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박민정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빨리 좋아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해.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되잖아.”조하랑은 아이를 낳는다는 말에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아니야. 난 다른 사람의 아이를 놀리는 게 재밌는 거 같아.”그녀는 아이를 낳는 고통을 참을 수 없었고 아이를 돌볼 인내심도 없었다.“민정이 네가 몰라서 그래. 원래 남의 집 아이가 더 귀여운 법이야. 아이를 돌볼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조하랑은 민수아를 비롯한 그녀들보다 아이를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전에 해외에 있을 때, 조하랑은 방학하면 박민정을 도와 아이를 돌봤었다. 한두 살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그야말로 힘들었다.그녀의 말을 듣고 박민정은 뭐라 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박민정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윤소현과 유남우의 결혼식은 꽤 성대하게 준비해서 많은 명문 귀족들이 참석했다.방성원도 박민정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형수님, 오랜만이에요.”박민정은 그의 점잖은 얼굴을 보고 자기 집에 있는 설인하가 생각났다.정말 사람이 겉모습만 봐서는 안 된가고 생각했다. 설인하가 말하는 방성원은 참 악랄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오랜만이네요. 도련님.”박민정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자기의 아내와 아이가 모두 박민정과 같이 있는 것을 아는 방성원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박민정한테 물은 것이지만 사실은 설인하와 방은정이 궁금한 것이었다.박민정은 그의 뜻을 알아챘다.“잘 지내고 있어요.”방성원이 또 무엇을 말하려 했는데 김인우가 걸어왔다. “성원아. 술 마시러 가자.”그는 또 조하랑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쪽은 왜 왔어요?”“왜요? 그쪽은 올 수 있는데 내가 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요? 정말 웃기네요.”조하랑이 쏘아붙였다.김인우는 그녀의 말에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저 언짢은 표정으로 방성원과 부잣집 도련님들을 찾아 술을 마시러 갔다.그들이 떠나자 하객도 점점 많아졌다.조하랑
“뭐라고?”박민정은 방금 자기 아들을 해치겠다고 협박하는 여자에게 다가갔다.여자는 저도 모르게 박민정의 아우라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는데 재수 없는 말투는 여전하였다. “내 말은 너보고 처신 똑바로 하고 다니라고.”박민정은 주먹을 움켜쥐었다.눈앞의 여자가 누군지 박민정은 안다. 유남준의 먼 친척인데 집에 작은 회사를 차리고 있다.유남준이 이렇게 됐다고 이런 사람도 감히 나와서 자신을 괴롭히고 자기 아들까지 위협할 줄은 정말 몰랐다.그녀가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주변 사람을 건드리는 것이다. “왜? 겁먹었어?”여자는 박민정이 자기를 빤히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박민정이 자기를 무서워하는 줄 알았다.박민정은 간신히 화를 참았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두었다.“방금 한 말을 후회하지 마.”“후회할 게 뭐 있어? 내가 겁먹을 거로 생각하지 마.”그러자 박민정 곁에 있던 조하랑이 그 여자를 보며 비아냥거렸다. “그래? 겁주는 게 아니라 너에게 한 가지 알려줄 것이 있어. 우리 민정이 두 아들 중 한 명을 김훈 어르신께서 증손자로 받아들였다. 방금 네가 한 말은 내가 어르신께 곧이곧대로 말할 거야.”김훈 어르신의 얘기를 듣고 여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진주시에서 살아서 이 사실을 아는 다른 한 여자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런 일이 있긴 해. 어르신께서 그 아이를 되게 이뻐하셔.”여자는 속으로는 무서웠지만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그게 뭐 어때서? 증손자로 여기는 거지 친손자도 아니잖아.”“그럼 김씨 가문의 미래 며느리인 나도 안 무서워?”조하랑도 이 신분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여자들이 너무 심하게 괴롭혀서 하는 수가 없었다.여자는 유씨 가문에 별로 와본 적이 없고 조하랑이 누군지도 몰랐다. 이 말을 듣고 옆 사람을 쳐다보았는데 사실인 거로 확인되자 여자는 순간 풀이 죽었다.“됐어. 그만하자. 입만 열면
