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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3화

Author: 경옥
계연수는 애초에 이 일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백씨의 말을 듣고서야 왜 백씨가 갑자기 명부를 다시 가져다주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하지만 백씨가 화해의 뜻을 내비쳤다 해도, 심서준이 조정에서 처리하는 일에 계연수가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심서준이 아무나 함부로 잡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믿고 있었다. 백씨의 동생이 도찰원에 들어갔다면 분명 죄를 저질렀기 때문일 터였다. 그렇다면 더욱 자신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계연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그저 안채에 머무는 여인일 뿐입니다. 어찌 함부로 부군의 공무를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이번 일은 형수님을 도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큰마음을 먹고 체면까지 내려놓은 채 직접 찾아와 부탁했건만, 계연수가 이렇게 선을 그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입술을 몇 번 달싹이며 다시 한번 사정을 해 보려 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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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058화

    평부진.그 시각, 심서준은 주예와 서리 두 명, 호위 두 명을 거느리고 곧장 평부진의 경력사로 향했다.경력사는 총병부에 소속된 문서 관아로, 오가는 모든 공문을 접수하고 발송하며 이를 등록하고 보관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심서준이 도착하자 경력사의 지사 호덕무가 황급히 밖으로 나와 허리를 깊이 숙여 맞이했다. 그러고는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차까지 올렸다.호덕무는 틈이 날 때마다 경성에서 내려온 고관을 몰래 훔쳐보았다.좌도어사라니, 감히 우러러보기도 힘들 만큼 높은 관직이었다. 게다가 황제의 신임을 받는 처남이기까지 했다. 직접 마주하고 보니 온몸에서 풍기는 기품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귀했다. 의복과 몸가짐부터가 평범한 사람과는 확연히 달랐으며, 행동 하나하나에서는 옥처럼 곧은 뼈와 학처럼 고고한 자태가 느껴졌다.청수하고도 고결한 얼굴 아래로 드리운 두 눈은 짙은 어둠을 품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잠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밀려들었다.호덕무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더욱 굽혔다. 감히 심서준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명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상석에 앉은 심서준이 눈을 내리깔며 명했다.“지난 십 년간의 공문을 모두 가져오거라. 연도와 월에 따라 정리하되, 단 한 권도 빠져서는 안 된다.”호덕무의 얼굴에 걸려 있던 웃음이 순간 굳었다.그러나 그는 금세 다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황급히 몸을 돌려 서리들에게 문서를 옮겨 오라고 명했다.심서준은 멀어지는 호덕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곁에 선 호위에게 눈길을 주었다.뜻을 알아챈 호위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호덕무의 뒤를 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호위가 돌아와 심서준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호덕무가 돌아서자마자 사람을 보내 주원길에게 몰래 소식을 전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심서준의 눈에 싸늘한 기색이 스쳤다. 손가락 끝이 탁자를 느릿하게 두드렸다.호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고에 있던 문서가 한 묶음씩 밖으로 옮겨졌다. 오래지 않아 기다란 탁자 위에는 문서

  • 주문춘귀   제1057화

    “제가 이혼하고 돌아온 뒤에도 기어이 집을 떠나려 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뒤 큰외숙모가 사씨 큰 부인과 손잡고 저를 해치려 했지요. 그들의 뜻대로 일이 이루어졌다면 저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어머니께서는 원한을 은혜로 갚으려 하시지만, 그전에 그 사람들이 과연 은혜를 베풀 가치가 있는지부터 생각하셔야 합니다.”“예전에 어머니께서 큰외숙모 가족에게 잘못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토록 잘해 주고도 결국 무엇이 돌아왔나요?”“백씨 집안은 수많은 원한을 사고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궁지에 몰린 고하운이 그 모든 오명을 저희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면요?”계연수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질문 하나하나가 예리하게 고씨의 마음을 파고들었다.“큰외숙모는 사씨 집안과 몰래 결탁해 저를 해치려는 짓까지 저질렀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에게 아직 얼마나 많은 가족의 정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만약 제가 심씨 집안에 시집오지 못하고 여전히 몰락한 집안의 이혼녀로 살고 있었다면, 큰외숙모가 저와 어머니를 어떻게 대했을 것 같습니까? 더구나 한번 돕기 시작하면 끝없이 매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정말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어 주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계연수의 말을 듣던 고씨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서늘한 딸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 온몸마저 뻣뻣해지는 듯했다.반평생을 살고도 자신은 딸만큼 세상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계연수의 몇 마디가 고씨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고씨는 친정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약해져 거듭 양보했다. 하지만 그토록 베풀고도 친정 식구들이 제 딸에게 조금이라도 잘해 주게 만들지는 못했다.결국 큰동서 식구들은 아무리 도와줘도 은혜를 기억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받은 은혜는 잊으면서도 서운함과 원한은 끝까지 품었다.계연수가 굳이 자신만 남겨 두고 이런 말을 꺼낸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물러터진 마음 때문에 계연수까지 친정의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려 한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있었다.정말로 어떤

