은 손바닥, 멀어지던 남편의 발소리가 떠올랐다.가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 길로 다시 갈 수는 없었다."혼서가 어디 있느냐?"몸종은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다가 벽장 쪽을 가리켰다."세자 저하께서 보내신 혼서 말씀이십니까? 마님께서 귀한 물건이라며 함에 넣어 두라고 하셨습니다."가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벽장 안에는 붉은 자개함이 놓여 있었다. 전생에는 그 함을 열어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렜고, 혼서에 적힌 이름을 손끝으로 따라 쓰기도 했다.그녀는 함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붉은 비단 보자기를 걷자 반듯하게 접힌 혼서가 모습을 드러냈다.가연은 종이를 펼쳐 이태겸의 이름을 확인했다.일곱 해 동안 남편이라 불렀던 남자.아이가 죽어 가는 순간에도 다른 여인의 손을 잡고 돌아섰던 남자.별궁으로 내몰린 자신을 끝내 찾아오지 않았던 남자.그의 이름을 바라보는 동안 가연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해졌다. 조금 전까지 아이를 떠올리며 떨리던 손도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그녀는 혼서를 다시 접어 함에 넣었다."아씨, 무엇을 하시려고요?"몸종이 다가와 묻자 가연은 함을 품에 안고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봄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마당에서는 내일 간택에 입을 옷을 나르는 하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연은 잠시 문턱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전생의 자신도 저들처럼 기뻐했다. 세자의 아내가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 믿었고, 사랑받는 아내가 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믿음의 끝에는 피 묻은 문과 죽은 아이, 독차 한 잔이 기다리고 있었다.가연은 마당을 지나던 하인을 불러 세웠다."사랑채에 가서 아버지께 전해라. 내가 지금 찾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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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태겸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가연아?"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가연은 눈을 뜨지 않았다.태겸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끝에 닿는 피부가 이상할 만큼 차가웠고, 손목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의원을 불러라."그가 뒤늦게 명령했지만,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움직이지 못했다.태겸은 목소리를 높였다."당장 의원을 부르라 하지 않았느냐!"내관이 황급히 문밖으로 뛰어나갔다.소화는 태겸의 팔을 붙잡고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는 처음으로 그녀의 손을 떼어 냈다.태겸은 가연의 어깨를 붙잡아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의 고개는 힘없이 뒤로 젖혀졌고, 품에 안겼던 배냇저고리만이 그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그제야 태겸은 가연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다.아이의 옷을 끌어안은 채, 그저 아이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했을 뿐이었다.태겸은 가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가연아, 눈을 떠라."그러나 윤가연은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아씨, 일어나셔야 합니다. 내일이 간택일인데 아직도 주무시면 어찌합니까?"누군가 어깨를 흔들었다.가연은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에 몸을 일으켰다. 목구멍에 남아 있던 쓴맛이 너무도 생생해 손부터 목으로 가져갔지만, 손가락에 닿는 피부는 따뜻했고 어디에도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폈다.낯익은 비단 병풍과 자개 화장대, 창가에 놓인 향로가 눈에 들어왔다. 향로에서는 매화 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창호지 너머로는 따뜻한 봄볕이 비치고 있었다.별궁이 아니었다.가연이 고개를 돌리자 어린 몸종 하나가 물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아씨, 악몽을 꾸셨습니까? 얼굴이 어찌나 창백하신지……."가연은 몸종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너……."몸종은 당황하면서도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아 주었다.가연은 그 손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눈앞의 아이는 분명 자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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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가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 길로 다시 갈 수는 없었다."혼서가 어디 있느냐?"몸종은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다가 벽장 쪽을 가리켰다."세자 저하께서 보내신 혼서 말씀이십니까? 마님께서 귀한 물건이라며 함에 넣어 두라고 하셨습니다."가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벽장 안에는 붉은 자개함이 놓여 있었다. 전생에는 그 함을 열어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렜고, 혼서에 적힌 이름을 손끝으로 따라 쓰기도 했다.그녀는 함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붉은 비단 보자기를 걷자 반듯하게 접힌 혼서가 모습을 드러냈다.가연은 종이를 펼쳐 이태겸의 이름을 확인했다.일곱 해 동안 남편이라 불렀던 남자였다.아이가 죽어 가는 순간에도 다른 여인의 손을 잡고 돌아섰고, 별궁으로 내몰린 자신을 끝내 찾아오지 않았던 남자였다.그의 이름을 바라보는 동안 가연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해졌다. 조금 전까지 아이를 떠올리며 떨리던 손도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그녀는 혼서를 다시 접어 함에 넣었다."아씨, 무엇을 하시려고요?"몸종이 다가와 묻자 가연은 함을 품에 안고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봄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마당에서는 내일 간택에 입을 옷을 나르는 하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연은 잠시 문턱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전생의 자신도 저들처럼 기뻐했다. 세자의 아내가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 믿었고, 사랑받는 아내가 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믿음의 끝에는 피 묻은 문과 죽은 아이, 독차 한 잔이 기다리고 있었다.가연은 마당을 지나던 하인을 불러 세웠다."사랑채에 가서 아버지께 전해라. 내가 지금 찾아뵙겠다고."하인은 품에 안긴 붉은 함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예, 아씨. 그런데 그 함은……."가연은 하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함을 바로 안았다."세자 저하의 혼서다."그 말을 들은 몸종이 놀라 한 걸음 다가왔다."아씨, 설마 혼서를 들고 사랑채에 가시려는 겁니까? 마님께서 아시면……."가연은 대답 대신 마당으로 내려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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