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78화 파면(2)"이중 장부가 조작이라고 했지?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화면에 떠오른 것은 스위스 은행의 서버 로그 기록이었다. 단순한 문서가 아니었다."이건 스위스 은행 본사에서 직접 발급받은 '멀티시그(Multi-Sig) 암호화 접속 로그'입니다. 서유라 씨와 강민우 대표의 지문 인식 데이터, 홍채 인식, 그리고 두 사람이 어젯밤 은신처에서 직접 접속했던 IP 주소까지 분초 단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지안의 목소리가 강당을 때렸다."조작? 세상 어느 해커가 네 지문과 네 망막을 복제해서 스위스 은행 방화벽을 뚫
끼이익-!검은색 마이바흐가 미끄러지듯 본사 입구에 멈춰 섰다.플래시가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조수석에서 먼저 내린 태경이 뒷좌석 문을 열었다. 어제 창고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던 남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체격과 서늘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의 모습에 기자들이 주춤했다.태경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지안이 차에서 내렸다.기자들의 마이크가 벌떼처럼 몰려들었다."서지안 부사장님! 간밤에 보도된 서유라 씨의 횡령 혐의가 사실입니까?!" "강민우 대표의 회사가 페이퍼 컴퍼니라는 의혹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
77화 파면(1)결전의 아침이 밝았다.오전 7시. 태경의 저택, 대리석으로 장식된 넓은 드레스룸 안.지안은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몸매의 선을 빈틈없이 살려주는 짙은 네이비색의 테일러드 수트. 발끝에는 뾰족하고 아찔한 검은색 스틸레토 힐이 신겨져 있었다. 머리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틀어 올렸고, 붉은 립스틱으로 포인트를 준 입술은 차갑고 오만한 서그룹의 진짜 주인다운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스르륵.드레스룸의 미닫이문이 열리며 태경이 들어왔다. 그 역시 맞춤 제작된 쓰리피스 블랙
"거짓말 마! 네가 빼돌렸지! 네가 혼자 쳐먹으려고 수작 부리는 거지! 당장 내놔, 이 사기꾼 새끼야!!"유라가 성한 오른손으로 민우의 얼굴을 할퀴었다."이 씨발년이 진짜 돌았나!"민우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유라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퍼억-!"아악!"유라가 코피를 터뜨리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민우는 그 위로 올라타 무자비하게 발길질을 시작했다."너 때문에! 네가 서지안 건드려서! 네가 그딴 허접한 작전 세워서 다 망한 거잖아!! 내 1,100억!! 내 인생!! 다 망쳤어!!""살려줘…… 아악! 컥!"좁고
76화 그물 걷기(2)"자, 이제 팝콘이나 가져와. 저 새끼들이 어떻게 타죽는지 구경해야 하니까."태경이 여유롭게 스크린 앞의 소파로 지안을 끌어당겨 앉혔다. 지안은 태경의 단단한 어깨에 기대어 화면을 응시했다.지옥의 문이 열렸다.같은 시각. 인천 부두 인근의 낡고 냄새나는 여관방.벽지는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고, 방 안에는 퀴퀴한 담배 냄새와 소주 냄새가 진동했다."아씨, 언제까지 이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해!"서유라가 신경질적으로 소주병을 벽에 집어 던졌다.쨍그랑-!"닥치고 가만히 좀 있어, 미친년아! 밖에는 경찰
75화 그물 걷기(1)사건이 있고 3주가 지났다.차태경의 회복 속도는 담당 주치의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경이로웠다. 골절되었던 갈비뼈는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고, 서유라의 칼날을 맨손으로 쥐어 너덜너덜해졌던 왼손의 신경과 인대 역시 집중적인 재활 덕에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기능이 돌아왔다.물론 손바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흉측한 흉터는 훈장처럼 남았지만, 태경은 오히려 그 상처를 훈장처럼 여겼다. 서지안을 지켜낸 증표였으니까.늦은 밤. 태경의 개인 저택, 거대한 킹사이즈 침대 위."하앗…… 아! 태경 씨, 천천히…… 흐
"벌써 이렇게 젖어서 물을 흘리고 있군. 강민우 밟아버린 쾌감이 여기로 다 몰렸나 봐?"태경이 비스듬히 조소하며 긴 손가락 두 개를 지안의 젖은 계곡 사이로 푹 찔러 넣었다.찌걱-!"아아악-!"예고 없는 침입에 지안이 허리를 활처럼 튕기며 비명을 질렀다. 좁고 뜨거운 내벽이 태경의 손가락을 미친 듯이 물고 늘어졌다."하아…… 씹, 엄청 조이네. 복수할 때 쓰던 독기는 어디 가고, 내 밑에서는 이렇게 천박하게 울어대고.""아앗! 하앙! 그런 말…… 흣! 아, 태경 씨, 손가락…… 더, 더 깊이……!"지안이 눈물이 맺힌 눈
22화 완벽한 승리(1)오후 2시. 국토교통부 대강당.블루문 프로젝트 최종 사업자 선정을 위한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이 진행 중이었다. 단상은 고요했지만, 장내를 채운 수백 명의 관계자들 사이에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맴돌았다.서그룹 전략기획본부장 서지안. 그녀는 단상 중앙에 서서 레이저 포인터로 대형 스크린을 가리키며 완벽한 브리핑을 이어가고 있었다."서그룹 컨소시엄은 이번 블루문 프로젝트의 핵심인 친환경 인프라 구축을 위해, 기존 설계안에서 탄소 배출량을 30% 이상 절감하는 신공법을 도입했습니다. 또한……."막힘없는 지안
21화 악몽(2)지안은 태경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남은 눈물을 닦아냈다."태경 씨……."지안이 고개를 들어 태경을 올려다보았다. 젖은 눈망울과 발갛게 달아오른 뺨, 그리고 아까 긁어서 살짝 붉어진 목덜미.그 처연하고도 애처로운 모습에 태경의 심장 한구석이 낯설게 쿵, 하고 내려앉았다. 지금껏 살아오며 누군가에게 동정이나 유대감 따위는 느껴본 적 없는 그였다. 하지만 품 안에서 파들파들 떠는 이 여자를 볼 때마다, 이성이 마비되고 짐승 같은 보호 본능이 끓어올랐다.지안 역시 마찬가지였다.악몽의 냉기에서 벗어나자, 태경의
20화 악몽(1)거실 소파에서의 격렬했던 정사가 끝난 후, 태경은 지친 지안을 안아 들고 침실로 향했다.넓고 푹신한 킹사이즈 침대 위. 태경의 단단한 품에 안긴 지안은 까무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낮 동안 이사회에서 겪었던 극도의 긴장감, 7,000억 원이라는 거대 자본이 안겨준 안도감, 그리고 태경이 퍼부은 짐승 같은 쾌락까지.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아친 탓에 그녀의 몸과 마음은 한계까지 방전된 상태였다.하지만 평온한 수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지안의 의식이 깊고 어두운 심연 밑바닥으로 속절없이 끌려 내려갔다.삐- 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