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깨어난 유남준은 손가락을 움직였고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그의 움직임에 박민정은 바로 눈을 떴다.“남준 씨, 깼어요?”박민정의 소리를 듣게 된 유남준은 그제야 그녀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응, 오래 잔 것 같아.”박민정은 그를 향해 몸을 돌리면서 확 끌어안았다.“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요. 오래 잔 게 아니라 오랫동안 기절해 있었던 거예요.”동맥까지 다친 유남준은 아주 섬뜩할 정도로 많은 피를 흘렸었다.박민정에게 꼭 안겨버린 유남준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하지만 그 또한 잠시 바로 정신을 차리면서 손을 들어 박민정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괜찮아. 나 이렇게 멀쩡하잖아.”그러자 박민정은 그를 더욱더 꼭 껴안았다.얼굴 전체를 유남준의 가슴팍에 묻을 정도로 말이다.눈물은 어느새 유남준의 옷을 흠뻑 적시고 말았다.흐느끼는 박민정의 소리에 유남준은 가슴이 미어졌다.“울지마.”박민정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대답했다.“안 울었어요.”“배고프지 않아요?”박민정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참, 이제 막 깨어났는데, 가서 인우 씨 불러와야겠어요. 지금 남준 씨 상황이 어떠한지 확인해야 할 것 아니에요.”유남준이 거절하기도 전에 박민정은 침대에서 빠르게 내려와 문 앞으로 가서 경호원에게 말했다.“김인우 선생님 좀 불러오세요.”김인우는 오늘도 병원에서 밤을 보냈다.유남준의 상황을 수시로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유남준이 깨어났다는 소리를 듣고서 그는 빠르게 달려갔다.그리고 검사하는 동안 박민정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밖에서 기다렸다.“다행히 지혈은 잘 됐어.”김인우가 말했다.유남준은 다소 의외라는 모습을 보였다.“네가 수술한 거야?”검사를 마치고서 김인우는 옆에 앉았다.“남준아, 내 의술에 전혀 믿음이 없는 눈치다? 나 엄청 중요한 사실도 발견했는데, 알고 싶지 않아?”“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이유이자, 자주 기억을 잃는 이유일 수도 있어.”유남준은 순간 엄숙해지기
몸을 던지면서 자기를 구해줬던 유남준의 모습을 그리고 있던 박민정이다.그런 순간에 제법 유치하기 그지없는 질문을 던지는 유남준의 말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심심해요?”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면서 두 사람의 달콤한 순간을 깨버렸다.“누구야?”유남준이 물었다.핸드폰을 꺼내 든 박민정은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고서 이실직고했다.“지석이에요.”유남준은 질투심이 폭발한 사춘기 소년처럼 입을 삐죽거렸다.“스피커폰 눌러. 무슨 일로 전화했는지 나도 들어봐야겠어.”어제 그 상황에서 박민정이 내뱉은 모든 말과 행동이 연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질투가 났었다.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스피커폰을 눌렀다.“지석아.”박민정이 그를 불렀다.“어제 민기한테 전화했었어. 어찌 된 상황인지 이미 다 알았고. 너 지금 괜찮아?”연지석이 물었다.“응, 괜찮아.”“그럼, 됐어. 근데 내가 어제 했었던 말은 아직도 유효야. 너만 원한다면 언제든지 너 데리러 갈 수 있어. 내 곁에 있으면 절대 다치는 일 없을 거야.”옆에서 듣고 있던 유남준은 어느새 얼굴이 어두워졌다.박민정이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입을 열었다.“연지석 씨, 제 아내는 제가 알아서 잘 챙길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연지석은 자기와 박민정의 대화를 유남준이 듣고 있겠다고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전혀 당황해하지 않고 바로 충고하기 시작했다.“유 대표님께서 민정이를 잘 지켜줄 수만 있다면 걱정할 일도 없을 겁니다.”“거듭 경고하는데, 우리 민정이 나한테는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잘 지켜줄 수 없으시다면 하루빨리 저한테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유 대표님처럼 자기 여자도 아이도 다치게 두지 않거든요.”유남준은 손을 꼭 움켜쥐었다.그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이때 박민정이 나서서 살벌한 분위기를 깨려고 했다.“지석아, 나 괜찮아. 다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 시간 되면 너 보러 에스
