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부임한 현령은 내가 버린 전남편이다

새로 부임한 현령은 내가 버린 전남편이다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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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간 부부로 살았건만, 윤서린은 결국 제 손으로 합이서를 내밀고 남편을 매몰차게 버렸다. 삼 년 후, 출세한 전남편 서이현이 강남의 작은 고을에 새 현령으로 부임했다! 그는 경성의 높은 관직까지 포기하고 먼 길을 달려왔다. 목적은 단 하나, 자신을 버린 전처를 되찾는 것! 겉으로는 그녀의 장사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서도, 뒤에서는 상인들의 모함을 해결하고 행패를 부리는 불량배까지 쫓아내며 그녀를 지켜 주었다. “우린 이미 끝났어요! 다시는 당신과 혼인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서이현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현령의 체면마저 내던지고, 기어코 그녀의 마음을 되찾으려 했다! 이 남자,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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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banata 1

제1화: 새로 부임한 현령이 하필 내 전남편이라니

제1화: 새로 부임한 현령이 하필 내 전남편이라니

새벽빛이 희미하게 밝아 오는 운금골목, 아침 이슬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서린아! 어서 서우 비단신 좀 신겨! 오늘 새 현령 나리께서 상가를 순시하러 오신다잖아. 우리 비단 가게가 늦으면 안 돼!"

이수연은 보따리를 든 채 처마 밑에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안 갈래! 나 오늘은 서당 절대 안 가!"

침상 위의 작은 떡덩이가 배를 끌어안고 데굴데굴 굴렀다. 꼭 손에 잡히지 않는 미꾸라지 같았다.

윤서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쪼그려 앉아 아들의 말랑한 볼을 꼭 꼬집었다.

"정말 안 갈 거야?"

사내아이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따 오후에 줄 꿀 절임 살구씨는……."

"갈래! 갈래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꼬마는 얌전히 두 발을 쑥 내밀었다.

이수연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아주 그냥 오냐오냐 키워라, 키워."

윤서린은 웃으며 아들에게 버선과 신을 신겨 주고는, 번쩍 안아 올려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있어. 엄마가 일 끝나면 바로 데리러 갈게."

서당으로 가는 작은 마차에 아들을 태우기 전, 윤서린은 무심코 작은 망토를 매만져 주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내아이의 허리춤에 달린 작은 주머니 틈새에, 누렇게 빛바랜 초상화 한 장이 몰래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림 속 남자는 눈매가 차갑고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붓질 하나하나가 날이 서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윤서린이 지난 3년간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아들을 보내고 나서 윤서린은 마차에 올라 운금 상가로 향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이수연이 헐레벌떡 휘장을 걷고 비집고 들어왔다.

"서린아! 겨우 탔네! 우리 거리에 큰일 났어! 옆 가게 대행수가 도망가서 강남에서 팔자 좋게 살고 있다잖아. 그 자리에 조정에서 철권통치로 유명한 독한 사람을 보내서 우리 현을 맡겼대. 그것도 칠품 현령으로 강등까지 시켜서! 신임 관리가 부임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우리 같은 상인들 뒷조사랑 납세 장부 조사래!"

윤서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치맛자락을 정돈했다.

"가 보자. 돌아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 

진시 무렵, 현 관아의 순시 행렬이 운금 상가 어귀에 멈춰 섰다.

검은 말 네 필이 끄는 커다란 이층 지붕 마차가 소리 없이 멈추자, 숨이 턱 막힐 만큼 무거운 기운이 내려앉았다.

시종이 재빨리 휘장을 걷었다. 검은 가죽 장화를 신은 곧고 긴 다리가 내려서고, 도포 자락이 바람에 살짝 일렁였다.

이어서 훤칠하고 늠름한 그림자가 허리를 숙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짙은 금빛으로 단을 두른 먹빛 칠품 관복 차림이었다. 어깨는 넓고 허리는 가늘었으며, 전장에서 단련된 듯한 서늘한 기운과 금욕적인 분위기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도, 타고난 상위자의 위압감에 주변 소상인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슬금슬금 물러섰다.

관아의 총포교가 허리를 굽히며 아첨하듯 아뢰었다.

