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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금붕어
주민혁의 무심한 목소리가 유독 귀에 거슬렸다.

고개를 돌린 최수빈은 그의 새까만 눈동자를 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눈빛이었다.

주민혁은 늘 그랬듯이 모든 것을 그녀와 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무턱대고 박하린과 주시후의 편을 들었다.

주민혁은 최수빈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박하린을 바라보며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아침 먹자.”

그는 심지어 주예린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두 사람과 함께 병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최수빈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말이다.

주민혁의 냉담한 태도에 최수빈의 눈빛이 한없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사람을 무시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이런 모욕을 견뎌왔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이었다.

최수빈이 주민혁의 사랑을 받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않았다면, 일찌감치 딸을 데리고 떠났다면 지난 생에 주예린이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엄마, 저 많이 좋아졌으니까 저희 오늘 퇴원해요.”

시선을 내려뜨린 최수빈은 철이 든 딸의 모습에 가슴이 찢기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누가 괴롭히면 절대 참지 마. 알겠지?”

주예린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

최수빈은 주예린을 위해 퇴원 절차를 밟은 뒤 엄마를 만나러 갔다.

최수빈의 엄마는 교외에 있는 별장에 살고 있었다. 도심과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공기가 맑고 풍경이 아름다워서 좋았다.

최수빈의 엄마는 최수빈의 아빠와 이혼하고 싶어 했으나 최수빈의 아빠가 줄곧 동의하지 않아 혼자 이곳으로 와서 살고 있었다.

최수빈은 딸을 데리고 엄마를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했다.

주예린은 외할머니를 보자 신나서 곧장 그녀에게 달려가 안겨서 애교를 부렸다.

이혜정은 웃으며 주예린을 안아 들었다.

“어머, 우리 예린이 키가 또 컸네. 오늘은 뭐 먹고 싶어? 외할머니가 다 해줄게.”

“갈비찜 먹고 싶어요!”

“그래. 외할머니가 갈비찜 해줄게.”

이혜정은 주예린과 잠깐 시간을 보내다가 주예린에게 위층으로 올라가서 TV를 보고 있으라고 한 뒤 최수빈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수요일이라서 바쁠 텐데 웬일로 온 거야?”

최수빈은 의자에 앉았다.

“요즘 사업은 잘돼가요?”

이혜정은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매출이 떨어져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 사업 때문에 최진식이 이혜정과 이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부부로 지내서 재산 분할을 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익 관계도 복잡해서 이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최진식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고 그 여자는 최진식을 위해 아들 한 명, 딸 한 명을 낳았다. 그 때문에 최진식은 줄곧 최수빈을 좋아하지 않았다.

최수빈이 주민혁과 결혼한 뒤 최진식은 주민혁의 인맥을 이용하여 사업하려고 했다.

그러나 주민혁은 최수빈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집안 사정에 관심이 없었고, 그 탓에 최진식은 이혜정에게 자기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아이를 낳았다면서 이혜정을 모욕했다.

이혜정이 대답했다.

“그냥 똑같지, 뭐.”

최수빈은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동안 최수빈은 여윳돈이 생기면 모두 이혜정에게 주었지만 그녀의 사업에는 크게 신경을 기울이지 못했다.

최수빈은 지난 생에 주민혁에게만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최수빈의 딸이 사망하기 이틀 전 이혜정은 파산했다.

“다음에 돈 보내드릴 테니까 회사 내부 운영 방식을 바꿔보세요. 지금의 방식은 너무 구식이에요. 시대에 뒤처졌다고 볼 수 있죠. 신재생에너지 같은 새로운 산업도 한 번 고민해 보세요. 그리고 회사 내부의 보수적인 경영진도 과감히 바꾸시고요.”

이혜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최수빈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난 돈이야? 설마 민혁이가...”

“아니에요.”

최수빈은 아주 단호히 말했다.

“저 이혼하려고요.”