“새언니, 둘째 사촌 오빠 곧 결혼한다고 들어서 결혼식에 참석하러 왔어요. 새언니한테 감사 인사도 드릴 겸으로요.”추경은이 웃으며 말했다.“감사 인사요?”박민정은 그녀가 무슨 꿍꿍이인지 몰랐다.“맞아요, 고마워요. 새언니가 나에게 오빠를 양보하지 않은 덕분에 셋째 도련님을 만났으니까요.”추경은은 말하면서 손을 내밀어 박민정과 조하랑에게 자기의 비둘기 알보다 큰 보석 반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셋째 도련님께서 주신 건에요. 예쁘죠?”박민정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옆에 있던 조하랑은 더욱 어이없어했다. 추경은을 미친 사람으로 보았다. 물건 양보하는 건 들어봤는데 남편 양보하는 건 난생처음 듣는다. 정말 생각하는 게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예쁘네요. 축하해요.”박민정은 그녀가 자랑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축하해줬다.박민정은 고영란이 자신의 친조카를 불구덩이에 밀어 넣을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지난번 고영란이 말했다시피 셋째 도련님은 절대 치정 남이 아니다.추경은은 박민정이 자기를 조금도 자신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재미없어했다.그녀는 박민정이 자기가 더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을 보고 화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새언니, 사실 너그러운 척할 필요 없어요. 다 여자끼리. 저는 지금 남준 오빠가 바보로 되고 눈도 안 보이게 돼서 언니가 얼마나 힘들지 알아요.”박민정은 어이기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추경은은 말문이 막혔다.“저는 그냥 새언니가 무슨 일이든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털어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임신 중인데 남준 오빠가 그렇게 됐으니 힘들겠죠. 그걸 털어놓아야지 참으면 병이 생길 것 같아요.”그녀는 겉으로 박민정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박민정이 화나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만족시키고 싶었다. 박민정은 당연히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 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요. 힘든 거 없어요. 매일 잘 먹고 잘살고 있으니까. 참, 우리 시어
조하랑이 한 말을 듣고 박민정은 깨달았다. 전에 고영란이 왜 추경은이 고씨 가문으로 가는 것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행운을 빌어야겠네.”박민정은 먼 곳을 바라보았다.추경은은 셋째 도련님을 찾지 못하고 여자들 사이에서 자랑하고 있었다.그 여자 중 셋째 도련님의 인품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몰래 그녀를 비웃었는데 모르는 사람은 정말 그녀를 부러워했다.그중에는 추경은이 자랑하는 꼴을 못 봐주겠어서 셋째 도련님은 누구나 사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추경은은 개의치 않았다. “내가 그 여자들과 같은 줄 알아? 나는 그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젊고 예뻐.”박민정은 이 말을 듣고서야 추경은도 셋째 도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그녀는 무시하는 쪽을 선택했다. 심지어 자신이 셋째 도련님의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여자들보다 낫다고 느꼈다.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비참하게 죽는다.이렇게 보면 앞으로 추경은이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하는 수 없다. 모두 그녀가 자초한 일이니까.그녀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유씨 가문의 룰에 따르면 먼저 술을 따르고 그다음에 결혼식을 한다.윤소현과 유남우는 어른들에게 술을 올리기 시작했다.이때 유씨 가문에서 누군가가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 “남준 형은 왜 안 왔어요? 형이 안 왔는데 술을 올리는 것은 격식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유씨 가문의 남자들은 누구든지 다 그룹 안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한다. 예전에는 유남준을 상대로 어떻게 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그가 바보로 되고 눈도 멀었으니 한바탕 망신을 주고 싶었다. 그가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임을 알아들은 유남우는 집사에게 말했다. “가서 형 모셔와.”집사는 어리둥절해졌다.옆에 있던 고영란도 표정이 안 좋았다. “남준이는 아직 아파서 나오기 불편할 거야.”“뭐가 불편해요? 남준이는 바보가 되었지만 유씨 가문 사람이고 남우의 사
