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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7화

Author: 금붕어
“업무 배치는 내가 내리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니, 네가 참견할 이유가 없어.”

“이혼 합의서요?”

송미연은 심장이 예리한 칼끝에 찔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

“우린 아직 법적으로 갈라서지 않았어요! 법적으로 난 여전히 오빠 아내라고요! 그런데 오빠는 지금 뻔뻔하게 다른 여자를 회사에 데려와서, 직원들 입에서 그 여자를 ‘사모님’이라 부르게 만들고, 내 일까지 빼앗아 그 여자한테 주려는 거잖아요! 도대체 내 기분이 어떨지, 단 한 번이라도 헤아려본 적은 있느냔 말이에요!”

“내가 왜 네 기분까지 배려해야 하지?”

육민성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다시 한번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어차피 헤어지기로 한 마당에 이런 사소한 일로 기 싸움 할 필요 없어. 로라는 지금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난 뭐든 다 들어줄 생각이니까.”

그는 오직 로라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내어주겠노라 선언했다.

비록 그 대가가 송미연의 존엄성을 처참히 짓밟고 그녀가 온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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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22화

    “그러게요. 송미연 씨랑 결혼한 뒤에도 육 대표님은 공식 석상에 한 번도 같이 나온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여자를 데리고 서밋처럼 중요한 자리에 나타나다니. 이건 대놓고 송씨 가문 얼굴에 먹칠하는 거죠. 송미연 씨 자존심도 완전히 짓밟는 거고.”“송미연 씨도 명문가 아가씨인데 참 안됐어요. 하필 이런 결혼을 해서 남편 있는 과부처럼 사는 것도 모자라 이런 수모까지 겪어야 하다니.”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차가운 빗물처럼 송미연의 마음을 적시자 손끝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송미연은 손에 든 물잔을 세게 움켜쥐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졌지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참담함까지 식혀 주지는 못했다.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이곳은 엄연한 공식 석상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사람들 앞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광경을, 아내인 자신은 정작 없는 사람처럼 내버려 두는 광경을, 송미연은 그저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그러던 그때, 행사장 입구 쪽에서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흩어져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은은하게 흐르던 바이올린 연주 소리마저 순간 작아진 듯했다.모든 시선이 입구에 집중됐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송미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봤다.곧이어 훤칠한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육민성이었다.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맞춤 정장 차림의 그는 넓은 어깨와 긴 팔다리가 한층 돋보였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쉽게 다가가기 힘든 위압감이 느껴졌다.넥타이는 매지 않은 모습이었다. 셔츠 단추를 살짝 풀어 둔 덕분에 평소의 딱딱한 분위기는 조금 누그러졌지만 오히려 특유의 여유롭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더 짙어졌다.짙은 눈썹과 또렷한 눈매, 곧게 뻗은 콧날과 굳게 다문 입술, 차갑고 무심한 인상은 여전했다.다만 그의 팔에는 로라가 바짝 붙어 있었다.오늘 그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21화

    서밋의 공식 개막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었지만 행사장에는 벌써부터 손님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인사를 나누면서도 틈만 나면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이 자리의 진짜 주인공, 천공연구원의 육민성을 기다리는 것이었다.육민성이 공개 석상에 여성을 동반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기업 행사에 참석할 때조차 대부분 혼자였고 곁에 누군가가 있다 해도 비서나 회사 임원 정도가 전부였다.결혼한 뒤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그런 육민성이 오늘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과 함께 참석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은산시의 사교계가 발칵 뒤집혔다. 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육민성이 그동안의 원칙까지 깨 가며 직접 데리고 나타나는지 모두가 궁금해했다.그 시각, 행사장 한쪽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리한 조용한 휴게 공간.송미연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든 채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잔을 감싼 손끝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오늘 그녀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심플한 아이보리빛 새틴 드레스 차림에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느슨하게 틀어 올려 가녀린 목선과 단정한 쇄골을 그대로 드러났다.화장도 옅었으나 그럼에도 타고난 단아함과 청초한 분위기까지 가려지지는 않았다.다른 재벌가 아가씨들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채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인맥을 쌓지도 않았다. 마치 눈앞의 화려하고 떠들썩한 세상과 자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라도 그어진 것처럼, 송미연은 그저 이곳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녀는 육민성이 정식으로 맞아들인 아내이자 법적으로도 명백한 육민성의 부인이었다.두 사람의 결혼은 두 가문 간의 정략결혼으로 시작됐다.송씨 가문은 육씨 가문만큼 막강한 권세를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은산시에서 꽤 오랜 세월 명성을 이어 온 명문가였다.그러니 두 사람의 결혼은 양가 모두에게 득이 되는 혼사였고, 남들이 보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부부였다.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껍데기뿐이었다는 걸, 송미연만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20화