"서 사또, 소관이 상인들의 장부를 모두 준비해 두었습니다."

서이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먹물처럼 새까만 눈동자가 인파를 차갑게 훑고 지나갔다.

한 명이 비는군.

그는 눈에 띄지 않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반 각 뒤, 상인회 뒤쪽 대청에서 정례 회합을 연다. 불참하는 자는 그 즉시 장사 허가패를 거두겠다."

얼음장 같은 한마디를 던져 놓고, 그는 곧장 회랑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인들은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흩어졌고, 앞다투어 뒤쪽 대청으로 몰려들었다.

대청의 묵직한 나무문이 막 닫히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윤서린이 바람처럼 뛰어 들어왔다. 그런데 바닥에 끌리던 치맛자락을 그만 밟고 말았다.

"앗!"

균형을 잃은 그녀는 그대로 맨 앞에 서 있던 사람의 품으로 고꾸라졌다.

서늘한 소나무 향이 코끝을 스쳤다. 쇠처럼 단단한 가슴팍에 부딪힌 탓에 코끝이 시큰했다.

커다란 손 하나가 능숙하면서도 거침없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휘감아 붙들었다.

낮고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나직하게 울렸다.

"삼 년 만인데, 윤 행수의 품에 안기는 버릇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군."

뼛속까지 익숙한 이 목소리.

