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은은 박민정의 질문에 대해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임산부는 배고프면 안 되는 건가요?”그녀는 어리둥절해하며 사과했다.“죄송해요, 잘 몰랐어요.”박민정은 그녀가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계속 식사를 했다.고영란이 올지, 안 올지는 그녀의 마음이었다.하지만 얼마 전에 진행했던 태아 검사는 결과가 조금 안 좋았다.의사도 규칙적인 식사가 필요하다고 경고했었다. 굶으면 태아 발육이 멈출 수 있으니 말이다.게다가 박민정은 원래도 위가 좋지 않았다.박윤우는 추경은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엄마, 경은 이모 나무라지 마세요.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를 거 아니에요.”그는 추경은을 바라보며 또 말했다.“경은 이모, 혹시 결혼할 사람이 없어요?”추경은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뭐라고?”“서른 넘으셨죠? 엄마보다 더 나이 많아 보이는데.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결혼하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죠?”추경은은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는 겨우 화를 참으며 말했다.“윤우야, 이모는 이제 스물네 살이야. 너희 엄마보다 몇 살 어리다고.”“네?”윤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런데 엄마보다 더 나이 많아 보이는데요? 혹시 관리를 잘 안 해서 그런 건가요? 엄마한테 가르쳐달라고 해요. TV에서 자주 그러잖아요. 세상에 못생긴 여자는 없고 게으른 여자만 있다고. 관리 좀 해요. 결혼 못 하는 상황을 피하는 게 좋겠죠.”주위 사람들은 박윤우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추경은은 이렇게까지 창피를 당한 적이 없었다.‘저 녀석이 감히 나한테 창피를 줘? 나를 따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고 그래. 외국까지 줄 설 수 있는데 결혼할 사람이 없다는 건 무슨 소리야?’“윤우야, 이모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 여기서 너랑 네 엄마, 아빠를 돌보는 게 좋아.”추경은은 머리가 똑똑하지 않았지만 웬만한 재벌가 아가씨들보다 인내심이 있었다.박민정은 윤우에게 여러 번 놀림을 당하면
고영란은 들어오자마자 비서에게 들고 있던 선물을 내려놓게 한 뒤, 바로 윤우를 찾으러 갔다.윤우는 아직 씻고 있었다.주방에 들어선 고영란은 추경은이 음식을 먹고 있는 걸 발견했다.추경은도 고영란을 보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이모, 어떻게 오셨어요?”추경은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내려놓았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고영란의 눈빛에는 추경은에 대한 불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여기 남준이 집이야. 내가 왜 못 와? 너는 왜 이러고 있어? 왜 주방에서 먹고 있는데?”고영란의 눈에는 이러한 행동이 매우 무례해 보였다.추경은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억울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죄송해요, 이모. 어제 이모를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요. 오늘 아침 너무 배가 고팠어요."“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해야지.”고영란은 추씨 가문의 상황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뒤에서 윤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할머니.”고영란은 환하게 웃으며 돌아서서 웅크려 앉아 말했다.“아이고, 우리 귀여운 윤우구나. 할머니가 안아보자.”고영란이 윤우를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추경은은 어제 윤우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그리고 윤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윤우야, 일어났어? 아침 곧 준비될 거야.”추경은은 윤우에게 다가가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또 위층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는 안 깨셨어? 8시 반이 다 되어 가는데.”고영란이 예전처럼 박민정을 나무랄 줄 알았지만 고영란은 예상 밖의 답변을 내놓았다.“임신했잖아. 잠 많이 자야지.”오랜만에 만난 고영란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박민정의 편을 드는 그녀를 보고 추경은 조금 놀랐다.하지만 추경은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제가 해외에서 배운 간호학 지식에 따르면 임산부는 하루에 8시간만 자면 충분하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오래 자면 태아의 뇌 발달에 좋지 않다고 해요.”고영란은 이 말을 듣고 추경은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박민정은 뜬금없이 소리를 지르는 추경은 때문에 다소 당황스러웠다.‘나를 돌봐주러 왔다고 하더니 이제는 내가 언제 일어나야 하는지까지 간섭하는 거야?’“네, 왜요?”박민정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이모 오셨어요. 새언니 빨리 내려오라고 하셨으니 저한테 화내지 마세요.”추경은의 말은 일부러 크게 해서 아래층에 있는 고영란까지 들리게 했다.고영란은 이 말을 듣고 약간 불쾌해졌다.‘이 시간까지 잤으면서 뭐가 불만인 거야?’고영란은 윤우 앞이라 박민정에게 화를 내지 않았지만 내심 불쾌한 기색을 억누르며 박민정이 내려온 후에 말했다.“앞으로는 일찍 일어나. 너무 오래 자면 태아에게 좋지 않아.”이 말을 들은 박민정은 추경은이 분명히 고영란에게 무언가를 말했을 거라고 직감했다.자세히 설명해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한 박민정은 그냥 대충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어차피 고영란은 한 달에 몇 번 오지도 않는다. 고영란이 떠나고 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테니 이런 사소한 문제로 논쟁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아니나 다를까, 박민정이 순순히 응하자 고영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추경은은 옆에서 괜히 나서며 말했다.