가만히 듣고 있던 유남우의 두 눈에 잠시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대충 먹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다 먹었어요. 그만 출근하러 갈게요.”“오늘도 회사에 간다고?”고영란이 물었다.“네, 어차피 집에 있어봤자 도움도 안 되잖아요.”이윽고 유남우는 윤소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집에서 어머니 파티 준비 잘 도와드려. 가능한 한 공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말고.”얼마 전 온라인에서 박민정의 표절에 대해 모함 극을 벌인 일을 겨냥하면서 한 말이었다.“알았어요.”그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린 윤소현은 순순히 입을 다물고 대답만 했다.하도 크게 번진 일이라 지금 감히 유남우에게 대꾸조차 할 수 없는 윤소현이다.집에서 나온 유남우는 핸드폰을 확인해 보았는데,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있었다.권씨 가문 셋째 도련님 권진하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그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바로 연결되었다.수화기 너머 권진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우 도련님, 어떡하죠! 유남준 부하들이 우리 해신 형을 데리고 가버렸어요.”유남우는 그 소식을 듣고서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자업자득이야.”자기 형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유남우이다.유남준이 바보가 되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감히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권진하 역시 지금 그때 권해신을 말리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남우 도련님, 우리 해신 형 좀 구해주시면 안 돼요? 큰형도 잃은 마당에 저 해신 형까지 잃을 수 없어요.”권진하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어서 지금까지 밖에서 숨어지내고 있다.차에 오른 유남우는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덤덤하고 차가운 눈빛을 유지했다.“나 그렇게 심심하지도 않고 착한 사람도 아니야.”“하물며 나랑 남준이 사이가 얼마나 어색한지 너도 잘 알잖아. 내가 나서서 말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어.”아주 완곡하게 거절하고 있는 셈이다.이러한 답이 돌아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권진하이다.그
늘 했던 대로 처리하면 권해신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것이다.하지만 사실 그대로 말하면 박민정이 놀라게 될까 봐 거짓말을 했다.“다시는 진주시에 오지 말라고.”“그런 거였어요.”박민정은 그제야 알았다.이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경호원이 병실로 들어왔다.“대표님, 추경은 씨께서 대표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유남준은 눈살을 찌푸렸다.추경은에 대해서 그 어떠한 좋은 감정도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대답을 하기도 전에 추경은이 비틀거리면서 다짜고짜 들어왔다.“남준 오빠, 남준 오빠, 괜찮아?”추경은은 병원으로 실려 오기 전에 유남준이 박민정을 구하기 위해 크게 다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자기를 배신한 박민정을 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보호하고 대신 칼을 막아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박민정한테 그렇게 매력이 있냐면서 말이다.경호원은 추경은을 가로막고서 더 이상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였다.유남준의 사촌 동생이고 부상도 입은 상황이라 폭력적인 수단을 행사하기에 좀 불편했다.“비켜! 남준 오빠 만날 거야!”밖에서 추경은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서 박민정은 귀가 아파 났다.“그냥 들여보내세요.”경호원은 그제야 추경은을 막아서지 않았다.추경은 역시 밖에서 박민정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지팡이를 짚고서 비틀거리며 들어온 추경은은 박민정을 보자마자 큰소리로 책문했다.“박민정,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뻔뻔하게 죽치고 있는 거야?”박민정은 그녀가 했었던 음험한 일을 떠올리면서 일부러 염장을 질렀다.“왜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거야? 나랑 남준 씨는 법으로도 인정받은 부부사이야. 근데 아무런 관계도 없는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난 참 궁금하네.”박민정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유남준은 끼어들지 않고 두 눈을 감았다.“참 뻔뻔도 하지! 다른 사람 아이까지 품고 우리 남준 오빠랑 부부 사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야? 세상에 그런 부부 사이도 있어?”말을 마치고 추경은은 곧바로 유남준에게 말했다.“남준 오빠, 얼른 이혼해요!”대
