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아, 내가 윤진을 데리고 올게.”서지은은 허윤진이 충동적으로 과격한 행동이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 급히 뛰어갔다.“남자는 여자 비위를 맞춰야 해. 그렇게 거칠게 대하면 나중에 두고두고 널 원망할 거야.”이세아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허윤진이 도박만 멀리하게 할 수만 있다면 원망받는 건 상관없어.”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했다.여색, 도박, 마약, 이 세 가지는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 했고 특히 도박과 마약은 더욱 위험했다.이 위험한 것에 발을 들이면 가벼운 경우에는 재산을 다 잃고 심각한 경우에는 가정이 파탄 날 수 있었다.허윤진은 이제 진서준의 가족이다.진서준은 절대로 이런 비극이 가족에게 일어나는 걸 허락할 수 없었다.“정말 고집 센 사람 같구나.”이세아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가끔씩 이런 카지노에 놀러 와서 기분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진서준은 그 말에 쌀쌀하게 웃으며 말했다.“여기는 너희 그룹 산하 카지노잖아.”이세아는 멈칫하더니 이내 가볍게 웃어넘겼다.“난 이곳이 우리 가문 카지노라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날 너무 가볍게 보는 거야. 모든 사람은 짜증 나고 심기가 불편할 때가 있잖아. 스트레스와 불안이 쌓이면 그걸 풀어야 하는데, 이때 도박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어. 그리고 넌 황예은이란 든든한 배경이 있어 돈을 다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진서준은 이세아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스트레스는 확실히 풀어야 하지만 절대로 도박이나 마약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이 두 가지 방법은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었고 사람을 다시는 기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심연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이 도박이 네게는 별로일지 모르지만 내가 말하는 도박은 네가 관심이 있을지도 몰라.”이세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관심 없어.”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떠날 준비를 했다.“왜 그렇게 서둘러 떠나려고 해? 너희 남자들은 뭐나 다 그렇게 서둘러 하길 좋아하더라.”이세아는 눈을 굴리며 진서준에게 일부러 뭔가
진서준 일행은 계속 내려가서 유람선의 가장 아래층으로 향했다.“진서준, 너 생사가 걸린 도박에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어?”이세아의 질문에 진서준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응? 이게 생사가 걸린 도박장으로 가는 길이야?”“당연하지, 남자들은 항상 그러더라. 입으로는 안 한다고 하면서 몸은 누구보다 더 정직하지...”이세아는 진서준의 하반신을 음흉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 여자는 정상적인 대화도 그쪽 화제로 돌리는 재간이 있는 것 같았다.진서준은 손으로 자기 중요한 부위를 가렸다.“농담이야, 날 따라와.”이세아는 웃으며 앞서서 두 사람에게 길을 안내했다.지하 1층에 도착한 진서준은 이곳이 또 다른 세상임을 발견했다.그 층의 한가운데에는 눈 부신 빛이 반짝이는 거대한 링이 있었다.주변에는 부자들이 앉아서 구경할 수 있도록 의자가 일렬로 놓여 있었다.그리고 링 위쪽에는 단면 유리로 된 방이 몇 개 있었다.이세아의 안내로 진서준과 황예은은 VIP 룸 중 하나를 선택해서 들어갔다.방은 크지 않았지만 유리창을 통해 링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여기가 바로 생사가 달린 도박이 열리는 곳이야. 매번 내기 금액은 최소 200억이야.”이세아가 자세하게 설명을 이어갔다.“링 위에는 빨강과 검정 두 팀으로 나뉘어 있고 20분마다 파이터 두 명이 링에 올라. 경기를 통해 승패도 가리고 생사도 결정해.”짝짝!이세아가 손뼉을 치자 서비스 직원 두 명이 들어왔고 각자 모니터를 들고 있었다.“여기에는 참가자들의 자료가 있어. 너도 관심이 있다면 직접 올라갈 수도 있어. 한 판 이길 때마다 200억의 보상이 있어. 세 번 연속으로 이기면 추가로 200억이 더 주어져.”한 판 이길 때마다 200억이라고?진서준은 눈꺼풀이 살짝 뛰었다.이곳에서 돈을 버는 게 참 쉬운 일인 것 같았다.한 판만 이기면 평생 먹고 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참가자는 전부 대종사급 고수였고 그들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진
