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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一百三十三

Author: 김굉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4 12:00:00

“자자, 길게 끌 거 있겠니? 술이 마르기 전에 빨리 끝내자꾸나. 내가 원하는 것도 단순하고 말이다.”

오드게렐이 보내온 협상안은 아주 단순했다. 바트에 대한 치료비와 운신이 어려워진 만큼 생계를 책임질 기술로 화약에 대한 제조법을 전수해달라는 것이었다.

“불가합니다. 화약에 대한 기술은 모두 나라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저희 가문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번 협상에선 저뿐만 아니라 오드게렐님 역시 대리자입니다. 바트 공자가 원하는 것은 제 아우의 집안인 강씨 가문에서 들어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무엇보다 화약을 다루는 것 역시 안타깝게도 한 팔로는 무리입니다.”

강원은 부러 강하게 응수했다. 일을 단순하게 만들고 싶은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반발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헤에. 나라에서 전혀 책임이 없다면 얘는 왜 여기 와 있을까?”

카사르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글을 바삐 쓰고 있는 환관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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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향   철향鐵響 一百四十

    “너와 제인이라면 이연의 그림자 무사로 제격이라고 봤는데.”딴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도라는 민하를 내려다보다 생각보다 민하의 눈이 가까워 고개를 조금 들었다. ”자라셨군요.” “그런가. 생경하다. 이전의 몸은 자라지 않은 지 반백 년은 되었거든.”전처럼 쭉 함께하지 않으니 적응이 늦되다. 머리로만 아는 것을 체화하지 못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민하 아가씨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연 마마님을 직접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제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전 안 됩니다. 이연 마마님은 보기 드문 미남자시니까요.” “강물 너머로 본 적은 많다. 흐릿한 잉어 눈깔로 본 거지만. 아무튼 미추의 판단은 주관적인 거라 보는데. 너도 사내는 여럿 잡아먹었잖아? 그리고 평상시에는 인상을 옅게 하기 위해 일부러 힘 빼고 다니는 거고.”민하가 몸을 빙그르르 돌리더니 도라의 가슴팍을 꾹 찔렀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이 아는 이연은 푸른 눈의 장신이다. 명확한 사실은 그것뿐이지. 너는 벽안을 가지고 있고, 제인 역시 청록빛 눈을 지녀 빛에 따라선 청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머리만 검게 물들인다면 네가 이연 행세를 대신하여도 무리가 없을 거란 말이야.” “무리입니다. 제국은 넓고 푸른 눈에 검은 머리 정도는 드물긴 하지만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부마이신 고한겸 나으리도 검은 머리에 녹색 눈이지 않습니까? 색목인은 키가 큰 경우가 많고요. 꼭 이연 마마님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흐음. 그러나 강현이 있지. 태자 곁에 항상 붙어 있는 붉은 얼굴에 신비로운 녹발의 호위가 세간에 알려지고, 강현이 가발을 쓴 제인이나 네 곁에 있다면 이연은 그동안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겠지.”도라가 처음에는 장군의 호위무사로 길러졌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실력이 아닌 눈에 띄는 외모가 중요한 자리다. 오늘은 장군 곁에, 내일 오전은 그림자무사 곁에, 오후에는 다른 그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九

    “서운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아가씨도 충실히 지켜드렸습니다만.”도라는 칼을 도병에 집어넣고 오른주먹을 왼손바닥에 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민하 아가씨.”고개 숙여 인사하는 도라 앞에 한껏 치장한 민하가 섰다. 뒤에는 아무도 없다. “바로 서 봐.”도라는 손을 풀고 편안하게 섰다. 민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라를 훑어봤다. 도라 역시 민하를 찬찬히 살폈다. 그래도 제가 모셨던 아가씨다. 아픈 곳은 없어야 한다. 목련궁의 흰색과 자색 그리고 금색이 어우러진 짙은 색상은 선이 가늘고 색이 옅은 민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옷에 잡아먹힌 듯한 민하를 보니 어서 태자비가 되어 간소한 듯하나 정갈하고 유현한 이연 마마와 맞춰 입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힘 좀 주고.”눈알을 한 번 데굴 굴린 뒤 눈을 크게 뜨며 민하를 바라보았다. 강현이 된 기분이다. “어깨도 좀 펴고.”이제 슬슬 반감이 피어올랐다. 이연 마마님은 물론 황제 폐하까지도 도라의 자세에 대해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어깨를 쭉 펴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제게 원하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그림자무사.”여름의 초입에 접어들어 더운 공기가 온몸을 휘감고 지나가건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건 얼음장 같은 냉기였다. 민하는 동상처럼 굳어버린 도라를 작고 가는 손끝으로 건들고 스쳐 지나갔다. “귀비 전하는 말이야. 다른 나라의 병법에도 관심이 많아.”궁 밖에서였다면 바로 옆에서 걸었겠지만 지금은 한 보 뒤에서 따라갔다. 그러자 민하가 걸음을 늦춰 도라와 나란히 하였다. “려는 산과 강이 많아서 산을 휘감으며 흐르는 강물을 이용한 수공이 무섭다지. 그리고 산성을 쌓고 천 보를 날아가는 쇠뇌를 쏘아 공성전은커녕 가까이 가보지도 못하고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다고.”민하의 좁은 보폭은 도라가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고 느린 걸음은 자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八