같은 여자로서 윤소현은 홍주영이 유남준에 대한 감정이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윤소현이 그녀를 까발리지 않은 것은 그녀는 생긴 것도 별로고 꾸밀 줄도 모른다. 여성스러운 느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빽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여자는 자기의 상대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유남우가 그녀를 좋아할 리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했다.이 말을 들은 홍주영은 윤소현에게 말했다. “업무상의 일입니다.”“업무와 관련된 일이라면 제가 더 알아야 하겠죠. 우리 정씨 가문은 호산 그룹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는 거, 아시죠?”윤소현은 그녀를 봐주지 않았다.그녀는 말할 때, 계속 정수미가 어디 있는지 찾았다. 정수미가 와서 자신의 결혼식을 망치게 하려는 이 못된 사람을 혼내 주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말이다. 홍주영은 윤소현이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유남우를 쳐다보았다.“도련님.”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쏠렸다. 사람들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했다.유남우는 홍주영이 공사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분명히 남이 들으면 안 되는 무슨 일이 생긴 거로 생각했다. “소현아, 금방 다녀올게.”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유남우가 가려 하자 윤소현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의 팔을 덥석 껴안았다.“안 돼요. 아무 데도 못 가요. 우린 곧 어른들께 술을 올려야 해요. 남우 씨가 가면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요?”윤소현은 아직 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냥 지금 유남우와 홍주영이 가버리면 자신의 체면이 깎일 것으로 생각했다.정수미도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고 걸어왔다.“무슨 일이야?”그러자 윤소현이 바로 일렀다. “남우 씨 비서라는 사람이 어떻게 된 건지 남우 씨와 따로 나가서 할 얘기가 있다고 하는 거예요. 저한테는 말을 하지 않고요. 이미 시간이 늦었고 이따가 어른들께 술을 대접해야 하는데 때를 놓치면 안 좋을 거로 생각했어요.”정수미는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
결혼식이 시작되었다.보디가드 한 명이 유석진의 곁으로 가서 목소리를 낮추어 무슨 말을 했다. 그러자 유석진은 흥분해서 물었다.“정말?”“확실합니다.”보디가드가 말했다.주름이 가득한 유석진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쯧쯧. 유남우가 유남준과 같은 독한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의외네.”“지금 어르신께 말씀드릴까요?”보디가드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유석진은 손사래를 쳤다. “급할 것 없어. 오늘은 유남우의 결혼식 날이잖아. 그래도 내가 엄연히 큰아버지인데 그렇게까지 나쁘게 굴 수는 없지. 하하하.”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유남우를 어떻게 처리할지 속으로 생각했다.방금 보디가드가 알려준 건 IM 그룹이 유남우와 윤소현이 결혼하는 틈을 타 호산 그룹의 핵심 프로젝트를 많이 인수했다는 소식이었다.게다가 호산 그룹의 오래된 고객들도 파갔다. 그 고객들과 프로젝트들은 호산 그룹 주주들의 수익과 엄밀히 관련되어 있다. 유남우가 지금 정수미의 빽이 있더라 해도 호산 그룹에서의 자리를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유석진은 호산 그룹을 인수한 후 큰아들을 돌아오게 할 생각이었다.그때가 되면 호산 그룹은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생각은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유남준이 한 짓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결혼식 현장에서는 지금 윤소현과 유남우가 서로를 알고 사랑하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틀었다.그런데 갑자기 스크린에 양도된 프로젝트와 빼앗기는 계약서의 사진으로 변했다. 그리고 호산 그룹의 급락한 주식을 캡처한 사진도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보지만 호산 그룹의 주주는 한눈에 알아보았다.“이건 우리 회사의 핵심 프로젝트 아니야? 어떻게 된 일이야?”“장난해? 지금 우리 프로젝트 다 뺏긴 거야?”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박민정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그녀의 휴대폰에 지금 메시지가 한가득 와있었다. 열어보니 회사 단톡방이었다.[우리 허산 그룹 망하는 거 아니야? 왜 갑자기 많은 협력업체가 투자를 철회한 거야?][몰라요. 오늘이 대