병실 안에서.유남준은 박민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려놓고서 박민정이 물었다.“머리는 아프지 않아요?”“안 아파.”“근데 좀 안기고 싶어.”유남준의 말에 박민정은 바로 침대에 앉아서 그를 안아주었다.“상처에 닿기라도 한다면 바로 알려줘야 해요.”“알아. 나 그 정도로 바보 아니야.”입이 거의 찢어질 지경으로 웃고 있는 유남준이다.이처럼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게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대로 한참이나 안고 있었다.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서로의 온도만 느꼈다.“아빠는 왜 다 큰 성인인데도 엄마한테 안겨 있는 거예요?”앳된 목소리가 들려오자 박민정은 문 쪽으로 바라보았다.그때 정민기의 손을 잡고 온 박윤우가 시야로 들어왔다.“엄마, 아빠랑 같이 너무 한 거 아니야? 몰래 병원에서 이럴려고 나한테 학교 가라고 한 거야?”박민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면서 유남준을 밀어냈다.“그...”갑자기 박윤우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 박민정은 엄두 바를 몰랐다.하지만 박윤우는 이미 모든 걸 꿰뚫어 보았다는 눈빛으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막힌 말을 한다.“돌다리 밑에서 나 주워 온 것 맞지? 흑흑흑.”박민정은 바로 박윤우에게로 달려가 그를 안았다.“우리 윤우 엄마가 미안해. 돌다리 밑에서 주워 오다니 말도 안 돼. 윤우는 엄마 아빠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야.”갑자기 박민정을 빼앗겼다는 허전함에 유남준은 눈살을 찌푸렸다.‘한참 좋았는데... 분위기 다 깨졌어.’박민정의 말과 행동에 박윤우는 흡족했다.역시나 엄마 마음속에서 자기와 형이 일등이라면서.“엄마, 앞으로 윤우한테 거짓말하면 안 돼.”“알았어.”박민정은 바로 대답했다.박윤우는 그제야 더 이상 애교를 부리지 않고 유남준에게 다가갔다.“아빠, 좀 괜찮으세요?”“그래. 많이 좋아졌어.”유남준이 대답했다.“아빠, 제가 호호 불어드릴까요? 전에 칼에 베였을 때
알고 보니 메가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추경은의 말을 듣고 난 뒤 박민정이 말했다.“가서 남준 씨한테 직접 전해줘요.”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면서 추경은은 당당한 걸음으로 병실에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추경은이 걸어 나왔다.병실 안으로 돌아간 박민정은 무척이나 심심해 보이는 박윤우를 보게 되었다.“윤우야, 아빠 편하게 쉬시게끔 우리 그만 가자.”“좋아요.”유남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고자 온 박윤이다.지금껏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루함의 극치를 맛보았기에 차라리 집으로 가서 라이브를 보고 싶었다.두 사람이 집으로 간다는 소리를 듣고서 유남준이 말했다.“나도 같이 갈래.”상처는 이미 어느 정도 완전히 아물었고 격렬한 운동만 하지 않으면 별문제가 없다.“하지만 아직... 괜찮겠어요?”박민정이 걱정하며 물었다.“걱정하지 않아도 돼. 인우도 괜찮다고 이미 말했었어.”안심을 주고 나서 유남준은 또다시 덧붙였다.“일단 본가에 들릴 생각이야.”아직 유남우에게 볼 일이 있는 유남준이다.서다희의 조사에 따르면 유남우는 요즘 권해신과 아주 가까이하고 있다고 한다.이번 사건이 유남우과 관련되어 있는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그뿐만 아니라 유씨 가문에서 파티를 주최할 때마다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도 함께 하곤한다.유남준은 가능한 한 박민정과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재력을 구축해야 한다.“그럼, 같이 가요.”홀로 본가로 가겠다는 유남준이 걱정되어 박민정이 말했다.“싫으면 억지로 가지 않아도 돼.”유남준은 박민정이 유씨 가문 본가로 가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하지만 박민정은 고개를 저었다.“예전에는 싫었는데 지금은 좋아요.”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예전에는 유남준의 안중에 박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본가로 들릴 때마다 돌아오는 건 유남준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차가운 시선이었으니 말이다.그러나 지금은 그와 정반대이다.두 사람의 달콤한 대화를 듣고서 박윤우 역시 입꼬리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김인우는 해방되는 것만 같았다.“어디로 갈 거예요?”김인우가 조하랑에게 물었다.조하랑은 움직이기 귀찮고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그냥 근처에 있는 백화점으로 가요. 밥도 먹을 수 있고 쉴 수도 있고 할아버님이 물어보시면 영화 본 거로 해도 되잖아요.”조하랑이 대답했다.김인우 역시 못마땅한 모습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선택인 것 같기도 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마지못해 백화점으로 향했다.휴일이라 백화점 안에는 인산인해가 따로 없었다.조하랑은 몇 번이나 인파에 몰려 김인우의 품속으로 부딪히고 말았었다.김인우는 하는 수 없이 손을 뻗어 조하랑을 보호하기 시작했다.“뭐가 재밌다고 다들 여기로 몰리는지 모르겠네요.”이대로 계속 걸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아 조하랑은 주위를 스캔하기 시작했다.이윽고 멀지 않은 곳에 줄 서지도 않아도 되는 한식당을 보게 되었다.