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912화

Author: 경옥
계연수는 유독 해가 저물고 나서야 입맛이 조금 돌아오곤 했다.

심서준은 이미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꺼리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따스한 등불 아래 차려진 저녁상에는 계연수가 즐겨 먹는 음식들만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아침부터 변변히 먹지 못해 속이 비어 있던 계연수는 모처럼 마음 놓고 수저를 들었다. 좋아하는 음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자 하루 종일 울렁거리던 속도 한결 편안해졌고, 창백했던 얼굴에도 희미하게나마 생기가 돌았다.

그날 밤, 목욕을 마친 계연수는 은은한 온기가 감도는 방 안에서 나한탑에 앉아 여러 가지 천을 펼쳐 놓고 살펴보았다. 갓 씻은 머리카락에서는 희미한 향유 냄새가 풍겼고, 등잔불이 알록달록한 천 위로 부드러운 빛을 드리웠다.

요즘 들어 그녀에게는 제법 한가한 시간이 생겼다. 주방은 최씨가 맡았고, 집안의 경조사와 선물 왕래는 장씨 어멈이 처리했으며, 장원의 일 역시 진복만이 도맡아 살피고 있었다. 더구나 연공을 바치는 시기도 이미 지나, 장원에서 급
Patuloy na basahin ang aklat na ito nang libre
I-scan ang code upang i-download ang App
Locked Chapter

Pinakabagong kabanata

  • 주문춘귀   제912화

    계연수는 유독 해가 저물고 나서야 입맛이 조금 돌아오곤 했다. 심서준은 이미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꺼리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따스한 등불 아래 차려진 저녁상에는 계연수가 즐겨 먹는 음식들만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아침부터 변변히 먹지 못해 속이 비어 있던 계연수는 모처럼 마음 놓고 수저를 들었다. 좋아하는 음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자 하루 종일 울렁거리던 속도 한결 편안해졌고, 창백했던 얼굴에도 희미하게나마 생기가 돌았다.그날 밤, 목욕을 마친 계연수는 은은한 온기가 감도는 방 안에서 나한탑에 앉아 여러 가지 천을 펼쳐 놓고 살펴보았다. 갓 씻은 머리카락에서는 희미한 향유 냄새가 풍겼고, 등잔불이 알록달록한 천 위로 부드러운 빛을 드리웠다.요즘 들어 그녀에게는 제법 한가한 시간이 생겼다. 주방은 최씨가 맡았고, 집안의 경조사와 선물 왕래는 장씨 어멈이 처리했으며, 장원의 일 역시 진복만이 도맡아 살피고 있었다. 더구나 연공을 바치는 시기도 이미 지나, 장원에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도 많지 않았다.한창 바쁠 때는 하루라도 한가롭게 쉬고 싶었지만, 막상 여유가 생기자 가만히 있는 것이 도리어 무료했다. 무엇이라도 해 볼까 궁리하던 계연수는 문득 뱃속의 아이에게 작은 옷을 지어 주고 싶어졌다. 기왕이면 손바닥만 한 신발도 몇 켤레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계연수는 이처럼 자그마한 물건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방씨 어멈에게 차근차근 배울 생각으로, 우선 아이의 여린 살에 닿아도 좋을 만큼 부드러운 천부터 고르고 있었다. 마침 심서준도 맞은편에 앉아 있었기에, 어떤 색이 예쁠지 함께 골라 달라고 했다.“부군은 어떤 색이 좋으십니까?”심서준은 펼쳐진 천들을 한 차례 훑어보더니 무심히 손을 들어 푸른색 천을 가리켰다.계연수의 눈에는 그 색이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옆에 놓인 붉고 화사한 천을 집어 들고 다시 물었다.“이건 어떠세요? 아이에게 입히면 복스럽고 보기 좋을 것 같은데요.”심서준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주문춘귀   제911화

