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끼이익―
지안이 바이크를 세운 곳은 청담동 뒤편 외벽 전체가 블랙 글라스로 덮인 빌딩 앞이었다. 헬멧을 벗어 바이크에 걸어둔 지안이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멤버십 전용 라운지, 블랙드래곤의 루프탑이었다. 통유리 너머로 도심의 불빛이 쏟아지는 창가 좌석. 그곳엔 이미 유하나가 다른 아이들과 섞여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한 잔에 수만 원을 호가하는 수입 탄산수를 마시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트리니티 급은 아니어도 이 비싼 회비를 가볍게 지불할 수 있는 그녀의 여유가 몸짓 하나하나에 배어 있었다. 라운지 입구 테라스에서 통화를 하던 율이 지안을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 왔냐?” “뭐야, 학교에서 보자더니 왜 갑자기 부른 건데?” “아니, 초롬이랑 만나는데 너 생각나서. 우리가 이래 봬도 천지고 트리니티(Trinity) 아니냐?” “지랄.” “들어가 있어. 통화 마저 하고 들어갈게.” 지안은 율의 어깨를 툭 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묵직한 유리문을 열자 안쪽 소파에서 초롬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안은 서슴없이 초롬의 옆자리에 앉았다. 마침 Bar 근처에서 자신들의 음료를 고르고 있던 유하나가 지안을 발견하고 눈웃음을 치며 다가왔다. “천지안,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너 마실 것도 같이 주문할까?” 하지만 지안은 가식적인 웃음조차 생략한 채 시선도 주지 않고 까칠하게 대꾸했다. “됐어. 내 건 내가 알아서 해.” 지안은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을 툭툭 건드려 무심하게 무알코올 뱅쇼를 추가했다. 하나가 무안한 듯 어깨를 으쓱하며 제자리로 돌아가자 초롬이 지안의 기색을 살피며 물었다. “천지안, 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어. 늑대 소굴로 뛰어 들어온 당돌한 아가씨 때문에.” 그때, 밖에서 통화를 마친 율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와 지안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무슨 일인데?” 지안의 말에 초롬과 율이 동시에 고개를 들고 물었다. 호기심 가득한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지안이 픽, 냉소를 흘렸다. “천 회장 그 영감이 우리 집에 여자를 또 들였어. 그것도 고작 열여덟 살짜리를.” “와, 너희 아버지 진짜 대박이다. 능력도 좋아, 완전 내 롤모델인데?” 율이 진심으로 감탄한 듯 탄성을 내지르자 지안의 미간이 단번에 좁아졌다. “이 자식아, 좋아할 거 없어. 아직 모르니까. 천회장이 들인 여자인지, 진짜 인간 담보인지.” 인간 담보라는 이질적인 단어에 초롬의 눈빛이 흔들렸다. “인간 담보?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계열사 협력업체 중에 별푸드라고 있는데 투자금을 못 갚아서 그 집 딸이 담보로 잡혀 왔다더라. 50억에.” “와… 역시 천 회장님 클라스.” 율은 두 손까지 부딪히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지안의 표정은 갈수록 싸늘해졌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무알코올 뱅쇼를 거칠게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과연 진짜 인간 담보일까? 아님 천 회장의 새로운 여자일까? 난 그게 의문이라는 거지.” 잠자코 듣고 있던 초롬이 생각이 많은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천 회장님이 여자들을 자주 바꿔도 열여덟 살 애를 데려올 리가 있을까?” “그러게. 진짜 인간 담보겠지. 누군지 얼굴 한번 보고 싶네. 열여덟이면 보롬이랑 동갑이잖아.” 보롬의 이름이 나오자 초롬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여기서 강보롬 이야기가 왜 나와? 안 그래도 너 보겠다고 여기까지 쫓아오려는 거 겨우 떼어놓고 왔는데.” “나를? 하, 이놈의 인기란.” 율이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지안의 머릿속은 온통 별이의 잔상으로 가득했다. 율이 다시 지안을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지안아, 너 그 담보 여자애는 어떡하려고?” “모르겠어. 천 회장 여자라고 생각하면 존나게 싫다가도 그 애 행동이나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좀 이상해져.” “엇! 