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홍련은 진서라의 체내 독을 치료할 수 있는 희귀 약재 중 하나였다.지금까지도, 진서준은 어디에서 천년홍련을 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소정태가 빨간 연꽃을 봤다고 말하자 진서준은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나타났다고 간주했다.진서라의 체내 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만약 독이 폭발하면 진서준도 그 독을 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게 진 교관님이 말씀한 천년홍련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게 아니라 망원경으로 멀리서 봤거든요.”소정태가 한마디 보탰다.“그리고 그 산은 죽음의 산이라 불리는데, 저는 우리 대원들 안전을 위해 깊은 산 속으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진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바로 말했다.“좋아요, 그럼 두 부사령관과 함께 설표 특전대에 가겠습니다. 8대 특전대 대회 후에 사령관님이 말한 그 죽음의 산을 한번 확인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 진 교관님. 우리 설표 특전대 모든 대원이 교관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소정태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누를 수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사연에게 말하고 올게, 조금만 기다려.”“진 교관님, 내일 출발해도 늦지 않습니다. 사모님과 더 시간을 보내세요.”고소연이 배려 깊게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빙그레 웃고는 허사연의 방으로 갔다.방에는 진서라도 함께 있었고 둘은 진서준을 보고 내심 반가워했다.“오빠, 돌아왔어?”진서준을 보자 두 사람은 기뻐하며 말했다.“사연아, 내일 설표 특전대에 가야 해. 방금 소정태가 전화했는데, 그쪽 사람 중 하나가 천년홍련을 봤다고 해. 진위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내가 가서 직접 확인해 볼 거야. 서라의 체내 독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진서준은 허사연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알겠어, 난 다 이해해.”허사연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사실 날 너무 걱정하지도 않아도 돼, 몸 상태가 거의 다 나아진 것 같거든.”“오빠, 이번에 가면 위험하지 않아?”진서라는 허사연과
능청스러운 말을 던지며 허윤진은 허사연에게 눈짓했다.그러자 허사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냥 윤진이 따라가게 해.”“주변에 누군가 널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조희선도 입을 열었다.도대체 허윤진이 진서준을 챙기는 건지, 아니면 진서준이 허윤진을 챙기는 건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진서준은 속으로 답답하게 웃었지만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가족을 서남 금도행 비행기에 태우고 나서야 진서준과 허윤진은 집으로 돌아갔다.누렁이와 하얀이는 진서준 일행과 함께 가지 않았고 서울에 남아 집을 지키기로 했다.진서준이 어디로 가든 오직 올기만이 진서준의 뒤를 따랐다.“너희가 어쩌다 한번 온 거니까 내가 좀 대접해야겠어.”진서준은 고소연과 박준명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교관님, 식사는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다른 사람이 우리가 식사를 대접받았다는 소문을 들으면 우리가 기개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고 욕할 겁니다.”박준명이 서둘러 진서준을 말렸다.“맞아요, 교관님. 우리에게 기회를 주세요.”고소연도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간곡히 부탁했다.두 사람의 태도가 이 정도로 강경하자 진서준은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그리고 네 사람은 차를 타고 서울에 새로 생긴 5성급 호텔로 향했다.그 호텔은 향연 호텔이었다.롤스로이스 몇 대가 호텔 앞에 멈춰 섰다.차문이 열리자 서양인 얼굴을 한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주위에 위험이 없음을 확인한 뒤, 중간 롤스로이스에 있던 사람이 드디어 차에서 내렸다.그 사람은 바로 진서준 앞에서 여러 번 망신당한 행크였다.행크는 샛터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진서준에게 복수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면 평생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행크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행크님이 오늘 와주셔서 향연 호텔이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호텔 총매니저는 서둘러 행크에게 아첨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환영했다.