    강현의 고개가 의자 등받이 뒤로 젖혀지고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다. 길게 늘어난 목과 위아래로 울렁이는 울대뼈를 바라보며 매령은 다시금 얼굴을 붉혔다. 그때 무시무시한 말이 강현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 “와! 나 진짜. 그래서 형보고 널 임신시키랬나 봐. 그건 태자비로 넣는 게 안 되면 황제의 후궁으로라도 넣으란 뜻이었군. 너네 사병 말고 또 울 아버지가 요구한 게 있어? 어떤 문서라던지 도장이라던지 부절이라던지.”심장이 멎고 간이 떨어진다. 강현이 하는 말이 어이가 없고 무서워서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매령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소리쳤다. “뭔 소리야. 임신이라니! 여우놈이랑은 죽어도 싫어!”강현이 고개를 내려 바라본다. 눈이 이글이글 불타는 것 같다. 한결같은 먹색인데 그때그때 느낌이 다르다. “응. 내가 그렇게 안 둬.”매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정말 낌새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강현 역시 말을 반만 한다. “약 이리 줘.”역시나 현이는 바로 약을 가지러 가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고 따지듯이. “이대로 여기 계속 있으면 나도 새빨간 독버섯이 될 거 같거든.”짐작이 맞았는지 강현이 일어나 탁자를 향해 간다. 강원은 궁에 들어왔을 때부터 강현이 내 몸에 손대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 이가 동생 손에 약을 쥐여 보내며 단둘이 있도록 만들었다. 궁의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다시 내 신변의 책임자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내가 이 약을 받아 마시면 그 뜻을 승인하는 것이 된다.약사발을 쟁반 위에 올려 조심히 들고 오는 강현을 향해 말을 던졌다. “나 네 방에 가보고 싶어.”강현의 발걸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쟁반을 내 앞에 내려두고는 의자에 앉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고맙게도 대답도 미동도 않아 줘서 들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七

    매령은 이런 살가운 인사를, 드디어 난향이 아버지의 측실로 들어오기로 마음먹고 건네는 친교인 줄 알았다. 그래서 건성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어차피 출가하면 볼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니,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즐기며 사시면 될 일이다 싶었다.지나친 눈웃음도, 연지가 번져 지저분해진 입꼬리도, 뒤가 짓눌려 엉망이 된 머리채도, 발에 끌릴 정도로 흘러내려 가슴골이 보이던 치맛자락도 전부 나의 강현을 가로챘다는 과시였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울화가 치민다.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일러 주던 것들을 하나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다 내 멋대로 좋게 해석하고 있었다. 강현과 연결 지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바보가 되었고, 농락당했다.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건 전부 강현이 나를 지키기 위해 한 일이다. 나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뭐라고 네가 그 굴욕을 감내해!” “너 때문 아니고, 내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고, 넌 전혀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매령은 이 모든 말장난 같은 일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나에게도 화가 나고, 강현에게도 화가 나고, 애매한 말로 이 모든 일을 초래한 어머니에게도 화가 났다. 속이 상하고 머리가 지끈거려 왼손의 아픔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무릎을 세워 감싸 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강현이 조심스럽게 다친 왼손을 꺼내려는 것도 무시했다. “엄마가… 엄마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 네 걱정만 하는 건 엄마한테 옮은 거야. 내가 아직 새끼돼지일 때 넌 키도 크고 눈도 부리부리해서 나와 같은 어린 아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어. 난 그때 널 우러러봤다고. 그런 네가 작고 여린 아이처럼 보일 때가 있었는데, 엄마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잘 때였어. 그때마다 엄마가 조용히 하래서 네가 얼마나 괘씸했는지.” “응.”듣고 있다는 응답인지, 고개를 들어보라는 청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어머니를 회상하며 흘러나온 소리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강현의 첫사랑은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六

