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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포식자의 장난감
최상의 포식자의 장난감
Author: 연화령

[제1화] 부도 직전, 계약 이행

Author: 연화령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11 21:17:16

잠들지 않는 거리, 청담동의 가장 깊숙한 이면.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식지 않는 열기로 뜨거운 이 골목은 화려한 불빛들이 수많은 사람을 붉고 푸른 네온사인으로 적셔 내렸다.

그 무질서한 욕망의 거리 중심부.

대한민국 상위 0.1%의 후계자들과 그들의 비호를 받는 이들만이 발을 들일 수 있다는 시크릿 라운지 블랙 드래곤이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업소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인테리어와 삼엄한 보안.

그곳은 법보다 돈이, 상식보다 권력이 우선시되는 그들만의 은밀한 낙원이었다.

​그리고 그 낙원의 정점에는 '밤의 황제'라 불리는 천지안이 있었다.

대한민국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혹은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시선의 끝에 닿길 갈망하는 지고지섹(至高至色)의 표본.

유명 연예인부터 재벌집 딸들까지 지안의 나른한 눈빛에 중독되지 않은 이는 없었다.

그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기묘한 파괴력이 있었다.

​지안은 낮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블랙 드래곤의 대리석 복도를 여유롭게 거닐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맞춤 슈트는 그의 탄탄한 몸매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고 의도적으로 풀어헤친 셔츠 단추 사이로는 매끄러운 목선이 도드라졌다.

흑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차가운 눈매와 굳게 다물린 붉은 입술은 마치 정교하게 깎아 만든 조각상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가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며 복도를 지나자 지안을 기다리고 있던 율이 초조한 듯 다가와 그의 어깨를 낚아챘다.

​“야, 천지안! 넌 발에 브레이크라도 달았냐? 왜 이제야 나타나!”

“어, 그렇게 됐다. 바깥 공기가 좀 좋길래.”

“공기 타령할 때냐? 지금 7번, 11번 룸 애들 너 안 온다고 난리 났어. 특히 유하나, 그 계집애는 오늘 작정하고 온 모양인데 수습 좀 해라.”

​지안은 피식, 비릿한 실소를 흘렸다. 지안에게 이곳은 유일한 낙원이었다.

아버지가 돈과 권력으로 여자들을 지배하듯, 자신도 아버지가 물려준 그 잘난 조건들로 여자들을 발밑에 두며 아버지를 비웃는 유희의 장일 뿐이었다.

​“걱정 마. 유하나 다루는 건 내 전문이니까.”

​저벅, 저벅.

7번 룸 문을 거세게 열어젖힌 지안은 언제 차갑게 굴었냐는 듯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선으로 유하나를 바라보았다.

“누나, 나 기다렸다면서?”

“야! 너 뭐야! 왜 이렇게 늦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하나의 옆자리에 앉은 지안은 그녀의 시선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거세게 포개었다. 놀란 하나의 귓가에 낮은 중저음이 감돌았다.

“너는 말이야. 화낼 때가 미치게 예뻐.”

그의 가식적인 유혹임을 알면서도 하나는 그의 미세한 떨림에 모른 척 넘어가 주는 수밖에 없었다. 지안은 그녀를 감싸안으며 등 뒤로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 재계의 거물 천지그룹의 저택.

천 회장이 들어서자 비서 실장인 김 실장의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천 회장은 정갈하게 매여 있던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물었다.

​“지안이는.”

“도련님께서는 아직 귀가 전입니다.”

“이 자식,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건가?”

​천 회장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본인 역시 수많은 스캔들을 몰고 다녔지만 후계자인 지안이 밤마다 블랙 드래곤에서 에이스 소리를 들으며 노는 꼴은 참기 힘들었다.

그때 김 실장이 조심스럽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회장님, 천지 계열사인 별푸드가 최종 부도 위기입니다. 10년 전 계약하셨던 조항을 검토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별푸드? 10년 전, 내가 직접 투자 계약을 체결했던 그곳인가?”

