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임은 약간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그녀는 자기에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김예훈이 매우 싫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마음이 약해졌다.어찌 됐든 그녀는 단순히 김예훈을 부산에서 쫓아내서 시골로 돌아가게 하고 싶은 것이었지 그의 목숨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그래서 조효임은 입을 열었다.“김예훈, 빨리 후지와라 씨에게 사과해. 내가 널 위해 사정해 볼게. 내일 너에게 2억 원을 주라고 아버지께 말해 놓을 테니 빨리 여기를 떠나. 부산이라는 대도시는 너와 정말 어울리지 않아.”김예훈은 담담하게 조효임과 이미연을 힐끗 쳐다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사과? 내 사전에는 사과라는 두 글자가 존재하지 않아. 이 가짜 일본 사람이 정말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차라리 일본 사람을 시켜서 어디 한번 나를 죽여보라고 해. 비자 하나 얻었다고 정말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 이런 사람한테 왜 잘 보여야 하는 거야? 정말 미쳤어. 이것만 알려줄게. 내일 SNS 플랫폼에서 너와 계약을 해지할 거야. 그리고 부산 연예계에서도 네 자리는 이제 없을 거야. 스타든 인플루언서든 올바른 사람이 먼저 돼야 하거든. 너 같은 나라를 팔아먹는 가짜 일본 사람은 SNS에서 인플루언서가 될 자격이 없어!”후지와라 미유는 김예훈의 말에 화가 나서 웃음이 나왔다.“이놈아, 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 SNS 플랫폼의 사장이라도 되는 거야? 혜성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야? SNS에서 날 지워버린다고? 부산 연예계를 떠나라고? 네가 만약에 그럴 능력이 있다면 내가 너한테 사과는 물론 네 앞에 무릎 꿇을게! 나랑 내기 할 수 있어?”그러자 김예훈은 무심코 휴대전화를 꺼내 집어 들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밤이 지나면 모든 게 다 변할 거예요. 내일 당신에게 아무 일도 없다면 제가 무릎 꿇고 사과할게요.”조효임은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시치미를 떼고 잘난 척하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김예훈에 대해 남은 마지막 호감도 사라
“이미연, 그게 무슨 뜻이야?”조인국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예훈이는 내 조카인데 부산에서는 당연히 내가 그를 지켜줘야지 누가 지켜주겠어?”조인국이 김예훈을 위해 일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자 후지와라 미유는 이미연과 눈빛을 교환하고 나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이번엔 제가 인국 삼촌의 체면을 봐서라고 그냥 넘어갈게요. 하지만 다음은 없어요.”말을 마치자 후지와라 미유는 몸을 돌려 떠났다.변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으며 두 손을 짊어지고 옆으로 걸어갔다.그는 비록 방금 김예훈을 비난했지만, 여전히 신사적인 좋은 느낌을 풍겼기에 많은 여자가 또 그의 곁을 둘러쌌다.“예훈아, 이리 와봐. 몇 사람을 소개해 줄게!”조인국은 김예훈을 데리고 한 바퀴 둘러본 후에 함께 2층으로 가서 부산 용문당의 고위층 몇 명을 만나려 했다.김예훈은 원래 아는 사람이 몇 명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2층에 가보니 부산 용문당의 고위층이라 하는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진윤하, 최산하 등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그리고 소위 부산 용문당의 고위층이라 하는 사람들도 김예훈을 알아보지 못했다.하지만 김예훈은 바로 알아차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부산 용문당에서 그리 큰 인물은 아니었기에 당연히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부산 용문당의 십만 명 제자 중에 김예훈을 본 사람은 고작 천 명에 불과했다.이 몇 명의 부산 용문당 사람들은 김예훈을 보는 척도 안 하고 감개무량한 얼굴로 조인국에게 말했다.“조 대표님.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해요. 이번에 대표님은 운이 너무 좋았어요. 우리의 새로 온 부산 용문당 회장님 덕분에 대표님 회사가 때마침 협력회사 명단에 들어왔어요. 앞으로 분명히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이에요. 굳이 우리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어요. 기회가 되면 우리 부산 용문당 회장님을 만나서 인사하세요. 대표님께 있어서 아주 귀인이신 분이에요!”“그러게 말이야. 우리 부산 용문당 회장님은 20대 초반인 어린 나이에도