“우리 저기로 가요.”하도 급하게 걸은 바람에 앞에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하마터면 밀칠 뻔했다.“좀 조심해서 걸으세요! 와이프 임신했다고요!”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조하랑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서야 익숙한 그 얼굴이 보였다.그렇다, 강연우였다.강연우는 지금 배가 살짝 부른 고상한 여인을 부축하고 있다.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임신까지 했다는 사실에 조하랑은 살짝 충격이었다.이곳에서 조하랑을 마주치게 될 줄을 몰랐던 강연우 역시 순간 얼어붙었었다.하지만 그 또한 잠시 바로 평정심을 되찾았다.“너였구나. 어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니. 아직도 이렇게 덜렁거리고 말이야.”조하랑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은 채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김인우는 세상 무서운 줄 몰라 하던 조하랑이 강연우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살짝 언짢았다.단번에 조하랑을 품속으로 잡아당기면서 말했다.“우리 하랑이도 임신했어요. 그쪽 아내만 산모인 게 아니라 우리 하랑이도 산모라고요
“어디 가는 거예요?”김인우가 물었다.전화를 끊은 김인우를 보고서 조하랑이 되물었다.“경호원들이 손님들 모두 내보내고 있는 거 안 보여요?”그 말에 김인우는 어이가 없었다.“다른 손님들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지 우리를 내보내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조하랑은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어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했다.“백화점 책임자한테 전화하고 오는 길이에요. 좀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다들 내보내 달라고 했어요.”본래 사람이 많아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던 김인우였다.하지만 조금 전 강연우와 그의 아내를 만나고 난 뒤, 모든 이들을 내쫓아 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조하랑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고 돈만 있으면 별의별 짓도 할 수 있다며 내심 혀를 내둘렀다.모든 손님을 내보냈다는 건 오늘 이곳의 모든 지출을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결코 적지 않은 지출일 것인데 말이다.“돈이 그렇게도 많아? 쓸 곳이 없으면 차라리 그 돈을 나한테 주지 그래.”조하랑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뭐라고 말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한 김인우는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예요?”조하랑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별거 아니에요. 그럼, 우리 오늘 여기서 다 공짜로 먹어도 되는 거예요?”“그럼요.”조하랑은 그 말을 듣자마자 무척이나 기뻐하며 모든 음식점의 간판 메뉴를 하나씩 대령하라고 했다.그 말에 김인우는 의혹이 들기만 했다.“다 먹을 수 있어요?”“그냥 종류별로 맛이나 좀 보려고요.”어차피 돈도 이미 냈고 가능한 한 손해를 줄여야 하니 말이다.김인우는 바로 조하랑의 말대로 지시를 내렸다.백화점에 있는 모든 음식점의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되고 마음에 드는 옷이라도 있으면 마음대로 사면 된다.김인우가 알아서 그 뒷정리를 해 줄 테니 말이다.조하랑은 어느 한 음식점에 앉아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박윤우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와서 공짜로 먹고 놀자면서 말이다.마침 집에 있던 박윤우와 박민정은 할 일이 없어 정민기에게 함께
유남준은 그제야 진정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온 뒤 그녀의 머리를 다시 살펴봤다.그러자 박민정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나도 안 아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굳이 상대해서 뭐 해요?”“그래.”유남준은 담담하게 답했지만 속으로는 당장에라도 이지원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사실 박민정도 애써 쿨한 척 괜찮다고는 했지만 방금 눈앞에서 본 이지원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그런 눈빛은 진짜로 미친 사람 외에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될 만큼 충격적이었다.박민정은 돌아가기 전 원장에게 물었다.“혹시 이지원 씨는 평소에도 많이 폭력적이었나요?”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요. 여기에 온 이후로는 말도 잘 듣고 다른 환자분들과도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약 그런 환자가 들어오면 오히려 자발적으로 피하더라고요.”