호텔에 드나드는 유명 인사들은 이 성대한 장면에 깜짝 놀랐다.“이 호텔 배후 지배자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장사꾼은 보통 가게에서 손님을 쫓아내지 않았다.손님이 호텔에서 너무 지나친 행동을 했거나 호텔의 지배자와 손님 사이에 큰 갈등이 있었을 때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진서준을 포함한 네 사람은 오늘 이 호텔에 처음 방문했다.호텔 매니저가 그들을 쫓아내려고 하자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나가야 하죠?”“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우리 호텔의 품격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매니저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우리는 5성급 호텔이고 얼마 전에 개업한 새로운 호텔입니다. 여기 오는 사람은 전부 이 지역의 유명 인사입니다. 제가 못된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여긴 여러분이 올 만큼의 소비 수준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입은 그 옷만 봐도 여러분 수준을 알 수 있겠군요.”매니저의 말에 다혈질인 박준명의 화가 폭발했다.“뭐라고? 그 입 다 찢어버릴까?”본인이 비웃음당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존경하는 진 교관을 비하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소연 역시 얼굴이 굳어지고 매니저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봤다.“우리가 누군지 알아?”설표 특전대는 비록 8대 특전대 중에서 실력이 가장 약한 특전대였지만 일반인이 갈망하고 존경하는 존재였다.게다가 돈과 권력을 거머쥔 유명 인사들은 더욱 특전대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게다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장 신분까지 갖춘 진서준에게 자격이 없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나야 당연히 모르죠. 궁금하지도 않으니까 지금 당장 나가 주세요.”매니저는 더욱 차갑게 입을 열었다.매니저의 단호한 태도에 허윤진 일행은 단단히 화가 났다.나가는 건 별거 아니지만 체면을 잃는 건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매니저가 목소리를 높인 덕에 주변 사람들이 슬슬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이게 무슨 일이지? 매니저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하는 건가?”“저 네 사람이 도대체 총매니저한테 뭐라고 했길래 저렇게 된 거야?”“이 호텔은 경성 진씨 가문에서
허씨 가문은 서울에서 정말 영향력 있는 가문이지만 경성 진씨 가문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매니저는 몇 초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아, 허성태 갑부라고요? 당신이 갑부 딸이었네요. 근데 아쉽게도 오늘 우리 호텔은 만실이라 네 분은 나가셔야겠습니다.”매니저는 새로운 이유를 들었지만 여전히 그들을 내쫓으려는 태도였다.“너무 억지로 괴롭히는 거 아니야?”허윤진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단지 너희가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렸기 때문이야.”매니저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그때,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 호텔이 경성 진씨 가문 소유라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야?”“맞아요.”매니저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이 호텔은 우리 진광 도련님이 개업한 곳입니다. 진광 도련님은 진씨 가문 직계 후손이고요.”매니저가 시원하게 인정하자 구경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이 네 사람, 진짜 큰일 났네.”모두가 진서준 일행이 쫓겨날 거라고 여겼고 고소연과 박준명도 얼굴이 굳어졌다.경성 진씨 가문은 말 그대로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명문대가였다.부사령관인 두 사람은 물론, 소정태 같은 사령관조차 진씨 가문과 대립할 수 없었다.이건 정말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거 참 공교롭네. 난 너희 진씨 가문 사람을 알거든.”진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씩 웃으며 말했다.“네? 진씨 가문 사람을 안다고요?”매니저는 진서준의 말이 무척이나 의심스러웠다.“오늘 우리 사장님이 몸소 이곳에 오지 않는 한...”매니저의 말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진서준이 건드린 사람은 거의 이 호텔 사장과 같은 등급의 인물이었다.“사장님이라고?”진서준은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웬일이야? 난 네가 이 늙다리를 잊어먹었나 했어.”전화 속에서 한 노인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요 며칠은 너무 바빴어요. 이제 제가 경성에 가면 꼭 할아버지께 직접 사과드릴게요.”진서준은 무척이나 미안해
