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이제 계연수에게 심씨 저택은 마음 놓고 일을 맡길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자신이 돌아가지 않으면 집안이 혼란에 빠질까 두려웠다.노부인은 병이 깊었다. 이수옥은 속내가 복잡한 데다 성정도 들떠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백씨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백씨가 저지른 일을 알고 있었든 모르고 있었든, 계연수는 그녀에게 집안일을 맡길 수 없었다.최씨는 믿을 만했다. 하지만 성품이 너무 유순하여 중대한 일에서도 쉽게 물러섰고, 집안 어른들이 압박하면 그들의 뜻에 휩쓸리기 쉬웠다. 그런 최씨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 역시 미덥지 않았다.더구나 지금 부저의 사정은 복잡했다. 이수옥도 최씨도 모두 큰방 사람이었다.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는 법이니,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움직일지 계연수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웠다.지금 심씨 부저에는 중심을 잡고 집안을 이끌 사람이 필요했다.계연수도 제 몸으로 버티기 어렵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도 궁에 있는 것보다는 부저에 있어야 무슨 일이 생기든 먼저 알 수 있었다.황후가 직접 부저로 가 집안을 돌볼 수는 없었다. 심서준의 변고가 아직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소문은 돌기 시작했을 터였다.맞은편 큰백부 집에도 백씨가 일부러 소식을 감추고 있었으나, 오래 숨길 수는 없었다. 그쪽에서도 머지않아 사정을 물으러 올 것이고, 노부인까지 병석에 누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집안사람들이 더욱 동요할 수 있었다.계연수는 이런 생각을 황후에게 털어놓았다. 아이를 저택에 두고 온 것도 마음에 걸려, 궁에 머물러도 편히 쉴 수 없다고 했다.황후는 계연수가 이토록 고집하는 데다 기침까지 멈추지 않으니, 더더욱 지금 돌려보낼 수 없었다. 궁에 있으면 적어도 임 원정이 수시로 몸을 살펴 줄 수 있었다. 임 원정은 다른 태의들과 달라 계연수를 따라 심씨 저택으로 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네 뜻은 알겠다. 헌데 부저의 일은 우선 내려놓거라. 돌아가더라도 여기서 하루는 몸을 추스른 뒤에 가야 한다.”황후가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본궁
그러나 황제가 보위를 굳혀 갈수록 그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심씨 가문은 더 이상 그저 가족이 아니었다. 황제의 눈에 그들은 외척이었고, 막강한 권세를 쥔 신하들이었다.수보를 천거한 사람은 황후의 아버지였다. 조정의 청류 가운데 절반 가까이도 아버지가 발탁한 이들이었다.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거나 직접 학문을 배운 제자들이었다.황제는 차츰 그들을 불안하게 여기기 시작했다.이후 곁에 둔 심서준이 점점 두각을 드러내자, 아버지의 옛 문하생과 제자들은 하나둘 그에게 모여들었다. 심서준은 일을 바르게 처리했다. 부귀한 명문가에서 자랐으면서도 허세를 부리거나 향락을 좇는 버릇이 없었고, 자신과 뜻이 다르다고 사람을 억누르지도 않았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려 탐관오리는 용서하지 않되, 무고한 이가 옥살이를 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심서준이 일부러 세력을 모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가난한 집안 출신의 청렴한 선비들은 기꺼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조정에서 그가 누군가를 탄핵하면 여러 신하가 잇따라 뜻을 함께했고, 그가 한마디를 하면 누구도 그 말이 그르다고 여기지 않았다.심서준은 오직 도찰원의 일에만 마음을 쏟았으나, 큰 나무에는 바람이 드세게 부는 법이었다. 결국 황제는 변하고 말았다.어린 심서준을 곧잘 놀리며 귀여워하고, 늘 제 서재로 데려가던 그 황제는 더 이상 없었다.다정하게 마음을 나누던 부군도 사라졌다. 나이가 들수록 의심만 깊어졌다. 태자는 이미 제 힘을 갖추었고, 심씨 가문에는 따르는 이가 많았다. 황제는 태자도 심씨 가문도 자신이 하루빨리 죽기를 바란다고 여겼다.자신은 아직 한창나이였다. 앞으로도 오래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도록 보위에 머무는 황제를 모두가 반길 리 없다고 생각했다. 황제가 너무 오래 사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그리하여 태자를 의심하고, 심씨 가문을 의심했다.지난날 자신이 심씨 가문에 내려 준 특별한 영예마저 이제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황제는 언제까지나 흔들림 없이 보위를 지키고 싶