  • 주문춘귀   제1056화

    고씨 노부인의 말은 장씨를 꾸짖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계연수에게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려는 말이기도 했다.이제 더는 고하운을 위해 변호하거나 사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고씨 노부인도 알고 있었다. 고하운 한 사람 때문에 계연수와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었다. 예전부터 사리를 분별하고 대의를 헤아리는 면에서는 계연수가 고하운보다 훨씬 나았다.장씨는 넋이 나간 채 고씨 노부인의 꾸지람을 들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박힐수록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졌다.어찌 계연수의 운명이 이토록 크게 달라질 줄 알았겠는가.한 번 이혼한 여인이 다시금 이처럼 높은 명문가에 시집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계연수가 고씨 노부인에게 말했다.“어찌 되었든 백씨 집안이 저지른 짓은 지나치게 악독합니다. 명예와 평판을 중히 여기고 최소한의 법도라도 지키는 집안이라면, 어느 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백씨 집안에서 계속 참고만 있다면 누구도 고하운을 구해 줄 수 없습니다. 백 대감 때문에 이미 집안의 명성이 크게 훼손됐으니, 지금 백씨 집안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또다시 추문이 퍼지는 일이겠지요. 어떻게 해야 할지는 스스로 머리를 써서 생각해 보라고 하세요.”예전에 계연수도 사씨 집안에서 편안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사씨 집안은 의식주만큼은 박하게 굴지 않았다. 그 이상의 것을 내어 주지는 않았으나, 겉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체면은 차려 주었다.하지만 고하운이 당한 일은 달랐다. 백씨 집안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체면조차 차려 주지 않았다. 오히려 집안에 닥친 불행과 분노를 고하운에게 쏟아부으며 노골적으로 괴롭히는 듯했다.그들은 고하운을 사람으로조차 대하지 않았다.더구나 고하운은 지금 아이까지 품고 있었다.그런데도 고하운은 울며 하소연하고,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오기만을 기다렸다. 계속 그런 태도로 나온다면 정말로 아무도 그녀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계연수는 그 골치 아픈 일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백씨 집안을 경고해

  • 주문춘귀   제1055화

    “조금 전에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나마 도리를 아는 집안이라면 경고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헌데 백씨 집안에는 통하지 않습니다.”“지금 백씨 집안은 제 앞가림조차 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고하운을 살뜰히 챙길 리 있겠습니까? 백선혁은 서자이고, 백씨 큰 부인은 애초부터 고하운을 진심으로 아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하운이 제 발로 그 집안에 들어갔지요.”“예로부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집안의 법도를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제가 무슨 명분으로 간섭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집안일이라며 맞서면, 제가 그 사람들을 잡아 가두기라도 해야 합니까?”장씨는 흘릴 눈물마저 모두 말라 버린 듯했다. 머릿속이 텅 빈 채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더듬거리며 물었다.“그럼… 하운이는 이제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계연수가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백씨 집안의 판을 뒤엎고 스스로 일어서든가, 아니면 그 집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맞서지 않으면 평생 짓밟히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고하운이 스스로 해야 할 일입니다.”장씨는 모든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듯한 막막함을 느꼈다.그녀는 고하운이 이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혼한 여인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자칫 고준의 앞날에까지 영향을 미칠까 두렵기도 했다.하지만 계연수가 말한 ‘판을 뒤엎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장씨는 결국 다시 그 방법을 물었다.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했던 계연수는 더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막 용춘에게 손님들을 배웅하라고 명하려던 순간, 노기가 어린 고씨 노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평소에는 그리도 스스로 영리하다 여기더니, 어찌 이런 것조차 알아듣지 못하느냐? 판을 뒤엎는 방법이 따로 있겠느냐? 아예 진흙탕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고씨 노부인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백씨 집안의 무정함과 의리 없음을 모조리 까발리면 된다. 적모는 며느리