윤서린은 퍼뜩 고개를 들었고, 그대로 차가운 연못처럼 깊은 두 눈동자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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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새로 부임한 현령이 하필 내 전남편이라니
제1화: 새로 부임한 현령이 하필 내 전남편이라니새벽빛이 희미하게 밝아 오는 운금골목, 아침 이슬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서린아! 어서 서우 비단신 좀 신겨! 오늘 새 현령 나리께서 상가를 순시하러 오신다잖아. 우리 비단 가게가 늦으면 안 돼!"이수연은 보따리를 든 채 처마 밑에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안 갈래! 나 오늘은 서당 절대 안 가!"침상 위의 작은 떡덩이가 배를 끌어안고 데굴데굴 굴렀다. 꼭 손에 잡히지 않는 미꾸라지 같았다.윤서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쪼그려 앉아 아들의 말랑한 볼을 꼭 꼬집었다."정말 안 갈 거야?"사내아이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따 오후에 줄 꿀 절임 살구씨는…….""갈래! 갈래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꼬마는 얌전히 두 발을 쑥 내밀었다.이수연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아주 그냥 오냐오냐 키워라, 키워."윤서린은 웃으며 아들에게 버선과 신을 신겨 주고는, 번쩍 안아 올려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있어. 엄마가 일 끝나면 바로 데리러 갈게."서당으로 가는 작은 마차에 아들을 태우기 전, 윤서린은 무심코 작은 망토를 매만져 주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내아이의 허리춤에 달린 작은 주머니 틈새에, 누렇게 빛바랜 초상화 한 장이 몰래 숨겨져 있다는 것을.그림 속 남자는 눈매가 차갑고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붓질 하나하나가 날이 서 있는 듯했다.그리고 그 얼굴은, 윤서린이 지난 3년간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아들을 보내고 나서 윤서린은 마차에 올라 운금 상가로 향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이수연이 헐레벌떡 휘장을 걷고 비집고 들어왔다."서린아! 겨우 탔네! 우리 거리에 큰일 났어! 옆 가게 대행수가 도망가서 강남에서 팔자 좋게 살고 있다잖아. 그 자리에 조정에서 철권통치로 유명한 독한 사람을 보내서 우리 현을 맡겼대. 그것도 칠품 현령으로 강등까지 시켜서! 신임 관리가 부임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우리 같은 상인들 뒷조사랑 납세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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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이혼 사유는?
‘...말도 안 돼.서이현?새로 부임한 현령이 내 전남편이라고?저 사람이 왜 여기에?그때 전공을 세워서 명문가 규수와 혼인했을 테고, 지금쯤 토끼 같은 처자식 끼고 따뜻하게 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경성의 높은 벼슬과 후한 녹봉을 마다하고, 왜 하필 강남 소읍까지 내려와서 하찮은 칠품 현령 노릇이야?!설마 이혼 이력이 있는 남자라고 퇴짜라도 맞은 건가?그럴 리가 없는데!’ 윤서린은 속으로 되뇌었다."언제까지 안겨 있을 셈이지?"그가 짜증스러운 듯 콧방귀를 뀌었다.윤서린은 꿈에서 깬 듯 화들짝 놀라, 불에 덴 사람처럼 그를 밀치고 세 걸음이나 물러섰다. 애써 침착한 척 쪽 진 머리를 매만졌다.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어젯밤, 그녀는 하필 이 남자의 꿈을 꾸었다.삼 년 전 그 비 내리던 밤. 합의 이혼서를 내밀기 전날, 마지막으로 얽혔던 터무니없는 하룻밤의 꿈이었다."서이현,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꿈속의 그녀는 목이 쉬도록 소리쳤다.사내는 몸을 숙여, 뜨거운 숨결을 그녀의 목덜미에 흘려 넣었다."그렇게 크게 소리 지르는 걸 보니, 아직 한참 멀었나 보군."이혼은 그녀가 고집해서 꺼낸 일이었다. 그리고 이별 직전의 마지막 요구는, 그녀가 어렵게 따낸 '공평한 거래'를 그가 억지로 틀어쥐고 내놓은 것이었다.정신이 아득해진 와중에도, 그녀는 그의 단단한 어깨를 두드리며 외쳤다."이제 싫어! 그만해!"서이현은 어두운 등불 그림자 속에서 차갑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언제 끝낼지는 내가 정한다.""만에 하나 아이라도 생기면 어쩔 건데?!"그녀는 분해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그는 서늘하게 입꼬리만 슬쩍 올렸다."이혼하면서 네 몫으로 떼어 준 은자면, 평생 먹을 피임탕은 사고도 남을 거다."그때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그를 나쁜 놈이라고 욕했다. 그는 나직하게 웃기만 했다."그럼 너는 나쁜 놈의 여자겠군."----- -------그 소동은 꼬박 하루 낮 하룻밤을 이어졌고, 이튿날 날이 밝자 그는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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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맞선