진서준은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선량한 사람과 심보가 고약한 사람을 수없이 많이 봤다.하지만 손원순처럼 자선 활동을 위해 생사가 걸린 경기에 뛰어드는 사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손원순의 상대는 기세만 봐도 손원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했다.진서준은 모니터에 나온 정보를 훑어봤다.“상대는 육급 대종사네. 승패는 이미 결정 났어.”이전에 곽윤상은 스승 손원순이 칠급 영선 술사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손원순을 이길 수 있는 무인은 적어도 칠급 절정 대종사 실력을 갖춰야 한다.진서준은 천용 반지를 쓰지 않고는 손원순을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손원순은 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라 그 깊은 내공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링 위에서 손원순은 차분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너 스스로 경맥을 끊고 내려가.”육급 무도 대종사는 칠급 영선 술사인 손원순을 상대로 맞붙으면 승산이 전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대로 경맥을 끊고 내려가려고 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았다.70년 넘게 수련한 노인이 아무런 공격도 선보이지 않고 바로 항복하는 것은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될 것이다.“손 천사님, 여기까지 온 이상 전 천사님 필살기라도 보고 싶습니다.”노인이 순순히 항복하지 않았다.“고통은 네가 자초한 거야.”말을 마친 손원순은 손을 약간 떨자 손바닥에 보랏빛 번개가 모이기 시작했다.그 번개가 손을 떠나면서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져 반 미터 크기의 사자 형체를 이뤘다.이건 손바닥을 뒤집어 번개를 만든 술법이었다.”손원순의 실력을 여러 번 구경한 경험한 있는 권력자들도 이 장면을 보고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비록 실제 번개는 아니지만 그 위력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지하 경기장 전체에서 번개가 요란하게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진서준도 감탄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쳐다봤다.이 정도의 진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손원순의 재능과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걸 설명할 수 있었다.만약 진서준도 수선공법을 수련했다면 그의 실력은 상상
손원순와 비교해 보니 진서준은 자기가 조금 부끄러워졌다.“참, 지금 서라가 한가한 상태라 자선 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네.”진서준은 문득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근데 일단 서라 체내에 있는 독을 치료해야 해.”칠색정화를 손에 넣지 못한 진서준은 김빠진 공처럼 주눅이 들었다.하지만 적어도 혈령지 한 그루를 얻었으니 이번 명주 여행은 헛되지 않았다.“지금 공해로 진입했어.”이세아가 갑자기 말했다.“여기선 법이 통하지 않아. 사람을 죽여도 범죄가 아니야. 그러니 일단 네 두 여자친구 안전이나 좀 확인해 봐.”진서준은 그 말에 눈꺼풀을 떨며 즉시 서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오랜 시간 동안 통화연결음이 울린 후에야 서지은이 받았다.“서준아, 빨리 3층으로 와!”서지은의 진서준이 못 들을까 봐 목소리를 높여 급하게 말했다.“무슨 일이야?”진서준의 얼굴이 굳어졌고 바로 방을 뛰쳐나갔다.서지은이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는 거칠게 끊어졌다.“여기서 날 기다려.”진서준은 한마디 남기고 지하 1층을 떠나 힘껏 뛰어올라 1층에서 3층으로 뛰어갔다.3층에서 한가하게 걸어 다니던 사람들이 진서준을 보고 깜짝 놀랐다.진서준은 사람들을 밀어내며 3층으로 허겁지겁 들어갔다.3층은 오락시설이 가득한 오락실이었고 여러 가지 오락 기기들 외에도 당구, 게임 기계, 심지어 노래방도 있었다.진서준은 한바퀴 살펴본 뒤, 결국 당구대 옆에서 서지은과 허윤진을 발견했다.외국인 남자 몇 명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고 둘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다.“두 분, 우리 기분을 망친 채 사과도 없이 떠나려고 하는 건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요?”은발의 청년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서지은과 허윤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청년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살펴보는 듯했다.서지은은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허윤진을 뒤로 숨기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는 이미 사과했어요.”“그냥 가볍게 사과한 것만으로는 사과라고 말할 수 없죠.”