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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

Author: 김굉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2 18:00:00

너른 공간에 크고 작은 발소리와 수레 바퀴 소리가 절묘히 섞여 들어간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며 자아내는 신묘한 박자감에 몸이 젖어갈 때쯤 왼쪽의 문으로 빠져나왔다.

사람 서너명은 한 번에 지날 수 있는 너른 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니 누런 물이 흐르는 해자가 보인다. 그 위에 얹어진 다리를 건너는데 오른쪽으로 회랑과 같은 높이의 담장이 쭉 이어져있고 그 너머로 높고 큰 황금지붕 건물이 보인다. 아까 대전이라고 생각했던 건물도 그저 문일 뿐이었다.

강현은 까마득한 거리와 규모를 찬찬히 눈에 담았다. 해자의 폭과 깊이도 유심히 바라보고, 왼쪽의 성벽에서 오른쪽 담장까지의 거리와 정면에 보이는 서궁의 대문을 보며 전체적인 윤곽을 머릿속에 심기 시작했다.

“들리냐?”

형의 말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강현은 귀가 너무 좋다보니 오히려 모든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익숙한 소리에만 반응한다. 그래야 쉬이 피곤해지지 않는다.

주변으로 청력을 확장하는 순간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여러 마리가 아니다. 단 한필의 말이며 기수가 타고 있다. 아주 빠르지만 규칙적이다. 훈련이 잘 된 말이며, 울림의 크기로 보아 덩치도 작지 않다. 짐작건데 기수도 그리 작은 체구는 아닌듯하다. 바닥은 흙바닥이 아닌 돌바닥이다. 말발굽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리고 어딘가 소리의 합이 어색했다. 강현은 좀 더 집중해서 들어본다. 궁 안에서 홀로 말을 타고 달리고 있는데 주변인들의 사소한 응원이나 염려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는 청아한 웃음소리 하나 뿐이다.

“한필, 한 명. 명마 그리고 아마도 태자 전하.”

형에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한다. 오래 같이 지내온 매령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웅얼대는 내 목소리가 들리면 내 입술을 읽는다.

“씁-.”

매령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에 강현은 또 피식 웃고 말았다.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본다. 궁이 대단하긴 한가보다.

서궁의 문을 넘어서자 바닥이 청강석으로 바꼈다. 휘몰아치는 청록빛의 바닥 위로 검은 기둥에 황금 지붕을 얹은 육중한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둥글게 파고 들어간 너른 연무장이 있고, 검은 갈기를 휘날리는 백마 가리온加里溫이 달리고 있다. 그 위에 적의를 입은 사내가 올라앉아 있었다. 앞뒤로 길게 늘어난 말의 형상과 달리 사내의 자세는 유연하고 여유롭다.

적의의 기수는 늘어난 인파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말을 몬다. 가리온은 기수의 명령에 즉각 반응하며 연무장 외곽의 너른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올랐다. 위로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앉는 검은 갈기 사이로 단정한 흰 얼굴이 드러났다 사라진다. 연무장 위로 올라오자마자 사내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강현은 저도 모르게 사리물었다. 태자는 지금 막 열다섯이 되었다. 그러나 그냥 보아도 육척은 진작에 넘겼다. 황실은 본래 북방의 국경을 수비하던 무골 가문이었다. 큰 키와 너른 어깨는 그 핏줄을 확실히 이었다는 증거일테다. 노력한다고 가질 수 없는 체격이다.

“전하! 여기 있을 때가 아니잖습니까?”

“와아아- 형님! 이거 연燕의 선물이죠?”

쌍둥이 남매가 동시에 소리쳤다. 이연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입매는 끌어올려 미소지었다. 긴 손가락을 들어 주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전하 소리는 아직 일러. 책봉례는 혼례 이후다. 운아, 타볼래?”

휘운은 이연이 내미는 말고삐를 순순히 넘겨받았다. 이연은 동생을 번쩍 들어올려 말 위에 태워준 후 순식간에 뒤쫓아 와 뒤에 도열한 금군 중 한 명에게 말고삐를 잡으라 일렀다.

그리고는 강원 일행을 바라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치사할 정도로 근사했다. 태양빛을 머금으며 걸어오는 이연은 정말 남자가 봐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미남이었다.

하얀 얼굴에 선명하게 그어진 검은 눈썹과 반듯하고 높은 코, 얇고 이지적인 붉은 입술이 완벽하게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길게 뻗은 눈썹 아래에 섬세하면서도 깊은 눈매가 자리하고, 그 속에 파란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다. 신비한 파란빛이다. 물과 같은 투명한 맑음이 아니라 하늘과 같이 아득하게 높으면서도 따뜻한 파란빛이다.