박민정은 그제야 뭔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아닙니다. 설마 방금 사모님께 손을 댔나요?”그의 물음에 박민정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안정이 필요해 보이더라고요.”“알겠습니다.”원장은 재빨리 간호사에게 알렸다.“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제 지인도 이쪽 분야의 전문가 의사인데 이런 환자한테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곁에 있으면 좋다고 했거든요.”사실 원장도 진작에 김인우를 통해 이지원이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하여 박민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답했다.“저희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두 사람은 그제야 그곳을 빠져나왔고 원장은 그들이 떠나가자마자 이지원의 병실에 비교적 폭력 성향이 센 환자를 안배해 뒀다.박민정이 차에 올라타자 유남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어때 보였어? 이지원이 진짜로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어?”그러나 박민정은 대답 대신 그를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 되물었다.“남준 씨는 어땠는데요?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요?”그러자 유남준
간호사가 문을 열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원장한테 말했다.“원장님, 이지원 씨를 데려왔습니다.”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민정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저는 이만 나가볼 테니까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저를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감사합니다.”그렇게 대기실 안에는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고 유남준과 박민정은 말없이 이지원을 빤히 바라보았다.이지원은 아직 두 사람을 보지 못한 듯 그저 고개를 수그린 채 자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입으로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오빠, 진짜 나랑 결혼할 거야? 민정이가 알고 날 괴롭히면 어떻게 해?”박민정은 너무 어이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이지원!”이지원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눈앞의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누구세요?”“내가 누구인지 기억 안 나? 나야, 민정이.”그녀의 이름이 들리는 순간 이지원은 순간 겁을 먹은 얼굴로 빌기 시작했다.“민정아,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실수하지 않을게. 나도 많이 반성했으니까 한 번만 봐주라. 더 이상 거짓말도 하지 않을게... 우리 한때는 친구였잖아?”그리고 박민정의 손을 잡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난 윤소현 씨처럼 감옥에 들어가기 싫어.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연예계에서만 활동하면서 살 테니까 제발 나 한 번만 살려줘.”그녀의 간절한 애원에도 박민정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아직 덜 미쳤나 보네!”이지원은 순간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더니 박민정을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아니야! 넌 지금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어. 내가 진짜 박민정이라고!”박민정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그러자 이지원은 차갑게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네가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이지원이잖아!”그리고 당장에라도 눈앞의 박민정을 때리려고 했다.“빌어먹을 X, 널 죽여버릴 거야!”다행히 옆에