은발의 청년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은발의 청년은 자기 목을 겨누는 장검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눈앞의 청년은 아무래도 자기 뒤에 있는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런데 자기 배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우리 아버지는 서오런 교회의 계아 주교야. 이래도 날 죽이겠다고 헛소리 칠 거야?”어느새 흉측한 몰골이 된 은발의 청년은 벌겋게 충혈된 두 눈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주변에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유람선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거액의 자산과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었다.이들은 각국의 세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은발 청년이 말한 계아 주교는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회의 3대 주교 중 한 사람이었고 그 명성 또한 자자했다.중요한 교회의 의식이 있을 때면 항상 계아 주교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계아 주교는 명성이 자자한 걸 떠나서 실력도 대단한 인물이었다.무려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전설 속의 지선 경지에 들어설 수 있는 놀라운 실력이었다.그때, 3층의 관리자가 급히 달려왔다.진서준이 검을 휘두른 것을 본 관리자는 서둘러 말렸다.“손님, 천하 유람선에서는 무력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원한이 있으시면 유람선 지하 1층에서 해결해 주세요.”관리자가 말한 곳은 바로 지하 1층에 있는 생사 결투장이었다.유람선에서 누군가와 사적인 원한이 있으면 전부 그 결투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규칙이 있었다.하지만 보통 결투장에 가서 해결하려면 규모가 큰 소란이 일어나야 했다.소란이 그다지 크지 않으면 유람선의 사람들은 전부 보고도 모른 척하곤 했다.다들 괜히 끼어들어 소란의 규모를 부풀려고 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예크스 씨, 무슨 일이죠?”이때 한 서양의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이 남자는 거대한 체구와 여성들이 부러워할 만큼 찬란한 금발 머리를 자랑하는 잘생긴 남자였다.이 남자는 바로 원탁 십이 기사 중 하나인 황혼 기사였고 실력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이 진서준이라는 사람,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구경꾼들은 결투장에 오를 사람의 정보를 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토론이 끝나자 적지 않은 사람이 황혼 기사에게 돈을 걸었다.교회의 원탁 십이 기사의 명성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반면 진서준을 아는 사람들도 그의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다.“진서준, 너 왜 교회 기사와 결투하게 된 거야?”이세아가 진서준을 보며 물었다.“전부 내 탓이야...”허윤진의 얼굴에 자책과 후회가 가득했다.“윤진아, 이 일은 네 탓이 아니야. 저 사람들이 일부러 시비를 걸었잖아.”서지은은 허윤진을 위로하며 한편으로 진서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우리가 아까 3층에서 당구를 치고 있을 때, 저 무리가 음흉하게 웃으며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일부러 윤진과 부딪힌 거야. 당시 윤진도 상대가 일부러 건드리자 화를 참지 못하고 그만...”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윤진 앞에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네가 잘못을 깨달았다면 앞으로는 절대 도박에 손을 붙이지 마.”허윤진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진서준, 앞으로 절대 도박 같은 걸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도박은 사람의 인생을 망치기 쉬웠다.돈을 잃은 사람은 기분이 더러워지고 기분이 더러울 때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지기 마련이다.“조심해. 교회 기사는 그렇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이세아가 진서준에게 경고하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황예은은 어디 있어? 왜 여기 없지?”“우리 둘이 한방에서 사이좋게 있을 것 같아?”이세아가 이내 진서준에게 되물었다.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심한데 한 방에 있을 리 없었다.두 사람 전부 훌륭한 교육을 받은 교양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미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그럼 어디 갔어?”진서준의 질문에 이세아는 아니꼬운 눈길을 보냈다.“그렇게 걱정돼?”진서준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황예은이 경호원 없이 혼자 나갔으니까 사고라도
