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할아버지, 제가 알기로는 사흘 안에 위에서 공장을 철거하고 지하철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올 텐데 그러면 땅값이 올라 윤 사장님이 제시한 가격의 최소 3배는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약 할아버지께서 그 땅을 개발하면 그 가치는 몇 배는 더 뛰겠죠.”박예찬은 여유롭게 말을 이어갔고 순간 놀란 김훈이 얼른 손짓하자 부하가 귀를 들이댔다.“가서 확인해 봐.”“네.”김훈은 공장 철거 지시가 내려올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고 윤석후가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수작을 부린다는 사실에만 신경을 썼다.윤석후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몇 살 안 된 아이를 바라보며 충격에 빠졌다.저 아이가 이런 내부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지?“아가야,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걸 내가 모를 리가 있어?”윤석후가 허허 웃으며 말하자 한수민도 남편이 아이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고 얼른 거들었다.“그래 꼬맹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그녀는 결국 박예찬도 어른을 무서워하는 어린아이라는 생각에 조용히 박예찬을 노려보았다.그런데 박예찬은 그녀의 체면 따위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증조할아버지, 저 사람 맘에 안 드는데 나가라고 하면 안 돼요?”한수민과 윤석후는 순식간에 당황했다.3분 후 두 사람은 결국 밖으로 내보내졌다.이를 지켜보던 조하랑은 무척 통쾌해했고, 김훈은 박예찬이 두 사람을 싫어해서 일부러 공장을 철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한 거라 생각하며 물었다.“예찬아, 왜 최 여사님이 싫어?”박예찬이 대답하기도 전에 김훈이 시켰던 부하 직원이 서둘러 달려왔다.“회장님, 제가 방금 나가서 알아본 결과 작은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대롭니다. 윤석후는 진작 정보를 매수해 김씨 가문을 이용하려 했습니다.”헐레벌떡 뛰어와 숨을 헐떡이며 말하는 부하 직원은 탄복하는 눈빛으로 박예찬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저렇게 어린아이가 위에서 내려온 소식을 그리 똑똑하게 알 수 있단 말인가.사실 김씨 가문의 힘으로 이 정보를 입수하는 건 아주 쉬웠지만 워
박예찬은 단어선택에 무척 신중을 기했다. 외할머니라고 직접 말하지 않고 단지 혈연적인 할머니라고만 말했다.박민정은 아이가 인터넷에서 한수민을 안 게 틀림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 박예찬이 다시 말했다.“엄마, 할머니가 엄마를 나쁘게 대하면 난 할머니로 인정 못 해요. 감히 엄마를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지켜줄게요.”영상 반대편에서 진지함이 가득한 예찬이를 보며 박민정은 마음속으로 안도감을 느꼈다.“걱정하지 마, 엄마는 엄마 스스로 지킬 수 있어. 다른 사람한테 괴롭힘 안 당해.”박민정이 다시 당부했다.“요즘은 하랑 이모 말 잘 듣고 절대 이모 성가시게 굴지 마.”조하랑은 옆에서 이 말을 들으며 얼굴을 붉혔다.사실 예찬이를 성가시게 구는 건 자신이었고, 예찬이가 없었다면 어른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몰랐을 것이다.심지어 아빠도 예찬이 때문에 그녀에게 잘해주고 있었다.“걱정 마, 예찬이는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러워.”조하랑이 다른 말을 하려던 찰나 누군가 방 문을 두드렸고 그녀는 예찬에게 전화를 끊으라고 말해야 했다.걸어가 문을 열자 병원에서 막 돌아온 듯 먼지가 쌓인 흰 가운을 입은 김인우가 문 앞에 서 있었다.“무슨 일이죠?”그가 옷도 안 갈아입고 온 것을 본 조하랑은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싶었는데 김인우가 이렇게 말했다.“할아버지가 웨딩 사진 찍으러 가자고 하셨어요.”“우리 이제 겨우 약혼했는데 이렇게 빨리 웨딩 사진을 찍어요?”조하랑은 전혀 가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이 약혼을 하고 결혼까지 하려면 반년은 족히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웨딩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 데 보름 이상 걸릴 테니 할아버지가 설 전에 하는 게 좋다고 하셨어요.”김인우도 짜증스러운 눈빛이 가득했다.그는 조하랑의 앳된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가 곧 자신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대체 할아버지는 뭘 보고 그러시는 건지.새해를 보름 남짓 앞둔
