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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지독한 열병: Chapter 1 - Chapter 10

30 Chapters

제1화

결혼 7주년 기념일, 최민찬이 사라졌다. 안유주는 교진시를 샅샅이 뒤져봤으나 끝내 최민찬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보름 뒤 안유주는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통해 그들의 결혼기념일 날 최민찬이 권지율과 함께 열기구를 타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고, 당시 권지율을 지키려다가 심하게 다쳤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아무런 소식이 없던 보름 동안 최민찬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안유주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깊은 밤이었고 입원 병동의 복도는 한없이 적막했다.안유주는 빠르게 우산을 접었다. 그녀가 신은 하이힐이 바닥과 부딪치며 또각또각 소리를 냈고 그 소리로 인해 복도의 센서 등이 밝아졌다.병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그런데 안유주가 문고리에 손을 올리는 순간 안에서 남자의 억눌린 신음이 들려왔다. 안유주는 잠깐 움찔했다. 그리고 곧이어 충격적인 장면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달빛이 최민찬의 얼굴을 비추었다. 남자는 상반신을 드러낸 채로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휴대폰 화면이 밝아졌고 이어 권지율의 사진이 보였다. 사진 속 권지율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최민찬은 손에 휴대폰을 꽉 쥔 채로 침을 꿀꺽 삼키면서 오랫동안 참아왔던 것처럼 신음을 냈다.최민찬은 두 눈을 감았고 이내 낮고도 허스키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또렷이 들려왔다.“지율아...”땀 한 방울이 입체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최민찬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며 보일 듯 말 듯한 복근을 따라 허리 아래로 떨어졌다.안유주는 주먹을 힘껏 쥐었다가 손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지자 그제야 손에 힘을 풀었다.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이 안유주를 서서히 집어삼켰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의 눈동자에서 보이던 감정은 차차 평온해졌다.솔직히 말해 그 광경을 보았을 때 안유주는 상상만큼 감정이 격해지지는 않았다.석 달 전, 안유주는 최민찬의 주머니 안에서 여성 속옷을 구매한 영수증을 발견했고 비서를 통해 그동안 최민찬이 권지율의 속옷을 직접 골라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결혼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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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수술이 끝났을 때는 저녁이었다.수술대에 누운 채로 실려 나온 안유주는 퇴원을 요구했지만 의사가 반드시 입원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기에 퇴원할 수가 없었다.안유주는 병실 앞에 선 채 오랫동안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조롱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마침 그녀의 옆 병실에서 환한 조명 아래 핑크색 환자복을 입은 권지율이 병상 위에 누운 남자의 몸 위에 엎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드러운 검은 머릿결 때문에 권지율의 작은 얼굴이 더욱 하얘 보였고 살짝 붉은 눈시울은 그녀를 더 가련해 보이게 했다.권지율은 울먹이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미안해요, 작은아빠. 전부 제 잘못이에요. 그날 제가 열기구를 타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제가 무서워하지만 않았어도... 절 지키려다가 작은아빠가 다치는 일은 없었겠죠. 미안해요.”최민찬은 부드럽게 권지율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지율아, 네 탓이 아니니까 울지 마. 별거 아니라서 금방 나을 거야.”그렇다. 권지율의 탓이 아니었다.결혼 7주년 기념일에 이미 세상을 뜬 여자를 그리워한 최민찬은 기분이 좋지 않아 함께 열기구를 타러 가자는 권지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날 안유주는 직접 음식들을 차리고 새로 산 옷을 입고 기대에 가득 차서 잠도 자지 않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최민찬을 기다렸다.그러나 정작 그녀의 남편인 최민찬은 그들의 결혼기념일에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의 딸을 구하겠다고 목숨을 잃을 뻔했다.“안유주?”최민찬의 낮으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에 안유주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녀는 시선을 들어 평온한 얼굴로 최민찬을 바라보았다.최민찬의 차가운 얼굴 위로 약간의 허점이 보였다. 그는 안유주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꽤 놀란 듯했다.“여긴 어쩐 일로 왔어?”권지율은 일어나 앉은 뒤 눈물을 닦았다. 안유주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았음에도 그녀는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여전히 최민찬의 곁에 앉아 있었다.