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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Author: 삼나무
나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천천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항암치료실로 향했다.

그래도 지금은 내 발로 걸을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침대에 누운 채 온몸에 여러 관을 꽂고 겨우 숨만 이어 가게 되겠지.’

난 남은 시간만큼 구도현을 단 한 번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도현 씨, 지금 선택해. 하나는 오늘 나랑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절차를 끝내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이혼소송 하는 거야. 당신이 골라.”

내 말에 구도현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몇 분 뒤 경찰들이 병원으로 들이닥쳤고 윤채희와 구도현은 모두 경찰과 함께 가게 됐다.

윤채희는 내 앞을 지나면서도 끝까지 험한 말을 퍼부었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정신 상태도 이미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구도현은 마지막까지 이번 검사만이라도 곁에서 함께하게 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대신 서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내 연락을 받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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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에 하는 이혼   제10화

    나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천천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항암치료실로 향했다.그래도 지금은 내 발로 걸을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었다.‘조금만 더 지나면 침대에 누운 채 온몸에 여러 관을 꽂고 겨우 숨만 이어 가게 되겠지.’난 남은 시간만큼 구도현을 단 한 번도 보고 싶지 않았다.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도현 씨, 지금 선택해. 하나는 오늘 나랑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절차를 끝내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이혼소송 하는 거야. 당신이 골라.”내 말에 구도현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몇 분 뒤 경찰들이 병원으로 들이닥쳤고 윤채희와 구도현은 모두 경찰과 함께 가게 됐다.윤채희는 내 앞을 지나면서도 끝까지 험한 말을 퍼부었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정신 상태도 이미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구도현은 마지막까지 이번 검사만이라도 곁에서 함께하게 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대신 서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내 연락을 받은 서유진은 곧바로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와 나를 데리고 나갔다.나는 이제 구도현이 있는 곳을 완전히 떠나기로 했다.공항에 도착하자 서유진이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물었다.“서윤아, 구도현 씨한테 정말 아무 말도 안 해도 되겠어?”내 기분을 건드릴까 조심스러워하는 서유진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감은 채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헤어지기로 마음먹은 이상 더는 미련이 남을 일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구도현이 너무 미웠다.아무 죄도 없던 내 아이는 구도현과 윤채희의 사랑 때문에 희생됐고 이제 내게 남은 시간마저 얼마 없었다.고작 마지막 한 달을 위해 가진 돈을 전부 치료비로 쏟아붓느니 차라리 그동안 가 보고 싶었던 곳들을 직접 눈에 담고 싶었다.그리고 이제야 알았다.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해원시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비행기로 고작 세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그런데도 구도현은 9년 동안 번번이 나를 해원시에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만 했다. 결혼기념일이 돌아

  • 죽기 전에 하는 이혼   제9화

    그 순간, 구도현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윤채희는 그런 구도현의 손을 붙잡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도현아, 이러지 마... 난 네가 없으면 안 돼.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난 네 아이까지 가졌잖아!”구도현은 차분한 얼굴로 윤채희를 바라봤다.“윤채희, 난 서윤의 병부터 치료할 거야.”윤채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저었다.“구도현, 거짓말하지 마. 그러면 나한테 했던 약속은 전부 거짓말이었어? 난 널 하나 믿고 다 포기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정말 네가 미워 죽겠어!”나는 한동안 윤채희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윤채희도 어느 정도는 피해자였다. 구도현이 수없이 헛된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모든 걸 버리고 여기까지 찾아왔을 리 없었다.결국 구도현이 가장 사랑한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었다. 누군가가 곁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마음이 식는 순간 그동안 쏟아붓던 사랑조차 아무렇지 않게 거둬 갈 사람이었다.“왜 그러는 거야?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한 것도 너잖아! 그래서 나도 임신한 거고...”윤채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네가 그랬잖아. 한서윤은 네 아이도 못 가지는 여자고 넌 애초에 한서윤을 사랑하지도 않는다고!”“구도현, 한서윤이 아프니까 이제 와서 무슨 좋은 사람인 척하는 거야?”흥분하던 윤채희는 오히려 점점 차분해졌다. 차갑게 선을 긋는 목소리로 구도현이 저질러 온 일들을 하나씩 폭로했다.주변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의 표정도 미묘하게 굳어졌고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낮은 수군거림이 퍼졌다.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구긴 구도현은 성큼성큼 윤채희에게 다가가더니 목을 움켜쥐었다.“이 미친년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그러고는 곧장 나를 돌아봤다.“서윤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야. 네가 어떻게 되든 난 계속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날 버리지 마. 응?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난소암도 분명 나을 수 있어.”나를 바라보는 구도현의 눈에는

