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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기다리지 않는 척

Penulis: 에이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06 13:00:35

비가 그친 다음 날부터 유지는 도하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연락하지 않으려고 했다.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엎어두고 노트북을 켰다. 밀린 일을 처리하면 생각이 좀 정리될 줄 알았다.

십 분.

유지는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알림은 없었다.

다시 엎었다.

이번에는 이십 분쯤 버텼다.

또 확인했다.

없었다.

“뭐 하는 거야.”

유지는 휴대전화를 침대 위로 던졌다.

어제까지는 이렇지 않았다.

도하가 연락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비 오는 날 우산 아래에서 함께 걸은 뒤부터 이상해졌다.

자신 쪽으로 기울어 있던 우산.

비에 젖어가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던 도하.

잠깐씩 닿았던 손가락.

별것 아닌 장면들이 자꾸 떠올랐다.

유지는 눈을 감았다.

그럴수록 더 분명하게 생각해야 했다.

도하는 형부였다.

언니의 남편이었던 사람.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됐다.

그래서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왜 자꾸 기다리게 되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띠링.

유지가 거의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집었다.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순간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표정이 굳었다.

나현이었다.

유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왜?”

― 야, 첫마디가 왜 그렇게 실망한 목소리야?

“아니거든.”

― 누구 연락 기다렸어?

“아니.”

― 방금 그 ‘아니’는 백 퍼센트인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왜?”

나현이 웃었다.

― 나와. 밥 먹자.

“귀찮아.”

― 요즘 너 계속 집에만 있잖아. 얼굴 좀 보자.

잠시 고민하던 유지는 결국 약속을 잡았다.

집에 계속 있어봤자 휴대전화만 들여다볼 것 같았다.

저녁 일곱 시.

나현은 유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이상해.”

“뭐가?”

“휴대폰.”

유지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휴대폰이 왜?”

“아까부터 몇 번째 확인하는 줄 알아?”

“시간 본 거야.”

“벽에 시계 있는데?”

유지가 입을 다물었다.

나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남자 생겼네.”

“아니야.”

“있네.”

“없어.”

“썸?”

“그런 것도 없어.”

나현은 턱을 괴었다.

“그럼 왜 연락 기다리는 사람처럼 굴어?”

유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

그 표현이 이상하게 가슴에 걸렸다.

“그냥…… 연락 올 사람이 있어.”

“남자?”

유지는 물을 마셨다.

“중요한 사람은 아니야.”

말하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도하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떤 의미로 중요하다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나현이 갑자기 말했다.

“그럼 소개팅 할래?”

“뭐?”

“잘됐다. 마침 너 소개해달라는 사람 있어.”

“싫어.”

대답이 너무 빨랐다.

나현이 눈을 크게 떴다.

“왜?”

“그냥.”

“남자 없다며.”

“없다고 무조건 소개팅 해야 돼?”

“괜찮은 사람이야. 회사도 괜찮고, 사진 봤는데 잘생겼어.”

“관심 없어.”

“한 번 만나보는 건데 뭐.”

유지는 거절하려다가 멈췄다.

소개팅.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지금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하에게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도 최근 계속 붙어 있었기 때문일지 몰랐다.

“……언제인데?”

나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번 주 토요일.”

“한 번만이야.”

“오케이.”

나현은 바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유지는 괜히 자신의 화면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식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지는 평소보다 빨리 술을 마셨다.

“천천히 마셔.”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진짜 괜찮아.”

세 번째 잔이 비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유지의 손이 즉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정말 도하였다.

[집이에요?]

유지는 화면만 바라봤다.

나현이 맞은편에서 물었다.

“그 사람?”

“누구?”

“네가 기다리던 사람.”

“아니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지의 손가락은 이미 답장을 쓰고 있었다.

[아니요.]

잠시 뒤.

[어디예요?]

유지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괜히 화가 났다.

하루 종일 연락 한 번 없더니 이제 와서 어디냐고 묻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자격으로.

도하가 자신에게 매일 연락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나현아.”

“응?”

“나 소개팅 갈 거야.”

“아까 간다고 했잖아.”

“진짜 갈 거라고.”

“그래. 가.”

유지는 술을 한 잔 더 마셨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늦었는데 혼자 있어요?]

유지는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답장 대신 전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한 번 가기도 전에 연결됐다.

― 유지 씨?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왜요?”

― 술 마셨어요?

“조금.”

― 어디예요?

“왜 자꾸 어디냐고 물어봐요?”

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 걱정되니까요.

유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또 그 말이었다.

걱정.

챙김.

도하는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인데, 자신만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찾고 있었다.

“형부.”

― 네.

“나한테 잘해주지 마요.”

이번에는 침묵이 길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냥요.”

― 유지 씨.

“자꾸 그러니까…….”

유지는 말을 멈췄다.

술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오히려 평소에는 꺼내지 못할 말이 입가까지 올라왔다.

자꾸 기다리게 된다고.

연락이 오면 좋고.

안 오면 신경 쓰인다고.

비가 더 오래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유지는 눈을 감았다.

“나 이번 주에 소개팅 가요.”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도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안 궁금해요?”

― 뭘요?

“누구 만나는지.”

― …….

“진짜 좋은 형부면 잘됐다고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도하가 낮게 말했다.

― 유지 씨, 많이 취했어요.

“안 취했어요.”

― 위치 보내요. 데리러 갈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지가 웃었다.

왜 웃음이 나는지도 몰랐다.

“그래요.”

― 위치 보내요.

유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했다.

― 유지 씨.

“좋은 형부가 되고 싶으면…….”

목소리가 조금씩 느려졌다.

“데리러 와요.”

도하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쥔 채 유지의 눈이 감겼다.

“야, 한유지.”

나현이 황급히 휴대전화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도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 거기 어디입니까?

나현이 유지와 휴대전화를 번갈아 바라봤다.

“저기…… 누구세요?”

잠깐의 정적.

그리고 도하가 대답했다.

― 유지 씨 가족입니다.

나현의 눈썹이 올라갔다.

“가족이요?”

― 주소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나현은 잠든 유지를 내려다봤다.

방금 전까지 연락 하나에 표정이 몇 번씩 바뀌던 친구.

그리고 자신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은 남자.

나현은 천천히 가게 주소를 불러줬다.

전화를 끊고 중얼거렸다.

“가족이라…….”

그런데 이상했다.

유지가 기다리던 사람이 정말 가족뿐이라면,

왜 소개팅을 간다는 말을 하면서 저렇게 울 것 같은 얼굴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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