바로 그때, 조효임은 저도 모르게 변우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변 도련님도 우리 한국의 젊은 세대 중의 인재인데 부산 용문당 회장과 아는 사이일 수도 있잖아요. 혹시 그분을 만나보신 적이 있나요?”“아직 없어요.”변우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하지만 그를 만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부산 용문당에 가서 그와 한번 겨루어 보면 돼요. 혹시라도 제가 그를 이겨버리면 용문당의 체면이 깎일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변우진이 무뚝뚝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그는 젊은 세대 중에는 오로지 자신만이 제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부산 용문당의 새로운 회장이 뭐가 그리 대단해?’조효임과 몇몇 인플루언서들은 변우진의 기세를 보고 감탄했다.“변 도련님의 뜻은 그 새로 부임한 부산 용문당 회장이 도련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거예요?”그러자 변우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우충식이 나한테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잊으셨어요?”조효임은 갑자기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그래 맞아. 오늘 부산 용문당 부회장인 우충식은 변우진 앞에서 깍듯하게 행동했잖아.’그래서 그녀는 변우진의 신분과 실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조효임이 담담하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용문당의 제자들도 모두 듣고 놀랐다.그중 한 사람이 두 손을 잡고 공경한 태도로 말했다.“저는 우리 부산 용문당 회장님이 진정한 소년 영웅이라고 생각했는데 변 도련님도 이런 실력을 갖추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희 부산 용문당에서 다음 주에 만찬을 열 예정이에요. 그러면 부산 용문당 회장님도 참석하실 거예요. 변 도련님께서 시간이 되신다면 참석하셔서 저의 회장님을 만나보세요. 어쩌면 영웅이신 두 분께서 이번 만남을 계기로 친구가 되어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그러자 변우진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그때 가서 봐요. 제가 요즘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저에게 소중한 사람을 보호해야 해요. 만찬에 갈 시간이 없을 수도 있어요. 물론 당신네 회장님이 부탁하신다면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잘됐네요. 고마워요, 변 도련님.”조효임은 흥분한 표정을 지었고 다른 몇몇 인플루언서들도 들떠서 얼굴이 빨개졌다.그녀들은 이런 수준의 만찬에 참석해서 생방송을 할 수 있다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조인국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하여 말했다.“변 도련님, 이왕이면 자리를 하나 더 마련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 조카도...”김예훈은 조인국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멈칫 놀랐다. 그래서 그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저씨, 전 됐어요.”“됐다고? 효임 씨는 네가 허풍을 떠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원래 난 안 믿었어. 이제 와서 보니 효임 씨의 말이 맞았네.”변우진은 차갑게 웃으며 김예훈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말을 이어갔다.“너는 마치 부산 용문당의 만찬에 가고 싶다고 하면 초대장이 바로 날아올 수 있는 것처럼 말해? 잘 기억해 둬. 난 누구라도 다 데리고 들어갈 수 있지만, 넌 절대 안 돼. 그때 가서 변우진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이용해서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마. 네가 만약에 내 이름으로 안에 몰래 들어가면 난 사람 시켜서 널 걷어차서 쫓아버릴 거야.”변우진은 말한 후 용문당의 제자들을 노려보았다.몇몇 제자들은 변우진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오늘 아침 우충식 부회장님의 했던 행동을 생각해 보니 이런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들은 지금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변우진이 몇 마디로 만찬에 참석하는 일을 해결했고, 게다가 몇몇 용문당의 제자들까지 제압하는 것을 본 조효임의 눈에는 빛이 반짝거렸다.‘변우진은 정말 젊은 나이에 능력 있고 돈도 많고 권력도 있어! 변우진이라면 부산 용문당의 새로 부임한 회장도 그의 체면을 세워줘야 할 것이야. 김예훈이 이 만찬에 참석하려는 것은 헛된 꿈뿐이야.’조효임은 이런 생각을 하자 더욱더 김예훈과 자신은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의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