계연수는 한사코 돌아가겠다고 했으나, 황후는 거듭 그녀를 만류했다. 무턱대고 궁에 붙잡아 두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몸으로 길을 나섰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두려웠다.계연수가 다시 몇 차례 기침했다. 그 소리만 들어도 황후는 가슴이 철렁했다. 어머니는 전부터 계연수의 몸이 약하다고 했지만, 황후가 보아 온 그녀는 늘 혈색이 좋았다. 눈처럼 흰 피부에 앵두 같은 입술, 알맞게 살이 오른 얼굴 어디에서도 병약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불과 며칠 사이에 단아하던 얼굴이 수척해져 턱 끝이 뾰족하게 드러났다. 윤기가 감돌던 흰 뺨은 핏기 없이 창백해졌고, 생기마저 사라져 있었다.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황후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계연수에게마저 변고가 생기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심씨 가문은 결국 심태숙의 손에 넘어가지 않겠는가. 자신과 아버지, 동생이 힘겹게 일구어 온 막대한 가업을 고스란히 다른 이에게 내주게 될 터였다.설령 아이를 끝내 찾지 못하고, 동생마저 정말로 세상을 떠났다 해도 황후는 계연수를 믿었다. 정 안 되면 집안의 사내아이 하나를 계연수의 양자로 들이면 되었다.더구나 계연수에게는 딸이 있었다. 그 아이야말로 심씨 가문의 적통을 이은 핏줄이었다.가문의 터전을 다른 이의 손에 넘길 수는 없었다.지금은 슬픔에 잠겨 몸을 상하게 할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황후는 계연수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도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앓아누웠고, 아직 몸을 추스르지 못했는데 어찌 계연수를 탓하겠는가.오히려 계연수는 이미 훌륭히 버텨 주었다. 태후의 계략을 알아챘고, 안에서 일을 꾸민 자를 붙잡았으며, 지체 없이 황제에게 도움을 청했다. 태후가 저지른 일인 만큼, 나설 수 있는 사람은 황제뿐이었다.황후는 계연수가 이대로 병들어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심씨 가문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태후는 심씨 가문이 영청후부처럼 몰락하여 자취를 감추기를 바라겠지만, 황후는 마지막 숨이 다하는
황후는 계연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이 일은 태자에게 맡겨 끝까지 살피게 할 것이다. 염려하지 말거라. 심씨 가문에 해를 끼친 자는 본궁도 단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계연수는 황후의 단호한 눈빛을 마주했다. 황후의 결심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은 모든 것이 스러진 황무지 같았다. 굳건히 일어나 닥쳐오는 모든 것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꾸만 희망이 고개를 들었다.붉어진 눈에 물기가 어렸다. 메마르고 잠긴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부군께서… 돌아오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그녀는 붙잡을 곳을 찾듯 말을 이었다.“그저 찾지 못한 것뿐이고, 실은 아직 살아 계신 것일지도 모르잖습니까… 떠나시기 전에 반드시 돌아와 저와 아이를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신 말씀을 저버리실 분이 아닙니다…”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제가 아는 부군은… 단 한 번도 약속을 저버린 적이 없으십니다…”황후의 눈가에도 아릿한 통증이 번졌다. 처음 태자에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의 슬픔 역시 계연수 못지않았다. 상심 끝에 크게 앓아누웠고, 지금까지도 몸을 회복하지 못한 채 겨우 기운을 내어 버티고 있었다.그저께 계연수가 입궁했을 때도 그녀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웠다. 황후는 모든 희망을 계연수의 배 속에 품긴 아이들에게 걸었다. 동생의 핏줄을 무사히 낳아 심씨 가문의 대를 이어 주기만을 바랐다.계연수에게 소식을 감추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도라 여겼다. 그러나 태후는 이미 뒤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심서준의 변고마저 자신보다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이다.그럼에도 일이 이 지경에 이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두 아이 가운데 맏아들을 바꿔치기한 자가 다름 아닌 심씨 가문 사람이었다니.문득 예전에 대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심서준은 본래 자식이 없는 팔자이며, 자식을 얻으면 한 차례 고난을 겪으리라 했다.당시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말
