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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청천
예전에는 권지율이 최민찬의 앞에 나타나거나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안유주는 불쾌한 마음으로 그들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지금 안유주는 주방에 서 있었고 고개를 들면 계단 쪽이 보였다. 권지율은 최민찬에게 완전히 안기다시피 한 상태였고, 최민찬은 고개를 숙인 채 부드럽게 권지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지율이 착하지. 오늘은 우리 가족들 저녁 식사가 있어. 일찍 돌아와서 놀아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응?”

최민찬은 단 한 번도 안유주에게 그런 말투로 얘기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안유주는 덤덤히 시선을 거두었다. 이제 그녀는 그 무엇도 개의치 않았다.

최민찬에게 위로받은 뒤 권지율은 방으로 돌아가 최아진과 시간을 보냈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최민찬은 안유주가 주방에서 일하자 그녀를 도와 옆에 놓여있던 그릇들을 씻었다.

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를 대했다. 최민찬이 말했다.

“오늘 저녁엔 우리 가족 식사가 있어. 너랑 같이 갈게.”

안유주는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그릇을 잘 세워둔 뒤 엷은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들어 최민찬을 바라보았다.

“따로 볼 일이 있으면 안 가도 돼. 나 혼자 가도 상관없어.”

최민찬은 멈칫했다.

예전에 가족 식사가 있을 때면 안유주는 그에게 꼭 같이 돌아가자고 사정했었다. 심지어 본가로 돌아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겠다고 그와 싸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최민찬은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연기하는 것이 피곤하기도 했고 어차피 언젠가는 들통날 거짓말이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작은 거짓말 하나가 수많은 거짓말을 낳는다.

언젠가 그들이 결과를 감당하지 못하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안유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갑자기 달라진 안유주의 태도에 최민찬은 당황했다.

“뭐라고?”

안유주는 손의 물기를 닦은 뒤 몸을 돌려 최민찬을 바라봤다.

“볼일 있으면 안 가도 괜찮다고.”

최민찬은 뭔가 달라진 것 같은 안유주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온화하고 부드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낯선 느낌이 들었다.

최민찬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어쩌면 그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그는 안유주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녀를 소파 쪽으로 데려갔다.

“나도 같이 갈게.”

예전이었다면 안유주는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마음은 파문 하나 일지 않았다.

최민찬은 그 말을 끝으로 위층으로 올라가서 외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외출하기 직전에 최민찬이 부랴부랴 떠났다.

“회사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처리해야 할 것 같아. 일단 먼저 가서 우리 부모님이랑 할머니 상대하고 있어. 일 끝나면 바로 갈게.”

안유주는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권지율은 위층 난간 쪽에 서서 비아냥댔다.

“작은엄마, 작은아빠는 작은엄마가 별로 소중하지 않은가 봐요.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갑자기 볼 일이 있다고 떠나는 걸 보면 말이죠. 나한테는 안 그러는데.”

안유주는 무덤덤한 얼굴로 권지율을 바라봤다.

“그러면 네가 나랑 같이 갈래?”

그녀의 말에 권지율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최민찬이 권지율을 데려왔을 때 최민찬의 가족들은 극구 반대했었다. 그러니 권지율은 절대 최민찬의 본가로 갈 수가 없었다.

권지율은 코웃음을 친 뒤 방으로 돌아갔고 안유주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옷을 챙겨입은 뒤 최아진을 데리고 외출했다.

가는 길에 안유주는 최민찬에게 연락을 한 통 했다. 그리고 통화 중이라는 안내음이 들리는 순간, 안유주는 최민찬이 오늘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그래서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본가에 도착해 차가 멈춰 서자마자 최아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차에서 내렸다.

최아진은 엄마랑 있는 게 너무 싫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줄도 몰랐다.

최아진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정미선의 품에 안겨 그녀의 목을 안았다.

“증조할머니! 아진이 또 왔어요!”

정미선은 최아진을 꼭 안았다. 그녀는 증손녀인 최아진을 매우 아꼈다.

최아진은 말을 예쁘게 해서 사람들을 늘 즐겁게 해주었다.

비록 가족 식사라고는 하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이들은 없었다. 매년 가족 식사는 안유주가 직접 준비했기 때문이다.

정미선은 안유주가 홀로 들어오자 곧바로 표정이 차가워졌다.

“왜 너 혼자 온 거야? 민찬이는?”

안유주가 대신 설명했다.

“회사에 볼일이 있다고 갔어요.”

정미선이 매서운 눈빛으로 안유주를 노려보면서 그녀를 몰아붙였다.

“자기 남편 하나 관리 못하고 젊은 여자애가 옆에서 꼬드기게 놔두다니. 내가 너였다면 그냥 콱 죽어버렸을 거야.”

안유주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이 생겼다.

30일 뒤, 안유주는 해외로 떠날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기든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안유주는 난감한 듯 웃어 보인 뒤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예전에 최민찬을 위해 일부러 요리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정미선은 그 일을 알게 된 뒤로 가족 식사 때마다 안유주에게 음식을 준비하게 했다.

안유주는 아주 일찍 돌아와서 겨우 저녁 여섯 시였다.

그녀 혼자라면 여섯 시부터 열 시까지 준비해야 했고 가족들이 다 온 뒤에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안유주는 음식을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정미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머니, 저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음식 못 할 것 같아요.”

정미선은 표정을 굳히며 엄숙한 표정으로 딱딱하게 말했다.

“왜? 나한테 뭐 불만이라도 있니?”

안유주는 고개를 숙였다.

“그럴 리가요.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래요. 민찬 씨도 알고 있어요.”

안유주는 일부러 최민찬의 이름을 꺼냈다.

그러나 별로 먹히지는 않는 듯했다.

“몸이 안 좋으면 천천히 해. 괜찮아. 우리 가족들 다 너 하나만 기다리면 되니까.”

정미선이 빈정대며 말하자 안유주는 움찔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바로 이때 2층의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

최민찬의 어머니 신규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염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신규연은 세상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불교 명언을 중얼대며 아래층으로 내려오더니 안유주와 정미선을 바라봤다.

“어머님, 유주 몸이 안 좋다는데 오늘 식사 준비는 아주머니들한테 맡기는 게 어떨까요? 몸이 안 좋다는 건 안 좋은 기운이 있다는 건데 불교는 그걸 가장 꺼리거든요.”

신규연의 느긋한 말투는 듣는 사람이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안유주는 감격한 눈빛으로 신규연을 바라보았다.

신규연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 집 안에 사당을 세워 그 안에 남편의 위패를 두었고, 매일 향을 하나 피운 뒤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있었다.

신규연은 불교를 매우 신앙했기에 가끔 그것에만 푹 빠져 다른 것들을 전부 잊어버리곤 했고 안유주에게도 굉장히 냉담했다. 아니, 사실 안유주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차가웠다. 신규연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시어머니인 정미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정미선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러면 쉬고 있어.”

안유주가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정미선의 품 안에 안겨있던 최아진이 갑자기 말했다.

“엄마 안 아파요. 일하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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