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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8화

Author: 경옥
계연수는 이 시각에 황제가 매원에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

눈발 너머로 선명한 명황색 옷자락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정여미와 함께 황급히 몸을 낮추어 문안을 올렸다.

황제는 두 사람 앞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계연수 곁에 피어난 원앙매에 잠시 머물렀다.

하나의 꽃받침에서 두 송이가 나란히 피어나는 까닭에 원앙매라 불리는 꽃이었다. 소복이 내려앉은 흰 눈 아래, 맞붙어 핀 두 송이의 매화가 찬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이윽고 황제는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계연수와 정여미를 차례로 훑어본 뒤 일어나라 명했다.

“짐은 행매를 가장 좋아하니, 심씨 부인은 행매를 그리면 될 것이다.”

계연수는 시선을 내리깔고 공손히 대답했다.

“폐하의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그녀의 눈길은 시종 황제의 얼굴까지 올라가지 못한 채, 눈 위로 길게 드리워진 명황색 옷자락에만 머물렀다.

황제가 지닌 기세는 심서준과 견주어도 조금도 뒤지지 않았고, 목소리에도 온화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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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086화

    최씨는 자신이 이 말을 꺼내기까지 몹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막상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는 않았다.사실 이 말은 이미 몇 번이나 목구멍까지 차올랐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에 얽매여 번번이 삼키고 말았다.어쩌면 자신은 너무 많은 것을 염려했는지도 몰랐다. 늘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주저했고, 마음 한구석에는 심정민에게 마지막 기회를 남겨 두었다. 심지어 그의 잘못을 대신 변명하기까지 했다.예전에 최씨는 어머니의 말을 믿었다.여자가 시집가면 누구나 이렇게 사는 것이고, 다른 여자들도 모두 참고 견디며 살아간다고 했다.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시어머니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결국 심정민이 자신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었다.예전에는 노부인도 오숙모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오숙부가 늘 사람들 앞에서 숙모를 살뜰히 보살피고 감싸 주었으며, 노부인 앞에서도 한결같이 숙모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러자 지금은 노부인도 오숙모를 온화하게 대하고 있었다.그러니 더는 이 부군을 위해 구실을 찾아 줄 필요가 없었다.자신에게 잘해 주지 않은 것은, 그저 잘해 주지 않은 것이었다.심정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여전히 음울한 얼굴로 최씨에게 한 걸음 다가가 물었다.“뭐라고 했소?”분명 잘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씨가 어떻게 화리하자는 말을 먼저 꺼낼 수 있겠는가.이번에는 최씨도 고개를 돌려 심정민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조금 전보다 더욱 확고하고 평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우리 화리합시다.”두 번째로 말하니 오히려 한결 수월했다.오랫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마침내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정민은 최씨에게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부인으로서 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자신의 후원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최씨의 말을 똑똑히 알아들은 순간, 심정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던 분노도 한

  • 주문춘귀   제1085화

    한편 심씨 노부인의 처소에서 나온 최씨와 백씨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씨는 굳은 얼굴로 최씨를 흘겨보았다. 입술을 몇 번 달싹였지만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노부인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은 탓에 속으로는 이를 갈 만큼 분했으나, 당분간은 더 이상 성질을 부릴 수 없었다. 머지않아 분가할 예정이니, 지금 노부인의 미움을 사서 좋을 것은 없었다.오늘 최씨가 감히 자신에게 맞선 일은 분가한 뒤 천천히 괴롭힐 방법은 수도없이 많았다.최씨는 멀어지는 백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곁을 따르던 시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이번에는 노부인께서 나서 주셨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하시려고요?”시녀는 주변을 살핀 뒤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곧 분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분가한 뒤 큰 부인께서 부인께 보복하시면 어떡합니까?”최씨는 눈을 내리깔고 담담하게 대답했다.“오늘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어도 그분은 똑같이 나를 괴롭혔을 것이다. 정 안 되면 함께 파멸하는 수밖에.”처소로 돌아온 최씨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전히 판서였다. 딸이 이런 집안에서 속수무책으로 괴롭힘을 당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었다.그러나 최씨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어머니를 설득하여 화리를 허락받고 싶었다.정말이지 더는 이 집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아니, 더는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분가하고 나면 오숙모도 곁에 없을 터였다. 자신을 지지해 줄 유일한 사람마저 사라진 뒤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았다.심지어 한순간에는 아이마저 포기하면 그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를 위해 이곳에서 평생 빛 한 줄기 없는 삶을 견디며 억눌려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릿하도록 서러웠다.처소로 돌아온 최씨는 기이할 만큼 고요했다. 작은 인기척 하나 내지 않은 채 탁자 앞에 앉아 어머니에게 보낼 편지를 써 내려갔다.최씨는 평소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고충을 털어