내기를 건 사람들은 전부 불만을 표했다.다들 진서준이 질 것에 내기를 걸었고 이건 확실한 이득이 보장된 거래였다.하지만 이제 손원순이 갑자기 진서준을 대신해 출전한다고 하니 그들의 돈줄이 끊긴 셈이었다.“손 천사님, 그 녀석과 무슨 관계인가요? 왜 그 녀석을 대신해 나서시는 거죠?”“맞아요, 손 천사님, 이건 경기 규칙에 맞지 않아요.”“손 천사님, 그냥 내려가세요. 우리 돈 벌게 놔두세요.”사람들이 하나둘씩 손원순에게 내려가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손원순은 차가운 눈빛으로 구경꾼들을 쏘아보며 답했다.“불만이 있으면 먼저 올라와서 날 이겨봐.”손원순의 말 한마디에 떠들썩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손원순을 이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칠급 영선 술사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실력이었다.황혼 기사도 냉정하게 말했다.“좋아, 그럼 먼저 너부터 죽이고 저 녀석을 죽여야겠어.”VIP룸에 앉아 있던 예크스는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황혼, 저 녀석도 죽여버려! 저 늙다리에게 우리 교회 실력을 알려줘야 해.”심판이 마지막 확인을 마친 뒤 경기가 드디어 시작되었다.“난 밖에 나가 있을게. 손 천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구할 수 있게.”진서준의 말에 이세아가 놀란 듯 물었다.“너 손원순이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이세아가 놀란 듯 물었다.“아까 보니까 교회 기사들 강기는 호국장군과 비슷한 수준이야. 손 천사 실력도 약한 편은 아니지만 저 기사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좀 불안해.”진서준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무인와 수선자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무인도 나이가 많으면 실력이 점점 더 강해지긴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도 문제였다.나이가 너무 많으면 예전처럼 정정하지 않아 작은 상처나 질병이 있을 경우, 고수와 결투할 때 그 사소한 문제가 점점 더 커져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었다.수선자는 한 단계씩 경지가 올라가면 수명이 늘어나지만 무인은 그렇지 않았다.무인은 지선 경지에
“맙소사, 이게 바로 손 천사님의 실력인가?”“이 검을 과연 저 기사가 막을 수 있을까?”“막을 수 없을 거야. 손 천사님은 우리 명주시 최고 술법 강자잖아.”대다수 사람은 황혼 기사가 이 공격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황혼 기사도 눈앞의 광경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우리 스승님 시그니처 술법이네!”곽윤상이 흥분하며 소리쳤다.예전에 명주시에서 요괴들이 날뛰었을 때, 손원순은 바로 이 보라색 검으로 악귀 세 마리를 단번에 처치했다.그 사건을 계기로 손원순은 일약 명성을 떨쳤다.지금의 손원순은 그때보다 몇 배나 더 강해졌고 이 전설적인 기술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보라색 뇌검에 집중되었다.하지만 황혼 기사도 물러서지 않았다.황혼 기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손원순 못지않았다.황혼 기사는 은색 창을 높이 들고 길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전쟁의 신처럼 우뚝 섰다.그리고 황혼 기사가 갑자기 바닥에 발을 내딛자 강철처럼 단단한 바닥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황혼 기사의 모습은 빛처럼 빠르게 움직였고 순식간에 링 중앙에 도달했다.손원순 앞에 있던 뇌검도 같은 순간에 바닥을 쪼개듯 사나운 기세로 내려쳤다.창과 검이 공중에서 충돌하며 폭발적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펑!그 후, 뇌검은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부서져 날아갔다.그리고 공중에서 멈췄던 황혼 기사의 모습이 바로 손원순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술법이 깨져버리자 손원순은 원기가 크게 상하며 시뻘건 피를 왈칵 토해냈다.손원순의 강기는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격렬한 충격에 연신 뒤로 물러서며 발을 제대로 디딜 수도 없었다.“죽어!”황혼 기사는 손에 들었던 창을 힘껏 던졌고 그 창은 손원순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그 창에 맞으면 신선이라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이 순간, 두 사람의 결투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전부 경악을 금치 못했다.명주시에서 오랜 세월 명성을 떨친 술법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