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은 김연아를 집으로 데려다준 뒤 허사연이 걱정되어 차를 타고 허씨 저택에 들렀다.“서준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문을 연 건 허윤진이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젖어 있고 얇은 파자마를 입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파자마 속 아름다운 몸 선이 보였다.진서준은 힐끗 본 뒤 시선을 거두어들였다.“사연 씨 보러 왔어요.”진서준이 허사연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허윤진의 미소가 곧바로 사라졌다. 그녀는 코웃음을 친 뒤 고개를 돌리며 자리를 떴다.진서준은 어리둥절했다.“내가 뭘 어쨌길래 저러는 거지?”“언니 샤워 중이에요. 기다려요.”허윤진은 소파에 엎드려서 휴대전화를 봤다.그러면 이따금 진서준을 힐끔댔다.“성태 아저씨는요?”“아빠는 오늘 집에 없어요. 나랑 언니뿐이에요.”허윤진의 길고 늘씬한 두 다리가 움직이면서 매끈한 발목과 종아리가 보였다.평소 허성태가 집에 있을 때면 허윤진은 이렇게 입지 않았다.비록 부녀 관계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러지 않는 게 좋았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안 좋은 소문이 돌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서준 씨, 이틀 뒤에 권해철 씨 사문에 간다고 했죠?”허윤진이 갑자기 물었다.“네, 왜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같이 가도 돼요?”허윤진은 자리에 앉은 뒤 기대 가득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어렸을 때부터 전 먼 곳에 놀라가 본 적이 없어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안 돼요. 전 권해철 씨랑 놀러 가는 게 아니에요.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가는 거예요.”권해철은 그의 사문에서 쫓겨났었다. 그러니 이번에 그와 함께 산에 오른다면 권해철의 사문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 싸울 수도 있었다.비록 진서준과 권해철 모두 실력이 강하다지만 정말로 싸우게 된다면 권해철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도 허윤진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일반인이었기에 권해철 사문 사람들이 허윤진의 목숨으로 그를 위협한다면 위험했다.이번에는 어머니의 다리를 치료할 수
진서준은 그 조건을 듣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이 자세를 허사연이 본다면 오해할지도 몰랐다.진서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위층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허윤진은 토끼처럼 바로 진서준을 풀어주고는 다른 소파 위에 앉았다. 진서준과 딱 달라붙어 있은 적이 없던 것처럼 말이다.그러나 그녀의 빨개진 얼굴이 조금 전의 일을 얘기해주고 있었다.“서준 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던 허사연은 진서준을 보자 싱긋 웃으며 물었다.“사연 씨가 걱정돼서 참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허사연이 입고 있는 옷은 허윤진의 것보다 더 얇았다. 진서준은 심지어 안쪽의 중요 부위까지 보았다.허사연은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진서준은 깜짝 놀라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허사연은 진서준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자신이 속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다.그러나 이미 아래층까지 내려왔고 그녀와 진서준은 연인이기도 했으니 굳이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두 사람은 언젠가는 서로를 솔직히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허사연은 지금 진서준에게 이런 복지를 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바보, 왜 오늘 갑자기 절 걱정하는 거예요?”허사연은 머리를 닦으며 평온한 얼굴로 진서준의 곁에 앉았다.그녀에게서 맡아지는 옅은 향기에 진서준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아름다운 얼굴이 진서준의 바로 앞에 있었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허사연은 평소보다 더 희고 부드러워 보였고 빨간 입술도 아주 요염했다.진서준은 호흡이 거칠어지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허사연을 끌어안으며 애정 행각을 벌이려고 했다.“뭐 해요?”허윤진이 타이밍 좋지 않게 끼어들면서 진서준의 손을 쳐낸 뒤 허사연을 자신이 앉고 있던 소파로 끌고 왔다.진서준은 조금 화가 났다. 허윤진은 그의 일을 자꾸만 망치려고 했다.진서준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본 허사연은 참지 못하고 몰래 입을 가리고 웃었다.“이지성이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요.”진서준은 흑심을 억누르며 진지한 얼