“이모, 걱정 마세요. 제가 새언니를 잘 감시할게요.”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추경은을 당장 내쫓고 싶었다.추경은은 일부러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박민정을 보고 말했다.“새언니, 제가 도와드릴 테니 이제 일찍 일어나실 수 있을 거예요.”“정말 고맙네요.”“천만에요.”고영란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눈치채지 못하고 윤우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윤우야, 오늘 할머니가 널 데리고 놀러 나갈까?”박윤우는 요즘 박민정이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집에 남아있으면 오히려 박민정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추경은도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이모, 저도 함께 가면 안 될까요? 혹시 윤우와 이모께서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물건을
차가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유남우는 두원 별장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유남우는 멀리서 박민정이 정원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햇빛을 온몸에 받으며 누워 있었고, 그녀의 하얀 손등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대표님.”경비원은 유남우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보통 사람들은 유남우와 유남준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거의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유남우는 그대로 박민정 앞에 다가갔다.박민정은 깊은 잠에 빠져 있어 유남우가 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유남우도 그녀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빛이 가려져서인지 따뜻함이 덜해졌다.박민정은 그걸 느끼고 몸을 뒤척이며 얼굴에 덮인 책을 내려놓고 눈을 떴다.눈앞에 점점 빛이 보이더니 그제야 박민정은 눈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고개를 들어보니 남자의 깊은 눈동자와 마주쳐 버렸다.“남준 씨, 왜 왔어요?”유남우의 목울대는 살짝 울렁였다.“민정아.”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또 눈에 초점이 맞춰지자 박민정은 눈앞의 사람이 유남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남우 씨는 여기 어떻게 왔어요?”박민정은 당황해하더니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형이 외국에서 돌아온 후 바로 나가서 지낸다고 들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왔어.”박민정은 유남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래도 지금 유남준의 상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남준 씨가 외국에서 약간의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그곳에서 요양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간 거예요.”유남준이 현재 몇 년 전의 기억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그랬구나. 난 또 너와 싸운 줄 알았어.”유남우는 중얼거렸다.그가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박민정은 형식적으로 물었다.“좀 앉을래요?”“그래.”유남우는 대답한 후 바로 옆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박민정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잠시 후 가정부는 과일과 다과를 가져왔다.유남우
“오랜만이야.”추경은의 미소는 약간 어색해 보였다.그녀는 몇 걸음 물러서면서 고영란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이런 추경은의 모습은 박민정도 처음 본 것이었다.유남준을 본 추경은은 항상 달려들어 애교를 부리지 않았던가?그런데 유남우에게는 왜 이렇게 거리를 두는 것일까?“남우야, 네가 왜 왔어?”고영란이 다가오며 의아해했다.“형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와봤어요.”“아, 남준이는 여기 없고 해운 별장에 있어.”고영란은 또 박윤우에게 말했다.“윤우야, 빨리 삼촌께 인사드려야지.”박윤우는 유남우를 몇 번 본 적 있지만 왠지 이 남자가 무겁게 느껴졌다.“삼촌, 안녕하세요”박윤우는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건넸다.“그래.”유남우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숙이더니 사탕을 꺼내 박윤우에게 건넸다.“삼촌이 윤우에게 줄 선물이 없네. 오늘 밥 먹고 챙긴 사탕밖에 없어.”분명 유남우는 그렇게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였지만 박윤우의 눈에는 그의 주위에 검은 안개가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박윤우은 단순히 직감이 예리한 정도가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기만 하면 모든 사람의 주위에 엷은 빛이 감도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핑크색이나 금색의 빛이 맴돌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박민정과 고영란처럼 말이다.반대로 추경은처럼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들 주위에는 차가운 파란색이나 청록색 빛이 맴돌고 있었다.하지만 박윤우는 평소처럼 집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남우 주위에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퍼져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박윤우는 약간 두려운 마음으로 사탕을 받아 들고 고영란 옆에 섰다.그는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예전에 박예찬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박예찬은 여러 서적들을 통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발견했다.어릴 때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박윤우는 방으로 달려가 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었다.“형, 오늘 어떤 사람의 몸에서 검은빛이 나는 걸 봤어. 너무 무서웠어.”박윤