    “그게 무슨 말이냐.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와 똑같이 토라져서는.”계연수가 기막힌 듯 말하자 최씨는 더욱 서러운 얼굴로 손수건을 움켜쥐었다.“제가 이런 속사정을 대체 누구에게 털어놓겠어요. 시어머니께 말씀드려 봐야 결국 제가 못나서 부군과 아이의 마음도 붙잡지 못한다고 하실 텐데요.”말을 마친 최씨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지난번에 계연수 앞에서 처음 속내를 털어놓은 뒤로, 최씨는 괴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녀를 찾아와 울곤 했다. 솔직히 심정민의 행동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고, 최씨가 이유 없이 생떼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모든 일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백씨에게 닿았다. 시어머니인 백씨가 감당해야 할 몫과 집안일에 무심한 심정민의 책임이 고스란히 최씨의 어깨에 얹혔다. 두 사람이 외면한 짐을 혼자 떠안았으니 최씨의 삶이 고단해지는 것은 당연했다.그렇다고 계연수가 나서서 정말 화리하라고 권할 수도 없었다. 만약 최씨가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고 새 삶을 택하겠다고 결심한다면 누구보다 지지해 줄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자신이어서는 안 되었다.바로 그때 심서준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계연수의 품에 안겨 울던 최씨는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황급히 몸을 일으킨 그녀는 심서준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까지 붉어졌다. 남들 앞에서 울던 모습을 들킨 것이 부끄러웠는지 제대로 인사만 올리고 서둘러 물러났다.최씨가 떠나자 심서준은 자연스럽게 계연수를 끌어안아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 이어 시종에게 들고 온 찬합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게 했다.찬합 안에는 그가 오는 길에 음식점에 들러 사 온 음식들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요즘 계연수의 입맛은 전보다 조금 나아졌지만, 날마다 같은 주방 음식만 먹다 보면 다시 질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심서준은 종종 바깥에서 새로운 요리를 골라 가져오곤 했다.심서준이 가져온 음식은 계연수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에 젓가락을 쥐여 주고, 먹기

  • 주문춘귀   제910화

    그 뒤로 계연수는 다른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태교와 몸조리에만 전념했다.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도 웬만하면 방 안에서 처리했다.다행히 방씨 어멈은 손이 빠르고 일 처리가 빈틈없는 사람이었다. 계연수가 무엇을 지시하든 뜻을 정확히 헤아려 말끔하게 해냈기에, 그녀가 직접 나서야 할 일은 거의 없었다.간혹 최씨가 주방 일로 판단이 서지 않을 때면 계연수의 처소를 찾아와 의견을 구했다. 백씨는 정말로 주방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모든 일을 최씨에게 맡긴 상태였다. 계연수 역시 최씨가 찾아올 때마다 귀찮아하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히 알려 주었다.어느 날, 최씨가 감탄 어린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오숙모께서도 전에는 집안일을 맡아 본 적이 없으셨잖아요. 그런데도 어찌나 능숙하게 처리하시는지… 오숙모 앞에만 서면 제 부족함이 부끄러워집니다.”계연수는 최씨를 나무라거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가 일을 어렵게 느끼는 까닭부터 짚어 주었다.“너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 지금 주방의 규칙과 절차는 대부분 내가 정해 놓은 것이라 네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처음 접하는 일이 많으니 손에 익지 않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지.”계연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따뜻하게 덧붙였다.“처음부터 네가 주방을 맡아 네 방식대로 운영했다면 분명 잘해 냈을 것이다.”그 말을 들은 최씨는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다.백씨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일을 잘못 처리하면 무능하다며 다짜고짜 호통부터 쳤다. 무엇을 놓쳤는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은 채 그저 쓸모없는 사람처럼 몰아세우곤 했다.하지만 계연수는 전혀 달랐다. 어디서 막혔는지 살피고, 이해할 때까지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덕분에 주방을 맡은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최씨는 조금씩 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게다가 손에 붙들고 처리할 일이 생기니 쓸데없는 생각에 빠질 겨를도 줄었다. 부군의 소실이 무슨 짓을 하든 예전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게 되

  • 주문춘귀   제909화

    사실 손보경은 누구보다도 영청후부가 죗값을 치르기를 바랐다. 그리고 누구보다 간절히 정종현의 죽음을 원했다.그동안 그녀가 태후 앞에서 속내를 감춘 채 비위를 맞추며 시간을 끈 것도 그 때문이었다. 태후에게는 계속 방도를 찾고 있다고 둘러대면서, 모든 기대를 자신에게 걸도록 만들었다.태후가 자신을 거치지 않고 또 다른 계책을 세워 심씨 가문을 해치기라도 하면 영청후부의 판결이 늦어질 수 있었다. 손보경은 오직 그 사태를 막고 싶었다.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정종현은 그녀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렸지만, 마침내 그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 태후가 앞으로 어떤 말로 협박하고 압박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이미 원하던 복수를 이루었으니까.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이 비로소 내려간 듯했다.그때 봄바람 한 줄기가 뜰을 스쳐 지나갔다. 가지에 매달려 있던 연분홍 복사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자, 손보경은 손을 내밀어 그중 한 송이를 받아 들었다.손바닥 위에 내려앉은 여린 꽃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졌다.손보경은 줄곧 등을 돌린 채 심한율을 바라보지 않았다. 본래 영민하고 사리에 밝은 그녀가 그동안 그에게 보인 다정한 태도와 비위 맞추는 말들은 모두 태후가 붙여 둔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연극이었다.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온 탓일까. 이제 와서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손보경이 바란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어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누군가의 손에 쥐여 움직이는 장기말이 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심한율은 복숭아나무 아래에 선 손보경이 오랫동안 미동도 하지 않자 결국 그녀에게 다가갔다.곁에 이르러서야 그는 손보경의 붉어진 눈가를 발견했다. 그녀가 이처럼 감정을 드러낸 모습은 처음이었다.지금까지 손보경의 눈은 언제나 고요했다. 지나치게 고요해서 오히려 섬뜩할 정도였다.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인 귀족 집안의 여식이 지닐 만한 눈빛이 아니