그는 다시 문서를 펼쳐 들었다. 마치 방금 들은 대답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다만 종이를 쥔 손가락만이 소리 없이 천천히 조여들었고, 마디가 희게 질려 갔다.장부 조사는 꼬박 두 시진이나 이어졌다. 서이현은 벼락같이 일을 몰아쳐, 그 자리에서 몰래 세금을 뜯어 온 대상인 세 곳을 봉쇄했다. 수법이 독하기 그지없었다.장부 조사와 회합이 끝나 사람들이 흩어지자, 이수연은 물 빠진 사람처럼 옆에 널브러져 연신 중얼거렸다."무서워 죽겠네……. 이번에 새로 온 서 사또, 완전 염라대왕이잖아! 근데…… 솔직히 그 몸이랑 얼굴 좀 봐. 그쪽으로도 분명 엄청날 것 같지 않아?"윤서린은 차를 한 모금 마셨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엄청나긴 했다. 사흘 동안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만큼."서린아, 네 전남편이 그쪽으론 영 시원찮았다며? 차라리 서 사또를 한번 잡아 보는 건 어때? 그동안의 아쉬움을 확실히 채워 줄걸!"이수연이 놀리듯 말했다."허튼소리 마. 내가 감히 어떻게 그런 높은 분을 넘보겠어."윤서린이 황급히 말렸다."아, 맞다. 서린아, 오늘 밤 네 맞선 상대 말이야. 젊고 유능한 선박 상인이래!"이수연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왔다.회랑 모퉁이 그늘 속에, 서이현이 조용히 서 있었다. 눈빛이 어둡고 깊었다.맞선?넘볼 수 없다고?흥, 예전에는 그렇게 내숭을 떠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그해 경성에서, 온 도성의 세도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의 앞을 가로막고 큰소리로 선언한 사람이 누구였더라.【서이현, 당신은 평생 이 윤서린의 남자일 수밖에 없어!】그런데 그러고도 그녀는 합의 이혼서 한 장을 내밀며 차갑게 말했다. 지쳤다고, 공명도 못 이룬 네가 가난해서 싫다고.오늘까지도 그는 그녀가 떠나던 날의 그 매정함을 잊지 못했다."윤 행수, 진한 차 한 잔 올려 보내라."서이현의 서늘한 목소리가 불쑥 울렸다.윤서린이 차를 들고 들어와 내려놓기가 무섭게, 장부 한 묶음이 탁 하고 책상 위에 떨어졌다."이 장부는 허점투성이다. 오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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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맞선 자리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제4화: 맞선 자리에 불청객이 나타났다서이현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고요한 서재 위에 묵직하게 드리워졌다."윤 행수."그가 눈을 들어, 칠흑처럼 깊은 눈동자로 얼굴이 창백해진 여자를 붙들듯 바라보았다."본관에게 숨기는 일이 있는 건가?"윤서린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등줄기가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장명쇠에 새겨진 '서' 자가 어두운 촛불 아래에서 눈이 아프도록 따갑게 타올랐다.서우를 가졌을 때, 캄캄한 밤마다 한 땀 한 땀 도안을 그리고, 금세공사에게 부탁해 망치질 한 번 한 번으로 두드려 만든 것이었다.그 글자뿐만 아니라, 뒷면에는 아이의 생시까지 새겨져 있었다!절대 뒤집어 보게 해서는 안 돼!"사또."윤서린은 거세게 들끓는 숨을 억지로 눌렀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대답했다."소녀는 비단 장사를 하는 몸입니다. 운금골목에는 관외에서 흘러들어 온 물건이 많습니다. 이 장명쇠는 소녀가 전에 잘못 보고 거두어 둔 흔한 헌 물건일 뿐이고, 금해각에 맡겨 다시 녹이려던 참이었습니다. 무슨 일로 사또의 심기를 거슬렀는지요?"서이현은 말이 없었다.길고 힘 있는 손가락이 천천히 뻗어 나와, 차가운 장명쇠 위에 닿았다. 끝으로 살짝 들어 올려 뒤집으려던 순간."사또!"윤서린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거의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다. 장명쇠를 낚아채 가슴께에 꽉 끌어안았다!동작이 너무 급했던 탓에, 단정히 여며 두었던 깃이 확 잡아당겨져 옷섶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눈처럼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과 아찔한 속곳의 곡선이 한 뼘 드러났다.귀밑머리도 몇 가닥 흐트러졌다. 눈동자에는 숨기지 못한 당황과 경계가 일렁였다.서이현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깊은 시선이 불시에 그 눈부신 흰빛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의 목울대가 세게 한 번 꿀꺽 움직였다.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얼굴에 알아채기 힘든 당혹과 어색함이 스쳤지만, 그는 주변의 온도를 억지로 얼음장 아래까지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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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네게 맞지 않는다
