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행동하는 박민정을 보고 유남준은 그녀가 서둘러 떠나려고 하는 줄 알았다.그는 저도 모르게 박민정의 손을 꼭 잡았다. “나 혼자 여기 있는 것도 불편해.”그처럼 일하는데 깔끔하고 차가운 성격의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박민정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여기는 남준 씨 집이잖아요. 왜 불편해요?”“우리 집은 두원 별장이잖아?”유남준이 박민정에게 물었다.박민정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예전에는 그는 두원 별장이 두 사람의 집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근데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말한다. “네, 그래요. 그럼 잠시 같이 있어 줄게요.”박민정은 지금의 유남준이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그녀가 남는다고 하자 유남준은 일어나 실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임산부가 앉기 좋은 의자를 찾아 그녀더러 앉으라고 했다.“앉아, 너무 오래 서 있지 말고.”의자에 앉은 박민정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말했다. “고마워요.”유남준은 또 방으로 가서 과일과 먹을 것을 가져다 박민정에게 주었다.박민정은 그의 방에 이렇게 많은 음식이 있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 “왜 먹을 게 이렇게 많아요? 다 도우미가 준비한 거예요? 근데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네요?”박민정이 먹을 것을 보며 물었다. 어떤 거는 심지어 유남준이 싫어하는 음식이었다.유남준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웃는 모습은 되게 이뻤다.“네가 온다고 해서 내가 몰래 사 오라고 한 거야. 안 그러면 네가 얼마나 심심하겠어. 게다가 임산부는 원래 빨리 배고파진다고 들었어. 당연히 먹을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그는 이제 시력이 회복되고 건강도 거의 회복되었다. 그러니 아버지와 남편의 책임을 져야 하고 임신 중인 박민정을 잘 보살펴야 한다.이렇게 많은 맛있는 음식을 보고 박민정은 더없이 기뻐했다. 테이블 위에 먹을 것을 한 무더기 올려놓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신나요.”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유남준은 그녀를 붙잡기 위해 먹을 것뿐만 아니라 예쁜 옷까
다른 사람 눈에 박민정은 행복하기보다는 안쓰럽게 보였다. 유남준을 돌보는 도우미조차 참지 못하고 몰래 속닥였다. “큰 도련님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사모님도 불쌍해. 이혼했는데 아직도 아이를 데리고 와서 도련님을 돌봐야 하니 말이에요.”“그니까요. 안쓰러워 죽겠어요. 정말 착하신 분이시니 하지 저 같으면 안 해요.”“바보예요? 큰 도련님이 누구인데요. 부잣집 아들은 바보라도 다른 정상적인 남자들보다 나아요. 사모님이 그걸 모르겠어요? 고 대표님께서 많은 돈을 줬을 거예요.”“...”도우미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다가 박민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박민정은 이들을 신경 쓰지 않고 새 옷을 입고 액세서리를 하고 나갔다.최현아는 도우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회사에서 잘렸다. 박민정이 바보 유남준을 돌보러 왔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일부러 밖에서 박민정을 기다리며 시비를 걸려 했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박민정이 유남준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이제야 나왔네? 너 혹시 바보 같은 놈이랑 하지 말아야 할 일 한 거 아니야?”최현아가 비아냥거렸다.박민정은 가로등 밑에 서 있는 최현아를 보고는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갔다.최현아는 거머리처럼 그녀를 쫓아가며 말했다. “왜, 내 말이 맞았어? 바보를 돌보는 기분은 어때?”다들 바보라고 하는데 사실 유남준은 바보도 아니고 눈도 멀지 않았다. 박민정은 최현아가 진실을 알면 지금보다 더 화를 낼 것으로 생각했다.“좋은 것 같아요. 적어도 바보는 절 배신하지는 않을 거니까요.”박민정의 말에는 다른 뜻이 있다. 최현아는 무엇을 눈치챘는지 대뜸 말했다. “무슨 말이야?”“그냥 들은 그 뜻인데요?”박민정이 말했다. 최현아가 웃으며 말했다. “설마 우리 성혁 씨 얘기는 아니겠지? 우리 여보는 유남준 씨처럼 첫사랑 그런 거에 문에 먼 사람이 아니야.”박민정은 그녀와 옥신각신하기 귀찮아서 그녀 곁을 지나갔다.그녀가 서둘러 가는 모습을 보고 최