유지훈도 밖에 서서 호화로운 호송 행렬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진주 국제 유치원에서 자신보다 더 많은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경호원이 차 문을 열고 박예찬이 내려오자 유지훈은 물론 다른 아이들도 충격을 받았다.박예찬의 아버지를 본 적 없는 아이들은 그가 박예찬의 아버지라고 생각했다.“박예찬, 차 부르는 데 얼마나 썼어?” 유지훈은 믿지 못하며 거만하게 물었고 옆에서 조동민은 하품을 했다.“너 아직 모르지? 예찬이 우리 이모 따라 김씨 가문으로 가서 김씨 가문의 첫 증손자가 될 예정이야.”사실 박예찬은 김훈에게 자신이 증손자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김훈은 김인우와 마찬가지로 나사 하나가 빠졌는지 그를 김씨 가문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며 며칠 뒤엔 성까지 바꾸러 데려가겠다고 말했다.심지어 김훈은 그들의 관계를 세상에 알리는 보도자료까지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박예찬이 겨우 어르신을 설득해 기사 내는 걸 말렸다.인자한 노인을 속이고 싶지 않았던 아이는 나중에 꼭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래도 안 되면 친자 확인을 할 생각이었다.그리하여 조씨 가문 사람들과 김씨 가문과 가까운 일부 사람들만 김예찬이 김훈의 증손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김씨 가문의 증손자라고?”유지훈은 믿을 수 없었다.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참지 못하고 예찬에게 속삭였다.“예찬아, 김훈 할아버지 정말 네 증조할아버지야?”유지훈은 예전에 유명훈이 김씨 가문에 자랑하러 자주 데려갔기 때문에 김훈을 잘 알고 있었다.“지난번 유씨 가문에서 약혼식 할 때 나도 따라갔던 거 잊었어?”박예찬은 대답 대신 이렇게 되물었고 유지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남우 삼촌과 윤소현이 약혼식을 할 때 박예찬이 실제로 와서 김훈 할아버지 옆에 섰던 것을 떠올렸다.“나한테도 안 알려주고, 나빴어.”유지훈은 유난히 창피함을 느꼈다. 김씨 가문도 유씨 가문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큰 가문인데 과거 그는 박예찬 앞에서 온갖 자랑을 다 해댔던 탓에 지금 체
한수민은 의아해하며 서류를 들고 열어보니 변호사가 보낸 고지서였다.거기에는 박형식이 죽기 전에 모든 재산을 박민정에게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박민정은 이제 한수민과 박민호에게 바움의 모든 재산을 자신에게 돌려주길 원했다.한수민이 박형식과 결혼할 때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박정권은 바움 그룹의 모든 수익은 박형식이 소유하고 한수민과는 무관하다는 혼전 계약서를 작성했다.하여 박민정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이 망할 년이 감히 나를 고소했어!”윤소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엄마,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아빠 회사에도 영향을 미칠 거야.”윤소현은 그동안 윤석후가 한수민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체면을 생각해 주었다.하지만 속으로는 한수민을 진심으로 경멸했고, 아예 친엄마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알아, 내가 처리할게.”박민정이 소송에서 승소하면 그녀는 윤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박민호는 소파 한쪽에 앉아 다리를 꼬고 사탕을 먹으며 조용히 듣고 있었다.나약하고 무능한 누나가 감히 엄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보아하니 박민정이 정말 변한 것 같았고 그는 바움의 재건을 기대하고 있었다.“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박민호는 그렇게 말한 후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러 나갔다.통화가 연결되고 그가 칭찬하며 이렇게 말했다.“누나, 우리 손 잡자. 내가 소송에서 이길 수 있게 도와줄게. 그리고 누나가 돈을 돌려받으면 내가 대표하면 되지.”박민정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가 허무맹랑한 꿈을 꾸고 있을 줄은 몰랐다.“지난번에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어? 넌 바움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어. 일거리가 필요하면 청소부 일자리나 마련해 줄게.”전화기 너머로 박민정의 차가운 목소리가 박민호의 귓가에 들려왔고 그 목소리는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김인우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박민정의 뺨을 때려주고 싶었다.“고작 여자가 무슨 바움을 책
