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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재워줘

Author: 소라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6 15:19:16

“밥 먹을래?”

지음의 물음에 서현이 조심스럽게 다시 그와 눈을 맞췄다.

“…아니. 이제 나는…”

집에 가보겠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 거지 같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목구멍에 바늘이 박힌 것처럼 뻣뻣해져 말끝이 뭉개졌다.

지음은 서현의 하다 만 대답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팔다리를 늘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는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서현은 그런 지음을 빠르게 눈으로 좇았다. 그러다 보니 이 집에 다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야구 선수? 뭐 그런 거야?”

야구공, 글러브, 유니폼, 트로피 등 단순한 이 집 속에 유난히 튀는 물건들이었다. 빨래 건조대에 널려 있는 것들도 전부 운동복이었다.

아, 그래서 몸이…!

서현의 눈이 다시 그의 넓은 어깨로 향하는 순간, 지음이 봉지라면 세 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 이거 진짜 아무나 안 주는 거다?”

“달라고 안 했는데.”

“아, 그리고 나 투수야.”

“야구 선수가 아니고?”

“……라면 주지 말까.”

지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서둘러 라면 끓이는 데 집중했다.

집안은 금방 라면 냄새로 가득해졌다. 나름 상을 차린 지음이 식탁 앞에 앉아 서현을 불렀다.

자극적인 냄새에 위장이 반응한 서현은 홀린 듯이 식탁 앞에 가 앉았다. 라면 위로 피어오른 연기 사이로 지음을 흘끗 보곤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지음을 따라 인사를 마친 서현은 달란 적 없다던 라면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주렸던 배를 이렇게 마음 편히 불린 게 언제인지. 서현은 불룩해진 제 배에 절로 손이 갔다.

지음은 황당한 얼굴로 그런 서현을 빤히 보다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너 솔직히 라면 혼자 몇 개 먹어.”

“…1개?”

서현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지금껏 이렇게 마음 편하게 밥을 먹어 본 적도 없고, 먹고 싶다고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뻥 치네.”

“그럼 2갠가.”

“그럼 진작 말했어야지. 내 반토막도 안 되는 게 먹어봤자지 했는데.”

지음의 얼굴은 배신이라도 당한 양 억울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반토막은 아니지 않아? 나 여자치고 키도 꽤 큰데?”

“그 키에 그 무게면 내 반토막도 안 되지. 들어보면 딱 알아.”

서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지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나 여기까지 오빠가 안고 왔어?”

서현의 물음에 지음의 얼굴이 점점 붉게 번졌다. 갑작스러운 ‘오빠’ 소리에 지음의 뺨과 귓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죽어라 운동만 하고 살아온 그에겐 심히 낯선 단어였다.

그것도 저렇게 도도하고 예쁜 얼굴로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애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왠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없지, 저렇게 예쁜 애가 또 있을 리가.

뭐 때문인지 벌건 얼굴로 뚝딱거리는 지음을 보던 서현은 문득 제 몸을 내려다봤다. 온몸은 욱신거리는데 움직임은 이상하리만치 편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을 덮고 있는 커다란 티셔츠와 바지는 제 것이 아니었다.

그럼 내 옷은…! 아니, 내…모, 몸은…! 이…이!

“이, 이 개변태 새끼야!”

순식간에 ‘오빠’에서 ‘개변태’가 되어버린 지음의 턱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므어, 뭐? 개…변태?”

서현이 자신이 입고 있는 티셔츠를 당겨 팔랑거리며 쏘아붙였다.

“이거, 이거 뭐냐고!”

“내 잠옷! 그거 어제 빨아서 깨끗한 건데.”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서현에게 지음은 말간 얼굴로 답했다.

서현은 아까 훔쳐본 그의 상반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제 몸도 그에게 보였을 거라는 사실에 새빨개진 얼굴로 울먹이듯 소리쳤다.

“너 다 봤잖아! 내몸!”

지음은 그제야 어정쩡하게 벌리고 있던 입매를 힘껏 끌어당겼다. 최대한 시선을 피한 채 젖은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혔지만, 아예 보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냐, 안 봤…!”

“왜 말을 하다 말아!”

“조금 봤…는데, 근데 진짜 아무 짓도 안 했어!”

“조-금? 그리고 아무 짓? 무슨 짓!”

“진짜 조금! 아니, 그러니까 왜 그 비를 다 맞고 모르는 남자 품에 덥석…막…달려드냐. 위험하게. 내가 지나치게 선량해서 다행이지.”

“내가 언제 남자 품에 달려들었어. 달리는 사람한테 오빠가 와서 부딪힌 거지!”

“아…또!”

저, 저 ‘오빠’ 소리.

“뭐!”

“흠. 아무튼 나는 사람은 쓰러졌지. 비는 미친 듯이 오고. 병원은 멀고, 우리 집은 바로 코 앞이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비를 얼마나 맞고 쏘다녔는지 열이 펄펄 나는 애를 어쩌냐 그럼. 그래서 옷만 갈아입힌 거야. 그게 다야, 진짜!”

“그래서 조금 봤다는 거잖아.”

“그건 혹시, 혹시라도…손이 이렇게 잘못…그…될까 봐.”

어느새 홍조가 가득해진 지음의 얼굴을 보자 서현은 소리를 팩 질렀다.

“아 그냥 못 봤다고 해! 그냥 뻥이라도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하라고!”

“어, 어. 못 봤어. 나 못 봤어. 눈 딱 감고 이렇게, 한 번에! 딱!”

지음은 씩씩거리며 작은 몸을 들썩이는 서현을 보자, 실눈으로 얼핏 보았던 새하얀 서현의 어깨가 떠올라 눈을 감아버렸다.

“눈은 왜 감아! 눈 떠!”

서현의 불호령에 지음이 다시 눈을 번쩍 뜨고 서현을 바라보았다. 지음이 열심히 치켜뜬 길쭉한 눈매가 어딘지 애처로워 보였다.

“후…그래, 퉁 치자. 퉁 쳐.”

서현이 긴 한숨과 함께 ‘퉁 치자’는 말을 뱉어냈다.

“퉁 쳐? 뭐랑 퉁 쳐?”

“…아…”

서현은 한숨과 함께 섞여 나온 말을 이제야 인지했다. 나도 그쪽 몸 열심히 봤으니까 퉁 치자는 말을 어떻게 돌려 말할 수 있을까…

“…으니까.”

“뭐?”

“아씨, 나도 봤으니까, 퉁 치자고 그냥!”

지음은 잠시 멍하니 서현을 바라봤다.

서현은 딱히 돌려 말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알 것 같았다.

제 몸에 혹여라도 불편한 터치라도 생갈까 봐 얼마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지. 처음 본 사람인데도 왠지 그랬을 것 같은 그의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이 갔다.

그리고 아득해진 정신이 멀리 달아나기 전, 저를 안고 달리던 그의 목소리가 서현의 기억 너머에 또렷하게 맺혀있었다.

‘…반말해서 미안하니까, 제발 멀쩡하게 눈만 떠라…’

서현은 말을 뱉어 놓고는 민망한지 지음이 입혀준 티셔츠를 돌돌 꼬아가며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덩달아 머쓱해진 지음은 서현의 손가락 끝을 따라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다 곧 이어지는 서현의 말에 그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진동했다.

“…나, 오늘 재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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