주민혁과 결혼한 지 꽤 됐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최씨 가문의 일에 간섭한 적이 없었다. 최씨 가문이 파산하기 직전에도 그랬다.

그러나 박하린이 해외에서 유학하다가 돈을 다 쓰면 몇억씩 흔쾌히 보내줬다.

당시 삼촌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혜정은 아마 수백억대의 채무를 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혜정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최수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다 엄마가 능력이 없는 탓이야. 친정이 너를 든든하게 지켜줄 수 있었다면 주씨 가문에서 그렇게 시달리며 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이혜정은 고개를 돌리면서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그랬다면 그동안 쭉 참고 살다가 이제야 이혼하려고 했을 리도 없었겠지.”

“다 지난 일이에요.”

처음부터 주민혁과 결혼하려고 고집을 부리면 안 되었다.

사랑에 빠진 그녀는 자신이 조강지처가 되면 주민혁이 자신을 사랑해 줄 거라고 착각했다.

...

최수빈은 이혜정에게 딸을 맡긴 뒤 회사로 가서 퇴사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회사 로비에서 최수빈은 주민혁과 마주쳤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주민혁은 급한 일이 있는지 밖으로 빠르게 나가고 있었고, 최수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옆으로 비켜섰다.

주민혁은 늘 습관적으로 최수빈을 무시했다.

그녀가 인사를 건네도, 존재감을 드러내도 주민혁은 언제나 못 본 척했다.

“민혁 오빠, 여기야!”

문밖에서 박하린이 웃는 얼굴로 주민혁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왜 직접 내려왔어? 내가 알아서 올라가면 되는데.”

최수빈은 문득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날에도 주민혁이 한 번도 자신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걸 떠올렸다. 상대가 달라지니 그의 태도도 달라졌다.

최수빈은 덤덤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는 두 사람이 뭘 하든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최수빈은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탔고 5층에 있는 인사팀으로 가서 사직서를 전달했다.

인사팀 직원 장혜윤이 뜻밖이라는 듯이 말했다.

“정말 그만두려고요? 저는 그냥 농담인 줄 알았는데요.”

다들 최수빈이 일개 비서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회의실로 마실 것을 가져다주는 것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를 챙겨야 하니 복잡한 업무는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주민혁은 최수빈을 무시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럼에도 최수빈은 늘 주민혁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 그랬던 그녀가 오늘 갑자기 사직서를 내니 장혜윤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최수빈은 별로 대꾸하고 싶지 않아 차가운 표정으로 짧게 말했다.

“네.”

장혜윤은 최수빈의 태도를 보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별 볼 일 없는 비서가 그녀 앞에서 무게를 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주민혁의 여자 친구가 회사로 왔다는 소식에 회사 직원들 모두 깜짝 놀랐다. 다들 주민혁의 여자 친구가 해외에서 금융공학과 항공우주공학 석사 복수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라고 했다.

주민혁과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최수빈은 주민혁의 여자 친구가 얼마나 훌륭한 여자인지를 알고 자신은 그녀와 비교도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뒤 자괴감에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 됐어요.”

장혜윤이 최수빈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수빈 씨, 제가 충고 하나 할게요. 앞으로 어디서 일을 하게 되든 넘보지 말아야 할 사람은 넘보지 말아요.”

최수빈은 그 말을 듣고 과거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처지였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녀는 주민혁을 그토록 사랑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녀는 자기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주민혁을 넘본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던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지난 생은 어쩌면 하늘이 그녀에게 내린 벌일지도 몰랐다.

최수빈은 티 나지 않게 심호흡을 한 뒤 덤덤한 눈빛으로 장혜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충고 고마워요. 하지만 제 커리어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최수빈은 인사팀을 떠난 뒤 로비로 내려갔다. 주민혁과 박하린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예전에는 매일 최수빈을 마주치고 싶었는데 지금은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었다.