“윤우야, 넌 이제 큰아이니까 혼자 자야지.”박민정은 허락하지 않았다.그녀는 지금 임신한 지 꽤 됐으니 잠잘 때 불편함이 크다.처음으로 박민정한테 거절을 당한 박윤우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엄마...”그가 막 애교를 부리려 하는데 박민정이 말했다. “됐어. 울기 좋아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어.”박윤우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작은 베개를 안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갔다.그는 여전히 불안해서 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오늘 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이렇게 빠르지는 않을 거야. 엄마는 지금 막 우씨 가문에 들어갔어. 게다가 할머니도 있으니 이렇게 빨리 손을 쓰지는 않을 거야.”박예찬은 생각하는 게 꽤 어른스러웠다. “그럼 됐어.”박윤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그제야 잠을 푹 잘 수 있었다.이튿날 아침 박윤우는 아침 일찍 깨어나서 박민정이 괜찮은지 보러 갔다.박민정은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잠자리가 낯선 탓인지 그녀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윤우야, 일어났어? 빨리 씻고 할머니한테 가서 아침 먹자.”고영란은 박민정이 불편해할까 봐 아침 일찍 사람을 보내서 그들을 데려오라고 했다.고영란은 지금 외로워서 집안이 좀 시끌벅적하기를 바란다.“네.”박윤우는 바로단 대답했다.오늘 아침, 유남우와 윤소현 두 사람이 다 집에 돌아왔다. 윤소현은 어제 병원에 가서 팔 검진을 했다. 지금 박윤우를 보니 자신의 팔이 또 아파 나는 것 같았다.누가 감히 그녀를 다치게 한 것은 처음이었다. 윤소현은 결혼하면 반드시 박윤우를 혼내 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엊그제 박민호가 거의 죽을 뻔했던 일도 아직 처리하지 않았다. “윤우야, 삼촌한테 와서 앉아.”유남우가 부드럽게 박윤우를 불렀다.그를 보고 박윤우는 귀신이라도 본 듯 괜히 겁을 먹었다.“아니요, 싫어요. 엄마랑 앉으면 돼요.”유남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고영란은 참지 못하고 박윤우를 놀렸다
유남우는 어쩔 수 없이 윤소현과 함께하기로 했다.윤소현은 가면서 박민정한테 물었다. “형님, 오늘도 출근 안 하시고 아주버님 돌봐주실 거죠? 지금 아주버님께서 저러신데 매일 출근하면 어떻게 해요? 그렇지, 윤우야?”그녀는 말을 마치고 고영란과 박민정은 눈치를 살피지 않고 만족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떠났다.고영란은 오늘 같은 억울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녀는 박민정을 달래며 말했다. “민정아, 내가 너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 것을 탓하지 마. 윤소현의 엄마 정수미는 회사에 없으면 안 되는 큰 고객이셔. 너도 알잖아, 남우가 회사를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말이야.”박민정이 대답했다. “잘 알고 있어요.”그녀는 스스로 노력해서 윤소현에게 보여주려고 마음먹었다.윤우를 학교에 보낸 후 박민정은 차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솔직히 말해서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부모 잘 만난 사람을 이길 수 없다.박민정은 자신이 윤소현을 이기고 전씨 가문과 윤씨 가문의 괴롭힘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아직도 수년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오른쪽 얼굴의 흉터를 만지며 예찬이가 납치됐을 때의 모습이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 복수를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녀가 지금 참고 있는 것은 그 일을 잊어버려서가 아니다.그녀는 매일 자신의 얼굴의 흉터를 본다.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오늘따라 회사 분위기가 좋았다. 모두 최현아가 떠나서 기뻐했다.심지어 유성혁도 기뻐했다. 회사 안에서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지니 말이다. 그는 여자가 많은 곳으로 가지 않으면 박민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 거리낌 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여기 네가 원하는 돈이 있어. 오늘 밤 내가 주소를 줄 테니까 네가 나를 만나러 와.”박민정은 유성혁이 던진 카드를 보았다. 그가 떠난 후 진서연을 불렀다.진서연은 유성혁이 정말 이렇게 많은 돈을 모은 것을 알고 의아해했다. "어떻게 그 사람