그거 너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에 빠진 거 아냐?” 율의 장난 섞인 말에 지안이 즉각적으로 쏘아붙였다. “지랄. 나 여자 증오하는 거 모르냐?” “아니야, 아니야. 진짜 그런 것 같아. 나도 그랬거든.” 초롬의 다급한 긍정에 지안이 의외라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강초롬. 너 좋아하는 여자 있었냐?” “너 몰랐어? 이 새끼 짝사랑한 지 벌써 10년 차야.” 율의 폭로에 지안의 시선이 초롬에게 꽂혔다. 무심한 줄만 알았던 친구의 의외의 면모에 지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이 자식이 여자들한테 관심이 없었고만? 난 무슨 문제라도 있는 줄 알았잖아.” “나, 아무 문제 없거든요?” 초롬이 단호하게 대꾸하자 율이 지안의 어깨를 툭 치며 다시 놀려댔다. “그러게. 우리 건강한 초롬이를 왜 환자 취급해? 그보다 지안아, 너 진짜 입덕중인데 부정하는거 아니야?” “뭐래….” 지안은 애써 부정하며 시선을 돌렸지만 정원에서 자신을 향해 당당하게 소리치던 별이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았다.혐오와 호기심, 그 경계에서 지안의 마음이 기묘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천지고 등교 첫날. 별이는 긴장된 마음으로 거실로 나왔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던 것은 김 실장의 엄중한 지시였다. “아가씨. 지안 도련님과 같이 이동하시죠. 회장님 지시입니다.” 별이는 숨이 턱 막혔다. 그때 2층에서 지안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실장. 나 그냥 따로 간다니까?” 지안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2층 복도를 타고 계단 아래까지 거칠게 내려앉았다. 잔뜩 구겨진 교복 셔츠만큼이나 험악해진 얼굴로 모습을 비춘 지안은 1층 로비에 서 있던 별이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그대로 멈춰 섰다. “하… 쟤는 또 뭔데?” 불청객을 보듯 노골적인 혐오가 담긴 물음에 곁을 지키던 김 실장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한별 아가씨는 오늘부로 천지 고등학교 학생입니다.” “정말… 가지가지 하네.” 지안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계단을 내려왔다.한 칸씩 내려올 때마다 그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별이의 숨통을 조여왔다.
별이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제 발끝만 응시하며 폭풍 같은 지안의 기세를 견뎌냈다. “근데… 나 설마, 쟤랑 같이 가는 거야?” “네.” “……” “같은 차 타고?” “네. 회장님 지시입니다.” 김 실장의 단호한 확인 사살에 지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는 별이를 벌레 보듯 차갑게 훑어내리고는 대답조차 가치 없다는 듯 현관 밖으로 거칠게 걸음을 옮겼다. 지안이 지나간 자리엔 서늘한 냉소만이 남았다. “가시죠, 아가씨.” “……네.” 별이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숨기며 김 실장의 뒤를 따랐다. 등 뒤로 느껴지는 거대한 저택의 그림자가 마치 감옥처럼 별이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가방끈을 꽉 쥐었다. 별푸드를 살리기 위해선 저 오만한 포식자와 같은 차에 올라타는 것쯤은 견뎌내야만 했다. 그의 세단 뒷좌석에 올랐다. 차 안은 완벽하게 밀폐된 침묵이 흘렀다. 질식할 것 같은 정적을 깬 건 지안의 서늘한 음성이었다. “너.”그 도발적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준휘의 이성이 힘없이 가라앉았다.준휘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도희의 입술을 깊숙이 머금었다.단숨에 숨을 빼앗아 가는, 지독하리만치 진한 입맞춤이었다.정중하던 맞선의 분위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준휘의 단단한 손이 도희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 안아 제 쪽으로 밀착시켰고, 도희 역시 그의 단단한 어깨를 꽉 쥔 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하…” 서로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엉망으로 섞여 들었다.준휘의 손길은 더 이상 신사적이지 않았다.도희의 허리를 단단히 받쳐 든 손에 은근한 악력이 들어가며 그녀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도희는 준휘의 목을 더 바짝 끌어안으며 그가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침대 위로 밀려 내려갔다.