최수빈은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주민혁이 갑자기 여유로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최수빈, 커피 한 잔 타서 하린이 사무실로 가져다줘.”

박하린이 곧바로 말했다.

“민혁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언니가 탄 커피가 엄청 맛있다고요. 민혁 오빠는 언니가 집안일을 엄청 잘한다고 칭찬했어요. 저는 이런 섬세한 일은 잘 못하거든요. 참, 커피는 핸드드립 커피로 가져다주세요. 인스턴트는 입에 안 맞아서요.”

최수빈은 걸음을 멈추고 박하린을 힐끗 보았다.

“주민혁 씨 사무실에 찻잎이 있거든요. 그거 우려서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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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502화

    “길어도 석 달이야. 석 달 뒤에는 꼭 무사히 돌아올게. 응?”최수빈은 주민혁을 바라보았다. 더 말려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기다릴게요. 대신 반드시 몸조심해야 해요. 매일 나랑 율이한테 무사하다고 연락하고, 무슨 일이 생겨도 혼자 다 떠안지 마요. 꼭 나한테 말해야 해요. 알았죠?”“응, 알았어.”주민혁은 고개를 숙여 최수빈을 꼭 끌어안았다. 마치 그녀를 제 품 안에 완전히 새겨 넣기라도 하려는 듯했다.“나 돌아올 때까지만 기다려줘. 돌아오면 그땐 우리 가족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그 뒤 이틀 동안, 주민혁은 해외 조사 준비를 숨 돌릴 틈 없이 진행했다.해외 쪽 인맥에 연락을 넣고 현지 숙소와 동선을 모두 마련했으며 정예로 꾸린 경호팀을 선발했고 최신 장비까지 갖추게 했다.또 홍승헌과 국제 수사 공조팀과도 연락을 맞춰 심종연과 관련된 자료와 해외 단서를 넘겨받았다.물론 주상 그룹의 업무도 정리했다. 회사의 일상 업무는 신뢰할 만한 측근에게 맡겼고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최수빈과 율이를 잘 살펴봐 달라고 육민성과 송미연에게도 부탁했다.육민성과 송미연 역시 주민혁이 심종연을 조사하러 해외로 간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결심을 돌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두 사람은 주민혁에게 자신 있게 약속했다. 반드시 최수빈과 율이를 잘 지키고 은산시도 든든히 지켜둘 테니 해외에서는 뒤돌아보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라고.출국 전날 밤, 주민혁은 일부러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최수빈, 율이와 함께 저녁밥을 먹었다.식탁에서 율이는 주민혁에게 찰싹 붙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주민혁은 끝까지 다정하게 들어주며 이따금 손을 뻗어 딸아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빛에는 온통 애정이 어려 있었다.그런 부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최수빈의 마음속에서는 깊은 아쉬움이 밀려왔다.그녀는 애써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며 주민혁이 좋아하는 반찬을 집어주었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501화

