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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二十三

Author: 김굉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3 17:00:00

강원은 활을 가슴께까지 들어올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민한 금군들이 활과 석궁을 들어 강원을 겨낭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방향이 틀어지면 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원을 바라보느라 그런 금군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강원은 금군보다 중요한 지소 공주를 잠깐 바라보았다. 부마이신 한겸 공이 지소 공주의 귀를 두 손으로 덮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소 공주의 곁을 지날 때 심장 소리가 둘 임을 들었다. 복중에 태가 있어 놀라면 위험하니 조심하시라 미리 알려드렸다. 황가의 일원 모두에게 귀마개를 드렸지만, 조심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좋다.

모두 알려준대로 대비한 것을 보고 흡족해하며 화살 끝의 솜뭉치에 불을 붙였다. 여유부릴 시간은 없다. 활시위를 최대한 당겨 태자궁 서궁 지붕을 향해 쏘아올렸다.

작은 불덩이가 지붕 위에 고이 앉았다. 사람들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태양이라기에는 너무 보잘 것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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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향   철향鐵響 五十四

    다른 궁의 건물들과 달리 성탑처럼 지은 설화궁에는 중정이 따로 없다. 건물 주변으로 좁은 정원이 쭉 둘러져 있을 뿐이다. 남쪽에 크게 뚫린 정문 안으로 들어서니 타닥타닥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장작이 타는 소리보다 작으면서 잦다. 매령은 몇 번 접해 본 소리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주홍빛 머리의 주희 마마가 얼굴을 붉게 밝히며 작은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파란 눈 안에도 노란 불꽃이 화사하게 빛난다. 집중한 얼굴에서 어린 아이 특유의 표정이 드러났다. 커진 눈과 살짝 벌어진 입은 평상시의 냉엄한 모습과 달리 사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작은 아이 옆에 있기에 쪼그려앉아 있음에도 커보이는 강원의 손에도 작은 불꽃이 피어나는 쇠꼬챙이가 들려있다.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본래 성정이 어떠하던간에 무구해보인다. 매령이 다가감에 따라 불꽃이 이는 얼굴에 표정이 들어가고 방향이 생긴다. 강원은 일어나 불꽃보다 밝게 웃으며 손에 든 가느다란 쇠꼬챙이를 매령에게 내민다. “오랜만에 해보시겠습니까.” 매령은 홀린듯이 다가가 폭죽을 받아들었다. 형제이지만 강원과 강현은 영 다르게 생겼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형제인 줄 모를 정도다. 그러나 웃는 표정이 닮았다. 왜 이때까지 몰랐을까? 불쑥 나오려는 질문을 삼킨다.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다. 어쩐 일인지 소우 장군과 다른 금군들도 와 있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아우가 가져다 달라는 물건이 있어서 말입니다.” 강원의 말투에서 귀찮음이 뚝뚝 묻어난다. 강현이 필요한 물건이라고? 이것이? 매령은 이제 화약부분이 짧아져 서서히 사그라드는 불꽃을 내려다 보았다. 강원은 매령이 모르게 혀를 짧게 한 번 차고는 뒤에 선 소우 장군을 향해 말을 걸었다.

  • 철향   철향鐵響 五十三

    “아, 정말 보고 있으면 개 같이 엎드리게 해서 뒤로 막 박고싶어진단 말이지.” “동정 찐따 새끼는 떠올려도 그거 밖에 안되지. 그러면 저 예쁜 얼굴을 못보잖냐. 내 위에 올려놓고 앙앙거리며 큰 가슴 출렁이는 걸 봐야지.” 너무 말도 안 돼서 상상도 안간다. 강현이 얼이 빠진건지 무던하게 서서 가만히 있자 제인이 오히려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저새끼들 말본새가 원래부터 더럽긴 하지만 오늘따라 더 심하네. 근데 너 가만히 있어도 돼?” 강현은 제인을 마주보며 다 들리게 조금 큰 소리로 말을 한다. 좀 떨어져 있는 목련궁 금군들에게도 들릴 것이다. “현재 본인의 상관은 손민하 소저이며, 개인적인 사유로 근무 중에 동료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소저들은 황족의 예우는 받습니다만, 아직 정식으로 황실의 일원이 된 것은 아니기에 황실모욕죄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도라가 강현의 말투에 눈이 동그래져 쳐다보고, 제인은 강현의 어깨를 짚으려던 손을 거두고 입을 앙다물었다. 강현은 입술을 비죽이며 바트와 툴가를 바라봤다. 그 둘은 강현이 지껄인 말이 무슨 뜻인지 해석하고자 팔짱을 끼고 잔뜩 일그러뜨린 얼굴을 하고 있다. 뒈지게 못생겼다. 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강현은 제인과 도라를 향해 속삭였다. “다만 저 둘은 직속 상관에 대한 하극상을 일으켰으므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생각해. 그러나 지금은 안돼. 내가 소란을 일으키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자 할 것이고 그러면 저 새끼들 입에서 나온 말을 이실직고해야하지.” 매령이 당장 알게 된다. 그것도 다른 소저들과 궁인들 앞에서 음담패설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까발려야한다. 저들이 원하는거다. 매령을 태자비 후보에서 끌어내리려는 거다. 거기다 폭력을 행한다면 나까지 금군 후보 자리에서 위태로워진다. 그걸 피하는 게 우선이다. “굳이 즐거운 다과자리를 망칠 필요 없어. 나중에 소우 장군께 보고 할 거야. 그때 도와줘. 매령이 모르게 조용

