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황후가 계연수를 부축해 보련에 오르기도 전에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황후도 크게 놀라 상궁에게 계연수를 받쳐 마차에 태우라 이르고, 서둘러 임 원정을 불러오게 했다.황후 역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심서준의 변고로 곤녕궁에는 침통한 기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다만 계연수가 이토록 빨리 그 소식을 알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황제에게도 며칠만 계연수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 청해 둔 터였다. 적어도 아이만큼은 무사히 낳게 해 주고 싶었다.황제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황후에게 부축받는 계연수의 옷자락 한 귀퉁이만 보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태후의 처소로 갈 채비를 하라 명했다.황제가 도착했을 때, 태후는 남원행궁에서 웃으며 새를 어르고 있었다. 전각의 바닥에는 온기가 가득했고, 곁에 선 내시 둘은 듣기 좋은 말로 태후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궁녀는 태후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과일 껍질을 벗겼다. 겉으로는 더없이 온화하고 화기애애한 풍경이었다.황제가 들어서자 태후가 웃으며 물었다.“황제가 어찌 이곳까지 올 짬이 났느냐?”태후가 요양을 위해 남원행궁으로 거처를 옮긴 뒤, 황제는 한 번도 문안을 온 적이 없었다.황제는 태후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의 탁자에는 정교하게 만든 새장이 놓여 있었고, 그 안의 앵무새는 태후가 어르는 대로 위아래를 오르내렸다.“모후께서는 참으로 여유로우십니다.”태후가 미소 지었다.“이제는 아무 일에도 관여하지 않고 여생을 편히 보내고 있지 않느냐. 새를 어르고 꽃을 가꾸는 것 말고 달리 할 일이 있겠느냐.”태후의 얼굴에는 흡족함이 가득했다. 마음도 그보다 못하지 않았다.수하가 계연수의 아이를 데려왔으니, 산파가 일을 해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계연수 역시 지금쯤 죽어 가고 있을 터였다.심서준도 죽고, 계연수도 죽고, 두 사람의 아이마저 죽었다.이제야 가슴에 맺힌 울분을 풀고 원수를 갚은 것이다.태후라는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제 혈육 하나 지키지 못했다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웃었던가.
그로 인해 주원길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아침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황제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심서준이 일을 제대로 해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 목숨조차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주원길의 죄증을 남길 방도를 찾고, 성안의 백성들까지 지켜 냈다는 사실에는 만감이 교차했다.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심서준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세상에 두 번째 심서준은 없었다.황제는 고개를 내려 계연수의 눈을 마주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를 보니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조차 심서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눈앞의 여인은 어떻겠는가. 온몸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금이 간 도자기처럼, 조금만 건드려도 산산이 부서질 듯했다.그 잔혹한 진실을 차마 제 입으로 전할 수는 없었다.잠시 침묵하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심씨 부인, 지금 가장 급한 것은 아이를 찾는 일이다.”그러고는 사람을 시켜 황후를 들라 했다.계연수는 넋을 잃은 채 바닥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문득 오그라들듯 아팠다.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작은 기대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 이 모든 일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그러나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침묵이야말로 계연수를 가장 깊은 절망에 빠뜨렸다.이윽고 심 황후가 들어왔다. 차림은 여느 때처럼 단정하고 품위 있었으나, 초췌한 얼굴과 다소 흐트러진 걸음에는 당혹감이 묻어 있었다.황후는 계연수를 보는 순간 알았다. 심서준의 일을 이미 전해 들은 것이다.수수한 옷차림에 비녀나 장신구 하나 없는 모습, 온통 눈물로 젖은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계연수가 오늘 아침 오문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고는 황후도 예상하지 못했다. 황제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혹여 계연수에게 노여움을 품었을까 두려웠다. 심씨 가문은 더 이상의 화를 감당할 수 없었다.게다가 갓 아이를 낳은 몸으로 입궁하다니. 저 몸이 어떻게 버텨 내겠는가.황후는 황제의 눈치를