    심종연이 해외로 도주했다는 건, 주민혁이 그를 쫓아 해외까지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해외에서의 위험은 국내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내가 직접 해외로 가서 놈의 행방을 추적할 생각이야. 반드시 찾아낼 거야.”주민혁이 최수빈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미안해. 또 걱정하게 만들어서.”최수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주민혁을 세게 끌어안더니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줄 알았어요. 민혁 씨라면 분명 그럴 줄 알았어요. 민혁 씨, 해외는 너무 위험해요. 그곳에 있는 심종연의 세력은 크고요. 가면 안 돼요. 내가 허락 안 해요.”최수빈은 심종연의 보복이 두렵지 않았다. 은산시에 몰아칠 풍파도 두렵지 않았다.그녀가 두려운 건 오직 주민혁이 잘못되는 일이었다. 그는 그녀의 하늘이었고 버팀목이었으니 말이다.그런 주민혁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최수빈과 율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주민혁은 손을 들어 최수빈의 등을 가만히 토닥이며 부드럽게 달랬다.“걱정하는 거 알아. 하지만 난 가야 해. 심종연을 완전히 잡아내지 않는 한, 우린 하루도 편히 지낼 수 없어. 놈이 해외로 도망쳤다는 건, 거기서 다시 힘을 모아 되돌아오겠다는 뜻이야. 그때가 되면 우리뿐만 아니라 율이에게까지 더 잔혹한 방식으로 보복하려 들 거야. 난 너희를 위험 속에 두고 볼 수 없어. 그러니까 직접 해외로 가서 놈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해. 그래야 후환이 없어.”“하지만 해외는 우리 영역이 아니잖아요. 갔다가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난 어떡해요? 율이는 어떡하고요?”최수빈의 목소리는 점점 더 떨렸다.마치 손을 놓는 순간 그가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녀는 주민혁을 꼭 끌어안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아무 일 없을 거야.”주민혁은 고개를 숙여 최수빈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해외에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인맥과 자원이 있어. 경찰 쪽 국제 수사 공조팀에서도 내 행동에 협조해줄 거고. 내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500화

    주민혁은 경계비에 기대어 서서 손을 들어 얼굴에 묻은 땀과 흙탕물을 훔쳤다.그러자 홍승헌이 주민혁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주 대표님, 죄송합니다. 결국 놈을 놓쳤네요.”목소리에서는 자책하는 기색이 느껴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상부에 국경을 넘어 추적할 수 있게 허가를 요청했으니까요. 허가가 내려오는 즉시 해외로 가서 놈을 체포하겠습니다.”주민혁은 고개를 저었다. 눈빛에 깔린 냉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상부 허가가 내려올 때쯤이면, 놈은 이미 멀리 달아났을 겁니다. 심종연은 해외에서 오래 세력을 키워 온 사람이에요. 기반도 넓고 깊죠. 자기 구역으로 돌아가 버리면 그때는 잡는 게 거의 불가능해집니다.”그는 심종연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심종연은 치밀하고 빈틈없는 사람이기에 해외로 도망칠 생각을 했다면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 두었을 것이었다.경찰의 국경 너머 추적 허가가 내려올 무렵이면, 심종연은 이미 자신의 세력권 깊숙이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컸다.그렇게 되면 바다에 돌을 던진 것처럼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질 터였다.“그럼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홍승헌이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주민혁을 바라보며 물었다.주민혁은 고개를 들어 국경선 너머의 숲을 바라보았다.“제가 직접 해외로 갈 거예요. 놈의 행적을 추적할 겁니다. 온 지구를 헤집더라도 반드시 찾아낼 거예요.”“안 됩니다. 그건 너무 위험해요.”홍승헌이 곧바로 반대했다.“해외는 우리 관할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심종연의 세력은 막강하고요. 때문에 대표님이 직접 가는 건, 호랑이 굴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저 혼자 가는 게 아닙니다.”주민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경호팀을 데려갈 거예요. 모두 전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고 해외에도 제가 쓸 수 있는 인맥과 자원이 있습니다. 제 몸 하나 지킬 정도는 돼요.”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무엇보다 심종연을 없애지 않는 한, 저와 제 가족, 그리고 은산시의 모두가 편히 살 수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499화