푹신한 매트리스가 두 사람의 무게를 받아내며 깊게 가라앉았다.통창 너머로 대낮의 환한 햇살이 두 사람 위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너무 밝아서 시각적인 자극이 오히려 생생하게 피부를 타고 흘렀다.정장 재킷이 거추장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지고, 얇은 셔츠 너머로 서로의 뜨거운 체온이 가감 없이 맞닿았다. “준휘 씨……” 도희의 입술 사이로 얕은 숨이 새어 나왔다.열기에 젖어 느리게 깜빡이는 눈동자가 준휘의 시선에 얽혔다.밖에서는 자로 잰 듯 바르고 정중하던 천준휘였다.하지만 단둘이 남은 침대 위에서, 정제된 표정 너머로 슬쩍 비치는 그의 집요한 눈빛이 도희는 지독하게 마음에 들었다.낮에는 져주는 척하다가도, 이 순간만큼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준휘의 온도 차가 짜릿했다.준휘의 단
도희가 입가에 매끄러운 비즈니스 미소를 띤 채 맑은 눈동자로 준휘를 똑바로 응시했다.“그동안 잘 지냈어요? 저희 초면 아닌 걸로 아는데.”며칠 전 준휘의 펜트하우스에서 헝클어진 머리로 제 품에 안겨 가쁜 숨을 내쉬던 그 여자가, 지금은 완벽한 타인이자 가문이 정해준 정혼 상대가 되어 제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평정심을 잃지 않던 준휘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이내 그의 입가에 낮고 위험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놓치고 싶지 않던 여자가, 상상도 못 한 대기업 손녀라는 완벽한 조건으로 제 발로 나타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준휘는 의자를 빼고 앉으며 넥타이를 슬쩍 느슨하게 풀었다.도희를 응시하는 그의 매서운 눈빛에는 당혹감 대신 짙은 흥미가 감돌기 시작했다.준휘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여전히 시선은 도희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맞은편에 앉은 도희는 턱을 살짝 괸 채, 준휘의 당혹스러운 시선을 고스란히 즐기고 있었다.당황해서 도망치던 며칠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지금 그의 앞에 있는 여자는 백도그룹의 귀하게 자란, 오만하고 당당한 손녀딸 그 자체였다.그 화려한 집안 배경이 도희의 도도한 매력을 한층 더 완성해 주고 있었다.준휘는 테이블 위로 깍지를 낀 채 상체를 슬며시 앞으로 기울였다.룸 안을 가득 채운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도 두 사람의 시선은 단 한 순간도 비껴가지 않았다.도희의 맑고 거침없는 눈동자를 마주할수록, 준휘의 소유욕이 은근하게 고개를 들었다.어떻게든 이 여자를 흔들어놓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백도희 씨.”준휘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정말인가, 지안 군?”별이 아버지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감격 어린 얼굴로 지안을 바라보았다.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지만 그 안에는 깊은 안도와 고마움이 서려 있었다.“지안 군이 우리 별이 어떻게 아끼고 지켜봐 왔는지 다 알고 있네. 그 모진 시간 동안 묵묵히 버텨준 게 우리가 고마울 뿐이지.”옆에 있던 어머니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가를 톡톡 찍어냈다.늘 마음 한구석의 짐이었던 딸의 기억이 돌아온 것도 기쁜데, 늘 믿음직하던 지안이 제 딸을 책임지겠다고 확실하게 말해주니 감동이 밀려오는 모양이었다.“맞아요, 지안 군. 우리 별이, 정말 지안 군이니까 믿고 맡기는 거예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어머니가 지안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지안은 제 손등 위로 얹어지는 온기를 느끼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제가 더 감사드려요. 저희 아버지께도 곧 말씀드리겠습니다.”지안의 빈틈없고 정중한 태도에 별이 부모님의 얼굴에 한층 더 깊은 신뢰가 서렸다.“자, 좋은 날인데 기분 좋게 한잔해야지. 지안 군, 오늘 차 가져왔나?”아버지가 분위기를 유쾌하게 전환하며 소주병을 들자, 지안이 밀려오는 긴장을 풀며 담백하게 웃었다.“김 실장 대기시켜 놨습니다, 아버님. 걱정 마시고 채워주십시오.”“좋아! 오늘 기분