전에 박윤우는 유남우와 가까이 있은 적이 거의 없었다.가까이 있었다고 해도 그에게서 검은 안개를 느끼지 못했지만 오늘은 확실히 보였다.“집에서 조심하고 있어. 나 지금 비행기 타야 하니까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알겠어.”박윤우는 아쉬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창밖을 보니 유남우가 여전히 밖에서 박윤정, 고영란과 이야기하고 있었다.멀리서도 유남우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보이는 것 같아 무섭게 느껴졌다.밖에서.고영란은 유남우를 보더니 박윤우가 방송을 했던 일을 떠올렸다.어떻게 어린아이를 돈을 벌게 할 수 있지?“민정아, 너 요즘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남우를 따라 회사에서 경험 좀 쌓아보는 게 어때? 그래야 수입도 좀 늘어나지 않겠어? 하루에 3, 4시간만 일해도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 애들한테도 무리 안 갈 거야.”박민정과 유남준이 해외로 떠난 후로 고영란은 이미 이 일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박민정은 조금 놀랐다.전에 고영란은 그녀가 밖에서 일하는 걸 항상 반대했었다.귀도 잘 안 들리는 며느리가 나가서 일하면 유씨 가문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며 말이다.그런데 지금은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거지?“어머님, 전 가끔 작곡을 하기도 해요.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에요.”박민정이 대답했다.사람은 변하는 법이다.박민정이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고영란은 그녀가 밖에서 일하는 걸 싫어했다.하지만 지금은 직업이 없다고 하니 편히 집에서 쉬고 있는 그녀가 꼴 보기 싫은 모양이다.“작곡?”고영란의 눈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네가 작곡을 한다고?”일반 사람에게도 작곡은 쉽지 않은 법이다. 더구나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작곡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냥 취미로 하는 거지, 전문가는 아니에요.”“그럼 회사 다니는 게 낫겠다.”고영란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남준이도 회사로 보낼 생각이야. 잘 보이지 않으니까 네가 옆에서 도와주는 게 좋지 않겠어? 남준이한테 그렇게 하라고 연락할게..”박민정이 돌아온 이후, 그녀가 예전처럼
추경은은 꿍꿍이가 많았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은 아니었다.그걸 알아챈 박민정은 추경은이 생각보다 상대하기 훨씬 수월한 존재라는 걸 느꼈다.“나 좀 쉬어야겠어요.”“그래요, 방해하지 않을게요.”추경은은 원래 박민정에게 많이 자면 안 된다고 말할 생각이었지만 유앤케이로 데려가겠다는 그녀의 말에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았다.박민정은 정원에서 잠시 산책한 후 다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멀리서 추경은이 어디선가 큰 가방을 가져와 별장에 있는 가정부와 경비원들에게 뭔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하는 추경은을 박민정은 그저 조용히 지켜봤다.몇 개의 선물로 매수될 수 있다면 그만큼 더 많은 선물로도 쉽게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박민정은 추경은의 행동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책을 보며 악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추경은은 가끔 박민정을 쳐다봤다.그녀가 자신의 행동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욱 대담하게 행동했다. 심지어 별장 사람들과 함께 나가서 식사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그녀는 서다희에게도 메시지를 보내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스케줄을 확인한 서다희는 모레 저녁 9시 이후에 시간이 된다고 알려주었다.추경은은 곧바로 서다희와 모레 저녁 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서다희는 별장 사람들과는 달리 유남준의 최측근이었다. 유남준과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한 사람으로 박민정보다 유남준 옆에 더 오래 있었을 것이다.서다희를 사로잡으면 분명 유남준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저녁 식사 시간에 추경은은 무심코 휴대폰을 식탁에 올려놓았다.박민정은 자리에 앉자마자 문자 알림 소리를 들었다.무의식적으로 추경은의 휴대폰 화면을 보게 되었는데 ‘다희 오빠’로부터 온 메시지였다.[알겠어요. 그럼 모레 9시 반에 시즌 레스토랑에서 봐요.]박민정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의 문자를 훔쳐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추경은이 서다희를 저장한 호칭, 그리고 모레 9시 시즌 레스토랑에서 보기로 한 문자를 보며 박민정은 고개
최근 정수미는 비즈니스를 하러 다시 진주에 왔다.윤소현은 지금 그녀와 함께 식사 중이었다.그녀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물을 따라주고는 말했다.“엄마, 많이 드세요.”“그래.”정수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 평화로운 순간에 전화벨 소리로부터 방해를 받게 되었다.윤소현은 전화를 받으려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한수민인 걸 발견하고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하지만 윤소현은 실수로 전화를 끊는 대신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다.가방에 넣어둔 상태라 한수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누구야?”정수미가 물었다.“왜 안 받아?”“스팸 전화예요.”윤소현이 대답했다.윤소현이 계속 대답하지 않자 한수민은 전화를 끊고 다시 걸려다가 정수미와 윤소현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스팸 전화?’