“사... 사장님!”순식간에 호텔 매니저는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매니저는 눈앞의 청년이 진짜 자기 사장을 아는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앞으로 이 호텔은 네 눈앞 청년 진서준의 것이야. 내일 여기 돌아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하게 설명해.”진광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진광은 진서준이 이유 없이 이 5성급 호텔을 원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분명 호텔 쪽에서 진서준을 화나게 할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진씨 가문은 부유하지만 정작 진광 자신은 그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부유하지 않은 진광이 이 5성급 호텔을 그냥 내어주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호텔을 내어주는 사람이 바로 자기와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만약 진서준이 진광의 절친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가슴이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알, 알겠습니다...”호텔 매니저는 침울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지금 이 순간 매니저는 진광이 자기에게 살길을 남겨주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럼 아직도 날 쫓아낼 거야?”진서준은 전화를 끊고 차갑게 따졌다.“아, 아니, 아닙니다! 이 호텔은 이제 사장님 호텔입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사장님을 쫓아내겠습니까?”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한 매니저는 즉시 실실 웃으며 말했다.“날 쫓아내지 않겠다면 누가 네게 그 명령을 내렸는지 얼른 말해봐.”진서준의 질문에 매니저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 그건...”진서준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행크 왕자 역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난 진광이 호텔을 내게 양도할 수 있게 할 수도 있고 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어.”진서준은 차가운 어조로 일부러 위협하듯 말했다.“알겠습니다. 아까 그 명령을 내린 건 샛터의 행크 왕자입니다.”매니저는 손가락으로 멀리서 지켜보는 행크를 가리켰다.그 말을 들은 진서준은 쌀쌀하게 웃으며 행크 쪽 방향을 바라봤다.두 사람은 서로 멀리서 시선을 교환했다
교관이 이상하리만큼 강한 건 이유가 있었다. 진서준은 진씨 가문 출신 천재였다.두 사람은 바로 진서준이 대단한 실력을 갖춘 원인을 속으로 추리해 냈다.대한민국의 4대 가문 중 하나인 진씨 가문의 배경은 일반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진서준이 이런 신분을 갖췄다면 뛰어난 실력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그게 맞든 아니든, 너와 무슨 상관인데?”진서준이 되물었다.“이번엔 내가 패배를 인정할게. 근데 이제 다른 기회 잡히면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행크는 진서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으름장을 놓고는 바로 돌아서 호텔을 떠났다.“뭐야, 어디 가? 여기 남아 밥 먹어. 난 너처럼 인색해서 한 끼 밥도 못 먹게 하진 않아.”진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살살 도발했다.행크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마음속 감정을 숨기지 않고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지금의 행크는 분노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샛터 왕자라는 엄청난 자부심과 신분을 갖춘 사람이 대한민국의 한낱 평범한 천민에게 두 번이나 굴욕을 당하다니, 이 원한을 갚지 않으면 행크는 마음 편하게 잘 수 없을 것 같았다.“사장님, 이쪽으로 오세요. 식사는 꼭대기 층에서 준비했습니다. 오늘 밤, 꼭대기 층은 다른 손님을 받지 않고 오로지 사장님만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할 겁니다.”매니저는 행크가 떠난 후 바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부하기 시작했다.진서준은 매니저를 흘끗 쳐다보며 물었다.“꼭대기 층은 날 위해 준비한 거야, 아니면 저 왕자를 위해 준비한 거야?”매니저는 진서준이 숨겨진 사실을 알아차리자 순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당연히 사장님을 위해 준비한 겁니다...”“알았어,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그냥 우리에게 아무 방이나 찾아줘. 그리고 너희 대표 메뉴를 다 가져와.”진서준이 정색하며 말했다.진서준은 쓸데없는 사치와 낭비를 좋아하지 않았다.꼭대기 층 전체를 진서준만을 위해 비우게 하면 그만큼 돈을 벌 수 없게 될 것이다.세계적인 갑부 소하비를 만나고 나서야 진서준은 자기