해시 정각, 운금골목 강가에 자리한 다향각 안이었다.찻집 안에는 향 연기가 가느다랗게 피어오르고 거문고 소리가 부드럽게 흘렀다. 바깥의 한기는 이곳까지 스며들지 못했다.창가 자단목 탁자 곁에는 맞선 상대가 앉아 있었다.달빛처럼 흰 비단 도포를 입은 젊은 선비였다. 가느다란 테의 유리 안경을 쓴 모습에서 온화하고 단아한 기품이 풍겼다."박 공자님이시지요? 죄송합니다. 관아에서 갑자기 상무 점검을 나오는 바람에 늦어져서 오래 기다리시게 했네요."윤서린이 단정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윤 낭자, 어서 앉으십시오."박 공자가 서둘러 일어나, 신사답게 의자 팔걸이를 살짝 잡아 주는 시늉을 했다."쉴 틈 없이 바쁘셨으니 분명 시장하시겠다 싶어서, 제멋대로 따뜻한 유자차와 약과를 몇 가지 먼저 시켜 두었습니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점원이 찻상을 내왔다. 달콤한 향이 먹음직스럽게 퍼졌다.그는 곧이어 차림표를 건넸다."더 보시고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편하게 고르세요."윤서린은 차림표를 받아 들고 평소 즐겨 먹는 부드러운 떡 두 가지를 골랐다.그윽하고 달큰한 유자차를 홀짝이자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위로 내려앉았다. 그녀는 속으로 이 배려 깊고 예의 바른 공자에게 점수를 슬쩍 더 얹어 주었다.두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윤서린은 박 공자가 인물이 반듯할 뿐 아니라, 말씨와 학식도 꽤 쓸 만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융통성 없는 선비 티가 전혀 없었다.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바로 그때, 압도적인 기세를 품은 그림자가 불쑥 탁자 전체를 뒤덮었다.---- 낮고 서늘한 사내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렸다."윤 행수."숟가락을 쥔 윤서린의 손이 뚝 굳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서…… 서 사또."가슴이 철렁했다. 온몸이 순식간에 팽팽하게 굳었다.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이현은 맞은편 선비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느긋하게 짙은 금빛으로 단을 두른 먹빛 관복 소맷자락만 매만질 뿐이었다. 그의 차가운 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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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꽃님이
축축한 강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렸고, 마음마저 어지럽혔다.삼 년 전 그가 떠나던 날을 그녀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듯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는 그녀에게 거액의 은표가 든 문서와, 강남의 삼진 대저택을 남겼다. 그때까지 두 사람이 몇 해 동안 모은 재산의 전부였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손목에는 핏빛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홍마노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가 오랜 세월 전장에서 한시도 벗지 않던 호신물이었다.그날 그녀는 어린 시절 정을 맺었던 은행나무 아래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온 땅을 뒤덮은 누런 낙엽이 그녀를 삼켜 버리도록 내버려 둔 채로.당장 뛰쳐나가 그를 쫓아가고 싶었지만, 아랫배의 은은한 통증 때문에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마음먹고 자신을 놓아주었다는 것을. 그는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었다.그 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크게 앓아누웠다. 꼬박 이틀 밤낮을 고열에 시달리며 반쯤 목숨을 잃을 뻔했고, 바로 그 병을 치르고 나서야 자신이 서우를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경성에 있던 시절, 서이현의 어머니는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회유와 협박으로 그녀에게 떠나라고 종용했다. 제국공 댁 영애만이 아들의 앞길에 어울리며, 조정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도록 도울 수 있다면서.하지만 그때의 그녀는 진심 하나로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그러다 아버지가 중병으로 자리에 누웠고, 그녀는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그런데 멀리 나가 있던 서이현은 영문도 모른 채 사흘 밤낮 연락이 끊겼다.그가 보낸 소식 대신 그녀의 손에 도착한 것은 한 통의 밀서와 그림 한 폭이었다. 그림 속에서 그는 술 냄새를 풍기며 화려한 비단 침상에 누워 있었고, 침상 곁에는 여인의 가냘픈 수놓은 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그 순간 그녀는 마음이 재가 되어 버렸다. 그가 마침내 현실에 고개를 숙이고, 백씨 가문 영애와 바람이 나 더는 깨끗하지 않게 되었다고 믿었다.그가 관외에서 먼지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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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윤 행수, 꽤나 잘 노시네
