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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가 오던 저녁

Penulis: 에이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05 15:20:50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창밖이 어두워졌다.

아침에는 분명 맑았는데 오후부터 흐려지더니 결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송유지는 창문에 번지는 빗물을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우산 없는데.”

옆자리 직원이 가방을 챙기며 물었다.

“택시 잡게?”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퇴근 시간이 겹쳐서인지 앱에는 예상 대기 시간이 삼십 분 넘게 떠 있었다.

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비는 점점 세지고 있었다.

그때 화면이 밝아졌다.

채도하.

유지는 이름을 확인하고 잠시 멈칫했다.

지난 통화 이후 이틀 만이었다.

—퇴근했어?

유지는 짧게 답했다.

—이제 하려고요.

잠시 뒤 다시 메시지가 왔다.

—우산 있어?

유지는 피식 웃었다.

—없어요. 아침에 비 안 온다길래요.

이번에는 답장이 한동안 오지 않았다.

유지는 그걸 마지막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회사 로비로 내려갔을 때는 비가 훨씬 거세져 있었다.

출입문 앞에는 우산이 없는 사람들이 여럿 서 있었다.

유지는 다시 택시 앱을 켰다.

대기 시간은 오히려 더 길어졌다.

“오늘 집 가기 힘들겠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였다.

유지는 바로 받았다.

“네.”

—밖이야?

“로비요.”

—나와.

유지의 눈썹이 올라갔다.

“네?”

—회사 앞이야.

유지는 그대로 굳었다.

“도하 씨가 왜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근처에 있었어.

그 말만 남기고 통화가 끊겼다.

유지는 유리문 너머를 바라봤다.

도로 건너편에 익숙한 검은 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운전석 문이 열렸다.

도하가 검은 우산을 들고 내렸다.

유지는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차도 막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근처였을까.

도하는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우산 아래로 들어온 그가 말했다.

“가자.”

“진짜 근처에 있었어요?”

“응.”

“어디요?”

도하가 잠시 유지 쪽을 바라봤다.

“왜?”

“그냥 궁금해서요.”

“볼일 좀 있었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유지는 더 묻지 않았다.

둘이 나란히 차 쪽으로 걸었다.

우산은 한 사람이 쓰기에는 충분했지만 둘이 함께 쓰기에는 조금 작았다.

도하는 자연스럽게 우산을 유지 쪽으로 더 기울였다.

몇 걸음 뒤 유지가 그의 오른쪽 어깨를 발견했다.

이미 빗물에 젖고 있었다.

“도하 씨.”

“응?”

“우산 가운데로 들어와요.”

“괜찮아.”

“안 괜찮은데.”

유지가 우산 손잡이를 잡았다.

“이렇게 쓰면 되잖아요.”

순간 둘의 손이 겹쳤다.

유지는 바로 놓을까 하다가 그대로 멈췄다.

도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조금 풀었다.

“네가 잡을래?”

“같이 잡으면 되죠.”

둘은 한동안 같은 우산 손잡이를 잡고 걸었다.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유지는 괜히 손끝에 신경이 쓰였다.

차에 도착해서야 도하가 먼저 손을 놓았다.

유지는 조수석에 탔다.

도하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히터를 켰다.

“추워?”

“조금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송풍구 방향을 유지 쪽으로 돌려주었다.

유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물었다.

“도하 씨는요?”

“뭐가?”

“안 추워요?”

“괜찮아.”

짧은 대답이었다.

유지는 창밖을 바라봤다.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빗소리와 와이퍼 소리만 들렸다.

도하가 먼저 물었다.

“저녁은?”

“아직이요.”

“왜 안 먹었어?”

“일하느라요.”

“맨날 그러네.”

유지가 고개를 돌렸다.

“맨날?”

도하는 시선을 도로에 둔 채 말했다.

“예전에도 바쁘면 밥 건너뛰었잖아.”

“그것도 기억해요?”

“그냥.”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몇 번 봤으니까.”

유지는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도하는 자꾸 별것 아닌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단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

손목에 난 작은 상처.

밥을 자주 거른다는 것.

하나씩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꾸 쌓이고 있었다.

“앞에 편의점 들를까?”

도하가 물었다.

“왜요?”

“뭐라도 먹게.”

“집 가서 먹으면 돼요.”

“몇 시에?”

유지는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여덟 시가 가까웠다.

“금방 먹어요.”

도하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신호에서 잠깐 정차했을 때 뒷좌석에 손을 뻗었다.

작은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 유지에게 건넸다.

“이거라도 먹어.”

“이게 뭐예요?”

“빵.”

유지가 봉투를 열었다.

작은 크루아상과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다.

“도하 씨 먹으려고 산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럼 누구 주려고 산 건데요?”

도하의 손이 핸들 위에서 잠깐 멈췄다.

신호가 바뀌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그냥 사둔 거야.”

그 말이 조금 이상했다.

유지는 봉투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보통 빵을 그냥 사둬요?”

“배고플 수도 있으니까.”

“누가요?”

도하가 아주 잠깐 웃었다.

“너 질문 많아졌네.”

결국 대답하지 않았다.

유지는 괜히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따뜻했다.

아직 식지 않은 빵이었다.

아까 샀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유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까지 거의 다 왔을 때 도하가 물었다.

“요즘 잠은 잘 자?”

“갑자기 왜요?”

“그냥.”

“왜 자꾸 그냥이에요?”

도하가 잠시 유지 쪽을 바라봤다가 다시 앞을 봤다.

“그럼 꼭 이유가 있어야 해?”

유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차가 아파트 앞에 멈췄다.

“도착했어.”

“고마워요.”

유지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문을 열려는데 도하가 말했다.

“잠깐.”

유지가 돌아봤다.

도하가 뒷좌석에서 우산을 하나 더 꺼냈다.

“가져가.”

“도하 씨 거잖아요.”

“집에 하나 더 있어.”

“근데 아까 이거 하나밖에 없었잖아요.”

도하가 잠시 멈췄다.

유지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아까 회사 앞으로 올 때도 도하는 우산 하나만 들고 있었다.

“이건 차에 있던 거야.”

“그럼 왜 아까 같이 썼어요?”

질문이 튀어나왔다.

도하가 유지를 바라봤다.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비 맞고 있었으니까.”

그게 전부였다.

유지는 괜히 더 물어볼 수 없었다.

“잘 쓸게요.”

“응.”

차에서 내린 뒤 유지는 우산을 폈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도하의 차는 아직 그대로 서 있었다.

유지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휴대전화가 울렸다.

—올라가면 연락해.

유지는 화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저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려는 말일 뿐이었다.

처제니까.

가족이니까.

비 오는 날 혼자 두기 신경 쓰였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평범한 메시지가 오래 남았다.

잠시 뒤 유지가 답했다.

—지금 올라가요.

메시지는 금방 읽혔다.

도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몇 초 뒤.

아파트 앞에 서 있던 검은 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유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기다리고 있었던 이유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아직은.

그저 조금 신경 쓰이는 것뿐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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