  • 주문춘귀   제1084화

    짝!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대청에 울려 퍼졌다.사랑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백씨가 앞뒤 사정도 가리지 않고 느닷없이 최씨의 뺨을 후려치자, 떠들썩하던 방 안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심씨 노부인도 백씨가 이토록 분별없이 행동할 줄은 몰랐다. 노부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호통쳤다.“그만두어라!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게냐!”백씨는 그제야 흠칫하며 멈춰 섰다. 뒤늦게 이성을 되찾고 노부인과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자, 저마다 복잡한 기색을 띤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무리 시어머니라 한들, 어찌 사람들 앞에서 며느리의 뺨을 함부로 때릴 수 있단 말인가?더구나 최씨의 얼굴에는 앞서 맞은 손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백씨가 평소에도 최씨에게 손찌검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심씨 노부인은 백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호되게 꾸짖었다.“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시도 조용히 있지를 못하는구나.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백씨는 멍하니 심씨 노부인을 바라보다가 변명했다.“제가 제 며느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어머님께 무례를 저지르게 했습니다. 저는 그저 잘못을 꾸짖었을 뿐입니다.”심씨 노부인은 차가운 눈으로 최씨를 바라보았다.“꾸짖었다고? 저 아이가 내게 무슨 무례를 저질렀단 말이냐? 정작 나는 무례를 당했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는데, 네가 무슨 근거로 그리 단정하는 게냐?”백씨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황급히 대답했다.“첩실의 일까지 어머님께 가져와 청정하신 처소를 시끄럽게 하지 않았습니까.”심씨 노부인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그것은 저 아이가 너에게 판단을 맡기느니 차라리 나를 찾아와 호소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넌 아직도 그 까닭을 모르겠느냐?”“시어머니인 네가 덕을 잃었기 때문이다!”수많은 친척 앞에서 백씨를 가리켜 시어머니로서 덕이 없다고 질책한 것은 더없이 엄중한 꾸지람이었다.백씨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그녀는 입술만 달싹

  • 주문춘귀   제1083화

    “더구나 이런 일을 굳이 이 자리까지 가져올 이유도 없지요. 이 첩실은 입만 열면 거짓을 늘어놓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도 감히 궤변을 늘어놓는 걸 보면, 평소에도 남부끄러운 짓을 적잖이 저질렀을 게 뻔합니다. 제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도리어 정실부인을 모함하고 있으니, 평소 정실부인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하는 짓마다 영락없는 첩실의 못된 작태입니다.”계연수가 내뱉은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정 소실의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 그 몇 마디만으로 정 소실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한 집안의 정실부인이었다. 첩실들이 뒤에서 어떤 수작을 부리는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잠시 후 계연수의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최씨가 그동안 어떻게 처신해 왔는지는 형수님들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아무런 까닭도 없이 어멈들을 시켜 첩실의 뺨을 스무 대나 때렸을 리 없습니다. 분명 그만한 일이 있었을 겁니다.”계연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최씨는 평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정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첩실의 뺨을 스무 대나 때리고, 이토록 일을 크게 벌여 노부인 앞에까지 끌고 왔을 리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 소실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심씨 노부인 역시 계연수의 뜻을 알아들었다. 정 소실이 이 자리까지 끌려와서도 감히 시비를 뒤바꾸자, 노부인은 싸늘한 얼굴로 꾸짖었다.“이런 천한 첩실이 입만 열면 거짓을 지껄이는구나. 내 앞에까지 와서 감히 허튼소리를 늘어놓다니.”심씨 노부인은 곧 관사를 불러 정 소실을 끌고 나가 곤장 서른 대를 치라고 명했다.사실 심씨 노부인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말이 있었다.심정민이 평소 겉으로는 반듯하게 처신하고 후원의 여인들에게 빠져 지내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정 소실이 감히 최씨에게 이토록 무례하게 굴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심정민이 묵인하고 감싸 준 탓이었다.이 첩실은 오랜 총애에 길들어져 이미 지나치게 방자해진 게 틀림없었다.