    경찰들은 일제히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총성이 들려온 방향을 향해 대응 사격을 시작했다.양측의 총격전은 순식간에 격렬해졌다.총알이 숲속을 가르며 날아다녔고 나무줄기에 박힐 때마다 나무껍질과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홍승헌은 나무를 엄폐물 삼아 몸을 낮춘 채,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앞쪽을 살폈다.심종연은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몇 명의 호위를 받으며 국경선 쪽으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그 검은 옷의 남자들은 움직임이 날렵했고 사격도 정확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들이 분명했다.“역시 숨겨 둔 패가 있었군.”홍승헌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일부는 양쪽으로 돌아서 포위해! 반드시 놈들을 막아야 한다!”경찰들은 즉시 두 팀으로 나뉘었다. 양쪽 숲길로 우회해 심종연 일당을 포위하려 한 것이다.하지만 심종연의 부하들 역시 이미 대비하고 있었는지 양쪽 길목을 단단히 틀어막고 경찰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총격전은 삼십 분 넘게 이어져 경찰 쪽에서도 두 명이 부상을 입었다.그럼에도 검은 옷의 남자들이 세운 방어선을 뚫을 수 없었다.혼란스러운 총격전이 벌어지는 사이, 심종연은 부하들의 엄호를 받으며 조금씩 국경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점점 경계비에 가까워지는 심종연을 바라보자 홍승헌은 속이 타들어 갔다. 그러나 당장 뾰족한 수가 없었다.‘이대로라면 곧 국경을 넘어갈 텐데... 그럼 모두 끝장이야.’바로 그때, 주민혁이 경호 인력 한 팀을 이끌고 도착했다.그들은 차를 몰고 국경 숲 입구까지 달려온 뒤, 곧바로 차에서 내려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총성이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홍 팀장님, 도착했습니다.”주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가 데려온 이들은 특수부대 출신의 전문 인력이었다.홍승헌은 주민혁을 보자마자 한숨 돌리듯 말했다.“빨리요. 심종연이 곧 국경을 넘습니다.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전문 인력들의 움직임은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순식간에 자리를 잡고 심종연을 조준했다.총알 하나가 심종연의 어깨를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498화

    “나도 같이 갈게요.”최수빈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국경 쪽은 상황이 복잡하잖아요. 민혁 씨 혼자 가는 건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안 돼.”주민혁은 생각할 틈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그러더니 최수빈의 손을 잡고 부드럽지만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국경은 너무 위험해. 심종연은 궁지에 몰린 놈이야.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넌 은산시에 남아서 율이를 잘 돌보고 이쪽 일도 챙겨 줘. 그게 나를 가장 크게 돕는 거야.”그는 알고 있었다. 최수빈은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여도 속은 누구보다 고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하지만 지금만큼은 절대로 그녀를 위험 속에 밀어 넣을 수 없었다.심종연은 주민혁을 뼛속 깊이 증오하고 있었다.그런데 만약 최수빈을 보게 된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그녀를 해치려 들 것이 분명했다.“하지만...”최수빈이 다시 말을 꺼내려 했지만 주민혁이 먼저 딱 잘라 말했다.“하지만은 없어.”그는 곧 육민성과 송미연을 바라보았다.“민성 씨, 미연 씨. 은산시 쪽은 두 분께 부탁드리겠습니다. 특히 수빈이의 안전과 율이 쪽은 절대 작은 문제도 생기면 안 됩니다. 전 국경으로 갈 거예요. 길어봐야 사흘, 그 안에 심종연을 잡지 못하면 해외까지 쫓아갈 겁니다.”육민성은 어두운 눈빛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말고 이쪽은 우리에게 맡겨요. 국경에서 몸조심하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요.”송미연도 입을 열었다.“수빈이는 우리가 잘 지킬게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꼭 조심하시고요.”주민혁의 단호한 태도에 최수빈은 더 붙잡아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결국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꼭 몸조심해요. 매일 한 번씩은 꼭 연락해주고요. 심종연을 잡든 못 잡든, 반드시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알았어.”주민혁은 고개를 숙여 최수빈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빛에는 한없이 다정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나 올 때까지 기다려.”말을 마친 주민혁은 더 지체할 틈 없이,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497화

