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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八

Author: 김굉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2 18:00:00

궁중예절과는 다르지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인사다. 그리고 매령을 처음보는 자들은 위아래로 지저분하게 훑기 마련인데, 반듯하게 서서 눈만을 응시한다. 목소리부터 자세까지 고요하면서도 흔들림이 없다.

강현은 매령의 금빛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익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끄러움에 연신 입술을 감쳐무는 매령을 보며 강현이 오히려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진짜 별짓을 다한다.

“운남성 우씨 매령이 인사올립니다. 이연 마마님을 뵙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실수하지 않았다. 강현의 고막은 이연이 주희에게 전하라는 호칭은 이르다 일컫는 것을 분명 들었다. 그러나 강현도 정신이 없기에 미처 매령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다행히 매령이 평상시 버릇대로 입술을 읽은 모양이다. 하긴 저 얼굴을 보는 순간 시선을 뗄 수 없었겠지.

매령이 숙였던 얼굴을 간신히 들어올려 눈을 마주하자, 이연은 천천히 말을 꺼내었다.

“아무리 궁의 예법이 그러하다하나 신부될 이를 모셔두고 성혼식까지 얼굴도 못보게 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로 여겨져서 말이죠.”

이연이 매령을 향해 은은히 미소를 짓는다. 미소를 받은 매령의 붉게 달궈진 얼굴이 점점 희게 질렸다.

매령은 궁 안에 들어섰을 때부터 계속되던 압박감이 지금 최고조에 달했다고 느꼈다. 잘못한 거 하나 없음에도 벌 받는 기분이다. 심지어 저 인간같지 않은 자와 혼인을 하기위해 여기 와있다니 눈 앞이 아득해졌다.

혼미해지는 매령의 정신을 이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붙잡는다.

“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시길 빕니다.”

궁에서 쓰는 사소한 인삿말인 양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눈인사를 한다. 마지막으로 강현에게 눈을 두고는 이채롭다는듯 반짝였다.

강현은 한숨을 삼켰다. 가끔 이런 미친 놈들이 있다. 미녀보다 미녀 옆의 광대에 더 관심을 가지는 녀석들이. 이럴 땐 먼저 인사를 날려 호기심을 끊어야한다. 단령 소매 안으로 손을 엇갈려 집어넣고 어깨높이까지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운남성 강씨 가문의 사남 현이라 하옵니다.”

“시험이 있을 예정입니다. 무운을 빕니다.”

강현과 이연의 입에서 동시에 말이 흘러나왔다. 강현은 굳고, 이연은 웃었다.

“어쩐지 제 한 쪽 옆에는 그대가 서 있을 것 같군요.”

빈말인지 진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연의 웃음기 섞인 말에 강현은 소름이 쭉 끼쳤다. 이연은 강현의 눈을 한 번 더 지그시 바라보고는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흑단같은 긴 머리채를 안온한 봄바람에 흩날리며 멀어지는 이연의 뒷모습을 강현은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매령과 형의 목소리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현아. 어떡하지? 나 도망치고 싶어.”

“이야, 아우야. 간택은 네가 받은 모양인데?”

양옆에서 옹알대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가 다시 나갔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궁 안이다.

강현은 일단 형부터 다스렸다.

“미친새끼야. 입조심하라며? 직속 호위는 좌우 두 명이잖아.”

그리고 바로 고개를 돌려 매령을 바라봤다. 따스한 봄날 오후에 옷을 더께더께 껴입고도 추위를 느끼는 양 바들바들 떨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다.

전령이 간택 소식을 전해줬을 때도 의연했던 매령이다. 무덤덤하게 집을 나섰고, 오는 내내 설레어하거나 유난을 떠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고향에서 함께 지낼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궁문 앞에 함께 서있을 때도 일말의 긴장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어디 아파? 오기 전에 먹은 게 잘못 됐나?”

강현은 언제나처럼 매령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다. 떠날 때와 똑같은 상태로 목적지에 이르러야 호위의 끝이다. 아프다면 실패한 호위다. 그래도 이대로 둘 수 없다. 손을 떼고 궁인들을 부르려고 고개를 돌렸다.

매령은 익숙한 촉감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체온보다 질감이 먼저 느껴지는 딱딱하고 거친 강현의 손이다. 살면서 가장 많이 잡아 본 손이다. 그런 강현의 손이 떠나려는 느낌에 서둘러 손을 올려 붙잡으려 했다.

그 순간 강원이 강현의 손목을 붙잡아 내렸다.

“조심해. 이제 매령에게 손대지 마라.”

“아.”

“소저께서도 이제 현이를 그리 부르시면 안 됩니다. 곧 후궁에 입궁하실터인데, 현이는 더이상 친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황실의 일원이 되기 위해 왔다는 것을 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몸에 이상이 있으시면 궁의를 불러 이르시면 됩니다. 현이를 찾으시면 현이에게 책임이 돌아가게 됩니다.”

고향을 떠나있는 기간이 길었던 강원이지만, 강원 역시 매령과 오누이나 다름없이 자랐다. 고작 한 살 차이다. 그런 강원이 거리를 두고 존대를 한다.

매령은 저 매정한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납득은 했다. 스스로도 인지는 하고 있었다. 언행에 바로 적용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현이에게 미안해졌다. 이제 기대면 안 된다.

“본인이 가장 부담이 클거라 여겨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말하지 않았습니다.”

강원은 매령이 우리 형제 사이에서 놀다 보니 독순술을 잘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령을 마주보고 소리 없이 말을 하였다.

“포기해도 돼. 그러나 돌아갈 때는 우리가 널 호위해줄 수 없어. 우린 아버지로부터 널 어떻게든 태자비로 만들라는 명을 받았고, 난 도망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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