[자기야, 나 벌써 다 씻었어. 지금 어디 있어? 왜 답장을 안 해?]이 메시지를 본 유남준은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는 아예 박민정의 핸드폰을 열었다. 그녀의 핸드폰 비밀번호는 간단해서 유남준은 한눈 흘겨보고 기억했다.그는 핸드폰을 켜자마자 유성혁이 보낸 오글거리는 메시지들을 보았다.하지만 박민정은 한 마디도 답장하지 않았다.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유남준이 답장을 쓰려는데 박민정이 탈의실에서 나왔다. “나 어때요?”박민정은 아이보리색 롱드레스로 잊고 나왔는데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귀티나고 우아했다.그녀가 유남준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무슨 메시지를 보내려 하는 것을 보았다.“남준 씨가 들고 있는 건 내 핸드폰이에요.”유남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인지 박민정이 무서운지 얼른 핸드폰을 껐다.이런 그의 행동이 이상해서 박민정은 핸드폰을 가지러 앞으로 나섰다.유남준은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왜 유성혁이 이러는 것을 나한테 얘기 안 했어?”박민정은 그제야 그가 유성혁이 보내온 메시지를 봤다는 것을 알았다.“남준 씨는 아직 못다 한 일이 많잖아요. 당신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 이 일은 나 혼자 해결할 거예요.”“어떻게?”유남준은 지금 서다희한테 유성혁을 바다에 던지라고 시키고 싶어 할 정도다.“내일 알게 될 거예요.”박민정은 핸드폰을 가져와서 유성혁이 보낸 메시지를 열어보고는 신경 쓰지 않았다.유남준은 그녀가 무언가를 단단히 마음먹고 자기한테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떠난 후 바로 서다희더러 사람을 시켜 유성혁을 따르라고 했다.유성혁이 박민정을 조금만 건드린다면 그는 눈에 뵈는 게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 전에 그는 박민정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손을 쓰더라도 내일이 지난 후에 해야 한다.호텔 안에서 유성혁은 메시지를 여러 통 보냈는데 박민정이 답이 없자 그는 초조해서 막 전화를 걸려고 했다.웨이터가 노크했다. “이것은 한 여성분이 주문해주신 술입니다. 술을 마시면서 자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
유성혁은 이제 정신을 차렸다. 자기가 방 안에 카메라를 설치한 것이 생각났다. 유명훈은 그 말을 듣고 즉시 사람을 보내서 CCTV를 확인하라고 했다. 샅샅이 뒤졌지만 카메라는 없었다.이것을 안 유성혁은 앞길이 막막했다.“없을 리가 없어요. 제가 직접 놓은 건데요?”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현아가 화가 난 채 다가왔다. “유성혁, 이 나쁜 놈아. 돈을 모아서 비즈니스 한다더니 이런 비즈니스였어?”두 사람은 옥신각신 싸웠다. 유남우도 가서 유명훈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지금 사촌 형 소문이 되게 안 좋아요. 당분간 쉬게 하는 건 어떨까요?”이건 유성혁을 해임하라는 뜻이다.유성혁은 모처럼 본사로 돌아왔는데 또 나가라 하니 당연히 그러고 싶지 않을 것이다.“장난해?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내가 회사까지 그만둬야 해?”유남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 회사의 고객은 지금 형의 일을 알고 매우 큰 불만을 품고 있어. 더는 형이랑 협력하기를 원치 않는다고.”유성혁은 할 말이 없었다.유명훈도 지금은 유성혁의 편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네가 이런 일을 저질러 우리 유씨 가문의 체면을 구겼으니, 확실히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최현아는 이 결정이 달갑지 않았다. “할아버님, 그냥 이렇게 처리하실 겁니까? 이 사람이 이렇게 파렴치한 짓을 했는데요? 전 제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죠?”며칠 전까지 해도 남편이 자기한테 얼마나 잘해줬다고 자랑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유명훈은 신경 씨지 않았다. “현아야, 남자가 이러는 것은 정상이야. 너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 하지만 이 일은 확실히 성혁이가 잘못했어. 성혁아, 빨리 현아한테 사과해.”유성혁은 즉시 사과했다.“현아야 미안해, 정말 억울해. 맹세코 난 아무 짓도 안 했어.”“그럼 집에 있는 그 돈은 뭔데?”최현아는 쉽게 봐주고 싶지 않았다.돈 얘기를 꺼내자 유성혁의 안색이 나빠졌다. “그건 진
부잣집에는 일이 많다. 유남준 큰아버지 댁에는 유성혁 외에 아들이 하나 더 있다. 다만 그들은 당분간 호산 그룹의 해외 지사에 있다.전에 유남준의 좋은 수단 덕분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아버지와 큰아들이 그렇게 쉽게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요즘 박민정은 호산 그룹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유남준의 큰아버지가 돌아올 방법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도우미 몇 명이 박민정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박민정이 떠나자 또 박민정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도련님을 정말 좋아하나 봐. 매일 제일 먼저 와서 큰 도련님을 돌보고 제일 마지막으로 돌아가요.”“비주얼을 보나 봐요. 