“우리 총사령관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도해 보려고 하십니다. 총사령관의 목표는 항상 전신전에 들어가는 거였거든요.”박준명이 설명했다.“그래? 전신전은 사람을 받을 때 나이 제한이 없어?”진서준은 소정태의 목표를 듣고 놀랐다.보통 들어가기 어려운 조직은 나이 제한이 엄격하기 마련이었다.예를 들어, 신농이 제자를 받을 때 그 사람은 천부와 실력도 뛰어나야 했지만 나이도 중요한 요소로 고려된다.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마흔을 넘으면 신농에 들어갈 수 없었다.“전신전은 나이 제한이 없습니다.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들어갈 수 있습니다.”고소연이 옆에서 함께 설명했다.“지금 소 사령관은 대종사가 되었어?”진서준이 궁금한 걸 물었다.“네, 대종사로 승급했지만 무도와 군대는 조금 다릅니다. 대종사가 된다고 해서 바로 전신전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전신전 내부에는 대종사가 아닌 사람이 3분의 2나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군대 내부 무기를 다루는 능력이 거의 사람과 기계가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박준명은 진심으로 부러워하며 말했다.이렇게 높은 수준에 도달하려면 튼튼한 신체도 있어야 했고 타고난 천부도 매우 중요했다.성공은 70%의 천부, 20%의 운, 그리고 10%의 노력이 결정하게 된다.노력만 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사람마다 천부가 달랐기 때문이다.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도록 유도하려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음식이 금방 나왔고 진서준 일행은 술잔을 나누며 식사를 즐겼다.배가 부른 후,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설표 특전대 기지는 이때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반 달 넘게 긴장한 상태로 대회 준비를 하던 설표 특전대 대원들은 지금 이 순간 엄격한 훈련을 받지 않고 오히려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이건 소정태가 내린 명령이었다.8대 특전대 대회 전, 대원들에게 긴장을 늦추고 푹 쉬게 하라는 명령이
“설표 특전대를 네 손에서 무너뜨리는 게 네 진짜 목적이야?”고인권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정태와 따졌다.소정태는 화내지 않고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고인권, 이제 이틀 후면 대회가 시작돼. 우리 대원들에게 마지막으로 편하게 좀 쉬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지금 쉬는 게 좋다고? 설표 특전대가 나중에 또 마지막 자리를 차지할 때, 그때 네가 여전히 이 자리에 남아있을지 두고 보자!”고인권은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소정태를 돌아보며 말했다.“소정태! 너 정말 실망이야!”이상아도 고인권과 마찬가지 입장이었다.“소정태, 같은 문하 형제로서 네가 이렇게 타락할 줄은 몰랐어.”두 사람이 떠난 후, 소정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완전히 다른 두 세계의 사람들을 보았다.“지금의 설표 특전대는 이미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어. 두고 봐, 대회 당일, 너희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을 거야.”흑기린 기지로 돌아오자 부사령관이 고인권에게 다가왔다.“고 사령관님, 설표 특전대 사람들은 미친 겁니까? 이런 비상시기에 놀기만 한다니, 설표 특전대가 어차피 마지막 자리를 차지할 걸 예상하고 자포자기하는 걸까요?”고인권은 심기가 불편한 굳은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내 명령을 전해. 대회 당일 우리 흑기린은 전부 설표 특전대를 공격해. 그 누구도 자비를 베풀지 마!”부사령관이 우려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고 사령관님, 이건 너무 지나친 게 아닙니까? 우리는 필경 같은 특전대잖아요.”“괜찮아, 설표 특전대에 따끔한 교훈을 줘야 해. 어차피 내년부터 설표 특전대라는 부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야.”고인권의 태도는 단호했다.“정말 설표 특전대를 폐지하려는 걸까요?”“원래 상부에 간청하려고 했지만 지금 저 녀석들이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니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아. 차라리 이 기회에 폐지하고 우리 8대 특전대 명예를 지키는 편이 훨씬 낫겠어.”고인권은 분노에 가득 찬 채 거침없이 비난했다.부사령관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