  • 주문춘귀   제1082화

    최씨의 뺨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 집안에서 감히 최씨의 뺨을 때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답은 불 보듯 뻔했다.백씨 말고는 달리 생각할 사람도 없었다.게다가 최씨의 말을 들어 보니, 같은 여인으로서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최씨가 굳이 이 일을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었다.구경도 하고 최씨도 도울 수 있는 일인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하지만 아무래도 먼저 나서기는 곤란했다. 누군가 앞장서서 말문을 열어야 했기에,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계연수에게로 향했다.계연수가 최씨를 달랬다.“너무 속상해하지 말거라. 어머님께서 네 억울함을 풀어 주실 게다.”계연수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처리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백씨가 속한 큰방의 일이었다. 인정으로 보나 도리로 보나 계연수가 관여하기에는 곤란한 문제였다.백씨가 자리에 없다면 그나마 나섰겠지만, 오늘은 백씨가 마침 집으로 돌아온 데다 최씨의 시어머니이기도 했다. 본래라면 백씨가 나서서 처리하는 게 맞았다.문제는 백씨가 소식을 듣고 찾아와 한바탕 소란을 피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사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백씨가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시어머니였다면, 최씨가 어찌 이곳까지 찾아왔겠는가?정 소실이 저토록 방자하게 구는 데는 백씨의 책임도 분명 있을 터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최씨의 뺨에 남은 손자국을 바라보았다.그때 계연수의 둘째 사촌 형수가 가장 먼저 참지 못하고 최씨에게 물었다.“네 얼굴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냐?”최씨는 명확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온갖 설움을 억눌러 온 사람처럼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최씨가 눈물을 흘리자 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건네며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그렇게 한창 위로하고 있을 때, 심씨 노부인이 도착했다.심씨 노부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바닥에 무릎 꿇은 정 소실을 바라보았다. 이어 사람들에게 둘러

  • 주문춘귀   제1081화

    최씨는 소매를 여미며 담담한 눈빛으로 시녀에게 일렀다.“지금 사랑채에 손님들이 계시니, 이 첩실을 그리로 끌고 가거라. 어머님께서는 오늘 막 돌아오셔서 피곤하실 테고, 부군께서도 자리에 안 계시지 않느냐. 정 소실이 억울하다고 하니, 노부인과 숙모님들께 시비를 가려 달라고 하자꾸나. 마침 맞은편 큰방의 숙모님들도 와 계시니,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판단해 주실 게다. 그래야 내가 애먼 사람을 벌했다는 소리도 나오지 않겠지.”시녀는 최씨가 첩실의 일을 모두가 보는 앞에 드러내어, 아예 일을 크게 만들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편이 차라리 나았다. 설령 큰 부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노부인과 여러 부인에게 나으리가 첩실을 얼마나 감싸고도는지 똑똑히 보여 줄 수 있을 테니.정 소실은 두려움에 질렸다. 최씨가 이 일을 노부인에게까지 가져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오늘따라 최씨가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듯 굴자, 자기도 모르게 따져 물었다.“다른 데서 화가 나셨다고, 어찌 그 분풀이를 저한테 하십니까?”그러나 최씨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곧장 사람을 시켜 정 소실의 입을 틀어막고 결박한 뒤 사랑채로 압송하게 했다.정 소실을 따르던 시녀도 화들짝 놀랐고, 아이는 겁에 질려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최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사랑채로 향했다.곁을 따르던 어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부인, 아직 얼굴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먼저 약부터 바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대로 가셨다가 남들의 눈에 띄면 쓸데없는 말이 나올까 걱정됩니다.”최씨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이윽고 그녀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내 삶 자체가 이미 한낱 웃음거리인데, 이제 와 남들의 입방아가 무슨 대수겠느냐.”예전에는 집안의 치부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이제 최씨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소문이 나려면 나라고 하라지. 이 상황에서 자신이 더 잃을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최씨는 잠시 침묵하다 다시 말했다.“앞으로 이틀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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