  • 죽기 전에 하는 이혼   제8화

    윤채희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도발적인 눈빛으로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더니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다가왔다.그리고 거만한 표정으로 내 머리에 씌워져 있던 모자를 낚아챘다.다음 순간, 윤채희는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머리카락 하나 남지 않은 맨머리가 그대로 드러나자 나는 수치심이 온몸을 덮쳤다.윤채희는 역겹다는 듯 코까지 막으며 비웃었다.“한서윤 씨, 머리카락이 진짜 다 빠졌네요? 하하하. 지금 서윤 씨의 꼴이 어떤지 거울이라도 한번 볼래요?”그러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이렇게까지 할 거면 그냥 죽어 버리지 그래요?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요. 정말 서윤 씨 때문에 미치겠어요. 서윤 씨가 집 나간 뒤로 도현이가 하루 종일 넋이 나가 있다고요!”“대체 왜 아직도 안 죽는 건데요?”윤채희는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키며 악을 썼고 화가 얼마나 났는지 가슴까지 거칠게 들썩였다.그때 아랫배가 욱신거리며 아파져 오자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이상하게도 병원에 올 때마다 윤채희와 마주쳤고 그럴 때마다 윤채희는 빠짐없이 비아냥거렸으며 구도현은 늘 윤채희의 편에 섰다.이제는 익숙할 정도였다. 나는 아픔을 참으며 겨우 몸을 바로 세우고 윤채희를 바라보며 말했다.“모자 돌려줘요. 그쪽이랑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요.”모자를 빼앗으려고 손을 뻗자 윤채희는 약이라도 올리듯 모자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았다.그러고는 내 몸을 세게 밀쳤다.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한 나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고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한서윤 씨, 저한테 빌어 봐요. 그러면 제가 모자를 돌려줄 수도 있어요”윤채희의 날카로운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내가 이렇게 처참한 꼴로 바닥에 쓰러진 모습이 꽤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소란이 커지자 구도현과 의사 몇 명이 급히 이쪽으로 다가왔다.“윤채희, 지금 뭐 하는 거야!”구도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윤채희를 나무란 뒤 곧장 내 옆에 쪼그려 앉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구도현이 먼저 나를 챙기자

  • 죽기 전에 하는 이혼   제7화

    “서윤아, 우리 이렇게 끝내면 안 되잖아. 지금은 그냥 네 곁에서 치료받는 것만 도와주고 싶어.”하지만 이제 와서 구도현이 무슨 말을 해도 공허하게만 들렸다.나는 멍한 얼굴로 서 있는 구도현을 바라봤다.‘입술까지 떨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나한테 미안하기라도 한 걸까.’“나도 이혼을 생각한 적은 있어. 하지만 끝까지 결심은 못 했어. 서윤아, 내가 정말 널 사랑하지 않았다면 진작 그 합의서를 내밀었겠지. 우리가 함께 보낸 9년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어?”구도현은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넌 지금 이렇게 아프잖아. 나 없이 어떻게 버티겠어. 내가 어떻게 널 혼자 두고 가겠어?”나는 차갑게 되물었다.“윤채희가 당신 하나 믿고 모든 걸 버리고 왔다며? 그래서 당신이 책임지고 가정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했잖아. 지금은 윤채희가 당신 아이까지 가졌는데 그 여자는 버릴 수 있어?”그 순간, 구도현의 얼굴이 굳었다.“난 이미 마음 정했어. 더 이상 날 설득하지 마. 오늘 가정법원 가서 이혼 마무리하자.”구도현이 꿈쩍도 하지 않자 나는 문을 닫으려고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한 걸음도 떼기 전에 구도현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이제는 구도현의 손조차 뿌리칠 힘이 없었고 고개를 들자 구도현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싫어. 나 정말 후회해. 이혼 안 할 거야. 채희 아이는 낳으면 내가 밖에서 책임지면 돼. 네 병만 나으면 우리 다시 아이 가지자. 응?”구도현은 그렇게 외치며 가방에서 이혼 합의서를 꺼내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나는 지친 얼굴로 구도현을 바라봤다.“도현 씨, 이제 그만 놔줘. 더는 날 괴롭히지 마.”“결혼한 9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당신한테 잘못한 적 없어. 당신 하나 챙기겠다고 내 삶도 다 포기했어.”목이 메었지만 나는 끝까지 말을 이었다.“당신 친구들은 나더러 멍청하고 바보 같다고 했어. 당신 거짓말은 개도 안 믿을 거라는데 나는 믿었어. 당신도 그 사람들 앞에서 날 그렇게 말했잖아.”구도현의 표정이 서서히