제7화: 윤 행수, 꽤나 잘 노시네윤서린은 속이 몹시 뒤틀려서 대놓고 입을 열었다."서 사또, 관아에 관졸이 줄줄이 있고, 수하에 쓸 만한 서리도 적지 않으시잖아요. 다른 사람더러 모시고 가라 하시면……."사람 하나 붙들고 이렇게까지 부려 먹을 일인가."본관이 이 고을의 부모 같은 관장이냐, 네가 그러냐?"서이현은 책상 뒤 높은 자리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한마디를 툭 던졌다.“……사또십니다.”윤서린은 이를 악물고 두 글자를 쥐어짰다.천하의 나쁜 관리 놈!"준비할 시간은 세 각뿐이다."그가 책상 위 물시계를 흘끗 보고 차갑게 덧붙였다.윤서린은 토끼보다 빠르게 뛰쳐나갔다.목숨 재촉도 이만하지 않을 것이다!집까지 가는 데만 두 각이 걸린다. 옷 갈아입고 단장할 시간은 한 각 남짓이라, 초상집 가는 것보다 빠듯했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달리며 품에서 전서패를 꺼내 이수연에게 일렀다."수연아, 오늘 밤엔 네가 서당에 가서 서우 좀 데려와 줘. 나는 새로 온 서 사또 모시고 상인들 만찬에 가야 해.""응, 나만 믿어!"……윤서린이 저택 대문을 나섰을 때, 사두마차가 끄는 화려한 이층 지붕 마차가 이미 골목 어귀에 단정히 서 있었다.어느 자리에 앉아야 할지 망설이는데, 마차의 비단 휘장이 길고 힘 있는 손에 걷혔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올라탔고, 서이현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시선은 몹시 공격적이었다. 숨기는 기색도 없이 얼굴에서 드러난 쇄골로, 다시 곡선을 따라 무겁게 내려갔다.윤서린은 오늘 호수빛 푸른 보상화 무늬 가슴받이 비단 치마를 입고, 그 위에 매미 날개처럼 얇은 얇은 사를 걸쳤다.눈처럼 흰 어깨는 곱게 뼈대가 드러났고, 가슴께의 곡선은 알맞게 조여져 은근히 윤곽이 비쳤다.허리선은 바짝 조여 있어, 근래 몇 해 더 무르익은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공들여 단장한 환한 얼굴과 어우러지니, 사람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사또, 이렇게 아랫사람을 뚫어지게 보시는 건 조정 관원의 체통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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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건…… 취한 건가?!
윤서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이현의 큰 손이 거침없이 뻗어 와 그녀의 뒷목을 움켜쥐고 확 끌어당겼다. 그의 얇은 입술이 그녀의 환하고 보드라운 붉은 입술을 무겁게 덮쳤다!"읍!"윤서린은 그의 갑작스러운 강제 입맞춤에 놀라 순식간에 당황했다.두 손으로 쇠처럼 단단한 가슴팍을 죽을힘을 다해 밀어냈지만, 사내의 다른 손이 쉽게 그녀의 팔을 뒤로 꺾어 붙들었다!그는 극도로 거칠게 그녀의 이를 비집어 열고 제멋대로 파고들었다. 삼 년간 쌓인 미칠 듯한 그리움과 소유욕을 모조리 쏟아부었다."서…… 읍!"그는 거리낌 없이 그녀 입속의 부드러움과 숨결을 앗아 갔다. 늠름한 가슴이 그녀를 짓눌렀고, 거친 큰 손이 그녀의 허리를 덮고 오랜만의 말랑함과 떨림을 찬찬히 느꼈다.꼬박 삼 년이었다…….마차를 모는 늙은 포졸이 눈치 빠르게 마차 앞쪽의 묵직한 나무 칸막이를 꽉 닫아걸었다.그 순간 그는 자신이 눈도 멀고 귀도 먹은 사람이었으면 싶었다!윤서린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다급한 나머지 있는 힘껏 확 깨물었다!피의 비릿하고 달큰한 맛이 순식간에 두 사람의 입안에 퍼졌다.사내는 그제야 아픔에 신음하며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서이현, 이 뻔뻔한 인간!"윤서린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입술은 문질러져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서이현은 뜻을 이룬 듯 피 묻은 입꼬리를 올렸다."그런데 본관이 보기에, 방금 너도 꽤 즐기는 것 같던데."윤서린: ……그녀는 다시는 이 개 같은 관리와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다!이십 분 뒤, 사두마차가 끄는 마차가 강남에서 가장 호화로운 주루, 황조루 정문 앞에 멈춰 섰다.마차가 멈추자마자 본 성 상인회 회장이 한달음에 마중 나와, 허리를 굽히며 공손히 마차 휘장을 걷었다.서 현령이 권세를 쥐고 본 성을 지키게 된 것은 강남 상류 사회 전체에서 둘도 없는 큰일이었다.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칠품 현령이 아니라, 그 배후의 관외 평정이라는 하늘을 찌르는 전공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배경이었다.오늘 밤,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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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아직 내 침상에 오를 자격은 안 된다