  • 철향   철향鐵響 五十二

    매령은 큰 눈을 끔벅이다 동그랗게 떴다. 나를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런 말을 하실까. 지금 살면서 가장 심란한 상태라는 걸 알고 저러시는 걸까. 그래도 답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간단히 겸양만 표한다. “저를 이리 좋게 봐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고향에서 제다한 차이지만, 저는 어찌 만드는지조차 모르옵니다. 저도 그저 즐기는 입장인 것이지요.” 역시 이연이 사랑할 여인은 이쪽이 좋겠다. 은령은 싱긋 웃으며 차를 마저 들었고, 매령과 민하도 찻잔을 들었다. 야멸찬 봄볕이 짙어짐에 따라 향이 농익고 차맛은 스러져갔다. 목이 충분히 적셔지니 목소리가 수월히 나오기 시작한다. ”여긴 사냥터가 없는가. 계속 궁에만 있으려니 찌뿌드드하군.” “사냥을 직접 나가십니까?” 유독 맑고 큰 눈이 질문에 숨겨진 속뜻 같은 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은령은 그런 매령을 사랑스럽다는듯 바라보며 답했다. ”사냥매도 다루고 말도 타고 활도 쏘지. 우 소저는 무예를 익히지 않았는가? 아까운 신체인데.” 키가 크고 뼈대가 곧다. 찻잔을 잡는 사소한 움직임에서도 유연함이 돋보인다. 안타깝게도 여인들은 타고난 재능을 발견조차 하지 못하고 버려버리기 일쑤다. 은령은 전장을 누비던 귀비에게서 승마를 배웠다. 탄력이 넘치는 귀비의 몸과 매령의 모습은 비슷해 보인다. 아마 매령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도 꽤나 근사하리라. “무예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호위로 함께 온 강 공자에게서 호신술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춤을 즐깁니다.” ”설마 춤을 직접 추신다는건 아니겠지요?” 조심스럽게 다가온 목소리지만 내용은 전혀 조심스럽지 않다. 은령은 저도 모르게 민하를 흘겨보았다. “아, 손 소저. 저는 가무를 보고 듣는 것도 즐기지만,

  • 철향   철향鐵響 五十一

    환관들이 무거운 물동이와 화로를 가져와 불을 피우고 솥에 물을 부어 끓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궁녀들이 찻상을 차리고 커다란 병합 세 개를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둥근 접시처럼 보이는 보이차가 들어있다. 매령은 익숙한 형태의 병합을 보고 지금 이 자리가 나를 내보이기 위한 자리임을 눈치챘다. 운남에서부터 가져온 공물이다. 탁자마다 자리를 잡은 궁녀들이 보이차를 해괴(쪼개기)하기 시작했다. 매령은 그들을 신중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잡으시면 손 다치십니다.” 매령이 가까운 궁녀에게 다가가 조곤조곤 말을 걸며 손바닥을 내밀어보였다. 궁녀는 조금 망설이다 매령의 손에 송곳의 손잡이를 넘겨주었고, 매령은 안심시키듯 살짝 웃어보이며 송곳을 바로 쥐었다. 검지로 위를 잘 지지하며 찻잎의 틈을 찾아 깊게 찔러넣었다. 은령은 그걸 보며 신체에 틈을 만들며 칼을 쑤셔박는 상상을 했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 했던가. 베는 건 해봤으니 다음은 찌르는 것이 좋겠다. -엇, 은령이 왔니? 마침 너 좋아하는 황어 부레가 남아있어!- 은령은 미간을 찌푸리며 슬쩍 눈을 감았다. 요즘 불현듯 떠올랐다 사라지는 환청이다. 머리를 괴는 척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다른 궁녀들이 매령이 하는 모습을 보며 따라한다. 매령은 그것을 죽 둘러보고 궁녀에게 다시 송곳을 내밀었다. “흐음.” 매령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민하가 자신이 데려온 궁녀에게 귓말을 하였다. 그 궁녀는 품에서 작은 함을 꺼내 열었다. 궁녀의 손이 황동 향받침을 꺼내고 길고 가는 향을 하나 꺼낸 뒤 촛불을 당겨 불을 붙이려 하자 민하가 손을 들어 막았다. 민하는 보시시 미소를 지으며 은령과 매령을 향해 한껏 나긋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번에 려에서 좋은 향이 들어왔습니다. 오늘 다과자리에 어울릴듯하여