정확히 매령의 앞에 큰 키가 위압적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멈춰선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연이라고 합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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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향   철향鐵響 四十六

    “전 세상이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야 할 곳은 계단참에 있고요. 몇 칸을 오르고 내리면 되는지만 외우면 되니까요.” 무시무시한 말을 해맑게 어린 아이처럼 한다. 현덕은 문득 궁금해진 것을 물어본다. “그러면 넓고 뻥 뚫린 공간은 어떠하지? 훨씬 안전하지 않은가?” “아니요. 익숙해지기가 너무 힘듭니다. 테두리만 빙빙 돌아보겠지요. 몇 번을 안쪽으로 파고들어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방향을 잡을 수도 없지요. 계단은 방향이 정해져있어 편리합니다.” 얘기를 듣기 전부터 어느 정도 감은 잡혔다. 연무장 같은 공간에서는 오히려 달리지 못하겠다. 허허벌판에서 눈감고 달린다고 생각하니 제 풀에 놀라 넘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막막한 미지의 영역. 그나마 소리라도 있으면 방향은 잡히겠지. “그래도 자네를 너른 무대 위에 올려두고 연주를 시켜보고 싶긴 하네.” “그때는 직접 이끌어주십시오.” “안하겠다는 소리는 안하는군.”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지율을 따라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공간에 가구들이 최대한 벽을 향해 자리잡고 있고, 실수로 잘못 짚어도 쓰러지지 않게 잘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탁자 위는 깨끗하고, 선반 칸에는 물건을 하나씩만 올려두고 있다. 머리보다 높은 위치에는 물건이 없다. 그리고 탁자 앞 하나뿐인 의자에는 한 남자가 비스듬히 문쪽을 향해 앉아있었다. 현덕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한다. “화산의 제자 백현白賢이라고 합니다. 현덕 마마님을 뵙습니다. 율아, 약을 좀 가져왔다.” 쉰은 넘어 보이는 그 남자는 품에서 작은 비단주머니를 꺼내 다가오는 지율의 손에 쥐어주었다. “장로님 이건.”

  • 철향   철향鐵響 四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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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향   철향鐵響 四十四

    현덕은 목욕통에 앉아 겉을 깨끗이 하는 동안 몸 속은 온통 소리로 가득차 있다는 걸 느꼈다. 물소리와 공명하는 거문고 소리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흐르고 또 흐른다. 끝나지 않고 계속 맴돈다. 어머니께서는 제자의 연주에 흡족해하며 떠나셨을까? 난 어머니의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다. 생각 사이사이에 계속 단단한 음들이 끼어 든다. 어쩌면 지율의 연주는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네 마음을 위한 진혼곡이었겠지. 그리고 나를 위로한다. 장례는 사람이 죽어 시작되는 것이지만 산 자들을 위한 의식이다. 죽은 자의 귀에 이승의 아름다운 음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몸을 닦고 옷을 갖춰 입고 돌아왔을 때 지율은 침상에 걸터 앉아 있었다. 눈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표정을 감출 수 있는 거였다. 시선조차 없다. “좀 더 쉬지.” 현덕은 탁자 위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고 있는 만두와 계란탕을 바라보았다. 기탁이 두 그릇씩 준비해두었다. “이 녀석은 자기 몫은 챙겨 먹고 있는건가.” 궁에서의 버릇을 못버리고 혼잣말을 궁시렁대며 지율에게 다가갔다. 현덕의 주위로는 항상 궁인들이 있었고, 말을 삼킬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알아서 주워섬겼다. 답이 필요 없는 말도 예사로이 내뱉곤 했다. 그렇게 웅얼거리며 이연에게 사서삼경을 읊어준 것도 있었다. “정말 태리님을 많이 닮으셨습니다.” 지율은 현덕이 팔을 내어주자 그것을 붙잡고 이끄는대로 걸으며 말을 걸었다. “어떤 부분이?” 다른 건 몰라도 얼굴은 아닐 것이다. 이 자는 보지 못한다. “혼잣말 하시는거요. 스승님도 홀로 오래 지내시다보니 제가 있어도 혼잣말을 많이 하셨습니다. 처음엔 하나하나 모두 답을 해드리다,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 철향   철향鐵響 四十三

    오늘로 칠 일째다. 유배라고는 하나 도량에 몸담았기에 어머니는 화산에 묻혔다. 수많은 도사들이 어머니 가시는 길을 깨끗이 제령해주었다. 아름드리 향나무 아래 화산에서 저문 다른 도사들과 함께 묻혔다. 현덕은 울지 않았다. 이미 어머니를 품에 안고 보내드렸기에 울 이유가 없었다. 기탁이 옆에서 대신 곡을 해주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문고 소리가 거의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지고지순하게 아름다워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소리이다. 생을 다한 어머니를 안고 있을 때 들었던 그 음악이다. 감정은 단 한 톨도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듯 연주하지만 메마르진 않다. 한 음 한 음 치밀하게 계산된 소리이건만 딱딱하지 않고 완벽에 가까운 울림을 준다. 영롱하면서도 따스하고, 하늘을 뚫을듯 날카롭게 솟아오르다가도 깊은 물 속에서 끓어오르듯 격정적이다. 현덕은 향나무 등치에 기대고 앉아 단 한 음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감고 그렇게 듣고 있었다. 새벽 이슬에 빗방울이 더해지기 전까지는 그리하였다. 기탁이 조용히 다가와 우산을 건네주어 한참을 바라보다 받아들었다. 이제껏 끼니도 다과도 다 물렸건만 이것만은 왜 물리지 못하였을까. 접힌 우산의 몸통을 부여잡고 일어섰다. 바보같이 휘청거렸다. 나무기둥에 빈 손을 대고 잠시 서서 몸의 운행을 다스렸다. 피가 수월히 돌고 몸이 고루 따스해졌을 때 발걸음을 뗐다. 망설이지도 돌아가지도 않는다. 줄지어 늘어선 묘비 중 어머니의 묘비 앞에 앉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영롱한 빗물이 어두운 소리가 튕겨지는 것을 막아내고 제 몸을 잘게 부서뜨리며 날아올랐다. 비산하는 물방울 중에는 그새 색이 변해 분홍빛으로 물든 것들이 있었다. 현덕은 검붉은 손끝에 시선을 두고 우산을 펼쳤다. 그만하라는 말이 혀끝까지 밀려 올라오지만 꾹 삼킨다. 어디 감히 내가 뭐라고, 어머