  • 죽기 전에 하는 이혼   제6화

    목소리의 주인공은 윤채희였다.‘벌써 윤채희를 집에까지 데려간 걸까. 그러면서 내게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고 붙잡는 이유가 대체 뭘까?’“서윤 씨, 도현이가 서윤 씨 때문에 요즘 얼마나 죽어라 일했는지 알아요? 그렇게 겨우 며칠 휴가 낸 건데 서윤 씨가 괜히 심술부리면서 난소암 말기라는 거짓말까지 하잖아요.”윤채희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도현이가 서윤 씨를 얼마나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안 되죠.”윤채희의 가식적인 말투에 나는 속이 메스꺼워졌다.‘내가 왜 이러는지 구도현과 윤채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둘 다 그렇게 연기하면 안 피곤해요?”나는 더 참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도현 씨, 나랑 이혼하고 싶었던 건 당신이잖아. 그래서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는데 뭐가 불만이야? 나도 서명했으니까 숙려 기간만 끝나면 가정법원 가서 이혼 절차 마무리해.”할 말을 모두 마친 나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오히려 속이 후련해졌다.구도현은 윤채희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었고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얼마 되지 않았다. 차라리 죽기 전에 두 사람 사이에서 완전히 빠져 주는 편이 나았다. 죽고 나서까지 괜한 이야기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도 않았다.지금 구도현을 놓아주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나는 구도현에게 받은 아홉 쌍의 귀걸이를 모두 처분했다. 그 돈이면 당분간 치료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걸 정리했는데도 구도현은 계속 나를 찾아다녔다.“한서윤, 내가 반드시 널 찾아낼 거야.”그렇게 두 달 동안 나를 찾아 헤맨 끝에 구도현은 결국 내가 사는 곳을 알아냈다.나는 미리 아파트 경비실에 구도현을 들여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 둔 상태였다.그런데 구도현은 아예 담을 넘어 단지 안으로 들어왔다.문을 열고 나를 마주한 순간, 구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몰라보게 야윈 내 모습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비싼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항암치료까지 받고 있었지만 암세포는 계속 퍼

  • 죽기 전에 하는 이혼   제5화

    나는 뻑뻑해진 눈을 문질렀다.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 진동 때문에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구도현은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 몇 번이나 이어지는 벨 소리를 견디다 못해 결국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구도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또 집 나가서 사람을 애태우는 거야? 이렇게 하면 내가 미안해할 줄 알았어? 그리고 누가 내 책장을 마음대로 뒤지래? 그 이혼 합의서는 난 인정 못 해.”구도현은 내가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이혼하고 싶어 한 건 구도현이 아니었나...’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합의서에 서명한 걸 두고 왜 따지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나는 길게 숨을 내쉬며 몸의 불편함을 애써 참았다.요즘은 입맛도 거의 없었고 이유 없이 출혈이 생기는 날도 있었다.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나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구도현의 말을 끊었다.“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혼하는 게 당신한테도 나한테도 더 낫겠다고 말이야.”구도현은 몇 초 동안 말이 없었다가 이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서윤아,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데? 있으면 좀 말을 해. 우리 얘기 좀 하자.”“결혼기념일 때문이면 나도 이제 쉬는 날 생겨서 집에 가려고 했어. 그 귀걸이가 얼마짜리인지 알기나 해?”구도현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지금 구도현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눈에 선했다.구도현은 늘 내가 절대 자신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잠시 뒤 구도현의 목소리가 한층 누그러졌다.“자기야, 그냥 돌아오면 안 돼? 나랑 채희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넌 계속 아이를 갖고 싶어 했잖아. 우리 같이 노력하면 되잖아.”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게 너무 늦어 있었다.나는 오래전에 엄마가 될 기회를 잃었다. 다른 말은 몰라도 구도현만큼은 아이 이야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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