  • 철향   철향鐵響 五十

    그 전에 현장을 목격한 또다른 인물인 강현의 입을 막아야했다. “너희들도 이 일에 대해선 함구하라.” 소우 장군은 앞에 서있는 강현이 아니라 담장 그늘에 숨은 도라를 향해 말했다. 질문은 도라가 아닌 강현에게서 나왔다. “어찌 아셨습니까?” 강현은 뒤따라오는 도라의 심장소리를 듣고 있었으나 어둠 속에 묻힌 모습은 감쪽같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부러 소우 장군 앞에서도 아는 체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질문으로 강현도 도라의 은신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냈다. “나도 비류족이다. 부마님만큼은 아니지만 밤에도 어느 정도 보이는 편이지.” 밤눈이 어두운 강현으로서는 참으로 탐나는 능력이다. 무인으로서 그리고 금군으로서 이만한 강점이 또 있을까. 도라는 한숨을 쉬며 두건을 벗고 밝은 곳으로 나왔다. 금군 중에서도 대장군을 만만히 보고 대들어서는 안 된다. 소우의 앞으로 와 고개를 조아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소우 장군은 도라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다음 강현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넌 어째서 여기까지 온 것이지?” 소우 장군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밝혔는데, 굳이 비밀로 할 건 아니다. 어차피 금군이 되면 밝혀야 할 것이다. 강현은 솔직히 답했다. “소리를 듣고 왔습니다. 단 한 합이었지만, 분명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였습니다. 궁에서 이 시간에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라 판단하였기에 소리의 근원을 찾아 달려온 것입니다.” “하, 네가 묵고 있는 곳은 목련궁이지. 후궁의 서편에 해당하는 곳이고, 여기는 후궁의 동쪽 끝이다. 지금 그걸 믿으라는 건가?” 강현은 눈 앞에 바위처럼 서있는 소우 장군보다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 철향   철향鐵響 四十九

    장문인은 다시 차를 우리며 말을 풀어냈다. “국사는 곤륜파지요? 곤륜산은 도가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불교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교가 국교인 월국에 속했던 점창파도 진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점창파 도사들은 병법에도 능하다 하지요.” “그렇다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군요.” “저희는 오갈 곳 없는 아이 하나라고 소홀히 여기는 파렴치들이 아닙니다. 소중히 키운 아이입니다.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주고자 했습니다. 다만 서툴렀을 뿐이지요. 너무 아끼다 시기를 놓쳐버렸고요.” 물이 조금 식어 연하게 우러난 차가 앞에 놓이고, 현덕은 그것이 꼭 애매하게 존재하는 나 자신처럼 느껴져 한입에 털어넣었다. 밍밍하고 비리다. 비싼 바탕을 지녀도 제대로 취급하지 않으면 이렇게 형편없이 존재하다 사라지는 것이다. 백현이라는 도사는 글, 약학, 무공을 지율에게 가르쳐보려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거문고를 가르치는데 성공하셨다. 어머니는 나라는 아들을 실패하고 지율이라는 제자를 훌륭히 키우셨다. 어머니를 떠올리자마자 씁쓸해졌다. “그러다 어머니께서 지율의 재능을 찾아내셨군요.” “마마님이 보시기에 금객으로서 지율이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 것 같습니까?” “저도 잘 모릅니다. 궁은 음악을 유흥으로 즐기는 환경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귀에는 듣기 좋았습니다.” “궁정악사로는 모자람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목적이군요.” 장문인은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빈 찻잔을 거둬갔다. 다구를 정리하는 손놀림이 춤사위같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반주삼아 장문인의 설명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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