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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作者: 금붕어
“그 사람이 그렇게 할 리는 없잖아. 그래서 이 일은 네가 나서줘야 해. 네가 나서서 시후가 너와 그 사람의 양자이고 박하린의 친자가 아니라는 말을 해줘야지.”

그게 지금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소송이 얽혀 있고 박하린의 신분도 결코 깨끗하지 않았다.

최수빈은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의실에서 나 기다리라고 해.”

...

회의실에 앉아 있는 박하린은 불안함이 가시질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최수빈이 들어오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여전히 차갑고 단정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위치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소피아가 최수빈이었다니, 그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몇 번이나 마주쳤으면서도 그녀가 바로 그 ‘소피아’라는 걸 한 번도 의심해보지 못했다.

박하린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오늘 이 상황... 수빈 씨가 바라던 그림이겠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정하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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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46화

    어젯밤 강지안은 의식을 잃었다.마지노선도, 체면도, 자신이 지켜오던 모든 것을 잃었다.그리고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바로 눈앞의 이 남자가 있었다.장성훈은 뺨을 맞은 충격에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옆얼굴에는 금세 선명한 손자국이 떠올랐고 그 흔적은 보기만 해도 눈에 거슬릴 만큼 또렷했다.하지만 그는 손을 들어 만져보지도 않았고 그저 천천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길고 짙은 속눈썹이 아래로 드리워지며 눈빛 속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감췄다.죄책감, 안타까움, 후회, 그리고 자신조차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랑이라는 감정...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도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아무리 그럴듯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해도 이미 벌어진 사실 앞에서는 초라하고 위선적으로 들릴 뿐이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장성훈은 다시 눈을 떴다.그리고 침대 구석에 웅크린 채, 산산이 찢겨버린 작은 짐승 같은 모습으로 있는 강지안을 바라봤다.장성훈의 목소리는 쉬었는지라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어떻게 화풀이하고 싶든... 다 받아들일게요. 때려도 되고 욕해도 되고 저한테 어떻게든 해도 돼요. 전부 감당하겠습니다.”강지안은 그를 뚫어지게 노려봤다.눈가는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맺혀 있었지만 끝까지 버텼다.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완전히 절망한 사람처럼 더는 아무 기대도 남지 않은 목소리였다.“성훈 씨한테 벌주고 싶은 게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건 하나예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요. 이제부터 나랑 성훈 씨는 완전히 끝인 겁니다. 이제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닌 거예요.”장성훈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대한 바위에 짓눌린 것처럼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어렵다고요?”강지안은 마치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곧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장성훈 씨, 도대체 언제까지 날 붙잡고 있을 거예요? 내가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45화

    장성훈의 몸이 순간 굳었다. 내딛으려던 발걸음도 그대로 멈췄고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하지만 강지안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그저 침대 옆에 그대로 서서 자신을 붙잡은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그렇게 밤은 조용히 지나가는 듯했다.창밖의 어둠은 깊어지고 세상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밤이 깊어지기 전까지 강지안은 아주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약효는 완전히 억눌린 듯했고 더 이상 이상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장성훈은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채 한순간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잠시 후에는 흐트러진 이불을 살며시 정리해주고 또 잠든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 체온을 확인했다. 정상이란 걸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그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잠든 얼굴만 바라보았다.평온하고, 부드러운 얼굴...차갑게 밀어내던 모습도, 날을 세우던 모습도 온데간데없었다.마치 오랜 시간 움켜쥐고 있던 경계심을 마침내 내려놓은 작은 짐승처럼 편안해 보였다.장성훈의 마음 한구석은 한없이 부드러워졌다.이 순간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는 간절히 바랐다.서로를 향한 원망도 없고, 계산도 없고, 민채영도 없고, 잃어버린 기억도, 상처도 없는 세상...아무 걱정 없이 평온하게 오직 자신과 그녀만 있는 이 순간이 유지되길 바랐다.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 약의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했고 한 번의 주사로 억제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밤이 깊어지기 전까지라는 것을.밤이 깊어지면 약효는 다시 치솟을 것이며 처음보다 훨씬 거세게 몰아칠 터였다.새벽녘, 어둠이 가장 짙어진 시각.강지안이 갑자기 작게 신음했다.“으음...”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뜨거운 열감이 다시 온몸을 휩쓸었기 때문이었다.전보다 훨씬 뜨겁고 훨씬 괴로워 정신을 붙잡고 있기조차 힘들 정도였다.강지안은 순간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깨어난 의식은 순식간에 약효에 잠식됐다.눈앞은 흐릿했고 겨우 보이는 건 침대 옆에 앉아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44화