최민찬의 시선이 안유주의 창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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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전여훈은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는 안유주의 사정을 캐묻지 않았다.“언제 주면 되는데?”안유주가 대답했다.“내일까지는 받고 싶어요.”전여훈은 잠깐 멈칫했다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만약 최민찬 씨가 사인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떡할 거야?”안유주의 눈빛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나한테 방법이 있어요.”전화를 끊은 뒤 안유주는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거슬리는 걸 절대 참을 수 없었다.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그동안 이혼 소송을 그렇게 많이 진행했는데 본인조차 이혼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안유주는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딸을 집안 어른들에게 맡긴 지 꽤 된 터라 그녀는 딸을 데리러 가야 했다.가을이라 그런지 바람이 쌀쌀한 편이었다. 안유주는 코트를 여민 뒤 곧장 본가로 향했다.벨을 누르자 장서희가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안유주를 본 순간 장서희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사모님.”안유주는 얼굴도 초췌했고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장서희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아진이는요? 저 아진이 데리러 온 거예요.”장서희가 주방을 바라보자 안유주도 그곳을 바라보았다.작고 귀여운 최아진이 주방 안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고 박혜윤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아가씨, 아가씨께서는 나가 계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할게요.”최아진은 화가 난 얼굴로 박혜윤을 바라보며 작은 손으로 그녀를 밀어냈다.“할머니, 방해하지 말아요. 제가 직접 준비할 거예요!”충격적인 일들을 연달아 겪었던 안유주는 그 광경을 본 순간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눈동자가 촉촉해졌다.최아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최아진마저 없었더라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안유주가 도와주러 가려고 했는데 최아진의 앳된 목소리가 안에서 다시금 들려왔다.“아빠랑 지율 언니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으니까 제가 직접 음식을 해서 지율 언니에게 가져다줄 거예요! 그래야 지율 언니가 빨리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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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안유주는 씁쓸한 감정을 거두어들이고 덤덤히 말했다.“아니요. 꽤 잘해줬어요.”당시 안씨 가문은 안채원을 위해 안유주를 최민찬과 결혼시키려고 했다. 처음에 안유주는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강은규와 이미 약혼한 상태였고 사이도 꽤 좋았기에 만약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강은규와 결혼했을지도 모른다.그날, 안유주는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가다가 안채원과 함께 납치당했다.안유주는 안채원이 무서워할까 봐 걱정되어 계속 안채원을 달래주었다.그러나 납치범이 아빠에게 연락했을 때, 안채원이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안유주가 꾸민 짓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안유주는 그대로 넋이 나가버렸다. 평소 안유주는 안채원과 사이가 꽤 좋았기에 안채원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안채원은 2년 전 안유주의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빠와 재혼한 상대가 데려온 딸이었다. 안채원과 함께 지내며 안유주는 아빠가 안채원을 편애한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비록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안유주는 아빠가 그렇게 쉽게 안채원의 말을 믿어버릴 줄은 몰랐다.특히 한때 그녀가 사랑했던 그녀의 약혼자 강은규는 직접 그녀를 멀리 수용소 같은 곳으로 보내버렸다.5년 동안, 안유주는 그곳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그곳에서 안유주는 밥 한 끼 배불리 먹어본 적 없을 뿐만 아니라 매일 다른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그래서 그곳에 풀려났을 때 안색도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잇장처럼 삐쩍 말라 있었다.그런데 그곳에서 나온 뒤에는 안채원을 대신하여 최민찬과 정략결혼을 해야 했다.당시 안유주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겪어본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사실 그녀는 최민찬과 결혼한 뒤에는 상황이 점점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비록 최민찬은 겉으로 보기에는 냉담하지만 은근히 세심했고 안유주는 그런 그를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다.