큰 도련님이 바보가 됐다 하지만 그래도 잘생겼잖아요.”“...”박민정은 보청기를 끼고 있어서 이들의 속삭임을 듣지 못했다. 들었으면 아마 크게 한바탕 웃었을 것이다.다들 허튼 생각만 하고 있었다. 박민정은 원래 유성혁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도우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알아차렸다. 지금 유성혁 쪽은 난리가 났다. 유성혁이 그 1000억을 돌려받지 못하면 최현아는 그와 이혼하겠다고 했다.유성혁은 최현아를 달랬다. 박민정이 돌아온 것을 알고 바로 박민정을 찾아가 돈을 받으려고 했다. 그녀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린다면 그는 더는 봐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박민정은 돌아오자마자 고영란을 찾아가 꽃꽂이를 같이했다.고영란은 지금 그녀한테 엄청나게 잘해준다. 무슨 일이든 다 직접 가르쳐준다. “사모님, 유성혁이 왔어요. 민정 씨를 찾겠다고 말이에요.”“민정이는 왜?”고영란이 의아해했다.도우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박민정이 말했다. “최현아 일 때문이 아닐까요?”고영란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여 도우미에게 말했다. “그 사람한테 말해, 내가 꺼지라고 했다고.”“네.”도우미는 몸을 돌려 떠났다.유성혁은 그렇게 큰코다쳤다. 그는 달갑지 않아서 외진 구석을 지키며 박민정이 나오면 골탕 먹여줄 생각이었다.그는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그를
박민정은 멍해졌다. 온 몇몇 사람은 그녀의 보디가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보디가드들도 금방 나와서 상황파악이 안 되었다. 유성혁을 때린 사람들 가운데 우두머리는 박민정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사모님, 놀라셨죠?”그가 자기보고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박민정은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남준 씨 사람들이에요?”“네.”말을 마치고 그들은 마대에 든 유성혁을 들고 떠났다.박민정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유 대표님한테로 갑니다.”박민정도 마침 한가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가요.”이 말을 듣고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박민정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괜찮아요, 전 남준 씨 보러 간 거로 치죠. 남준 씨도 저보고 매일 가도 된다고 했어요.”박민정의 말을 듣고서야 그들은 겨우 승낙했다.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인지 그들은 뒷문으로 들어가고 박민정은 정문으로 들어갔다.30분 후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유성혁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누가 감히 날 때려?”그는 머리를 만지며 주위를 살폈는데 가장 먼저 멀지 않은 곳에서 먹고 있는 박민정이 보였다.“너냐? 이 망할 년아, 감히 나를 때려?”유성혁은 일어나 박민정을 향해 돌진하려고 했다.하지만 박민정 앞에 가기도 전에 짙은 색 슈트를 입은 몇몇 남자들이 그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냈다.그는 양옆을 보고 나서 여기에 보디가드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성혁은 순간 무언가를 깨닫고 겁이 났다.“민정아, 뭐 하려는 거야?”박민정은 그가 돌변하는 것이 너무 웃겼다.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저는 그냥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방금 저를 때리려고 하지 않았어요?”유성혁은 박민정이 사람까지 불러올 줄은 몰랐다. “함부로 굴지 마. 난 유남준의 사촌 형이야. 유씨 가문 사람들이 이 일을 알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박민정은 아무 반응 없이 묵묵히 듣고 있었다.유성혁은 죽는 게 무서워서 말했다. “1000억도 필요 없어, 너 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
김인우는 유남준의 마지막 한마디까지 다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그러면 지금 하랑 씨가 형수님이랑 같이 있다는 거지?”“응.”김인우가 왠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 같아 유남준은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결혼 전에는 아무 여자나 끼고 놀아도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결혼도 했고 아이까지 있는 마당에 좀 조심해야 하지 않겠어?”김인우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황당하다는 듯이 그에게 답했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버릇 고친지가 언젠데, 예전의 내가 아니야.”