    그래서 강원에게는 어릴 적 홀로 떠도는 바람에 몹쓸짓을 당해 그릇된 성애관이 생겼다거나, 수적들에게 당해 음경이 소실되었다거나 하는 뜬소문이 달라붙었다. 얼토당토않은 얘기라 여겼지만, 강원이 어떤 여자에게 거금의 지참금을 주고 처로 들인다는 소문이 이어졌다. 이건 돈으로 소문을 덮으려는 것이니, 결국 세간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냐는 억측이 이어졌다. 그리고 서서는 돈만 받고 혼담은 물러 입막음이 아니냐는 가설에 힘을 실어줬고, 그 이후 강원에 대한 구애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강현은 다시 턱을 괴고 귀엽게 웃고 있다. “뭐가 그렇게 좋아?” “좋기는. 내가 고이 지켜온 곱고 예쁜 것이 상했는데, 이가 갈릴 정도로 화가 났으면 났지 좋을 리는 없지.” “근데 왜 웃고 있어?” “너한테 화낼 일은 아니니까.”둘 다 참이다. 화가 난 것도, 나에게 익숙한 미소를 보여주어 안심시키는 모습도. 그렇게 강현은 나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만 보여온 거다. “약았어. 왜 나를 지키는 거야?” “빨리도 물어보네. 네 어머니 유언이야. 언제나 널 지금처럼 지켜달라고.”매령은 전혀 몰랐다. 매령에게 남긴 어머니의 유언은 그저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내가 네게 나 좀 망가뜨려 달라고 한다면? 산 사람의 청이 죽은 사람의 청을 이길 순 없어.”강현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혔다. 어머니 얘기가 나오면 강현은 항상 진지해진다. 강현은 몸을 뒤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켠 뒤 자세를 바르게 했다. “산 사람의 청은 후에 취하될 수도 있고, 변경될 수도 있어. 그러나 유언은 내뱉어진 순간부터 영원불변이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널 범할 일은 없어.”또다. 또다시 매령은 강현의 심연 같은 눈동자에 빨려 들어갔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럼 나는 평생 너를 못 가지는 거야?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五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매령은 눈을 몇 번 깜빡인 다음 나지막이 내뱉었다. “꿈인가.”피식 웃는 소리와 함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닐걸.”매령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침상 옆에 곧은 자세로 앉아 있는 사내는 정말 강현이 맞았다. 오늘은 무복이 아닌 편안한 장저고리에 바지 차림이다. 그래서 더 긴가민가 했다. 짙은 녹색이 강현과 잘 어울리지만 저고리 목깃 사이로 하얀 붕대가 도드라져 아프게 빛났다. “야! 현! 네가 누워.”이불을 젖히며 침상 아래로 내려오는 매령의 다리를 강현이 잡아 올렸다. 입술을 삐죽이는 매령의 어깨를 눌러 다시 침상에 눕도록 유도한 후 이불을 덮어주고 토닥였다. “그랬다간 형이 이번엔 내 껍데기를 까버릴걸?” “그러니까! 네가 더 심하게 다쳤잖아. 네가 누워 있어야지!” “너 열 내린 지 얼마 안 됐다고. 좀 더 누워 있어. 그리고 난 이제 거의 다 나았어.”매령은 이불을 끌어올려 눈만 내밀었다. 강현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몸을 건드린다. 의식하게 되자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하게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말 어디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 그러나 눈을 강현에게서 뗄 수 없다. 이제 다리를 꼬고 그 위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고 내려다본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사랑스러워서 할 수만 있다면 한입 베어 물고 싶다. 저 붉게 반짝이는 뺨은 얼마나 맛있을까. 흥분하면 네 얼굴도 더 붉어질까? “거짓말.” “뭐가?” “너 아직 아프잖아.”강현은 히죽히죽 웃기만 할 뿐 더 대답하지 않는다. 매령은 이불 속에서 실없이 따라 웃으며 자기가 얼마나 강현을 사랑하는지 다시금 깨달을 뿐이었다. “궁의들이 내 손을 치료하는데, 그 생각이 들더라고. 아플 때마다 항상 네가 간병해 줬는데 여기선 안 되겠구나.” “응.” “어떻게 왔어?” “형이 약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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