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철향鐵響 五 태자비 간택과 함께 앞으로 태자를 보위할 금군을 선발한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보통은 삼 년에 한 번 치뤄지는 무과 합격자 중에서 뽑지만, 올해는 무과가 없다. 올해 태자 책봉이 있으니 다음 무과 전까지 측근이 될 두 명을 뽑아두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핑계다. 궁에 차고 넘치는게 금군일진데, 그 중에서 뽑으면 된다. 다만 태자비 후보의 입궁을 도와줄 호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황실의 일이니 황군을 보내줬어야한다. 하지만 태자비 후보 중에는 제후국의 공주도 있다고 하였다. 타국에 군대를 보낼 순 없다. 침략으로 간주될 것이다. 사신단에 준하는 규모의 호위를 꾸려서 올 타국의 공주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호위는 알아서 구색을 맞추라는 것이다. 매령의 경우 관료의 딸이니 성을 넘어갈 때마다 관군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참에 지방의 귀족이 가진 사병의 수준도 파악하겠다는 꼼수도 숨어있을 것이다. 우리집은 매령의 집과 가까이 지냈다. 매령의 아버지는 지금의 황제가 운남을 정복할 때 대장군이었던 자로 현재 운남성 현령이다. 우리집은 그때 찌그러진 운남의 족장 가문이고. 황제는 전쟁을 치르며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정벌한 땅을 하사하고, 그 자리에 있던 왕실이나 호족들은 혼인을 맺어 중앙으로 불러들였다. 그래서 패퇴한 백부님은 낙양으로 끌려가셨고, 막내였던 아버지는 운남에 그대로 남았다. 매령의 아버지는 운남의 백성들을 구슬릴 겸 우리 아버지를 양자처럼 대했다. 서로서로 어떤 계산 속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령의 늦둥이 고명딸 매령과 동갑인 나는 매일같이 어울려 다녔다. 어른들의 사정 따위 우리가 알 필요는 없었다. 수박을 서리하고 뱀을 때려잡는 일에 그런 것들은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 그랬는데 매령이 태자비 후보로 간택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버지는 이것을 기회로 삼기로 하고 나와 형을 끌고왔다. 방계인 우리집은 어차피 장남 외엔 다 필요없다. 그래서 아들들 중 유독 속썩이는 셋째, 넷째를 수도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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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철향鐵響 四 정오의 빛을 받아 매끈하게 빛나는 황금 궁문 앞에 잘 차려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무리의 대표는 시야를 압도하는 금빛을 충분히 감상한 후 동행들의 정렬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문 가운데 서있는 수문장에게 봉해진 서신을 전달했다. 수문장은 대표의 얼굴을 바라보며 봉인을 뜯고 서신을 완전히 펼친 후에야 고개를 내려 서신을 읽는다. 길지 않은 서신이다. 수문장은 대표의 뒤에 나란히 서있는 남녀를 빠르게 훑어본 후 왼쪽에 있는 병사에게 짧막한 수신호를 보낸다. 병사는 수신호를 보자마자 파란 깃발을 들어올렸고, 궁문 위에서부터 부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울린다. 무리의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근원지를 찾는 동안 서서히 궁문이 열린다. 뒤늦게 사라지는 금빛을 깨닫고 고개를 내리면 벌써 반쯤 열린 문 사이로 하얗게 빛나는 긴 화강암 길과 붉은 기둥 위에 황금 지붕을 얹은 장엄한 건물이 길 끝에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세상이 파란 하늘과 하얀 바닥으로 양분되었다. 그 가운데를 금빛 지붕이 가로지른다. 지극히 인공적인 아름다움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정신을 차리면, 중앙의 수문장이 사라졌다는 것과 이렇게 큰 문이 부드럽고 빠르게 열렸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어느새 무리의 양옆에 도열한 수문장들이 몸을 숙이며 인사를 한다. 