  • 주문춘귀   제908화

    진씨 가문의 큰부인 위씨는 소씨와 진가옥을 데리고 계연수를 찾아왔다.다리의 상처가 완전히 나은 진가옥은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아 가벼운 걸음으로 계연수의 곁에 다가왔다. 그러고는 아직 아무런 티도 나지 않는 배를 연신 들여다보며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아기는 언제 태어나요? 빨리 태어나야 저랑 놀 텐데요.”진가옥이 손을 뻗어 계연수의 배를 만지려 하자 위씨가 얼른 그 손등을 가볍게 때렸다.“그게 무슨 철없는 소리냐.”졸지에 손등을 맞은 진가옥은 서러운 듯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계연수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 곁에 앉혔다.“날짜를 헤아려 보면 올해 연말쯤 태어날 것이다.”그러자 진가옥의 해맑던 얼굴에 금세 걱정이 어렸다.“큰형수님은 아이를 낳을 때 꼬박 하루 밤낮이 걸렸잖아요.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고모도 그렇게 오래 고생해야 하나요?”위씨는 이번에야말로 딸의 입을 때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너는 어쩌면 입만 열면 그런 소리를 하느냐!”어머니의 호통에 놀란 진가옥은 얼른 계연수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위씨는 행여 진가옥의 말이 계연수를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싶어 서둘러 달랬다.“여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란다. 그렇다고 미리 겁먹지는 말거라. 순산하는 사람은 아주 빨리 아이를 낳기도 하니까.”사실 계연수도 출산을 생각하면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은 채 그저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로부터 며칠 뒤, 영청후부의 사건이 마침내 판결까지 모두 끝났다.서시에 내걸린 고시문에는 영청후부가 저지른 죄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죄목은 모두 열 가지였고,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죄였다.첫째는 포악한 종들을 비호하여 백성의 전답을 강제로 빼앗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 둘째는 재해 구휼금을 횡령한 죄.셋째는 관직을 팔고 태주 포정사사에서 발행할 백지 고신 일곱 장을 빼돌린 죄.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사로이 관문을 세워 상인들에

  • 주문춘귀   제907화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고 나서야 방 안에는 비로소 고요가 내려앉았다.심서준은 계연수가 들고 있던 죽 그릇을 받아 옆 탁자에 내려놓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약은 먹었느냐?”계연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먹었는데도 별 소용이 없어요.”힘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자 심서준의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 왔다. 여인이 아이를 품는 일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그는 몸을 숙여 계연수를 품에 안은 뒤, 가늘게 떨리는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자신이 대신 아파 줄 수도, 당장 그 괴로움을 없애 줄 수도 없으니 그저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조금만 더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곧 나아질 테니 조금만 참거라.”계연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하고 익숙한 품에 안겨 있으니 어지럽던 머리도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그녀는 한참 뒤에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실 어머님 말씀도 틀리지는 않아요. 배를 곯으면 오히려 속이 더 괴롭거든요. 억지로라도 조금 먹고 나면 그나마 나아지고요.”심서준이 괜한 오해를 품을까 염려한 계연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어머님과 형수님들도 모두 저를 걱정해서 그러신 거예요.”심서준은 대답 없이 품 안의 사람을 조금 더 끌어안았다. 아이를 품은 지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몸이 한층 가벼워진 듯했다. 손안에 닿는 어깨와 허리가 전보다 가늘어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무엇이라도 먹일 만한 것이 없을까 생각하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내 수하가 절인 갓과 오이를 한 항아리 보내왔다. 그자의 부인도 아이를 가졌을 때는 그것밖에 먹지 못했다더구나. 한번 맛보겠느냐?”계연수는 종일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실은 빈속에서 허기를 알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절인 갓과 오이라는 말을 듣자 새콤하고 아삭한 맛이 떠오르며 모처럼 입맛이 당겼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그 순간, 조용한 방

Higit pang Kabanata
Galugarin at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Libreng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sa GoodNovel app. I-download ang mga librong gusto mo at basahin kahit saan at anumang oras.
Libreng basahin ang mga aklat sa app
I-scan ang code para mabasa s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