    “그럼 서두르세요.”의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사기를 꺼내 약을 준비했다.강지안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손을 대려는 걸 느끼자 순간 불안감에 휩싸여 몸부림쳤다.그리고 겁먹은 듯 소파 안쪽으로 몸을 웅크렸다.“싫어요... 하지 마요...”“아가씨, 괜찮아요.”장성훈은 곧바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눌러 몸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의사 선생님이에요. 주사만 맞으면 괜찮아질 거니까 조금만 참아요, 네?”어쩌면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안정적이어서였을까, 아니면 너무 괴로운 나머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던 걸까...강지안은 정말로 조금 진정된 듯했다.다만 그의 옷소매만은 꼭 붙잡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남은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의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주사를 놓은 뒤, 물을 조금 먹여 약까지 삼키게 했다.모든 과정은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곧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강지안의 몸을 휘감던 뜨거운 열기는 조금씩 가라앉았다.혼란스럽던 의식도 서서히 맑아졌고 거칠던 숨소리도 차츰 안정됐다.붉게 달아올랐던 얼굴 역시 천천히 원래의 빛을 되찾았으나 아직 몸에는 힘이 없었다.그녀는 소파에 기대 눈을 감은 채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마침내 더 이상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됐다.장성훈은 내내 강지안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얼마 후 의사가 말했다.“도련님, 이제 괜찮습니다. 약효는 일단 눌러놨고 환자분도 안정됐어요. 오늘 밤 푹 쉬면 내일이면 괜찮아질 겁니다. 약은 두고 갈 테니 시간 맞춰 복용하시면 돼요.”“고생 많으셨어요.”장성훈의 목소리는 조금 쉰 듯했다.“이게 제 일인걸요.”의사는 짐을 정리하며 말했다.“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혹시 이상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의사가 떠나고 문이 조용히 닫히며 거실에는 다시 두 사람만 남았다.강지안은 이미 대부분 정신을 차린 상태였으나 몸은 여전히 힘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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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신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강지안은 층수를 누른 뒤, 차가운 엘리베이터 벽에 몸을 기대었다.차가운 감촉으로 몸 안에서 치솟는 열기를 억누르려 한 것이다.하지만 그 미약한 냉기만으로는 미친 듯이 퍼지는 약효를 막을 수 없었다.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귓가에는 자신의 심장 소리만 쿵쿵 울렸다. 온몸은 뜨겁고 힘이 풀려 손끝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어느 순간에는 진료실의 새하얀 벽이 떠올랐고 또 어느 순간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고양이의 몸이 떠올랐다.그리고 뜬금없이 장성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그 얼굴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기 위해 강지안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안 돼. 그 사람은 생각하면 안 돼. 절대로.’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강지안은 거의 넘어지듯 밖으로 뛰쳐나갔다.열쇠를 꺼냈지만 손이 너무 떨려 몇 번이나 열쇠 구멍을 맞추지 못했다.“찰칵.”마침내 문이 열렸다.강지안은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간 뒤, 급히 문을 닫았다.그런 다음 문에 등을 기댄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고요한 집 안에 들리는 건 오직 흐트러진 그녀의 숨소리뿐이었다.약효는 이미 완전히 퍼진 상태라 몸 안에 수많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괴로웠다.뜨겁고 간지럽고 견디기 힘든 감각에 미칠 것만 같았다.이성이 조금씩 무너지고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었다.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그저 너무 괴롭다는 것뿐이었다.약을 사야 했다. 약국에 가서 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약을 구해야 했다. 이대로 계속 버티다가는 정말 견디지 못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강지안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짚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아직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눈앞은 계속 캄캄해졌다.다시 밖으로 나가기 위해 그녀는 벽을 짚은 채 한 걸음씩 겨우 움직여 문 앞으로 향했다.하지만 그녀는 몰랐다.그녀가 비틀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온 순간, 아래층에 그 검은 승용차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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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돌아가서 민채영 씨나 잘 챙겨요. 지금 한창 속상해하고 있을 텐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요.”마지막 말에는 은근한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 한마디가 장성훈의 가슴을 찌르듯 아프게 파고들었다.단호하게 자신을 밀어내는 강지안의 모습을 바라보며 장성훈은 더 억지로 붙잡아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자신이 조금이라도 강요하면 할수록 그녀는 더 거부감을 느끼고 더 멀어질 뿐이었다.그래서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장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요.”“안 데려다줘도 돼요.”“그럼 조심해서 가요. 차 타기 전에 차 번호 나한테 보내고 집 도착하면... 무사히 도착했다고 연락해 줄 수 있어요?”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강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장성훈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녀가 차를 기다리는 데 방해되지 않는 곳에 서서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강지안은 곧바로 문을 열고 몸을 숙여 올라탔다.처음부터 끝까지 장성훈을 돌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치 그를 완전히 없는 사람처럼 대하는 듯했다.차 문이 닫히고 택시는 천천히 출발했다.강지안은 뒷좌석에 기대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장성훈과 대화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 지치는 일이었다. 한마디 한마디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고 매 순간 경계해야 했으며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과 분노를 꾹 눌러 참아야 하니 말이다. 이제는 그와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다.일에 집중하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자신의 고양이를 해친 사람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하지만 강지안은 몰랐다.택시가 출발한 순간, 어둠 속에 있던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소리 없이 뒤를 따라붙었다는 것을.장성훈은 뒷좌석에 앉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앞서가는 택시만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약속했었다.강지안의 삶을 방해하지 않겠다고.억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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