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저요?”
“네. 도련님께서 대뜸 회장님을 찾아뵙고 아가씨를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시는 바람에 회장님과 아가씨 사이에 있었던 모든 사실을 알게 되셨어요.”
김 실장은 지난밤 서재에 있었던 일들을 별이에게 모두 말해주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별이의 두 눈에는 금세 투명한 눈물이 차올랐다.
“그… 그래서 말도 없이 이렇게 갔다고요? 지안 선배는 언제 돌아오는데요?”
“딱히 정해진 날은 없습니다. 대학 졸업장도 받아오셔야 하고 경영 수업도 모두 마치셔야 하기에… 아무래도 다 끝나야만 돌아오실 것 같아요.”
별이의 두 뺨에는 투명한 눈물이 하염없이 타고 흘렀다.
– 야!!! 한별!!! 대박!!! 나 어떡해!!!“보롬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별이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자 옆에 있던 지안의 미간도 살짝 좁아졌다.수화기 너머로 보롬이가 꺽꺽거리며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 나 드디어 임신했나 봐! 방금 테스트기 확인했는데 완전 선명하게 두 줄 나왔어!!!“뭐, 뭐?! 진짜 두 줄이야?!”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율과 결혼해 가정을 꾸린 지 제법 되었지만 워낙 아기가 안 생겨 은근히 속앓이를 해왔던 보롬이었다.– 어떡해, 나 너무 좋아서 눈물 나, 진짜…! 아, 율 오빠 알면 좋아서 뒤집어질 텐데 아직 말도 못 했어! 야, 한별! 너 지금 어디야? 당장 만나서 이 기쁨을 나눠야 해!감격에 겨워 횡설수설하는 보롬이의 목소리에 별이마저 눈시울이 붉어지며 어버버하는 사이, 지안이 슥 손을 뻗어 별이의 휴대전화를 가져갔다.지안에게는 절친 율의 아내이자, 또 다른 절친 초롬이의 이복동생인 보롬 역시 제 식구나 다름없었다.“강보롬.”– 어? 지, 지안 오빠?!전화기 너머 보롬이의 흥분 섞인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지안은 제 품에 안긴 별이를 빤히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린 채 나직하게 말했다.“축하해. 율이 녀석 드디어 아빠 되네. 근데 우리 별이는 어제 와인에 절여져서 오늘 나랑 꼼짝 말고 누워 있어야 하니까, 자랑은 율이한테 먼저 해.”– 헉, 와인? 대박…! 미안 미안, 내가 눈치가 없었다! 지안 오빠 축하 고마워요
입술이 맞닿은 틈 사이로 은밀한 숨소리가 흩어졌다.지안의 거친 호흡이 별이의 숨결을 집요하게 집어삼켰다.6년의 갈증을 한 번에 터트려내듯 깊고 짙은 키스였다.별이는 지안의 단단한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냈다.눈앞의 지안은 지독하게 절박해 보였다.“별아… 한별.”입술이 떨어졌을 때, 지안이 붉어진 눈으로 별이를 내려다보았다.지안의 시선이 문강륜의 손길이 닿아 풀려 있던 단추 세 개에 머물렀다.강륜의 흔적이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안의 안을 잔인하게 헤집었다.지안은 그 불쾌한 잔상을 제 손으로 전부 씻어내려는 듯, 별이의 셔츠를 거칠게 밀어내며 피부 위로 입술을 묻었다.“선배…”별이가 가느다란 신음을 뱉으며 지안의 머리칼을 거머쥐었다.지안의 입술은 쇄골과 목덜미를 따라 집요하게 붉은 자국을 새기듯 내려갔다.오직 제 체취와 온기로만 별이의 온몸을 덮어버리겠다는 독점욕이었다.닿는 피부마다 뜨거운 전율이 일어났다.지안의 셔츠 단추가 바닥으로 툭, 툭 떨어졌다.서로의 맨살이 빈틈없이 맞닿았다.“…하.”참지 못한 거친 호흡이 얽혀들었다.문강륜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내고 제 것으로 가득 채우는 지안의 손길 속에서, 두 사람만의 뜨거운 밤이 깊어갔다.다음 날 아침.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지안이 먼저 눈을 떴다.제 품에 파묻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별이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어젯밤의 흔적이 남은 별이의 어깨 위로 이불을 조심스럽게 덮어준
콰아아앙!별장의 침실 문이 거칠게 부서졌다.열린 문틈 사이로 뿜어져 나온 살기에 문강륜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시야를 가득 채운 건 형형하게 빛나는 천지안의 눈빛이었다.“…천지안.”강륜이 이름을 채 다 뱉기도 전이었다.공간을 단숨에 좁혀온 지안의 주먹이 강륜의 턱에 그대로 박혔다.퍼억—!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강륜의 고개가 꺾였다.가공할 완력에 밀려난 강륜이 협탁을 들이받으며 바닥으로 사정없이 굴러떨어졌다. 스탠드가 요란하게 박살 나며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컥…! 쿨럭, 윽!”강륜이 핏덩이를 뱉어내며 거친 신음을 흘렸다.지안은 바닥에 쓰러진 강륜의 멱살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네까짓 게.”지안의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낮고 고요했다.지안의 시선이 강륜 너머, 침대 위로 향했다.단추가 세 개나 풀려 속살을 드러낸 채 누워 있는 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 순간, 지안의 이성을 붙잡고 있던 마지막 줄이 끊겼다.“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퍽! 콰직!“아아악—!”강륜의 비명이 외딴 별장을 찢어발겼다.지안은 바닥에 구르는 강륜을 내려다보며 그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짓밟아 뭉개버렸다.압도적인 폭력 앞에 문강륜의 오만함은 흔적도 없이 조각났다.그 사이, 뒤따라 들이닥친 준휘가 빠르게 움직였다.준휘는 단 한 걸음에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붉은 와인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별이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눈앞이 사정없이 흔들리더니 이내 지독한 암전이 찾아왔다.