  • 주문춘귀   제1054화

    희고 서늘한 빛이 계연수의 몸 위로 길게 내려앉아, 옥처럼 맑은 얼굴을 한층 더 희고 티 없이 비추었다.피어오른 단향 연기가 가늘게 허공을 맴돌았다. 계연수는 한 손을 앞에 놓인 작은 온돌 탁자 위에 가볍게 얹었다. 맞은편에 앉은 어머니마저 간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나 계연수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모두의 가슴은 점점 조여 들었다.한참 뒤에야 계연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는 도울 수 없습니다.”옥쟁반 위로 구슬이 굴러떨어지는 듯 맑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서늘함만이 가득했다.그 말이 떨어지자 장씨는 의자에서 힘없이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계연수는 창백하게 질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장씨를 내려다보았다. 이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이번에 한 번 도와주면 앞으로도 끝없이 도와줘야 할 겁니다. 설마 제가 백씨 집안에 들어가 고하운의 삶까지 대신 살아 줘야 합니까? 고하운이 선택한 사람이고, 큰외숙모께서 선택한 혼처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좋은 혼처로 보이지 않는다고. 그때 큰외숙모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고하운은 또 뭐라고 했고요?”고씨 노부인이 작은 목소리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했다.“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만하자꾸나. 더는 말하지 말거라.”계연수는 고씨 노부인을 바라보았다.“할머니, 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잊었다는 뜻도 아니고, 모든 일이 정말로 끝났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 사람은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지요. 헌데 직접 겪은 사람에게는 영영 지나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제 아픔을 대신 잊어 주거나, 저를 대신해 지난 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고씨 노부인은 흠칫했다.계연수가 한마디 한마디 분명하게 내놓을수록 노부인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흔들림 없는 계연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지난 세월 내내 한결같이 밝고 맑았다. 자신이 무엇을

  • 주문춘귀   제1053화

    “제가 그곳에 갔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실 겁니까?”계연수의 목소리에는 집안을 다스리는 안주인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 기세에 짓눌린 장씨는 감히 계연수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초조하게 손을 비비던 장씨는 구원을 청하듯 고씨를 바라보았다.본래 마음이 약한 고씨는 큰동서의 눈길을 외면하지 못하고 계연수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그렇다면 백씨 집안에 초대장을 보내는 건 어떻겠니? 백씨 큰 부인에게 하운이를 데리고 이곳으로 오라고 한 뒤, 네가 따끔하게 경고하는 거야.”장씨도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다.“연수야, 이번 한 번만 도와다오.”계연수는 입술을 비틀었다. 지긋지긋한 일들이었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뒤로 기대어 둥근 베개에 기댄 뒤, 장씨를 바라보았다.“제가 이번에 그들을 불러 경고한다고 한들, 그다음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러면 앞으로 명씨가 고하운을 잘 대해 줄까요? 백선혁이 갑자기 다정한 부군이라도 된답니까? 백씨 집안사람들이 고하운을 조상님처럼 떠받들기라도 할 것 같으세요?”계연수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차분했다.“안채에서 사람을 괴롭힐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명씨는 백선혁의 적모예요. 집안의 법도와 효를 내세우면 고하운을 옭아맬 명분쯤은 끝도 없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명씨가 작정하고 고하운을 괴롭히려 든다면, 겉으로는 엄연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이니 누가 나서도 소용없어요. 고하운이 더는 핍박받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계속 짓밟히든가, 아니면 아예 판을 뒤엎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합니다. 제가 해 줄 말은 이것뿐입니다. 저는 고하운을 돕지 않을 것이고, 그 아이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뜻도 이미 분명히 밝혔습니다.”계연수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은 적막에 잠겼다.장씨조차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판을 뒤엎는다니… 어떻게 말이냐?”계연수는 싸늘한 눈으로 장씨를 바라보았다.“받을 수 있는 수모를 모조리 당하고도 더는 거리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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