이 말을 들은 은정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박민정을 안은 채 등을 살살 토닥거렸다.박민정은 마음의 상처를 꾹 참았다.“알고 보니 저와 아빠를 계속 속이고 있었어요.”과거 박민정은 자신을 낳느라 엄마가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고 아버지도 자주 말씀하셨다.“네 엄마는 젊었을 때 무대 위에서 유난히 예쁘고 성격도 부드러워서 모든 남자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던 여자였는데 내가 발목을 잡았네.”아버지는 죽는 것마저 한수민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여자는 처음부터 아빠를 배신했던 것이다.은정숙 역시 한수민이 그런 사람일 줄은 몰랐다. 역시 세상은 악한 사람이 꼭 벌을 받는 건 아닌 것 같았다.“민정아, 그런 사람은 슬퍼할 가치도 없어.”“네.”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저 여자가 친엄마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박민정은 오래전 친자 확인을 위해 병원에 갔고 그녀는 한수민의 딸이 맞았다.그런데 왜 똑같은 딸인데도 한수민은 자신에게 그토록 잔혹하게 대했을까.아마도 평생 답을 얻지 못할 의문이겠지.박민정은 사람을 시켜 한수민의 과거를 계속 조사했고, 이제 윤씨 가문의 모든 것을 되찾을 생각이었다.그런데 어느 틈엔가 박윤우가 문 앞에 찾아왔다.“엄마, 할머니, 왜 그러세요?”박민정은 서둘러 은정숙의 품에서 벗어나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며 말했다.“괜찮아, 할머니랑 얘기 중이었어.”“아.” 박윤우는 모른 척했다.“그럼 아래층에 내려가서 얘기하는 게 어때요? 손님이 왔어요.”손님?이 시간에 누가?박민정은 의아했다.“누구?”“아저씨랑 똑같은 사람이요.”유남준이랑 똑같다면 유남우?박민정은 은정숙이 눕는 걸 도와준 뒤 박윤우에게 자신이 내려갈 테니 위층에 있으라고 했다.거실에서 유남우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앉아 있었다.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니 박민정의 다소곳한 모습이 부드러운 눈동자에 비쳤다.“민정아.”박윤우가 보이지 않자 유남우는
#유남우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갑자기 바깥 문이 열리고 유남준이 문 앞에 나타났다.“뭘 숨겨?”그는 유남우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왔고 고개를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는 유남우의 눈가에 냉기가 스쳤다.“형, 왔어? 조금 전에 형은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일하는 건지 형수님께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유남준의 이마가 살짝 찡그려졌다.“할 말 있으면 밖으로 나와서 해.”그제야 유남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민정을 슬쩍 바라본 뒤 유남준을 따라 나갔다.마당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똑같이 생긴 두 남자가 함께 서 있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대체 뭐 하자는 거야?”유남준이 물었다.박민정이 자리에 없자 유남우도 연기를 그만두고 태연하게 말했다.“내가 말하지 않았어? 내 것을 되찾겠다고. 형, 어렸을 때부터 형은 항상 좋은 건 다 가져갔어. 이제 민정이까지 빼앗으려는 건 불공평하지 않아?”유남준은 가볍게 웃으며 조롱했다.“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너 자신이 한 짓을 생각해 보지 그래?”유남우는 자신이 그의 이름을 사칭했다는 걸 언급한다는 걸 알고 주저 없이 맞받아쳤다.“그러는 형도 지금 눈 안 보이는 거 다 자업자득이야.”두 사람의 칼끝이 서로를 겨냥한 찰나 유남우의 전화벨이 울렸다.그는 발신자가 윤소현이라는 걸 확인하고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차에 앉은 그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무슨 일이야?”“남우 씨, 지금 어디 있어요? 사무실에 찾으러 왔는데 안 보여서요.”유남우의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있는 윤소현은 예전에 화려했던 옷차림과 달리 꽁꽁 싸맨 채 눈은 다소 겁에 질려 있었다.옆에 있던 비서 홍주영도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조금 의아했다.“무슨 일 있어?” 유남우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나...” 윤소현은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유남우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찾아온 것이었다.“별일 없으면 전화하지 마.”유남우는 전화를 끊고 짜증스러운 어투로 기사에게