황제의 시선이 소매 끝에 드러난 단검에 머물렀다. 계연수의 비통한 말을 듣고 있자니, 이미 마지막을 각오하고 온 듯했다.그때 밖에서 다시 아뢰는 소리가 들렸다. 황후가 알현을 청하고 있었다. 계연수가 문화전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모양이었다.황제는 뒷짐을 진 채 눈앞에 무릎 꿇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굳게 다문 입술 위로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등 뒤의 손가락이 쥐어졌다 풀렸다. 손가락에 낀 옥가락지가 천천히 돌아가다가, 마침내 멎었다.한참 뒤 황제가 입을 열었다.“네가 아뢴 일은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짐이 네 말만 믿어서는 안 된다. 먼저 형부에 맡겨 조사하고, 사실을 확인한 뒤 판단해야 한다. 헌데 짐이 네 청을 들어주겠다고 약조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를 구하려는 네 절박한 마음을 헤아리고, 네 부군이 공무를 수행하다 변을 당한 점도 생각하여, 이번에는 우선 네 말을 믿겠다. 짐이 직접 태후의 처소에 가고, 금의위에도 명하여 네 아이를 찾게 하겠다. 이 일의 진상도 사람을 시켜 낱낱이 밝힐 것이다.”황제가 계연수를 내려다보았다.“심씨 부인, 이만하면 되겠느냐?”계연수는 이것이 황제가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약속임을 알았다. 더 바랄 것은 없었다. 애초에 황제가 태후를 처벌하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오직 아이를 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지금 계연수는 충신의 부인이었다. 그런 자신이 황제의 전각에서 죽는다면, 결코 작은 파문으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그것은 황제도 바라지 않을 일이었다.사람들의 눈에는 이제 막 부군을 잃고 아들마저 빼앗긴 여인으로 보일 것이었다. 누가 그런 여인을 탓하겠는가. 사람들은 계연수를 가엾게 여기고, 황실이 무정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황제의 말을 듣는 순간 계연수는 마음속으로 겨우 숨을 놓았다.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목소리는 여전히 울음에 젖어 위태롭게 떨렸다.“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황제의 가슴에는 더 무거운 답답함이
황제의 손이 멎었다.그는 고개를 내려 계연수를 유심히 살폈다. 계연수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태후는 줄곧 심씨 가문을 해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니까.황제가 계연수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러니 오늘 오문 밖에 무릎을 꿇은 것은, 짐이 네 억울함을 풀어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냐?”계연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관아에 신고한들 태후가 연루된 일을 곧바로 심리할 수는 없을 터였다. 반드시 황제에게 먼저 보고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직접 알현을 청하면, 황제가 만나 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오문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반드시 황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지난번처럼 태후를 감싸는 일이 되풀이될까 두렵기도 했다. 공정한 처분을 받지 못한 충신의 부인이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 모든 사람이 보게 하려는 뜻이었다.하지만 계연수는 바닥에 엎드려 쉰 목소리로 답했다.“폐하께서 반드시 제 억울함을 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문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오직 제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제가 오늘 그리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제 부군을 위해 바른말을 해 줄 사람조차 없어질까 두려웠습니다.”“평부진의 변방군에는 삼만이 넘는 장병이 있습니다. 부군은 그들을 위해, 국사와 사직을 위해 그곳으로 갔습니다. 헌데 그 일로 부군의 핏줄마저 해를 입는다면, 이 천하에 공정한 도리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계연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황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견딜 수 없는 비통함이 서려 있었다.“폐하께서는 일찍이 제 청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이제 다른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부디 제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아이를 되찾아 주십시오.”말끝이 울음에 잠겼다.“부군께서 정말로 변을 당하셨다면… 그 아이는 심씨 가문의 대를 이을 유일한 핏줄입니다.”황제는 입술을 다문 채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그득한 눈에서는 쉼 없이 물기가 흘러넘쳤다.계연수의 요구는 타당했다. 당장 태후를