고개 숙인 수문장들을 지나 천천히 궁문 안으로 걸어간다. 머나먼 운남에서부터 여기까지 무리를 무사히 이끌고 입궁하게 된 강원姜元은 스스로가 대견하여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뒤따르고 있는 강현姜鋧은 보지 않아도 보인다는 듯 형의 뒷통수를 시선으로 있는 힘껏 후려쳤다. 그러나 그걸 알 리 없는 강원은 히죽히죽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좌우에 보이는 회랑이 멀기도 하다. 그 회랑을 바쁘게 오가는 궁인들이 개미같은 크기로 보인다. 바쁜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아슬아슬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특하게 도착하긴 하였다. 태자 전하의 탄신일 당일에 도착하다니.“저기 앞을 좀 봐.” 구경에 정신팔린 형과 그런 형을 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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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철향鐵響 三 “그래. 장가 가. 장가 가렴. 내 참한 소저가 보이면 재깍재깍 데려다 주도록 하마.” “아니요, 아니요. 유이님께선 저랑 떨어져 계시는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기탁은 침상 주위에 물이 든 대통과 당과가 담긴 목기를 놓아두고, 부시를 쳐 유등 하나에 불을 붙였다. 노랗게 밝혀진 현덕의 얼굴을 잠시 바라본다. 본래도 선이 굵은 얼굴에 짙은 음영이 더해져 남자가 봐도 반할 얼굴이 되었다. “어휴, 과일이나 받으면 좀 나눠주십쇼. 제 색시는 제가 알아서 구하겠습니다.” “과일은 왜?” “으으. 머지않아 알게 되실겁니다. 누추하여 죄송합니다만, 곧 해가 뜰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참고 눈 좀 붙여두십시오. 낙양에서 멀어지면 역원이나 객잔에 들를터이니 오늘만 참아주십시요. 그럼 저도 쉬어야하니 물러나겠습니다.” 기탁은 천막에서 나와 활과 화살통을 둘러메고 나무를 올라탔다. 아무래도 이쪽이 주변을 경계하기 더 좋다. 기탁은 금군이 되면서 황궁 밖의 근무도 여러 번 떠나봤기에 야영이 익숙하다. 현덕은 궁 밖에서 자는 것이 처음이다. 아무리 봄비에 적셔져 부드러워진 낙엽을 깔고 양모 담요를 두툼히 위 아래로 깔고 덮고 잔다지만, 곧바로 적응하긴 힘들다. 밖에서는 돼지의 꾸륵거림이 계속 들려오고, 어디서 농염한 바람이 스산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의외로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 평생 살아온 곳을 벗어났다는 흥분과 서글픔이 동시에 밀려온다. 목표는 있지만 그걸 이룩하기 위한 막막함도 견뎌야 한다. 비록 툴툴대긴 했지만 의지할 이도 기탁 뿐이다. 현덕에겐 기탁이 황제의 마효장군과 다름없다. 그런 기탁에게 조금이라도 신세를 덜 지려면, 그의 말을 착실히 들어야한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두기 위해 눈을 감는다. 역시나 이연의 얼굴이 바로 떠오른다. 핏줄이 비쳐보이는듯한 투명한 흰피부에 조각같은 이목구비. 그 가운데 맑은 하늘을 담아 박아넣은듯한 눈동자에 물기를 담아 나를 직시한다. “형님께서 원하는대로 하십시오.” 이연은 목소리조차 아름다웠다. 청아하게 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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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철향鐵響 二 궁을 빠져나간다는 목적을 이루면 각자 갈 길을 떠나기로 했다만, 이렇게 금방일 줄은 몰랐다. 아니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이별은 들이닥칠 때까지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모쪼록 이연理淵을 잘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한 번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은령의 고개가 더 숙여진다. “마마께옵서도 부디 옥체 만강하시길 빕니다.” 현덕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흔해빠진 인삿말이지만,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이연이 고쳐 준 몸뚱이를 이연을 위해 멀리 내다 버리러 간다. 