“응, 그러면 다행이고.”“그러면 지금 하랑 씨는 병원에 있는 거야?”“응.”유남준은 대답하자마자 전화를 끊었는데 보아하니 오늘에도 독수공방해야 할 것 같았다.김인우는 그길로 빠르게 조하랑 보러 병원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가는 길에 방금 유남준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설마 하랑 씨가 오해한 건가?’그러다가 눈이 번쩍 뜨이더니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자기 머리를 퍽퍽 내리쳤다.“이 멍청한 놈, 그때 통화하는 걸 분명 옆에서 다 들었던 거야!”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이지원의 영상을 자기한테 보내라고 했다.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조하랑이 막 잠들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누구세요?”박민정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간호사인가? 내가 가볼게.”“응.”박민정이 슬리퍼를 신고 문어구에 다가가 문을 열어보니 눈앞에 김인우가 서 있었다.“형수님, 하랑 씨 여기에 있나요?”김인우는 다급하게 물었다.박민정은 그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살짝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제가 들어가도 될까요?”그러나 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조하랑은 김인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다가와 차갑게 말했다.“아니요. 민정아, 너는 일단 먼저 자. 내가 나가서 말할게.”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를 한번 쏘아보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갔고 김인우도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하랑 씨, 진짜 오해예요.”그러나 조랑
김인우는 집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조하랑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식은땀이 맺힌 채로 급히 박예찬과 김훈에게 달려가 물었다.하지만 김훈은 일부러 모른 척하며 그가 이번 기회에 정신 좀 차리길 바랐다.“나도 몰라. 하랑이가 방에 없다고? 화장실 간 거 아니야? 화장실은 찾아봤어?” 김훈이 일부러 태연하게 말하자 김인우는 인상을 찌푸렸다.“거기도 없어요.”“그거 참 이상하네.”김훈은 걱정스러운 척하며 말했다.“그럼 멀뚱멀뚱 서서 뭐 하는 거냐? 어서 찾아봐야지. 지금 임신 중이잖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만두지 않겠다.”박예찬도 거들었다.“오늘 아줌마가 좀 안 좋아 보이긴 했어요. 혹시 가출하신 거 아니에요?”그 말에 김인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는 곧장 조하랑을 찾아 나섰다.한편, 조하랑은 이미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박민정이 곁을 지키고 있었고 둘은 정수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병실로 들어가 조용히 대화를 이어갔다.“하랑아, 너 그냥 이렇게 온 거야? 가족한테는 말 안 했어?”조하랑은 고개를 저었다.“응. 그냥 조용히 나왔어. 지금은 누구 얼굴도 보기 싫어.”“그래도 집에 한 통은 전화해. 안 그러면 걱정하실 텐데.”박민정이 말했다.“괜찮아. 다들 내가 자는 줄 알 거야. 내일 아침에 슬쩍 들어가면 돼.”조하랑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임신 후로 김인우와는 방도 따로 쓰고 있었기에 자신이 방에 없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알겠어.”박민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조심스레 물었다.“그런데, 하랑아. 너 아까 말한 그 여자, 혹시 누군지 짐작은 가?”조하랑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난 김인우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내가 남준 씨한테 한 번 물어볼게. 혹시 오해일 수도 있으니까.”“응, 좋아.”조하랑도 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건 원치 않았다.박민정은 조하랑 앞에서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유남준도 막