순간 조인국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이상했다.이미연과 조효임은 김예훈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후지마라 미유와 몇몇 인플루언서들은 세상에서 제일 어이없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그리고 변우진이 덤덤하게 말했다.“김예훈, 아니. 예훈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정말 1호 별장에서 살아? 보안관실 아니고?”그는 조효임이 한 말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김예훈이 여기서 경비원으로 일한다고 했기에 변우진은 김예훈이 무조건 보안관실에서 살 것 같았다.조인국도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그의 안색은 어두워지더니 원망 섞인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예훈아, 사람은 착실하게 살아야 해.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다행히 여기 모든 사람들은 한 식구나 마찬가지여서 그렇지, 아니면 개 망신 당하는 거야!”그러자 김예훈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아저씨, 저 정말 1호 별장에 살아요.”“그런데 왜 우리 집에 묵으려고 하는데? 1호 별장은 우리 11호 별장보다 열 배 남짓 더 호화로운데.”이미연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연기하려면 제대로 해.”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요 며칠 별장을 리모델링하려고 해서 안이 좀 지저분해요. 그래서 아주머니 집에서 묵자고 한 겁니다.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되고요. 제 별장에도 잠잘 곳 정도는 있으니깐.”“하하! 리모델링? 지저분하다고?”이미연은 조인국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럼 우리가 1호 별장 한번 구경해봐도 될까? 나와 인국 아저씨가 그래도 너한텐 어른인 셈인데 집을 새로 샀고 리모델링까지 하려고 한다니 가서 조언도 좀 해줄게.”“그래. 우리도 좀 구경하자. 우리가 언제 2,000억짜리 별장을 구경해봤겠어. 어떻게 꾸몄는지 너무 궁금한데.”후지와라 미유 등 인플루언서들도 차갑게 웃으면서 소란을 피웠다. 그들은 김예훈이 거짓말을 들춰서 망신당하는 꼴을 보려고 했다.“구경?”김예훈은 피식 웃었다.“아직 안이 많이 어수선해서 구경까지는 할 필요가 없는 것 같
조인국은 김예훈에게 정말 실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에 김예훈이 출근하고 보너스까지 받으며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매우 뿌듯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제 성실하게 일에 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면을 이렇게 중시하는 사람이 되다니.조인국은 김예훈을 부산으로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매달 몇십만씩 생활비를 보냈으면 이 소란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아이고! 쪽팔려라!’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린 조인국을 바라보더니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아저씨,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그러자 모든 사람은 귀를 쫑긋 세웠다.“1호 별장은 정말 제 것입니다. 강호 씨가 일주일 전에 저에게 주신 겁니다. 이젠 수속도 거의 다 끝났고요.”“너에게 줬다고?”그 말을 듣자 후지마라 미유는 껄껄거리며 웃었다.“2,000억짜리 별장을 너에게 선물을 주다니. 하하. 우리 예훈 도련님 대단하네! 그럼 더 구경해야겠네. 아니면 너무 아쉽잖아!”이번에 김예훈은 거절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다들 그렇게 관심이 많으시니 그러면 같이 갑시다.”말이 끝나자 김예훈은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 사람들은 김예훈이 망신당하는 꼴을 보려고 그의 뒤를 빠르게 따라 나갔다.조인국의 안색은 더 어두워졌다. 고민 끝에 그도 함께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어쨌는 김예훈은 그의 큰 조카이기에 아무리 잘난척하고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도 끝까지 도와주고 싶었다.사람들이 정말 따라오는 것을 보자 김예훈은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포레스트는 거대한 공원과도 같았다. 별장 11채가 들어설 정도로 부지면적이 넓었고 별장 사이의 거리도 멀어서 프라이버시도 지킬 수 있었고 조용했다.이 별장들과 비교하면 11호 조씨 저택은 확실히 보잘것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11호 별장은 단지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지은 거라고 했다.왜냐면 10호 별장에 큰 인물이 살고 있었는데 자기가 하위권인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11호를 지었다고 했다. 그래서 11호 별장은 다른 별장과