향안 위에서 가느다란 향 연기가 피어올랐다. 황제는 낮게 한숨을 내쉬고 계연수를 데려오라 명했다. 전각 안에 있던 이들에게도 잠시 물러가라고 했다.심서준의 수하였던 도찰원 관리 둘은 계연수가 오문 밖에 무릎을 꿇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속으로 짐작하는 바는 있었으나, 감히 더 묻거나 살피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계연수가 들어섰을 때, 황제는 상석의 긴 탁자 뒤에 앉아 있었다. 전각 안에는 바닥을 덥히는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고, 문과 창은 굳게 닫혀 있었다. 후끈한 공기에 용연향 냄새까지 뒤섞여 숨을 짓누르는 듯 답답했다.계연수는 전각 한가운데 무릎을 꿇었다. 눈을 내리깔고 예법에 맞춰 큰절을 올린 뒤, 소매 안에 넣어 온 고소장을 꺼냈다. 두 손으로 받쳐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저 계연수는 태후마마를 고발하고자 합니다. 태후마마께서는 제 넷째 형수인 백씨와 결탁하여, 제가 출산하는 틈에 제 아들을 바꿔치기하고 심씨 가문의 대를 끊으려 하셨습니다. 증거가 갖추어져 있으니, 부디 폐하께서 진상을 밝혀 주십시오.”목소리만 들어도 계연수가 남은 힘을 끌어모아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운은 부족했으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또렷하고 단단했다.황제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길고 깊은 눈을 조금 들어, 전각 한가운데 무릎 꿇은 흰옷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가냘픈 두 손 위에 고소장 한 장이 받쳐져 있었다.황제는 계연수가 심서준 때문에 입궁한 줄 알았다.죽은 부군을 위해 공정한 처분을 구하러 온 것이라 생각했다. 심서준을 평부진으로 보낸 사람이 자신이었으니까.평부진이 얼마나 썩어 있는 곳인지도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 쌓인 폐단은 마음에 박힌 가시와 같았다. 늘 뽑아내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뽑히지 않는 가시였다.그곳의 사정은 너무도 혼탁했다. 보낸 사람들은 번번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지만, 황제는 알고 있었다. 평부진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다만 누구도 밝혀내지 못할 뿐이었다.심서준을 보낼 때는 큰 기대를 걸
심정우는 행색이 흐트러져 있었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호위는 먼저 정중히 인사를 올린 뒤 대답했다.“셋째 도련님, 둘째 부인께서는 안 계십니다.”심정우는 멈칫했다. 이제 막 아이를 낳았는데, 처소에서 몸을 추스르지 않고 어디로 갔단 말인가.“오숙모께서는 어디 가셨느냐?”곧바로 또 물었다.“어젯밤에는 무사하셨느냐?”호위는 입술을 다문 채 심정우를 바라보았다. 저토록 다급한 모습을 보니 대답을 해 줘야 할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호위들은 어젯밤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부저 안에 내통한 자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부인은 자리를 비웠고, 떠나기 전에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했을 뿐,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는 일러 주지 않았다.호위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자 심정우의 가슴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한 걸음 다가서며 재촉했다.“오숙모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호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 둘째 부인을 해치려는 자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일이 벌어졌습니다.”심정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밤사이에 정말 변고가 생겼을 줄은 몰랐다.“누가 오숙모를 해치려 했느냐?”“태후이십니다.”호위가 잠시 머뭇거렸다.“그리고…”큰부인의 이름까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확정된 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셋째 도련님은 장방의 사람이었다. 함부로 입에 올릴 이야기가 아니었다.심정우는 더욱 굳어졌다.태후라니…“또 누구냐?”“태후와 부저 안의 내통자입니다. 내통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심정우의 속이 불안하게 뒤틀렸다. 어제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차를 마시라고 했고, 그 차를 마신 뒤부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뒤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감히 더 생각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그 이유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웠다.“오숙모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느냐?”호위는 고개를 저었다.그것만큼은 정말 몰랐다. 둘째 부인은 행선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