윤소현이 버튼을 잘못 누른 걸 깨달은 한수민은 두 사람의 대화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정수미와 있을 때 윤소현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엄마, 푸아그라 엄청 맛있어요. 제가 미리 주문해서 공수해 온 거예요.”“그래.”정수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 입 먹었다.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소현아, 한수민이 암에 걸렸다면서?”“네, 자궁경부암 말기예요. 의사가 2년도 못 살 거라고 했어요.”윤소현이 바로 대답했다.정수미가 한수민을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윤소현은 이어서 말했다.“자업자득이죠. 예전에 엄마에게서 아빠를 빼앗아 갔으니 이렇게 암에 걸린 거 아니에요.”윤소현은 한수민이 자기가 한 말을 똑똑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정수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소현아, 기억해. 한수민이 내게서 윤석후를 빼앗은 게 아니라, 한수민이 내가 쓰다 버린 윤석후를 찾아간 거야. 알겠어?”정수미는 정씨 가문 사람들을 대충 속이기 위해 윤석후와 결혼한 것이었다. 게다가 윤석후는 다루기 쉬웠다.그들 사이에는 사랑이 없었지만 정수미는 여전히 윤석후의 배신을 증오했다.“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엄마, 한수민 같은 여자가 엄마
유남준은 그제야 진정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온 뒤 그녀의 머리를 다시 살펴봤다.그러자 박민정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나도 안 아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굳이 상대해서 뭐 해요?”“그래.”유남준은 담담하게 답했지만 속으로는 당장에라도 이지원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사실 박민정도 애써 쿨한 척 괜찮다고는 했지만 방금 눈앞에서 본 이지원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그런 눈빛은 진짜로 미친 사람 외에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될 만큼 충격적이었다.박민정은 돌아가기 전 원장에게 물었다.“혹시 이지원 씨는 평소에도 많이 폭력적이었나요?”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요. 여기에 온 이후로는 말도 잘 듣고 다른 환자분들과도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약 그런 환자가 들어오면 오히려 자발적으로 피하더라고요.”박민정은 그제야 뭔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아닙니다. 설마 방금 사모님께 손을 댔나요?”그의 물음에 박민정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안정이 필요해 보이더라고요.”“알겠습니다.”원장은 재빨리 간호사에게 알렸다.“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제 지인도 이쪽 분야의 전문가 의사인데 이런 환자한테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곁에 있으면 좋다고 했거든요.”사실 원장도 진작에 김인우를 통해 이지원이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하여 박민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답했다.“저희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두 사람은 그제야 그곳을 빠져나왔고 원장은 그들이 떠나가자마자 이지원의 병실에 비교적 폭력 성향이 센 환자를 안배해 뒀다.박민정이 차에 올라타자 유남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어때 보였어? 이지원이 진짜로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어?”그러나 박민정은 대답 대신 그를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 되물었다.“남준 씨는 어땠는데요?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요?”그러자 유남준
간호사가 문을 열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원장한테 말했다.“원장님, 이지원 씨를 데려왔습니다.”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민정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저는 이만 나가볼 테니까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저를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감사합니다.”그렇게 대기실 안에는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고 유남준과 박민정은 말없이 이지원을 빤히 바라보았다.이지원은 아직 두 사람을 보지 못한 듯 그저 고개를 수그린 채 자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입으로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오빠, 진짜 나랑 결혼할 거야? 민정이가 알고 날 괴롭히면 어떻게 해?”박민정은 너무 어이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이지원!”이지원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눈앞의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누구세요?”“내가 누구인지 기억 안 나? 나야, 민정이.”그녀의 이름이 들리는 순간 이지원은 순간 겁을 먹은 얼굴로 빌기 시작했다.“민정아,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실수하지 않을게. 나도 많이 반성했으니까 한 번만 봐주라. 더 이상 거짓말도 하지 않을게... 우리 한때는 친구였잖아?”그리고 박민정의 손을 잡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난 윤소현 씨처럼 감옥에 들어가기 싫어.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연예계에서만 활동하면서 살 테니까 제발 나 한 번만 살려줘.”그녀의 간절한 애원에도 박민정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아직 덜 미쳤나 보네!”이지원은 순간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더니 박민정을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아니야! 넌 지금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어. 내가 진짜 박민정이라고!”박민정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그러자 이지원은 차갑게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네가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이지원이잖아!”그리고 당장에라도 눈앞의 박민정을 때리려고 했다.“빌어먹을 X, 널 죽여버릴 거야!”다행히 옆에