낙산컴퍼니는 이제 진서준의 것이었지만 허사연이 파견한 양소빈이 관리하고 있었다.이혁진은 진서준이 어디 있는지 몰랐기에 낙산컴퍼니로 가서 소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그가 낙산컴퍼니에 있다는 걸 진서준이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그를 찾으러 올 것이었다.“우 종사님, 잠시 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이혁진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현재 이혁진은 자신의 자산과 생명을 전부 우소영에게 걸었다.만약 우소영도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 진 선생님을 찾아가야 했다.“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당신이 준 것을 우리 사부님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면 전 겨우 20대인 청년을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우소영은 차갑게 말했다.탁현수의 명령이 없었다면 이씨 일가가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절대 서울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종사인 그녀에게 일반인을 죽여달라고 하다니, 그녀에게는 크나큰 모욕이었다.그러나 사부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이씨 일가가 탁현수가 아주 좋아하는 물건을 선물로 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우 종사님, 이놈 보통 놈이 아니에요. 혼자서 십여 명을 상대할 수 있어요!”이혁진은 진서준이 아주 대단한 것처럼 말했다.그런데 우소영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웃었다.“혼자 십여 명을 상대할 수 있으면 대단한가요? 그런 사람은 무인의 문턱도 넘지 못해요. 진짜 무인이라면 아무리 약해도 50명 정도는 거뜬히 해결할 수 있죠.”우소영은 태연하게 말했고 이혁진은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이제 막 무인의 문턱을 넘은 초보도 50명 정도는 거뜬히 상대할 수 있다니.그렇다면 종사는 얼마나 강할까? 혼자서 군대 하나를 없앨 수도 있지 않을까?이혁진은 이제야 세가들이 왜 그렇게 종사를 숭배하는지 알게 되었다.이내 이혁진과 우소영은 낙산컴퍼니 1층에 도착했다.이혁진은 차에서 내린 뒤 능숙하게 우소영을 회사로 안내했다.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이혁진은 회사 사람들 반 이상이 바뀐 걸 발견했다.사실 저번에 은영호 부자가 회사에서 쫓겨난 뒤 양소빈은 회사
“누군가 회사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양소빈이 말했다.“누군데요?”“안내데스크 말을 들어보니 전 사장이라는데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웃었다.“이혁진 씨 그래도 사나이네요.”진서준은 이혁진이 유지수처럼 자기 가족을 납치할 줄 알았다.오늘 진서준은 진서라를 따갈 준비까지 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절대 다치지 말아요!”말을 마친 뒤 진서준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낙산컴퍼니로 향했다.양소빈은 회사의 임원으로서 안내데스크로 향했다.성숙하고 아름다운 양소빈을 본 이혁진은 차갑게 코웃음쳤다.“당신이 그 망나니가 만나는 여자야?”이혁진의 모욕에 양소빈은 무척 화가 났다.“무슨 헛소리예요? 경비원을 시켜서 당신의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조용히 하세요.”이혁진은 그 말을 듣더니 경멸에 차서 웃었다.“그래. 그러면 경비원 불러와.”이혁진의 건방진 모습에 양소빈은 곧바로 이 건물 관리인에게 연락했다.관리인은 누군가 난동을 부린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경비원 네 명을 보냈다.“저 사람 쫓아내세요!”양소빈은 이혁진을 가리키며 말했다.경비원은 앞으로 걸어가서 이혁진을 끌고 가려 했다.그런데 줄곧 뒤에 서 있던 우소영이 갑자기 손을 썼고 네 명의 경비원이 순식간에 날아가서 벽에 쿵 부딪혔다.그 광경에 양소빈과 회사의 다른 직원들 모두 넋이 나갔다.노인인데 어떻게 힘이 이렇게 강한 걸까?게다가 힘만 강한 게 아니라 속도도 빨랐다. 그들은 심지어 우소영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흥, 이제 누굴 더 부를 거야?”이혁진은 건방진 걸음걸이로 양소빈에게 다가갔다.“당신이 그 자식 여자라면 우선 당신부터 손봐줘야겠어!”양소빈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녀는 이혁진이 여자인 그녀에게 손을 대려 할 줄은 몰랐다.우소영의 눈동자에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그를 말리지 않았다.이혁진은 양소빈의 앞으로 걸어가서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때리려 했다.양소빈은 그 광경을 보고 서둘러