그래서 안유주는 지금까지도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권지율만 아니었어도 두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강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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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안유주가 미소 띤 얼굴로 예전과 다름없이 온화하게 굴자 최민찬의 싸늘하던 표정이 조금 풀렸고 말투 또한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원하는 게 뭐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다 해줄게.”최민찬의 말에 안유주는 잠깐 넋이 나갔다.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최민찬은 처음엔 아주 차갑다가 천천히 다정해졌고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그렇게 안유주는 어느샌가 최민찬을 사랑하게 되었다.최민찬은 안유주에게 늘 무심한 듯 보였으나 사실 두 사람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적어도 안유주는 그렇게 생각했다.그러나 현실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모든 것은 안유주 혼자만의 착각이었을 뿐이다.안유주는 입꼬리를 올리며 자조했다.그녀는 방 안에서 조금 전 전여훈이 가져다준 이혼합의서를 꺼냈는데 그 위에는 부동산 증여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안유주는 그것을 최민찬에게 건넸다.“난 내 명의로 된 집을 원해.”그 말은 진심이었다. 앞으로 이혼하게 되었을 때 교진시에 집 하나 없다면 너무 처량할 것 같았다.안유주는 그에게 집을 달라고 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가능해?”안유주의 맑은 두 눈동자는 늘 그렇듯 다정하고 부드러워서, 한때 최민찬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자주 넋을 잃곤 했다.최민찬은 얼마 전 일 때문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결혼기념일에 안유주를 혼자 내버려두고 권지율과 여행하러 가서 열기구를 탔고, 사고가 일어난 뒤 안유주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아 안유주는 오랫동안 그 때문에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그러니 그 정도 보상은 당연히 해줘야 했다.그래야 그의 마음도 조금은 편했다.“그래. 그렇게 할게.”최민찬은 서류를 잘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을 했다.사실 이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전여훈이 서류를 가져왔을 때까지만 해도 안유주는 최민찬이 이혼합의서에 사인하게 할 좋은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사실 서류에는 ‘이혼합의서’라는 다섯 글자가 꽤 크게 적혀 있었다. 최민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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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안유주는 최아진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최민찬과 권지율의 집으로 말이다.어젯밤 안유주는 이미 쓸모없는 것들을 전부 처리했고 곧 떠날 거라는 걸 숨기기 위해 어떤 물건들은 여전히 밖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안유주는 이미 반지를 뺐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최민찬은 단 한 번도 결혼반지를 껴본 적이 없었다. 안유주는 최민찬이 여전히 권효영을 잊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그의 마음을 녹여보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자신도 그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안유주는 그동안 최민찬이 그 반지를 낄 때까지 기꺼이 기다리려고 했다.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안유주는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최민찬이 스스로 반지를 끼는 날이 오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반지를 빼버렸다.안채원을 위해, 그리고 그녀 자신을 위해.최아진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권지율의 방으로 들어갔고 이내 들뜬 목소리가 침실 쪽에서 들려왔다.“지율 고모, 왜 이제야 돌아왔어요? 정말 보고 싶었다고요!”문 앞에서 그 소리를 듣게 된 안유주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아파 눈시울이 붉어졌다.최아진은 이미 다섯 살이 되었다.언제부턴가 최아진은 점점 더 안유주와 대화를 나누지 않으려고 했다.최아진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안유주는 최아진과 관련된 일이면 뭐든 직접 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매일 방과 후 최아진은 안유주의 손을 잡고 그날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얘기했다.딸의 신난 표정을 볼 때면 안유주는 매우 기뻤다. 비록 최민찬과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귀여운 딸을 낳았으니 후회되지는 않았다.그러나 권지율과 알게 된 이후로 최아진은 안유주에게 불만이 점점 쌓여갔다.최아진은 안유주가 사준 핑크색 원피스를 전부 쓰레기통 안에 버리고 침대 위에서 당당하게 말했다.“엄마, 저 앞으로는 이렇게 애 같은 옷들 안 입을래요!”