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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Author: 민들레
“망할 녀석, 다 그놈이 자초한 화근이야.”

박수미가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변도영에게로 흘러갔다.

다른 사람 앞이었다면 신지아는 의도적으로 이 주제를 피했겠지만 상대는 변도영의 할머니인 데다 눈에 띄게 정말 격분한 상태였다.

박수미의 호흡이 가빠지자 신지아는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오히려 변도영을 두둔했다.

“그때 그 사람도 최선을 다했어요. 고생도 많이 했고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우미도 한마디 거들었다.

“듣기로는 도련님이 신지아 씨를 찾으려다 실수로 절벽 아래로 떨어지셨다더라고요.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웠고 구조대마저 철수한 상황이었는데, 다들 돌아가자고 말려도 도련님은 신지아 씨를 찾아야 한다며 끝까지 고집을 피우셨대요. 도련님은 정말로 신지아 씨에게 큰일이 생길까 봐 겁이 나셨던 거예요.”

도우미의 마지막 말은 신지아를 향해 있었다.

이 일에 대해서 신지아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변도영이 절벽에서 떨어진 이유를 물었을 때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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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42화

    “괜찮을 거야, 이진아. 아무 일 없을 거야.”윤재혁의 목소리는 전례 없이 부드러웠고 또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속삭임은 침대 위의 고이진에게 건네는 필사적인 위로인지, 아니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주문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고이진은 이미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아 반쯤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입안 가득 차오르는 비릿한 피맛과 온몸을 난도질하는 통증이 잔인하게 그녀를 가혹한 현실로 끄집어내고 있었다.“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란 말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사람 살려내!”윤재혁은 구석에 웅크려 선 주치의들을 향해 미친 듯이 포효했다.주치의 중 한 명이 사시나무 떨듯 앞으로 나서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대표님, 고이진 씨는 현재 심리적 스트레스에 너무 심하게 노출된 상태입니다. 지금 상태로는 어떤 약을 처방하더라도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게다가 약물은 결국 독성을 동반합니다.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환자분께 무리하게 투약했다가는 다른 장기마저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지금 투약을 강행하는 것은, 목마르다고 독약을 마셔 갈증을 해소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부디 환자분의 마음을 잘 달래주셔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평온을 찾으실 수 있도록 조치해 주시는 게...”“당장 꺼져!”의사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극도로 흥분한 윤재혁이 베개를 맹렬하게 집어 던지며 고함을 질렀다.“쓸데없는 놈들, 다 꺼져버려! 돈을 처먹으면서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 사람 하나 제대로 살려내지 못해?”윤재혁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 충혈되어 있었다.잔뜩 겁에 질린 주치의들은 한순간도 지체하지 못하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그때 송민기가 문밖에서 조용히 들어서며 이 참담한 광경을 보고 나직하게 읊조렸다.“대표님, 의사들 말이 맞습니다. 그동안 고이진 씨는 정서적으로 너무 피폐해졌고, 끼니마저 거른 탓에 몸이 도저히 버텨내질 못하는 겁니다.”윤재혁은 제 와이셔츠 소매로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41화

    변도영이 헛웃음을 쳤다.“그럼 어쩌라고. 무릎이라도 꿇고 애걸복걸하며 붙잡으라고?”하지만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신지아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돌아섰다는 것을. 설령 무릎을 꿇고 애원한들 그녀가 들어줄 리 없으며 오히려 그만 더 한심하고 비참해 보일 뿐이었다.“지아를 좀 보고 배웠어야지. 옛날에 오빠가 그렇게 쌀쌀맞게 굴 때도 지아는 기어이 오빠 곁에 남으려고 온갖 애를 썼잖아.”변하늘이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오빠랑 지아는 오랜 세월 쌓아온 감정의 토대라도 있지 나랑 고우빈은 그런 것도 없단 말이야.”변하늘은 새삼스레 아쉬움이 밀려왔다.만약 예전에 자신이 신지아와 조금 더 친하게 지냈더라면 신지아가 고우빈을 소개해 주었을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지아의 말이 옳다는 생각도 들었다.고우빈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데 억지로 이어진다면, 결국 자신도 제2의 신지아가 되어 고통받을 뿐일 테니까.게다가 듣기로 고씨 가문의 내부 사정은 변씨 가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험난하다던데 신지아가 걸어갔던 고통스러운 전철을 똑같이 밟고 싶지는 않았다.변하늘이 한숨을 섞어 덧붙였다.“끝나는 게 뭐가 무서워? 정말 무서운 건 우리 사이에 아무런 시작조차 없었다는 거지.”변하늘은 스스로가 처량해져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 말을 들은 변도영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고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번쩍 눈을 떴다.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시작이라니?’“그때는 그 사람이 참 멋지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웃는 모습도 무척 좋아했고 온몸에서 눈 부신 빛이 나는 것만 같았죠.”얼마 전 본가에서 신지아가 했던 말이 변도영의 뇌리에 흐릿하게 떠올랐다.‘끝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그 몇 글자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변도영이 흥분한 듯 몸을 벌떡 일으키자,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변하늘의 시선이 그의 손끝에 꽂혔다. 그곳에는 변도영이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40화