  • 철향   철향鐵響 四十二

    턱 끝까지 다가온 사룰의 얼굴을 제인은 매섭게 노려보았다. 생각보다 손아귀 힘이 세다. 좁은 공간에 둘 뿐인 상태에서 살인자에게 무기를 빼앗기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제인은 이를 뿌득 갈며 창대를 빠르게 돌려 사룰의 손을 떨쳐냈다. 은령은 손을 놓으며 입술을 슥 핥았다. 이 자의 동료라면 금발의 의뭉스러운 남자다. 항상 구부정한 자세로 만사가 귀찮다는듯 돌아다니지만, 이 자에게 도법을 가르칠 때 신출귀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을 봤었다. 어떻게 알게 된걸까. 과연 물어본다고 순순히 답을 할까? 뭐라 물어봐야할까. 이런 게 은령은 너무 어렵다. 은령이 고민하는 동안 제인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한가지만 묻지. 네가 하는 일은 전하께서도 인정한 일인가?” “…그래.” 은령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반말 때문은 아니다. 아주 짧은 머뭇거림이지만 부정으로 해석한 제인은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말보다 여백이 더 솔직한 법이다. 창대를 팔꿈치 안쪽에 걸어 옆에 세우고 문에 등을 기대며 사룰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여기서 대기 하겠습니다. 맘 편히 지내시지요.” ”나가.” “저는 여인들 뿐인 섬에서 함께 헐벗다시피하며 자랐으니 내외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닐텐데.” “어차피 태자비는 민하 아가씨입니다. 제가 불미스러운 일을 벌일 필요도 없지요.” 얼토당토 않은 말로 한마디도 지지 않는 이 남자에게 은령은 짜증이 치밀었다. 게다가 첫 시도부터 이렇게 사사건건 막힌다는 사실에 등줄기가 선득해졌다. 그 쭈뼛한 느낌을 가리려 제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숲과는 사뭇 다른 시원한 초록빛의 눈동자가 물결치듯 일렁인다. “바다.” ”뭐?”

  • 철향   철향鐵響 四十一

    이럴까봐 성 밖으로 내보낸 것이었다. 지난 이 년간 현덕의 옆에 두고 궁 밖에서도 적응할 수 있게 기탁을 붙여 바깥 세상에 대해 알려주라 하였다. 궁인들에게는 은령이 현덕의 병이 옮아 생사를 오간다고 퍼뜨려 서서히 은령을 잊도록 했다. 은령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해두었다. 그걸 은령은 궁인들이 자신의 최근 얼굴을 모르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삼았다. 살을 빼고 눈썹을 다듬고 연의 화장법을 익히고 말투와 행동거지를 바꿨다. 그렇게 이국의 공주가 되어 궁으로 돌아왔다. 다들 알아보지 못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궁녀의 모습으로 궁 안을 활보했다. 그러나 숙수가 바로 알아보았다. 원래부터 자주 마주친 이가 아닌지라 알아볼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그래서 그 눈부터 그어버렸다.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작약궁으로 돌아가는 게 우선이야.” 이연은 은령을 품안에 들고 문을 나섰다. 문 너머는 바로 사룰 공주의 침실이다. 은령을 침상에 내려놓자마자 뒤돌아보지도 않고 방문 너머로 떠났다.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될 곳이다. 국사와 함께 궁의 진법은 모조리 손보았고 이연은 궁 안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사룰이 된 은령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게 없다. 은령은 문을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여유는 여기까지다 들고 있던 곡도를 침상 밑에 밀어넣고, 향로에 불을 붙였다. 아직 진득히 남아있을 피냄새를 지워야한다. 사룰 공주가 되기 위해 머리를 굵게 땋아내렸다. 이연이 씻겨 주어 손빗으로도 수월히 빗겼다. 그 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공주님 안에 계십니까?” 바로 답할 필요는 없다. 나른하게 목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답한다. “무슨 일이지?” 그러나 손은 다급히 호갑투를 꺼내 꼈다. 최소한의 방비다. ”불이 켜져 있기에 괜찮으신가 하여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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