옷장 문을 열어 보니 안에 검은색의 개성 있는 옷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최아진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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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예전에는 권지율이 최민찬의 앞에 나타나거나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안유주는 불쾌한 마음으로 그들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지금 안유주는 주방에 서 있었고 고개를 들면 계단 쪽이 보였다. 권지율은 최민찬에게 완전히 안기다시피 한 상태였고, 최민찬은 고개를 숙인 채 부드럽게 권지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 지율이 착하지. 오늘은 우리 가족들 저녁 식사가 있어. 일찍 돌아와서 놀아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응?”최민찬은 단 한 번도 안유주에게 그런 말투로 얘기한 적이 없었다.단 한 번도.안유주는 덤덤히 시선을 거두었다. 이제 그녀는 그 무엇도 개의치 않았다.최민찬에게 위로받은 뒤 권지율은 방으로 돌아가 최아진과 시간을 보냈다.아래층으로 내려간 최민찬은 안유주가 주방에서 일하자 그녀를 도와 옆에 놓여있던 그릇들을 씻었다.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를 대했다. 최민찬이 말했다.“오늘 저녁엔 우리 가족 식사가 있어. 너랑 같이 갈게.”안유주는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그릇을 잘 세워둔 뒤 엷은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들어 최민찬을 바라보았다.“따로 볼 일이 있으면 안 가도 돼. 나 혼자 가도 상관없어.”최민찬은 멈칫했다.예전에 가족 식사가 있을 때면 안유주는 그에게 꼭 같이 돌아가자고 사정했었다. 심지어 본가로 돌아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겠다고 그와 싸우는 경우도 허다했다.최민찬은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일단은 연기하는 것이 피곤하기도 했고 어차피 언젠가는 들통날 거짓말이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작은 거짓말 하나가 수많은 거짓말을 낳는다.언젠가 그들이 결과를 감당하지 못하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그러나 안유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했다.그래서 갑자기 달라진 안유주의 태도에 최민찬은 당황했다.“뭐라고?”안유주는 손의 물기를 닦은 뒤 몸을 돌려 최민찬을 바라봤다.“볼일 있으면 안 가도 괜찮다고.”최민찬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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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딸의 말에 안유주는 흠칫했다. 누군가 그녀의 마음을 바늘로 콕콕 쑤시듯 아팠다.딸이 몇 번이고 그녀를 몰아붙이니 안유주의 마음도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딸을 바라보는 안유주의 눈빛에서 애정이 서서히 사라졌다.“아진아, 누가 엄마가 엄살을 부린다고 한 거야?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착한 아이가 아니야.”정미선이 재빠르게 최아진을 두둔했다.“아진이는 애야.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안유주는 정미선을 바라보았다.“할머니, 아진이가 어리다고 다 받아주시면 안 돼요. 이건 제 검진 결과예요.”안유주는 자신의 검진 결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자신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을 밝혔다.신규연이 싸늘한 표정으로 최아진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단 한 번도 최아진에게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그만큼 그녀는 최아진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굉장히 신경 썼다.신규연은 거짓말을 하는 것은 덕을 쌓는 것에 굉장히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아진아, 누가 너한테 거짓말하라고 가르친 거니?”최아진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정미선을 꼭 안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증조할머니, 전 거짓말한 적 없어요...”정미선도 그 일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했기에 최아진을 엄격하게 대했다.“아진아, 얘기해 봐. 누가 너한테 거짓말하라고 한 거야?”최아진은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울기 시작했다.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회피하려고 했고 안유주는 이미 그것에 익숙해졌다.그러나 오늘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기에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아진아, 할머니랑 증조할머니는 거짓말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셔. 그런데도 계속 거짓말할 거야? 아진이는 할머니랑 증조할머니의 기분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야? 아진이에게 할머니랑 증조할머니는 전혀 소중하지 않은 거야?”최아진은 황급히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엄마, 헛소리하지 말아요!”최아진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달래주지 않고 차갑게 대하자 더듬대며 말했다.“지율 고모가 그랬어요...”