    예전의 육민성은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늘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송미연과는 비록 계약 결혼으로 얽힌 관계였을지언정 늘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를 다했고, 위기의 순간에는 솔선수범하여 곁의 사람들을 지켜내곤 했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눈먼 애정에 사로잡혀 차갑고 편협해졌으며 공과 사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곁에 둔 새로운 연인을 위해 오랜 세월 비바람을 함께 견뎌온 동반자의 품위를 무참히 짓밟고 희생양으로 삼는 모습은, 최수빈이 아는 이라 생각하기 힘들 만큼 지독하게 낯설고 이질적이었다.육민성은 최수빈의 모진 다그침에 자극받아 주먹을 꽉 쥐었으나 이내 무거운 침묵을 깨고 돌아온 목소리는 여전히 고집스럽고 딱딱했다.“사람은 누구나 변해. 내가 내린 결정이니, 그 책임 역시 내가 지면 그만이야.”“선배는 이 일에 결코 책임지지 못해요.”최수빈의 눈빛이 서늘하게 불타올랐다.“로라 씨에 대한 인사 명령을 즉각 철회하고 송미연을 제자리로 복귀시키든가, 아니면 주민혁이 돌아오는 대로 주주총회를 소집해 경영권 박탈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든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하세요.”동업자로서 건넬 수 있는 최후의 통첩이었다.육민성이 여기서 폭주를 멈추기만 한다면, 최수빈 역시 파국으로 치달을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육민성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내 결정은 바뀌지 않아.”최수빈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처참한 환멸에 휩싸였다. 눈앞의 남자는 이미 그녀가 알던 육민성이 아니었다.사랑에 눈이 멀어 사리 분별을 못 하니, 아무리 옳은 말을 들려주어도 그저 쇠귀에 경 읽기였다.그녀는 들끓는 분노를 꾹 누르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한때 나눴던 동지애 대신, 오직 싸늘하게 식어버린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엄격한 선만 존재할 뿐이었다.“좋아요. 끝까지 독단을 부리겠다면 그 결과 또한 선배가 온전히 책임져야 할 겁니다. 오늘부로 나 역시 천공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뗄 테니까요.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19화

    최수빈은 로라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육민성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미연이가 맡고 있던 천공연구원의 법무 대리인 자리를 빼앗아, 저 로라 씨한테 주기로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육민성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라도 대하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그래.”“선배 지금 제정신이에요?”최수빈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가며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천공은 선배 개인 사유물이 아니에요. 주요 보직을 바꾸고 비즈니스 담당자를 교체하는 건 선배가 사적으로 내뱉은 말 한마디로 결정할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고요. 미연이는 이 사업의 초기 기획 단계부터 관여해 계약 조건과 리스크 요인, 다국적 조항까지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유일한 적임자예요. 그런데 국내 법체계조차 모르는 데다 실무 지식이 전무한 로라 씨한테 이 중책을 넘기겠다는 건, 지금 진행 중인 비즈니스를 장난감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어요.”이 항변은 단순히 친구인 송미연을 비호하기 위한 감정싸움이 아니었다. 철저히 기업 공동 창립자이자 동업자의 시각에서 던지는 매서운 경고였다.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기업의 시스템을 흔들어놓은 육민성의 이번 조치는, 명백한 월권이자 주주들을 기만하는 독단이었다.육민성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며, 여전히 서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실무는 전문 인력들이 뒤에서 보좌할 테니, 네 우려처럼 문제 생길 일은 없어.”“문제가 없다고요?”최수빈은 기가 막힌 듯 실소를 터뜨렸다.“법무 대리인이라는 자리는 기업 간 협력을 가능케 하는 전제 조건이자, 리스크를 제어하는 마지막 방어선이에요. 여기서 계약상 구멍 하나만 터져도 타격을 입는 건 선배 개인의 체면뿐만이 아니에요. 천공연구원 전체의 신뢰는 물론, 송찬 그룹과의 비즈니스 동맹까지 단숨에 무너진다고요. 단지 로라 씨가 탐을 낸다는 유치한 이유로, 오랫동안 이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책임자를 이렇게 가볍게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18화