조하랑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걱정 마, 민정아. 나 그냥 좀 화가 났을 뿐이야. 아직은 냉정해.”그리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기분이 나빠서 그래. 내가 지금 그 사람 아이까지 품고 있는데 저렇게 행동하면 기분이 어떻게 안 상하겠어.”박민정은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잠시 후, 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민정아, 나 네가 있는 곳으로 가도 될까?”“당연하지. 내가 데리러 갈게.”박민정은 임신한 친구의 감정이 요동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걱정된 마음에 바로 나섰다.하지만 조하랑은 코끝이 붉어진 채 대답했다.“아냐, 이미 차 탔어. 지금 가는 중이야.”그녀는 더 이상 그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김인우가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둘 수가 없었다.박민정은 그녀가 이렇게 단호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던 지라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알겠어. 그럼 내가 문 앞에서 기다릴게.”“응, 고마워.”...한편, 김인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길가에 있는 꽃집을 발견했다.그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는 직접 차에서 내려갔다. 잠시 후, 그는 품에 형형색색의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돌아왔다.차에 다시 올라타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가자. 좀 빨리 가 줘.”예전에도 김인우는 여자를 위해 꽃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그건 대부분 비서가 대충 주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꽃다발은 그가 직접 고르고 색을 맞춰 정성껏 고른 것이었다.운전기사도 그의 얼굴에서 어쩔 수 없이 번지는 미소를 보고는 감탄하듯 말했다.“사모님은 참 복도 많으시네요. 이사님께서 뭐든 다 챙기시니.”김인우는 입꼬리를 높이 올리며 웃었다.“당연하지. 내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사람이잖아. 그 정도는 해야지. 사실 하랑 씨가 임신하지 않았더라도 난 여전히...”하지만 마지막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그는 조하랑을 보기 위해 한 걸
조하랑은 요즘 집에서 태교에만 전념하고 있었다.그녀는 요 며칠 김인우가 어쩐 일인지 늦게야 귀가하는 게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어디를 다녀오는 건지 궁금해져 하녀에게 슬쩍 물었지만 하녀는 말끝을 흐릴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그걸 본 김훈은 손자를 거론하며 말했다.“하랑아, 인우는 네 남편이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거냐?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 딱 잡아봐야 정신 차리지.”그리고는 단단히 이죽였다.“만약 귀찮다느니, 피하려 든다느니 하면 내게 말해. 그놈 등짝 몇 대는 내가 책임진다.”조하랑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집착하듯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임신한 이후로는 자꾸만 불안해졌다.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가 밖에서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예상치 못한 위험에 휘말리진 않을까 하고.아무래도 몸 안에 김인우의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도 따라온 모양이었다.“...알겠어요.”조하랑은 김훈이 자신 편을 들어준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한 듯 더는 망설이지 않고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김인우는 아직 클럽을 떠나지도 않은 상태였다.“하랑 씨, 무슨 일이에요?”전화가 오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다정하게 받았다.“지금 어디예요?”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김인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녀가 괜한 오해를 할까 싶어 거짓말을 꺼냈다.“아, 지금? 돌아가는 길이죠.”돌아가는 길이라고?그런데 조하랑의 귀에는 전화기 너머로 분명 남녀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누가 들어도 외부 소음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정말이에요?”“당연하죠. 내가 왜 하랑 씨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김인우는 그녀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필 그때, 뒤편에서 이지원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오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오빠?그 말을 듣자마자 김인우는 재빨리 경호원에게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