    심종연은 손을 뻗어 배낭에서 권총을 꺼냈다.그러고는 뒤쪽을 향해 마구 몇 발을 쏘며 뒤쫓아 오는 경찰들을 물러서게 만들고, 그 틈을 타 속도를 높여 경계비를 향해 돌진했다.심종연의 손이 막 경계비에 닿으려던 바로 그 순간, 경찰 한 명이 몸을 날려 그의 다리를 있는 힘껏 붙잡았다.그러자 눈빛에 살기를 띠며 심종연이 곧장 총을 들어 쏘려는데, 다른 경찰이 던진 경찰봉이 그의 손목을 강타해 권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손목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억누른 채, 심종연은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던 경찰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경찰이 튕겨 나가듯 밀려난 순간, 그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몸을 던졌다.그리고 그대로 경계비를 넘어 국경선 밖의 땅에 주저앉았다.국경선 너머 숲속에서 곧바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몇 명이 뛰쳐나왔다. 그들은 손에 든 총을 들어 뒤쫓아 온 경찰들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함부로 국경을 넘을 수 없었기에 경찰들은 더 이상 함부로 추격할 수 없었다.그래서 경계비 안쪽에 멈춰 선 채 심종연 쪽으로 총을 쐈지만 끝내 그를 맞히지는 못했다.심종연은 검은 옷의 남자들에게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돌려 경계비 안쪽에 선 경찰들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그들을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었다.이내 그는 몸을 돌려 검은 옷의 남자들을 따라 숲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그 모습은 곧 끝없이 펼쳐진 숲속으로 사라졌다.경찰들은 심종연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그들은 결국 총을 거두고 휴대폰을 꺼내 홍승헌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은산경찰청 강력팀 사무실에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홍승헌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앞에 있는 컴퓨터 화면에는 국경선 각 검문소의 CCTV 화면이 떠 있었고 책상 위에는 커피잔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그의 눈은 핏발이 선 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얼굴은 초췌했지만 그는 여전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476화

    “그 사람이 그렇게 할 리는 없잖아. 그래서 이 일은 네가 나서줘야 해. 네가 나서서 시후가 너와 그 사람의 양자이고 박하린의 친자가 아니라는 말을 해줘야지.”그게 지금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게다가 지금은 소송이 얽혀 있고 박하린의 신분도 결코 깨끗하지 않았다.최수빈은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회의실에서 나 기다리라고 해.”...회의실에 앉아 있는 박하린은 불안함이 가시질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최수빈이 들어오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여전히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474화

    그녀는 손 놓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반드시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그 시각, 주민혁은 차를 몰아 주씨 가문의 본가로 향했다.서재 안에서는 주기훈이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고 주민혁이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짧고 단호한 주기훈의 목소리가 이어진 뒤, 검은 정장을 입은 주민혁이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왔다.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옆 의자에 앉았다.주기훈은 안경을 밀어 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내가 앉으라 했나?”주민혁은 다리를 꼬고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봤다.“이야기하고 싶지 않으시면 지금 나가겠습니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504화

    ‘도덕성의 문제라니? 지금 그 말, 설마 최수빈 씨를 두고 한 얘기인가?’현장에 있던 모두가 순간 놀라 눈을 크게 떴다.당황과 의아함이 섞인 분위기 속에서 최수빈의 눈빛이 차갑게 가늘어졌다.그녀는 그 기자를 똑바로 바라봤다.낯선 여자였다.분명한 건 그 여자의 목적은 단 하나, 이 자리를 흔들기 위해 온 것이 분명했다.최수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싸늘했다.“죄송하지만 업무와 무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습니다.”말을 끝낸 그녀가 단호하게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그 기자는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최수빈 씨,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532화

    최수빈은 아이가 그렇게 변한 건 주민혁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다가 아들까지 데리고 가 소개해 줘서 그렇게 된 거라고 여겼다.하지만 최수빈은 뒤늦게 깨달았다.최수빈이 정성껏 키웠던 주시후는 처음부터 주민혁과 박하린의 아들이었고 송지훈은 그저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했다.최수빈을 가만히 바라보던 주민혁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얇은 입술을 움직였다.“최수빈, 너는 내가 만난 여자들 중에서 가장 양심 없는 여자야.”최수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민혁의 말을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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