이지원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은 유남준은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역시나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워낙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여자라 분명 이번에도 쇼한다고 생각했다.특히 이런 병은 정확하게 진단해 내기 어렵다.“그래, 같이 가자.”유남준이 단번에 가겠다고 하자 박민정은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그에게 슬쩍 물어봤다.“이지원 씨가 신경 쓰여요?”순간 유남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뭐라고?”“남준 씨 첫사랑이었잖아요. 바로 가겠다는 걸 보니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면 걱정하는 건가?”말하다 보니 박민정도 슬슬 질투가 났다.그러자 유남준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답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예전에도 말했잖아, 난 그 여자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그런데 왜 신경이 쓰이고 걱정해?”박민정은 그의 단호한 발언에 그제야 마음이 살짝 놓였다가 다시 물었다.“그런데 왜 저랑 같이 가보려고 해요?”“단순 호기심.”그가 이런 일로 호기심이 생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박민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러고 보니 그녀도 궁금하긴 했다.“빨리 먹고 가요.”“그래.”그렇게 박민정은 아침밥을 다 먹은 뒤 유남준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비록 집에 운전기사가 있지만 유남준은 박민정과 단둘이 드라이브하는 걸 좋아했다.이지원이 지금 입원해 있다는 병원은 집과 살짝 멀었는데 차로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얼마간 달리다 보니 박민정은 저 멀리 하얀색 건물과 울타리 안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햇볕을 쬐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야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한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이지원도 흰색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긴 머리는 헝클어진 채 한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이때 옆에 있던 환자가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자 이지원은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정확하게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입구에 도착해보니 병원 원장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
이튿날, 아침 여덟 시쯤.박민정이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유남준은 다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품 안에 가뒀다.“왜 벌써 깼어?”유남준의 나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지자 박민정은 난감한 얼굴로 그의 팔을 풀려고 했지만 역시나 어림도 없었다.하여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다시 누워 그에게 말했다.“출근해야 하니까 빨리 이것 좀 풀어요.”그러자 유남준은 그녀를 더욱 세게 안았다.“더 자도 돼.”회사 대표가 굳이 제시간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박민정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잠이 안 와요.”순간 유남준의 눈이 갑자기 번쩍 뜨이더니 벌떡 일어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 물었다.“그러면 우리 재밌는 놀이나 더 할까?”그의 말에 깜짝 놀란 박민정은 빠르게 다시 눈을 감았다.“아, 아니요. 그냥 잠이나 계속 자요.”그러자 유남준도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다시 누웠다.솔직히 오랜만에 이토록 개운하게 잤다.박민정은 그의 품 안에서 갇혀있는 상태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지만 유남준이 원하니 어쩔 수 없이 불편해도 참아야 했다.아홉 시 반쯤 되자 박민정은 더는 누워있기 힘들어 유남준에게 거짓말했다.“남준 씨, 나 배고파요.”그러자 유남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러면 아침밥부터 먹자.”“네.”그제야 자유로운 몸이 된 박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밥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남준네 셰프는 요리 솜씨가 아주 훌륭했고 아침부터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박예찬, 박윤우는 이미 학교에 갔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출근했다.박민정이 내려오는 모습을 본 셰프는 재빨리 그들이 먹을 아침밥을 다시 데워줬다.유남준은 그녀가 허겁지겁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한껏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어.”“네.”한창 맛있게 먹고 있던 이때, 갑자기 박민정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김인우’라는 이름을 본 유남준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설마 재검사받아야 하는 건가?’박민정은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