문강륜은 완전히 의식을 잃은 별이를 안아 들고 침실로 향했다.매끄러운 시트 위에 별이를 조심스럽게 눕힌 그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잠든 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단정한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방 안에서, 강륜의 눈빛이 무섭게 일렁였다.천지안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별이의 모든 것을 망가뜨려서라도 빼앗고 싶었다.지안이 목숨처럼 아끼는 여자니까, 그녀의 몸이라도 가져서 그 오만한 놈을 바닥까지 추락시키고 싶었다.하지만… 막상 무방비하게 누워 있는 별이를 보니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무거워졌다.순수하게 저를 믿고 지안의 걱정을 하던 맑은 눈망울이 잔상처럼 스쳤다.사실 강륜 역시 별이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제 마음에 들어온 유일한 여자였기에, 온전히 제 사람으로 만들어 누구보다 아껴주고 싶다는 마음이 마음 한편에 아주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지안을 무너뜨리기 위한 도구로만 쓰기엔 별이가 너무 소중했고, 그렇다고 이대로 지안에게 순순히 보내기엔 그녀를 향한 집착을 버릴 수가 없었다.들끓는 소유욕과 그녀를 아껴주고 싶다는 순수한 애정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엉켰다.강륜은 제 안에서 일어나는 이 기묘한 혼란에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낮게 읊조렸다.“내가 왜 이러지.”그러나 혼란도 잠시, 지안의 당당한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억눌러왔던 열등감이 폭발했다.평생 천지안이라는 이름 석 자에 밀려 뺏기고 살아왔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이번에도 양보하면 제 손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결국, 강륜의 눈에서 이성의 빛이 완전히 꺼졌다
같은 시각, 문성그룹 부회장실.“뭐? 천준휘가 돌아와서 판을 깨?”문강륜이 책상 위의 전화를 거칠게 내려놓으며 이를 갈았다.강서희의 독점욕과 준휘의 야망을 이용해 천지호텔을 먹으려던 계획이 준휘의 배신으로 완전히 망했다.하지만 문강륜은 이대로 물러설 놈이 아니었다.“재미있어지네. 하지만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야.”문강륜의 눈이 화면 가득 띄워진 천지그룹의 주식 현황판을 향했다.그는 이미 천지그룹의 우호 지분을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었다.장부 유출이 안 된다면,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주식 시장에서 천지그룹의 경영권을 통째로 흔들어버릴 2차 계획이 있었다.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문강륜의 머릿속에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지안의 곁에서 머무는 여자, 별이였다.“지안이 놈이 가진 걸 다 뺏으려면, 별이 씨부터 흔들어야겠지.”문강륜은 지안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그리고 제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별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할 생각을 하며 비열하게 웃었다.며칠 뒤, 천지호텔 로비.퇴근하던 별이의 앞을 고급 외제차 한 대가 가로막았다.차 문이 열리며 문강륜이 매끈한 미소를 지으며 내렸다.“별이 씨, 안녕하세요. 지안이 문제로 개인적으로 상담할 게 좀 있어서 들렀습니다.”차에서 내린 문강륜이 평소처럼 매끈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지안과 강륜이 친한 사이인 줄로만 알고 있던 별이는 아무런 의심 없이 걸음을 멈췄다.회사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는 별이에
준휘가 테이블 위에 던진 가방 안에서 나온 자료들은 강력했다.천지호텔 최대 주주이자 권력자인 강의원의 딸, 강서희.그녀가 왜 문성그룹의 문강륜과 손을 잡고 천지호텔의 내부 장부를 조작해 유출했는지 그 더러운 밀약이 담긴 비밀 계약서와 계좌 내역이었다.사실 강서희와 손을 잡았던 진짜 몸통은 다름 아닌 준휘였다.지안에게 빼앗긴 후계자 자리를 되찾기 위해, 그리고 제 눈을 멀게 한 첫사랑 한별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 준휘는 강서희의 독점욕을 이용했었다.장부를 흔들어 지안을 천지호텔에서 완벽하게 내보내려 했던 것이다.하지만 문강륜은 준휘와 강서희의 거래를 이용해 천지호텔을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이었고, 이를 알아챈 준휘가 자신을 미끼로 판을 짠 문강륜의 뒷통수를 치기 위해 완벽한 증거를 역으로 수집해 들이닥친 것이었다.진짜 책임자였던 준휘의 날카로운 반박과 확실한 증거 앞에 반대파 이사들은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준휘를 이용해 지안을 끌어내리려던 강서희의 음모와 이사회는 그렇게 완벽하게 박살이 났다.이사들이 도망치듯 빠져나간 텅 빈 회의실.지안과 준휘, 두 사람만이 넓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왜 돌아온 거야. 나를 밀어내려고 강서희랑 손까지 잡았던 형이.”지안이 먼저 침묵을 깨고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준휘는 테이블 위에 던져두었던 가죽 가방의 지퍼를 천천히 열었다.과거 3805호 스위트룸에서 별이의 진단서를 흔들며 지안의 목을 죄었던 그 악랄했던 기억이 준휘의 씁쓸한 미소 위로 겹쳐졌다.“그래. 널 밀어내고 별이 씨를 내 곁에 두려고 했어. 어떻게든 너를 이겨서 내 자리를 되찾는 것만이 전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