황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걷잡을 수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 계연수는 눈을 내리깔고 소맷자락을 움켜쥐었다.태후가 이토록 악독할 줄은 그녀도 미처 몰랐다. 막을 수 있었던 일이건만, 번번이 일이 어긋나고 말았다.심정우에게 단단히 당부해 두었으나 정작 그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용춘을 보내 호위들을 불렀지만, 그들 역시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무엇보다 백씨가 태후와 결탁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어쩌면 태후는 자신보다 먼저 심서준에게 변고가 생겼음을 알았을지도 몰랐다. 그 소식을 빌미로 백씨가 물불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게 한 것이리라.커다란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 숨이 막혔다. 계연수는 눈을 감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폐하께서는…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셨습니까…”황후는 계연수를 부축하여 등 뒤의 푹신한 베개에 기대게 했다.“본궁이 사람을 보내 여쭈어보았다. 이미 아이를 찾으러 사람을 보내셨다더구나.”황후는 그녀의 손등을 가만히 두드렸다.“너무 걱정하지 마라.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계연수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태후께서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신 것입니까?”황후는 근심으로 가득한 계연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폐하께서 우선은 본궁도 묻지 말라 하셨다. 금의군을 보내 찾고 있으니, 곧 소식이 올 것이다.”계연수가 황후를 바라보았다.“어찌 묻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태후께서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셨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아이가 어디로 보내졌는지만이라도 알아야 합니다.”그녀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불을 걷어 내려고 했다.“제가 직접 폐하께 여쭙겠습니다…”황후는 얼른 계연수의 어깨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지금 계연수의 몸은 몹시 상해 있었다. 아이를 낳자마자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을 겪었고, 쉬기는커녕 찬바람까지 맞았다. 게다가 얇은 옷차림으로 오문 밖에서 거의 반 시진을 버텼으니, 쇠로 된 몸이라도 견디기 어려웠을 터였다.이제는 고열까지 올라 온몸이 불덩이 같았다.
태후는 사람을 보내 산적들을 매수했다. 심서준이 가는 길에 변을 당하게 하려던 것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이번에는 주원길에게 서신을 보내 심서준을 없애라고 했다.주원길에게도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태후는 알고 있었다. 예전에 그를 도와준 적도 있었다. 그러니 주원길로서도 심서준을 제거해야 했다. 그가 돌아와 자신의 치부를 물고 늘어지게 둘 수는 없을 터였다.태후가 끝내 입을 열지 않자 황제의 얼굴에 서릿발 같은 냉기가 내려앉았다.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매를 떨치며 자리를 떠났다.이런 일은 얼마든지 조사하여 밝혀낼 수 있었다. 지금 급한 것은 계연수의 아이를 찾아 돌려주고 사태를 가라앉히는 일이었다.남원 입구에 이른 황제는 금위병을 불러, 앞으로는 누구도 남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명했다. 태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이전에는 태후가 남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 막혔다. 사실상 완전히 유폐된 셈이었다.황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금의군 지휘사를 불러오라 명했다.*한편 계연수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마음에 걸린 일 때문인지 오래 정신을 잃고 있지는 않았다. 정오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의식을 되찾은 것이다.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황후가 아니라 방 어멈이었다. 계연수가 깨어난 것을 본 방 어멈은 붉어진 눈으로 서둘러 따뜻한 차를 가져왔다.“부인, 우선 목부터 좀 축이십시오.”계연수는 고개를 저었다. 눈에 익은 방 안의 가구며 장식을 보니 황후의 처소였다. 지난번 자신이 머물렀던 바로 그 방이었다.“폐하께서 다녀가셨느냐?”방 어멈이 고개를 저었다.“아직 아니십니다.”“지금은 몇 시냐?”“막 신시가 지났습니다.”계연수는 속으로 시간을 헤아렸다.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가슴이 죄어들었고, 불길한 예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황제가 과연 아이를 찾아 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심씨 가문을 그토록 미워하는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