이제 박민호는 당연히 윤석후 윤소현 부녀의 헛소리를 믿지 않았다.“아니, 용돈만 좀 주면 돼, 누나.” 박민호가 웃으며 말했다.“그게 뭐 대수라고.”윤소현은 눈을 흘겼다. 아무리 아빠가 다른 동생이라지만 어떻게 이렇게 무능한 동생이 있을 수 있는지.그녀는 차를 타고 떠나는 길에 박민정을 어떻게 혼낼지 고민하면서 비서에게 물었다.“박민정은 직업이 뭐예요?”앞서 그녀는 비서에게 박민정을 조사하게 했다.“에스토니아에 작은 스튜디오가 있는데 겨우 생계를 꾸려가고 있어요.”비서가 답했다.작은 스튜디오?“그 스튜디오에 손 좀 써요. 운영하지 못하게 해야겠어요.”윤씨 가문의 현재 힘으로 외국 스튜디오 하나 처리하는 것 정도는 쉬웠다.다만 윤소현이 조사한 정보들은 모두 박민정이 대외적으로 공개한 것들이고, 이전에 국내에서 자신을 히트시킨 곡들이 모두 박민정이 만든 곡이라는 사실을 윤소현은 몰랐다.윤석후가 돈이 있다고 해도 박민정의 회사 문을 닫게 할 방법은 없었다.“알겠습니다.”윤소현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사람 몇 명 불러서 신림으로 따라와요.”박민정이 모욕을 당하고도 순결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유남우도 결국 그녀의 순수함 때문에 좋아하는 거잖아?...한편 신림현, 집의 거실.유남준은 반듯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맞은편에 있던 박민정이 그에게 물었다.“갚을 돈 많다면서 차용증은 어디 있어요?”유남준은 유남우가 왔을 때 분명 무슨 말을 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서다희한테 있어. 보고 싶으면 서다희한테 전화해서 가져오라고 할게.”“유남우 씨는 당신이 지분의 30%를 보유하고 있고,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하던데요.”박민정은 덧붙였다.박민정은 빠르게 얘기를 끝내고 싶었다. 그가 또 자신을 속인 거라면 더 이상 함께 지내고 싶지 않았고 유남준도 이를 알고 있었다.“내가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었으면 서다희랑 내가 왜 회사에서 쫓겨났겠어? 민정아, 내 동생 겉으로는 다정해 보여도 속은 알 수 없는 애야. 전에 얘기했잖
박민정은 그의 태도를 보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유남우가 또 뭐라고 했어?” 하지만 유남준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맞춰봐요.” 박민정은 일부러 놀려댔다.유남준은 몸을 숙여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안으며 귀에 대고 천천히 속삭였다.“무슨 말을 하던 날 믿어줘야 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신 널 해치지 않을 거야.”박민정은 의아했다. 다시는?“엄마, 아저씨.”위층에서 박윤우가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잠시 한눈을 판 사이 쓰레기 아빠가 또 엄마를 건드리기 시작했다.박민정은 윤우의 목소리를 듣고 당황한 나머지 유남준을 밀쳐냈다.그녀의 뺨은 불이 붙은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또다시 방해를 받은 유남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박윤우는 내려와 박민정 앞에 다가갔다.“엄마, 나도 안아줘요.”“그래.”박민정이 아이를 안아주자 박윤우는 유남준을 향해 메롱 했지만 아쉽게도 유남준은 박윤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아저씨, 포옹을 원하면 아저씨 엄마한테 가세요.”그 말에 박민정도 웃음이 났고 유남준은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엄마 말고 아내도 안을 수 있다는 거 몰라?”이 말을 들은 박민정이 조용히 그의 손을 꼬집었다.박윤우는 쓰레기 아빠를 몇 번이나 깨물어버리고 싶었다. 뻔뻔하게 나와 엄마를 빼앗으려 하다니.“엄마, 나 오늘 밤에도 나랑 같이 자요, 네?”박민정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그래.”유남준은 짜증이 났다. 어쩐지 어젯밤 박민정의 방으로 가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이대로 가면 줄곧 박민정을 안을 수 없지 않나.“네가 무슨 세 살짜리 어린애야, 아직도 엄마랑 같이 자게?”박예찬이었다면 분명 부끄러워서 박민정과 함께 자지 않겠지만 윤우는 달랐다. 그는 박민정의 팔을 꼭 껴안았다.“난 백 살이 되어도 엄마 아들이니까 엄마랑 잘 거예요. 아저씨 엄마는 어디 있어요? 엄마한테 버림받고 우리 엄마를 귀찮게 하는 거예요?”유남준은 어이가 없었고 박민정은 즐거워하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아저씨는 어른이니까 당연히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