우소영은 종사였기에 이혁진을 기습하는 사람의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느낄 수 있었다.그녀조차도 이 일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쿵 소리와 함께 난동을 부리던 이혁진은 그대로 멀리 날아가서 몸이 벽에 박혔다.이 건물은 완공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성년이 들소라고 해도 벽에 균열을 내기는 어려웠다.진서준의 발차기에 담긴 힘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벽에 처박힌 이혁진은 죽기라도 한 건지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진서준 씨...”양소빈은 제때 도착한 진서준을 보고 안도했다.만약 진서준이 조금이라도 늦게 왔다면 얼마나 고생했을지 모른다.진서준에게 손을 쓰려던 우소영은 당황했다.“진... 마스터님?”우소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두 손도 통제할 수 없이 떨렸다.고개를 돌린 진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우소영을 본 뒤 말없이 양소빈을 향해 다가갔다.양소빈의 뺨에 남은 빨간색 손바닥 자국을 본 진서준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관절에서 콰드득 소리가 날 정도였다.“아파요?”진서준은 들끓는 분노를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 아파요. 왔으면 됐어요...”자기보다 몇 살이나 어린 남자가 바라보자 평온하던 양소빈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진서준은 자신의 체내에 있는 영기로 양소빈의 부기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사람이 워낙 많고 치료할 때 움직임이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조금 남사스러웠다. 소문이라도 난다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가서 수건으로 얼음찜질 좀 해요.”진서준이 말했다.“괜찮아요.”양소빈은 고개를 저었다.“얼른 가요.”진서준은 용납할 수 없다는 어조로 강하게 말했다.양소빈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곧바로 몸을 돌려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양소빈이 떠난 뒤 진서준은 회사의 남자 직원들을 바라보며 분노에 차서 따져 물었다.“당신들이 그러고도 남자입니까? 회사 사장 남자한테 맞고 있는데 그걸 멀뚱히 서서 지켜보고만 있어요?”진서준의 호통에 남자들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그들은 조금 전 양
이때 우소영은 조금 전만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비록 진서준이 아주 유명하고 남주성 사람들이 다 진 마스터를 존경한다고 해도 그녀의 사부도 약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우소영은 이혁진이 상대하려는 사람이 진서준이라는 걸 몰랐다.무지한 자는 죄가 없다는 말이 있다.하지만 우소영은 먼저 진서준에게 사과했다.“진 마스터님, 이씨 일가가 상대하려던 사람이 진 마스터님일 줄은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절대 그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을 거예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웃었다.“그들이 죽이려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접니다. 우소영 씨도 여자인데, 이혁진이 약한 여자를 때리는데도 가만히 있었던 겁니까?”진서준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혼내자 우소영은 아주 난감했다.그녀는 진서준보다 40살은 더 많았고 나이만 본다면 할머니뻘이었다. 게다가 우소영은 이미 진서준에게 사과했다.진서준이 마구 몰아붙이자 우소영은 아주 불만스러웠다.그녀는 차갑게 웃었다.“진 마스터님, 잊으셨나요? 전 진 마스터님 부하가 아닙니다.”“아, 제가 깜빡했네요. 우소영 씨는 제 부하가 아니니까 때릴 수 있네요!”우소영이 뻔뻔하게 굴자 진서준도 더는 봐주지 않고 손을 들었다.속도가 아주 빨라서 우소영은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우소영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진서준의 분노에 찬 손길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콰득!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회사 안에 울려 퍼졌다. 다들 머리털이 쭈뼛 서서 충격받은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우소영은 혼자서 네 명의 경호원을 쓰러뜨렸다. 그래서 다들 우소영이 만만치 않은 무인이라는 걸 알았다.그러나 지금 우소영은 진서준의 앞에서 세 살짜리 애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맞기만 했다.그들의 회사 대표는 너무도 강했다.우소영은 더욱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놀라움과 원망이 있었다.그녀는 진서준이 다짜고짜 공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어제 밥을 먹을 때 우소영은 진서준에게 사부님에 관해 얘기한