이지원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은 유남준은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역시나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워낙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여자라 분명 이번에도 쇼한다고 생각했다.특히 이런 병은 정확하게 진단해 내기 어렵다.“그래, 같이 가자.”유남준이 단번에 가겠다고 하자 박민정은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그에게 슬쩍 물어봤다.“이지원 씨가 신경 쓰여요?”순간 유남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뭐라고?”“남준 씨 첫사랑이었잖아요. 바로 가겠다는 걸 보니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면 걱정하는 건가?”말하다 보니 박민정도 슬슬 질투가 났다.그러자 유남준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답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예전에도 말했잖아, 난 그 여자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그런데 왜 신경이 쓰이고 걱정해?”박민정은 그의 단호한 발언에 그제야 마음이 살짝 놓였다가 다시 물었다.“그런데 왜 저랑 같이 가보려고 해요?”“단순 호기심.”그가 이런 일로 호기심이 생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박민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러고 보니 그녀도 궁금하긴 했다.“빨리 먹고 가요.”“그래.”그렇게 박민정은 아침밥을 다 먹은 뒤 유남준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비록 집에 운전기사가 있지만 유남준은 박민정과 단둘이 드라이브하는 걸 좋아했다.이지원이 지금 입원해 있다는 병원은 집과 살짝 멀었는데 차로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얼마간 달리다 보니 박민정은 저 멀리 하얀색 건물과 울타리 안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햇볕을 쬐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야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한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이지원도 흰색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긴 머리는 헝클어진 채 한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이때 옆에 있던 환자가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자 이지원은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정확하게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입구에 도착해보니 병원 원장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
이튿날, 아침 여덟 시쯤.박민정이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유남준은 다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품 안에 가뒀다.“왜 벌써 깼어?”유남준의 나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지자 박민정은 난감한 얼굴로 그의 팔을 풀려고 했지만 역시나 어림도 없었다.하여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다시 누워 그에게 말했다.“출근해야 하니까 빨리 이것 좀 풀어요.”그러자 유남준은 그녀를 더욱 세게 안았다.“더 자도 돼.”회사 대표가 굳이 제시간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박민정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잠이 안 와요.”순간 유남준의 눈이 갑자기 번쩍 뜨이더니 벌떡 일어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 물었다.“그러면 우리 재밌는 놀이나 더 할까?”그의 말에 깜짝 놀란 박민정은 빠르게 다시 눈을 감았다.“아, 아니요. 그냥 잠이나 계속 자요.”그러자 유남준도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다시 누웠다.솔직히 오랜만에 이토록 개운하게 잤다.박민정은 그의 품 안에서 갇혀있는 상태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지만 유남준이 원하니 어쩔 수 없이 불편해도 참아야 했다.아홉 시 반쯤 되자 박민정은 더는 누워있기 힘들어 유남준에게 거짓말했다.“남준 씨, 나 배고파요.”그러자 유남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러면 아침밥부터 먹자.”“네.”그제야 자유로운 몸이 된 박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밥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남준네 셰프는 요리 솜씨가 아주 훌륭했고 아침부터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박예찬, 박윤우는 이미 학교에 갔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출근했다.박민정이 내려오는 모습을 본 셰프는 재빨리 그들이 먹을 아침밥을 다시 데워줬다.유남준은 그녀가 허겁지겁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한껏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어.”“네.”한창 맛있게 먹고 있던 이때, 갑자기 박민정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김인우’라는 이름을 본 유남준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설마 재검사받아야 하는 건가?’박민정은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