“정확히는 모르나 주살령은 부산에서 전해져 나온 것입니다. 명을 내린 사람은 아마 사쿠라일 것입니다. 혹은... 방호철...”이 이름을 듣자 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그는 방호철과 정식으로 맞붙은 적은 없지만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방호철은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였다. 다행히 오늘 김예훈은 나카노 타로우에게 미리 손을 썼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그는 오히려 이 주살령이 어떻게 번져나갈지 무척 궁금했다. 그가 전화를 받고 있을 때 1호 별장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정말 멋있는 별장이야. 이곳에 살면 돈이 저절로 생길 것 같고 장생불로할 것 같잖아!”“역시 1호 별장은 달라. 지리적 위치가 너무 특수해서 베란다에서 직접 부산의 야경을 바라볼 수 있네.”“이런 집은 태어날 때 가지고 있지 않으면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거야.”1호 별장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감개무량했다. 자부심이 가장 강한 변우진마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1호 별장이야말로 내 신분에 딱 맞는데. 아쉽네.’옆에 있던 조효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1호 별장에 살면 이미 부산에서 탑티어에 든다고 생각했는데 1호 별장과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이런 진정한 부잣집의 저력과 카리스마는 졸부들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김예훈이 옆에서 시치미를 떼고 전화하는 걸 보니 조효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비아냥거렸다.‘아직도 연기하네. 쳇.’“됐어. 다 봤으면 이제 돌아가자. 방안에 불도 켜져있으니 주인이 쉬고 있는 건가 봐. 소란을 피우지 말고 돌아가자.”조인국이 이때 한 걸음 앞으로 나와 허세를 부리며 전화를 거는 김예훈을 쳐다보고는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다들 돌아갑시다. 야식은 제가 쏠게요.”그는 결국 김예훈의 삼촌으로서 그가 너무 창피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김예훈을 따라왔을 때 그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가 말한 것이 진실이길 바랬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전화를 받으며 자리를 떠나는 걸
조인국은 자기 마누라 이미연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미연! 당신 나이가 몇인데. 꼭 이래야만 해? 예훈이를 난감하게 만들어야 하냐고? 재밌어?”후지와라 미유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삼촌, 왜 그렇게 화를 내요. 미연 아주머니 탓도 아니잖아요. 우린 1호 별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왔을 뿐이에요. 김예훈 이 자식이 잘난 척만 하지 않았어도 우린 오지 않았겠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재미없게.”그리고 그녀는 조인국의 난감한 표정을 신경 쓰지도 않고 방금 전화를 마친 김예훈을 보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예훈 도련님, 전화 다 했어? 우리가 좀 더 기다려야 해? 1호 별장이 네 것이라며? 그럼 문 좀 열어봐. 혹시 열쇠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지는 않겠지? 이런 별장은 비밀번호 혹은 지문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야? 열쇠를 안 가져왔다는 변명 같은 거 하지 마.”그녀는 일부러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들도 키득키득 김예훈을 비웃기 시작했다. 심지어 경멸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절대 김예훈을 봐줄 기색이 없었다.조효임은 조인국의 체면을 봐서 김예훈을 대신해서 좋은 말 하려고 했지만 김예훈이 잘난 척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 지경에 이르면서도 체면을 챙기려고 하다니. 정말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만하네!’조인국도 한숨을 내쉬었다.“예훈아, 잘못을 인정해. 모두가 한 식구인데 네가 잘못을 인정한다면 아무도 탓하지 않을 거야.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생고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더 반감을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김예훈은 피식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어떤 변명도 소용없었다.그는 앞으로 걸어가 오른손 식지로 버튼을 누르자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양쪽으로 천천히 열렸다.흐릿했던 불빛이 순식간에 밝아졌고 한 줄기 빛이 그에게 떨어지면서 남다른 아우라가 느껴졌다. 후지와라 미유 등은 모두 멍해졌다.잠시 후 물건을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