시종일관 덤덤한 모습으로 유남우는 오히려 애간장이 타들어 가고 있는 홍주영을 위로했다.“괜찮아. 좀 쉬고 있어.”유남우의 비서로서 이제야 소식을 알게 된 홍주영은 쉴 수도 쉬어서도 안 되는 입장이었다.홍주영에 대한 유남우의 마음이 각별한 것으로 보이자 윤소현은 더더욱 언짢아했다.“남우 씨, 지금 이 상황에서 홍 비서 편드는 거예요? 홍 비서만 제때 얘기하고 보고했더라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리는 없었잖아요.”그 말을 듣고서 유남우는 차갑기 그지없는 두 눈으로 윤소현을 바라보았다.순간 윤소현은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파르르 떨게 되었다.다정하고 부드럽기 짝이 없는 유남우이지만, 그러한 눈빛을 마주하게 된 순간 숨통이 턱 막히고 말았다.눈빛 하나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면, 윤소현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고영란은 직원에게 바로 동영상부터 끄라고 했다.이윽고 고영란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여러분, 잠깐 소란이 있었던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하지만 하객 중 회사 주주들은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리 회사 프로젝트들 아닙니까? 근데 왜 다 빼앗기게 된 거죠? 이미 알고 있었던 일입니까?”“우리 주주들 바보 아니에요. 오늘 이 일에 대해서 보다 분명한 답변 부탁드립니다.”“남준이 자리에 남우를 몰래 앉혀 놓고 우리랑 어떤 약속을 했었는지 잊은 거예요? 남우가 남준이보다 잘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거죠?”“회사 수익이 점점 바닥을 치고 있는 거 아시죠? 이게 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자신의 이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이라 주주들은 꺼리는 거 하나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연이어 날아오는 펙트 폭격에 고영란은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어느덧 후회하는 감정도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남준이만 대표 자리에 있었더라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인데...’사태가 이 지경으로 번지자 유석진은 마음속으로 폭죽을 터뜨
주주들이 한사코 물고 늘어지자 보다 못한 정수미도 앞으로 나서게 되었다.“주주 여러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씨 가문이 주주로 들어온 이상 절대 여러분을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을 자신이 있거든요.”유석진은 말뿐이지만, 정수미는 정말로 호산 그룹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서울에서 악랄하고 독하기도 명성이 자자한 정수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따라서 조금 전까지 언성을 높이고 있던 주주들은 동시에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고영란은 상황이 어느 정도 완화되자 결혼식을 계속 진행했다.오늘과 같은 광경은 인생에서 처음이라 함미현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동하는 박예찬을 보자마자 바로 달려갔다.“동하야.”뒤늦게 정신을 차리게 된 함미현은 동하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아이를 찾아 나섰다.한편, 동하는 박예찬을 박윤우로 착각하고 쪼르르 달려와 말을 걸었다.“윤우 형, 형이 여긴 어쩐 일이야?”박예찬은 덤덤한 모습으로 동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난 윤우가 아니라 윤우의 쌍둥이 형인 박예찬이라고 해.”순간 동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박윤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나 박윤우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으니 말이다.어린아이에게는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동하를 찾아 나선 함미현은 곧바로 두 아이를 보게 되었다.함미현 역시 박예찬을 보자마자 박윤우인 줄 알았다.‘아닌데... 윤우는 오늘 화동으로 서고 있잖아...’그렇게 모자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박민정과 조하랑이 다가왔다.“동하야, 동하가 잘못 본 거야. 얘는 윤우가 아니라 예찬이 형이야.”“예찬이는 윤우랑 쌍둥이라 똑같이 생긴 거야.”그 말을 듣고서 동하는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몰랐는지 어슴푸레한 두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함미현은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박민정을 바라보고 있었다.두 아이 모두 멋지고 귀엽고 영특하니 말이다.박민정은 박예찬에게 잠깐 동하랑 같이 놀아주라고 했다.이윽고 함미현 쪽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미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