“음…”지안의 가슴팍에 뺨을 부비던 별이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느릿하게 뜨인 눈동자에 지안이 가득 담겼다.지안은 제 목을 안고 있는 별이의 하얀 팔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이마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더 자도 돼.”지안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별이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는 손길은 다정했다.“오늘까지는 휴가니까, 호텔 신경 쓰지 말고 누워 있어.”“출근해야 하는데…”“부총지배인 권한이야. 컨디션 회복할 때까지 쉬라고 명령하는 거니까, 아무 생각 하지 마. 총지배인인 준휘 형도 오케이 했어.”별이는 아직 몸이 무거웠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지안은 그런 별이를 더 단단히 감싸 안았다.규칙적인 심장 소리가 살을 맞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덤덤하게 가라앉은 지안의 눈빛 속에는 짙은 소유욕이 번지고 있었다.두 번 다시 제 품 안의 이 평온함을 흔들게 두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별아.”“네…”“오늘 저녁에 별이 어머님 아버님 만나서 같이 식사할까?”갑작스러운 제안에 별이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네? 갑자기요…?”당황한 별이의 반응에 지안이 옅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뺨을 살며시 만졌다.“잊었어? 나 원래 즉흥적인 거.”&nb
“볼일은 지금부터 만들면 되죠. 그쪽 눈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바에 앉은 여자의 당돌한 한마디에 준휘는 실소했다.평소 같으면 대꾸할 가치도 없다며 자리를 떴을 텐데, 지독한 공허함 탓이었을까, 독한 위스키 탓이었을까.준휘는 제 잔을 부딪쳐 온 여자를 가만히 응시했다.“처음 보는 남자한테 잔을 들이밀기엔, 멘트가 지나치게 클래식하군.”준휘의 차가운 반응에도 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오히려 새로 나온 위스키를 느릿하게 음미하며 생긋 웃을 뿐이었다.“클래식한 게 가장 직관적인 법이니까요. 그쪽, 오늘 큰일 하나 끝내고 허탈해서 온 사람 같아 보여서.”“…”“축하는 해줄게요. 비록 혼자 마시고 있었지만.”상대의 날카로운 통찰에 준휘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이 여자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준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사람을 꿰뚫어 보는 감각이 보통이 아니었다.준휘가 잔을 내려놓으며 여자의 옆모습을 눈에 담았다.“이름도 모르는 여자한테 축하받을 만큼 한가하진 않은데.”“그럼 이름부터 알면 되겠네.”여자가 준휘를 향해 완전히 몸을 돌리며 하얀 손을 내밀었다.“백도희예요. 그쪽은?”그녀의 당돌하면서도 오만한 눈빛이 준휘의 굳게 닫혀 있던 내면을 자극했다.준휘는 잠시 그녀의 손을 바라보다가, 이내 픽 웃으며 그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천준휘.”
사적인 정산.그 말이 뜻하는 바를 모를 리 없었다.강륜은 침대 헤드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르게 세웠다.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욱신거렸지만, 적들 앞에서 웅크리고 싶지는 않았다.강륜이 차가운 눈으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천지안이 묻히지 못하는 손때를 대신 묻히러 왔군.”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시우가 픽 웃었다.“말은 바로 해야지. 지안이가 시킨 게 아니라, 우리가 거슬려서 온 거야.”시우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담배 케이스를 툭툭 두드렸다.“법대로 재판받고 징역 몇 년 살다 나오면 끝일 줄 알았나 본데. 공권력이 널 보호해 주니까 안전해 보여?”“…”“천준휘 씨가 서류로 네 숨통을 끊어놓는 건 그 양반 방식이고. 우린 우리 방식이 있어서 말이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이가 강륜의 침대 앞으로 슥 다가섰다.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석이는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얼굴로 손을 뻗어 강륜의 환자복 깃을 꽉 움켜쥐었다.거칠게 몸이 끌려 올라갔지만, 강륜은 이를 악문 채 신음을 삼켰다.석이가 강륜을 내려다보며 낮게 읊조렸다.“별이한테 수면제 먹였다며.”“…”“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그 서늘한 물음을 끝으로 암막 커튼이 쳐진 병실의 불이 툭 꺼졌다.사방이 차단된 고요 속에서 몇 차례 둔탁한 소음이 위태롭게 흩어졌다.방음이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