내가 떠나는 이유를 잘 아는 은령이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 역시 짐작하기에 굳이 고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당장 헤어지기에 은령이 읊은 칭호 역시 지적하지 않는다. 은령이 정한 마지막 인사다. 그러면 나도 마지막 표정을 지어줘야한다. 다행히 은령이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여준다. 기탁도 그간 같이 일해 온 은령이기에 몸을 일으켜 준 다음 작별을 한다. 자그마한 여자아이였는데, 대나무처럼 길쭉이 자라 숙녀가 다 되었다. 고아로 궁에 들어와 황자의 매 맞는 아이로 자랐다. 자신이 지나온 삶과 같은 삶을 살아내는 것을 지척에서 지켜보았다. 측은하면서도 기특했다. 그래서 혈연은 아니지만 여동생처럼 여겼다. “무리하지 마라. 넌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넌 나와는 달리 까마득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지. 가만히만 있는다면. “우리 뿐만이 아니라 태자 전하께서도 네가 하려는 일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건 알고 있지?” 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욕심임을 안다. 그러나 스스로 찾아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필히 해낼 것이다. “장군께 마마님을 떠맡기게되어 송구합니다.” 모두의 뜻이 이리 엇갈린다. 은령은 기탁이 떠나는 이유 역시 이연을 위한 것임을 안다. 현덕의 끝을 지켜보고 이연에게 전하는 일. 입이 쓰게도 그 무엇 하나 이연이 원하는 일이 아니다. “하하. 무얼. 호위는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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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철향鐵響 一 달이 늑대에게 먹히는 오늘, 어둠을 틈타 세 필의 말이 낙양의 성문을 나섰다. 모조리 검은 말에 말발굽에는 털가죽을 씌웠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일 앞을 달리는 사내의 존재감은 감출 수 없었다. 거대한 군마에 어울리는 큰 체격의 사내다. 뒤덮어 씌우면 무엇이든 작아보이게 만드는 검은 옷을 입었건만 위용이 넘친다. 검은 사내의 짙은 그림자가 월식의 어둠과 기싸움을 하듯 쏘아져 나간다. “마마님! 위험합니다!” 기탁起晫은 연신 고삐를 휘두르며 말을 재촉했다. 정신없이 내달리는 현덕玄德의 말을 앞질러야했다. 금군이 가진 흑마 중에서 가장 침착하고 노련한 말을 골랐건만 시야가 탁 트이자마자 폭주하기 시작했다. 궁 안의 좁은 연무장과 후원 이외의 곳에서 말을 타 본 적이 없는 현덕이다. 낙마해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니 웃기는 짓이다. 스물여섯 살이 되어서야 겨우 궁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성문을 나서자마자 낙사했다는 오명을 쓰게 둘 수 없다. 그러나 기탁의 애마는 놀라운 지구력으로 천 리를 쉼없이 달릴 수는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뛰쳐나갈 배짱은 없었다. 별 수 없이 안장 아래에서 말채찍을 꺼내려는데 옆에서 바람이 인다. 아, 안 돼. 은령銀玲의 말까지 붙잡을 여력은 없다. 이건 내 능력을 벗어난 일이다. 은령에게는 미안하지만 마마님을 택한다. 이건 너도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기탁이 말채찍을 손에 들었을 때, 현덕의 말고삐를 잡아채고 그쪽으로 날듯이 넘어가는 은령의 뒷모습이 보인다. 곡예와 같은 매끄러운 움직임이다. 현덕의 말이 서서히 느려진다. 은령의 말은 기수가 여전히 타고 있는 양 곁에서 속도를 맞춘다. “하하하하하하!” 기탁이 다가가자 낮게 울리는 현덕의 웃음소리가 커진다. 한껏 느려져 도각거리는 말발굽 소리를 현덕의 허망한 웃음 소리가 뒤덮는다. 말발굽을 덮고 있던 털가죽은 이미 벗겨져 날아가고 없다. 기탁의 걱정은 기우였다. 현덕은 일부러 내달린 것이었고, 은령은 먼 북부에 있는 기마민족의 후예였다. 피와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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