“네, 맞습니다. 한 대표의 경영 실책으로 자금줄이 막혔습니다.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조항에 명시된 절차를 밟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천 회장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10년 전, 그는 별푸드에 거액을 투자하는 대가로 특별한 조항 하나를 넣었다.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부도 위기 시 채무 이행의 담보로서 외동딸 한별을 천지그룹에 귀속시킨다.‘

“그럼… 이제 데려와야겠군. 한 대표 딸내미 말이야. 열여덟이었나?”

“네. 한별 양입니다. 그런데 별푸드 쪽에서 한 별양을 순순히 내어줄까요?”

“난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움직일 뿐이야. 부도를 막는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쪽에서도 감행하겠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네. 알겠습니다. 별푸드 쪽에 연락해 두겠습니다.”

김 실장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재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천 회장이었고 그의 표정은 마치 얼음처럼 냉철하고도 차가웠다.

​다음 날 오후,

부모님의 사업 성공으로 항상 넉넉하게 살아온 18살 한 별은 지성과 미모는 물론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래서일까. 이성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았고 항상 자신감이 넘치며 당당했다.

오늘도 그녀는 친오빠나 다름없는 초롬과 함께 한적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별아, 진짜 나랑 사귀면 안 돼? 내가 우리 학교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어, 안 돼.”

초롬이와 별이의 인연은 어릴 적부터였다.

별이가 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성당을 옮기게 되었는데 초롬이는 그때부터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왜!”

“오빠는… 글쎄… 음… 너무~~ 오빠 같아.”

만날 때마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대쉬하는 그의 모습에 그녀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익숙해져서일까. 그녀의 칼 같은 대답에도 초롬이는 수없이 자신을 어필했다.

“내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 남자인데!! 이렇게 수시로 철벽 쳐도 되는 거야?”

“오빠가 인기가 많으면 뭐 해. 오빠는 내 스타일이 아닌데 난 나쁜 남자가 좋더라. 차갑고 냉철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남.자.”

​별은 장난처럼 말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2년 전 그 여름날의 잔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비를 맞으며 성당 벤치에 앉아 있던 그 소년.

그 매서운 눈동자를 떠올릴 때마다 별은 이상한 통증을 느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자 초롬의 마음이 알게 모르게 애가 타기 시작했다.

“나쁜남자가 좋다면 내가 나빠져 볼게.”

“오빠가 나빠져 봤자지!!”

“어? 너 나 무시하냐? 나 너한테만 착한 거거든.”

“거짓말~ 오빠 얼마 전에 사랑 보육원에 봉사활동 간 거 다 알거든? 수시로 가잖아!! 그거 말고도 말해줘? 오빠는 절대 나빠질 수 없어. 천성이 그런걸?”

“아니, 도대체 그런 건 어디에서 듣는 거야? 강보롬이 말해 준거야?”

“오빠, 자꾸 잊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나 보롬이랑 둘도 없는 베프야. 그리고 오빠랑 나랑 알고 지낸 지 벌써 10년이다. 그런 오빠가 남자로 보이겠냐? 2년 전 그때 그 녀석이 딱 나쁜남자 같던데…”

“어? 누구?”

“눈빛도 매섭고 말투도 차갑던…”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오빤 몰라도 되거든요? 그리고 정확하게 얼굴도 생각 안 난다고.”

초롬의 물음에 별이는 딱 잘라 대답했고 이내 아이스 커피잔을 천천히 저의 입술에 갖다 대었다.

***

집으로 돌아온 별은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에 숨을 멈췄다.

거실에서는 부모님의 억눌린 울음 섞인 대화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보, 천 회장님이 사람을 보낸대. 천 회장 성격이라면 분명 그 계약을 이행하려 들 거야.”

한 대표의 말에 눈치챈 윤정아의 표정은 금세 근심 어린 표정으로 가득 찼다.

“우리 별이를 담보로 잡겠다는 게 말이 돼요? 유흥업소 같은 곳에 팔려가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나도 알아! 하지만 별푸드가 무너지면 우린 다 끝이야."

​별은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아빠!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담보라니! 계약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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