    부성 그룹.이나은이 해임된 직후 그녀가 맡았던 프로젝트팀을 대상으로 고강도 밀착 조사가 착수되었고 이로 인해 한차례 피바람 부는 인사이동이 몰아쳤다.프로젝트팀원들은 위아래 할 것 없이 극도의 불안감에 떨었다.다들 이나은과 변도영이 곧 약혼할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변도영이 이나은에게 이토록 냉혹한 처사를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탓이다.당연히 가장 큰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나은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았던 소우민이었다.패닉 상태에 빠진 소우민은 결국 모든 것을 이실직고했다. 과거 이나은의 지시로 김주리와의 관계를 이용해 UME의 디자인 도면을 빼돌린 일부터, 언론을 선동하고 미디어를 매수해 선제적으로 UME를 깎아내렸던 전말까지 전부 털어놓은 것이다. 한편 대표실 안에서 양준명이 올린 수사 자료를 읽어 내려가던 변도영의 얼굴은 차갑다 못해 살기까지 서려 있었다.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료를 양준명에게 건넸다.“언론을 소집해서 조사 사실 그대로 공표하도록 해.”양준명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어쩌면 UME 측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 합당한 보상을 제안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이 조사 결과는 부성 그룹에 지극히 불리한 내용이었기에, 부성 그룹이 수년간 쌓아 올린 명성이 이번 일로 단번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협력 사업은 물론 주가 역시 타격을 입을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변도영은 아주 잠깐 망설이더니 이내 낮게 실소를 터뜨렸다.“따로 만나서 고우빈이랑 신지아한테 용서라도 구하라고?”그가 천천히 눈을 감자, 자신을 바라보던 신지아의 혐오와 경멸 가득한 눈빛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잠시 후,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잘못된 건 잘못된 거야. 내가 지시한 대로 처리해.”변도영의 결심이 확고함을 확인한 양준명은 더는 말을 얹지 않았다.그가 물러간 후, 변도영은 책상 위의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방금 양준명이 가져온 자료 더미 속에는 이나은의 업무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39화

    신지아는 윤형우가 손을 써 둔 것이라 짐작했다.그녀는 서인호에게 윤형우에게 도움을 청했던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덧붙였다.“함정은 아닐 거예요.”그제야 안심한 서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계약을 진행할게요.”연미주와 임윤지가 흔쾌히 동의해 준 덕분에 신지아는 찰이를 다시 별장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윤형우의 비행기 편이 낮 시간대라 신지아는 휴가를 내고 공항까지 배웅하려 했지만 윤형우가 극구 사양하는 통에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어차피 보름 남짓한 짧은 출장일 뿐이었고 그동안에도 영상통화를 하면 되니 굳이 매달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생각지 못한 행운이 겹쳐 같은 날 LL기업 측에서 현재 사정을 고려해 납품 기한을 보름가량 늦춰주겠다는 연락이 왔다.대행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생산 일정이 빠듯했는데 LL기업이 기한을 유예해 주면서 큰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UME 직원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렸고 신지아는 이와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고우빈과 상의 끝에 공장 구역의 보안 검사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자, 신지아는 윤형우에게 줄 선물을 구상했다.웹 서핑으로 다채로운 3D 입체 그래픽을 구경하던 그녀는 마침내 직접 팔을 걷어붙여 자신과 윤형우의 외모적 특징을 조화롭게 빚어냈다.작업을 끝마친 후 결과물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정교하게 완성된 모델링 얼굴은 영락없이 자신과 윤형우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 같았기 때문이다.‘만일 미래에 우리 아이가 태어난다면, 분명 이런 모습일까.'황홀한 상상이 뇌리를 스친 순간, 신지아는 스스로 놀라며 즉시 잡념을 잘라냈다.섣부른 기대는 되려 상처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기에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차라리 안전했다.지금 누리는 이 행복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쳤으니까.신지아는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다 결국 이끌리듯 윤형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어쩐 일인지 상대는 수신음만 길게 울릴 뿐 받지 않았다.시간을 따져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38화