이혁진을 찼을 때 진서준은 마지막에 힘을 살짝 거두어들여서 그를 단번에 죽이지는 않았다.그렇지만 이혁진의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었다. 콧대가 내려앉고 얼굴과 목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지금 이혁진은 겨우 숨만 붙어있는 상황이었다.이혁진은 눈빛이 흐리멍덩했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흰색과 빨간색뿐이었다.진서준의 목소리를 들은 이혁진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분통함과 분노가 가득했다.“진서준, 난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가 죽게 되면 내가 겪었던 이 모든 고통을 그대로 너에게 돌려줄 거야.”이혁진은 자신이 오늘 틀림없이 죽을 거로 생각했다. 진서준이 다시 그를 살려둘 리가 없었다.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 바에야 차라리 저주를 퍼붓는 게 나았다.진서준은 그의 말을 듣더니 차갑게 말했다.“이혁진 씨, 이 지경이 돼서도 아직도 날 탓하네요. 당신이랑 당신 아들의 모함 때문에 난 감옥에 3년 동안 갇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게 지금 내 문제라는 거예요?”만약 당시 이지성이 밥 먹을 때 유지수를 희롱하지 않았더라면 진서준도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원래는 사소한 싸움이었는데 이씨 일가에서는 사람을 찾아 진서준을 감옥에 보내버렸다.더욱 괘씸한 것은 진서준이 감옥에 들어간 뒤 이지성과 유지수가 사람을 시켜 조희선의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점이다.두 사람의 행위는 짐승만도 못했다.이혁진은 그의 말을 듣더니 피를 뱉으며 웃어 보였다.“진서준, 사실 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된 건 우리 때문이 아니야.”“이제 와서 변명하려는 거예요?”진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랑 내 아들은 당시 널 감옥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인맥이 없었어. 그런데 누군가 날 찾아와서 널 감옥에 보내 3년 동안 형을 살게 할 수 있다고 했어.”이혁진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이씨 일가의 재력과 인맥으로는 검찰총장을 매수하기엔 역부족이었다.진서준이 형을 살게 된 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때문이었다.그런데 그 사
그 광경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그들은 조폭들까지 그들의 대표님을 존경할 줄은 몰랐다.다들 후회막급이었다. 만약 그들이 조금 전 의연하게 달려들어 양소빈을 지켰다면 대표의 눈에 들어 승진하고 월급이 인상됐을지도 몰랐다.“끌고 가요.”진서준이 이혁진을 가리켰다.강성철은 이혁진을 힐금 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 파동도 없었다.네 명의 부하가 잽싸게 이혁진을 자루 안에 넣어 그를 데리고 떠났다.“강성철 씨도 가봐요. 깔끔하게 처리해 주세요.”진서준은 낮은 목소리로 강성철에게 말했다.“진서준 씨, 걱정하지 마세요.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강성철은 사람을 데리고 떠났다.진서준은 회사 직원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남자들은 알아서 떠나요. 제가 자를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요.”용서해달라고 할 생각이던 사람들은 조금 전 진서준의 무시무시한 힘을 직관하고 마음을 접었다.진서준이 양소빈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양소빈은 젖은 수건으로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오자 양소빈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움직이지 말아요. 그냥 앉아있어도 돼요.”진서준은 손사래를 치면서 양소빈에게 앉으라고 했다.양소빈은 허사연이 진서준을 도와 회사 업무를 처리하라고 보낸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맞았으니 진서준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죄송해요, 양소빈 씨.”진서준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진서준 씨 탓이 아니에요. 그 남자가 이상한 거죠.”양소빈은 진서준의 사과를 감당할 수 없었다.그녀는 허사연과 진서준이 연인이라는 소문을 들었다.앞으로 진서준은 허씨 일가의 주인, 그녀의 미래 상사가 될지도 몰랐다.진서준은 양소빈의 정중한 태도를 보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얼굴 좀 봐요.”진서준이 다가가서 말했다.“괜찮아요. 아직 부기가 내려가지 않아서 좀 못생겼어요.”양소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진서준이 다정하게 말했다.“난 양소빈 씨 얼굴의 부기가 더 빨리 가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