제9화: 아직 내 침상에 오를 자격은 안 된다취했다고?달콤한 과실주를 겨우 두어 모금 마셨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어지러울 리가 없다.윤서린은 서둘러 들고 있던 백자 접시를 내려놓았다. 몸속에서 치솟는 열기를 억지로 참으며,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서이현을 찾아 되돌아가려 했다.서이현은 멀지 않은 곁채 대청에 있었다. 그러나 아첨하러 몰려든 상인과 관리들에게 둘러싸여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형편이었다.그때 갑자기 키 큰 사내의 그림자가 불쑥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비단옷을 걸친 부잣집 도령 하나가 앞을 막고 서서,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낭자,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우시군요. 저와 함께 몇 잔 드시는 영광을 베풀어 주시겠습니까?""죄송합니다. 소녀는 급한 일이 있어서요."윤서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억지로 버티며 그를 돌아서 지나가려 했다.그러나 사내는 경박하게 킥 웃더니, 그녀의 발걸음이 휘청이는 틈을 타 대담하게 두 손으로 흔들리는 몸을 붙들었다."제가 보기엔 술기운을 못 이기신 것 같은데요. 오늘 밤 달빛이 좋으니, 제가 후원의 조용한 정자로 모시고 가서 바람도 쐬고 술도 깨시게 해 드리지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억세게 감아쥐었다. 그러고는 반쯤 끌고 반쯤 잡아당기며 주루의 뒷문 쪽으로 억지로 데려갔다.뒷문 밖으로 나가 회랑을 지나면, 굽이굽이 깊은 후원과 귀한 손님들이 쉬는 객방이 이어져 있었다.윤서린은 온몸의 뼈가 녹아내리듯 늘어져, 주먹 한 번 쥘 힘조차 나지 않았다."이거 놔!"그녀는 다급한 나머지 이를 악물고 작은 주먹으로 그를 힘껏 때리고 밀쳤다. 하지만 사내의 몸에 닿는 주먹은 솜처럼 힘이 없었다.소리쳐 도움을 청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악취 나는 사내의 다른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읍……읍읍!"윤서린은 겁에 질려 발버둥 쳤다. 물기 어린 눈에 절망의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렇게 그녀는 어두컴컴한 뒤쪽 회랑 안으로 억지로 끌려 들어갔다.……그때,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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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아빠!
서이현은 머릿속에서 "쾅" 하고 굉음이 울리는 것 같았다!약을 먹었다고?!젠장!그는 낮게 욕설을 내뱉고, 묵직하고 차가운 먹빛 관복 겉옷을 재빨리 벗어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감쌌다. 그러고는 번쩍 안아 들고 객방 밖으로 성큼성큼 달려 나갔다.심희연은 이미 얼굴이 싸늘한 흑의 암위 둘을 거느리고 뒤쪽 회랑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서이현이 사람을 안고 나오자, 정교한 구리 열쇠 하나를 그의 허리띠 사이에 슬쩍 밀어 넣었다."위층 천자호 객실이다. 열쇠는 네가 가져라."얼마 지나지 않아, 소완월이 몇몇 명문가 규수를 끌고 오만하게 몰려와 휴게 객방의 나무문을 확 밀어젖혔다.그녀는 현장을 덮쳐서 윤서린의 명예를 완전히 짓밟을 생각이었다.그런데 눈앞의 광경에 그녀는 혼비백산해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거금을 주고 매수한 그 건달이 홀딱 벗겨진 채, 지독히 굴욕적인 자세로 굵은 밧줄에 묶여 탁자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등 뒤에서 한 줄기 온기 없는 차가운 남자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소 아가씨, 그 비열한 수작을 엉뚱한 곳에 쓰셨군."심희연이 어느새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죽은 사람을 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이었다."태세 머리 위에서 흙을 파고 호랑이 수염을 뽑으면, 생사로 값을 치러야 하는 법이지."소완월은 다리가 풀리고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서둘러 다가가 미색으로 구슬려 보려 했다."심 공자, 우리가 그래도 대대로 알고 지낸 사이인데, 오늘 밤은 아무것도 못 보신 걸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미안하지만."심희연이 무심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번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당신은 하늘을 찌르는 큰 사고를 쳤어."그가 차갑게 고개를 돌려 분부했다."끌고 가라."탑처럼 건장한 흑의 암위 둘이 즉시 성큼 다가와, 비명을 지르며 살려 달라 애원하는 소완월을 죽은 개 끌듯 억지로 끌어냈다.……위층, 천자호의 귀한 객실.서이현이 힘없이 늘어진 윤서린을 푹신한 침상에 내려놓기가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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