    신지아의 이야기를 들은 김주리 역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날 내가 직접 문과 창문을 다 닫고 대문까지 확실히 잠그고 나온 건 맹세할 수 있어요.”신지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상대가 열쇠를 구해서 문을 열고 들어왔으면서, 정작 장비를 훔쳐 간 게 아니라 창고에 그대로 뒀다는 건 확실히 앞뒤가 맞지 않네요.”김주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너무 무거워서 가져가지 못했거나, 아니면 공장 단지 사람 중에 UME에 원한을 품고 화풀이를 한 걸지도 모르죠.”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방금 언급한 두 가지 가능성 모두, 결국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생각하면 그 자식 짓일 수도 있어요! 나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작정한 거죠!”김주리는 분을 참지 못하고 차 뒤편을 쏘아보았다.소우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판을 이렇게 크게 짰다는 생각에 김주리는 더 울화가 치밀었다. 방금 뺨을 더 세게 때리지 못한 게 한으로 남을 지경이었다.신지아는 침묵을 지켰다. 일리 있는 말 같으면서도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듯 영 미심쩍었다.“이제 저 어떡해요?”김주리는 결국 눈물을 글썽였다.UME에서 손해 배상을 청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던 것이다. 피해 액수가 워낙 커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넣어도 턱없이 부족할 것이 뻔했다.신지아는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에서 그 불안감을 읽어냈다.실제로 이번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중대한 사안이었다. 약속된 기한 내에 납품하지 못한다면 김주리 개인의 배상 능력을 넘어 UME 자체에 치명적인 위기가 닥칠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이미 심적으로 지쳐있을 김주리에게 신지아는 더 이상 압박을 가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입을 닫은 채 김주리를 자취방 앞까지 바래다주었다.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낸 김주리는 잠시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나직하게 인사했다.“도와줘서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37화

    말을 마친 김주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발걸음을 옮겼다.소우민이 끈질기게 다시 그녀를 뒤쫓으려던 찰나,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끼이익 비명 같은 마찰음을 내며 두 사람 옆에 멈춰 섰다.차창이 내려가고 신지아가 창밖으로 김주리를 바라보며 말했다.“타요.”김주리는 아주 잠깐 멈칫했을 뿐, 이내 망설임 없이 캐리어를 뒷좌석에 밀어 넣고 조수석에 올라탔다.신지아는 가속 페달을 밟아 넋이 나간 소우민을 저 멀리 뒤로 따돌렸다. 차에 탄 김주리는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앉아 붉어진 눈으로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울고 싶으면 울어요. 계속 꾹꾹 누르고 있으면 속에서 병나니까.”신지아는 전방을 주시하며 조용히 차 안의 음악을 켜고 콘솔 박스 위에 티슈를 얹어주었다.신지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주리는 얼굴을 감싸 쥔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음 같은 울음을 참아내려 애쓰는 듯하더니, 이내 참아왔던 둑이 터진 것처럼 오열을 터뜨렸다. 그간 마음속에 쌓여온 모든 원망과 슬픔을 남김없이 쏟아내는 듯한 통곡이었다.“그 사람이랑 정말 오랫동안 만났어요. 참 다정한 사람이었거든요. 예전에 좁고 어두운 지하방에서 같이 살 때, 제가 생리통으로 너무 아파하면 밤새 손으로 배를 문질러서 따뜻하게 해주던 사람이었어요. 부성 그룹 들어가서 첫 월급 탔을 때는, 제가 지나가다 예쁘다고 했던 수백만 원짜리 목걸이를 덜컥 사 오기도 했고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전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김주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채 가슴속 이야기를 쉬지 않고 쏟아냈다.신지아는 앞만 응시한 채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녀에게 마음을 추스를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함이었다.얼마나 달렸을까, 울음소리가 차츰 잦아들더니 김주리의 감정도 서서히 진정되어 갔다.그녀가 신지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저번에 제가 팀장님한테 그렇게 무례하게 굴었는데, 왜 절 도와주시는 거예요?”“전 그저 배신당해서 오갈 데 없는 여자를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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