    그리고 그 따뜻한 친절을 오직 로라에게만 쏟아부으면서, 자신에게는 차가운 냉대와 상처만을 남겨둔 남자의 지독한 무정함 때문이었다.송미연은 넋이 나간 상태로 천공연구원을 벗어났지만, 집으로도, 제 본래 일터인 송찬 그룹 본사로도 향하지 못한 채 차 안에서 홀로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창밖으로는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지나가고 도시는 소란스러웠으나, 그녀에게는 온 세상이 정지해 버린 채 오직 아릿하게 고동치는 제 심장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로라의 득의양양한 미소, 동료들의 수군거리는 시선, 육민성의 서늘하고 단호한 표정,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들어줄 생각이다’라던 잔인한 약속이 머릿속을 맴돌며 매 순간 심장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이혼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 제 삶의 가장 비참한 바닥일 거라 믿었건만, 육민성이 보여준 무정함의 끝은 고작 서명 한 장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깊고 잔혹했다.그는 그녀의 마지막 남은 자부심과 일터를 빼앗았고 최소한의 체면마저 처참히 짓밟았다. 온 회사 사람들 앞에서 로라가 안주인 행세를 하도록 방치한 것은 노골적인 차별과 멸시로 그녀의 존엄성을 완전히 짓밟아 뭉개버린 것과 다름없었다.끝내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송미연은 최수빈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끊기고 연결되었다.“수빈아... 나 너무 아파.”겨우 그 한마디만을 간신히 토해낸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집에서 율이와 놀아 주던 최수빈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송미연의 물에 젖은 듯 허물어지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곧바로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내려놓고 서둘러 딸아이를 달래어 방으로 들여보낸 뒤, 주민혁에게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를 남기고 송미연이 있는 곳을 향해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현장에 도착해 마주한 송미연의 모습은 처참했다. 운전대에 고개를 파묻은 채 붉어진 눈으로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는 그녀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손쓸 수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17화

    “업무 배치는 내가 내리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니, 네가 참견할 이유가 없어.”“이혼 합의서요?”송미연은 심장이 예리한 칼끝에 찔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우린 아직 법적으로 갈라서지 않았어요! 법적으로 난 여전히 오빠 아내라고요! 그런데 오빠는 지금 뻔뻔하게 다른 여자를 회사에 데려와서, 직원들 입에서 그 여자를 ‘사모님’이라 부르게 만들고, 내 일까지 빼앗아 그 여자한테 주려는 거잖아요! 도대체 내 기분이 어떨지, 단 한 번이라도 헤아려본 적은 있느냔 말이에요!”“내가 왜 네 기분까지 배려해야 하지?”육민성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다시 한번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어차피 헤어지기로 한 마당에 이런 사소한 일로 기 싸움 할 필요 없어. 로라는 지금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난 뭐든 다 들어줄 생각이니까.”그는 오직 로라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내어주겠노라 선언했다.비록 그 대가가 송미연의 존엄성을 처참히 짓밟고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쌓아 올린 오랜 커리어를 빼앗으며 홀로 감내해야 할 억울함을 철저히 외면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육민성의 가슴팍에 기댄 로라가 비열한 실소를 숨긴 채, 순진무구한 표정을 가장하며 가증스럽게 속삭였다.“송미연 씨, 그냥 양보해 줘요. 앞으로 민성 씨랑 얽힐 일도 없을 텐데, 직함 하나 가지고 왜 이렇게 유난을 떨어요? 굳이 양쪽 다 피곤하게 굴 필요 없잖아요.”“피곤하게 군다고요?”송미연은 눈앞의 파렴치한 두 사람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이건 내 일이에요. 온전히 내 노력으로 일구어낸 내 영역이고, 내 자리라고요! 당신들이 적선하듯 던져준 것도 아니고, 기분에 따라 멋대로 가로챌 수 있는 가벼운 물건은 더더욱 아니죠. 그러니 난 이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요.”송미연은 흐트러짐 없는 기세로 육민성을 똑바로 쏘아보았다.“공적으로 합당한 사유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전 절대로 인수인계를 진행하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육민성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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