정미선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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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권지율은 변명할 기회가 없었다.권지율이 최아진에게 거짓말을 가르쳤는지 가르치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미선은 그저 권지율에게 벌을 줄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정미선은 안유주보다 권지율을 더 싫어했고 권지율의 엄마도 싫어했다.정미선의 그런 점은 좋았다. 그녀는 가정을 파탄 내는 자들을 경멸했다.하지만 안유주도 정미선의 성에 차지 않았다. 정미선은 당시 어쩔 수 없이 안유주를 선택했었다.역시나 20분도 되지 않아 회사에 급한 일이 있다던 최민찬이 본가에 도착했다.안유주는 방 안에서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최민찬은 몹시 화가 난 듯했다. 평소 정미선과는 최대한 언쟁을 피하려고 하던 최민찬이 오늘은 아주 강하게 반발했다.“지율이는 아직 어려요. 아이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대하실 수가 있어요?”정미선은 자신의 말에 늘 고분고분하던 손주가 권지율 때문에 반항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테이블을 내리친 뒤 최민찬의 얼굴을 향해 찻잔을 집어 던졌고, 최민찬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정미선은 마음 아픈 동시에 화가 났다.“최민찬! 이제 나는 네 안중에도 없다, 이거야? 이제 이 집안에서 내 말은 아무런 힘도 없다는 거지?”최민찬은 어두운 얼굴로 이를 악물며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음울한 눈빛으로 정미선을 바라보며 그녀와 대치할 뿐이었다.정미선은 치솟는 혈압 때문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그래! 저 권지율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지? 정말 대단한 애네! 권지율이 너한테 그렇게 중요해?”최민찬이 또박또박 말했다.“네! 지율이는 저한테 아주 중요해요! 제 목숨만큼 소중한 존재예요!”정미선은 하마터면 그대로 까무러칠 뻔했다.“당장 꺼져!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마!”최민찬이 몸을 돌려 나갔다. 그는 문 앞으로 걸어간 뒤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유주는요?”최민찬의 몸에서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방 쪽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억누른 분노가 느껴졌다.정미선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흥, 네가 언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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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예전이었다면 안유주는 그 광경을 보고 바로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으면서 그러는 건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저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안유주는 이내 두 사람을 따라갔다.권지율은 자연스럽게 최민찬의 옆자리인 조수석에 앉았고 안유주는 뒷좌석에 앉았다.최민찬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거울 속 안유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할머니가 지율이를 괴롭히고 있는데 도와주지 않고 뭐 했어? 넌 할머니가 지율이 안 좋아하는 거 알고 있잖아. 빨리 나한테 전화해서 지율이 데려가라고 했어야지. 그랬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안유주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며 이미 잠든 최아진을 살짝 끌어안았다.안유주는 최민찬의 말을 듣고 황당해했다. 그리고 최민찬은 그녀의 태도에 언짢아졌다.“왜 아무 말도 안 해?”안유주는 싱긋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하지만 민찬 씨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했잖아.”최민찬은 흠칫했다.권지율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안유주를 힐끗 보았다.“그게 뭐 어때서요? 전화 한 통 하는 것뿐이잖아요. 작은아빠가 설마 전화 한 통 받을 시간도 없을까 봐요?”안유주는 최민찬을 바라보았다.“그런 거 아니었어?”예전에 최민찬이 바쁠 때 안유주가 연락하면 최민찬은 늘 전화를 받지도 않고 끊어버렸다. 그는 단 한 번도 안유주의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다.그러나 권지율의 말을 들어보면 권지율은 언제 전화해도 최민찬이 늘 전화를 받아줬던 것 같았다.안유주는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최민찬은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걸 알아서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권지율이 뭔가 더 말하려고 하자 그가 권지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율아, 그만해.”권지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작은아빠, 저 무릎 아파요.”최민찬은 운전하는 와중에 권지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위로했다.“착하지.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약 발라줄게.”두 사람은 뒤에 있는 안유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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