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관계가 시작되기 전, 강소희의 옷을 벗기던 주원형은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흉흉하게 말을 뱉었다.
“너의 그 가벼운 입방정 때문에 오늘 아침 날아간 주가가 얼마인지 감이나 잡아?”
결국 또 돈.
강소희는 속으로 냉소했다.
이 바닥에서 구른 지 10년이 넘어가니, 어느새 자신은 배우가 아니라 그저 움직이는 매물에 불과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JW의 든든한 자금줄이었던 자신은 도국에게 서서히 밀려났고, 최근 이렇다 할 흥행작도 없으니 당연한 취급이었다.
주원형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몸을 탐하려 들자, 강소희는 천천히 단추를 풀며 감정 없는 밀랍 인형처럼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 대표님. 제가 인터뷰에서 누구라고 정확히 밝힌 것도 아니잖아요? 차준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여지가 있으니까 CH 주가는 건재한
그림자처럼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선우현이 내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신 비서님, 아직은 위험합니다. 창가에 그대로 앉아 계신 건 신경이 쓰이는군요.”효율적인 몸놀림과 기민한 눈빛으로 창밖의 동태부터 살핀 그가 가까이 다가섰다.“선우현 실장님이 계시는데 위험할 리가요.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죠.”나는 창문을 절반쯤 닫아 밖에서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각도를 조절했다.그는 CC그룹 비서실장이라는 탄탄한 자리를 던져버릴 각오로 내 앞에 섰다.원래 등잔 밑이 가장 어둡고, 촛불 바로 아래가 가장 짙은 그늘이 지는 법이다.김희주는 물론이고 친구들, 심지어 차진철이나 차준호조차 절대 눈치채지 못할 이곳이야말로 어쩌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 있었다.강소희 사건도, 김희주의 몰락도, 차진철의 공작이나 그 누구의 비열한 계략도 이 섬의 고요를 깨뜨리지는 못했다.나는 한라봉 껍질을 까서 알맹이 하나를 입에 넣었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새콤달콤한 과즙이 혀끝을 적셨다. 두 번째 조각은 한참 동안 입안에 머물게 하며 그 단맛을 천천히 음미했다.밤하늘마저 내게 느긋하게 굴었다. 별빛과 남풍을 비롯해 이 섬의 모든 풍경이 내게 서두르지 말라고 나지막이 말해주는 듯했다.“선우현 실장, 이따 갈 때 해물 수제비 한 뚝배기 퍼줄게. 어머니 가져다드려. 전복하고 새우 듬뿍 넣었으니까.”안쪽에서 들려오는 고미주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미주는 선우현 어머니의 소개로 차진철과 인연이 닿았고, 카페 바로 뒤편이 그의 집이라고 했다.서울에서 목포까지 밤길을 달려 데려다주고, 배에 오른 뒤에도 나를 얼마나 완벽히 숨겨주었는지 모른다.그의 주도면밀함 덕분에 신분증 검사 한 번 거치지 않는 루트로 무사
손끝으로 귤껍질을 벗겨내자, 얇은 표피가 갈라지며 과즙 섞인 주황빛 향수가 공간을 단숨에 채웠다.새콤하고도 달콤한, 지독할 만큼 싱그러운 감각.서울에서의 마지막 순간들은 무취의 공허함 속에 묻어두었다. 생존을 방해하는 과잉 감정들을 본능적으로 차단해 버린 것처럼.그곳에는 지금 난폭한 함박눈이 쏟아진다 했지만, 이곳 제주의 밤하늘은 말없이 따뜻한 별빛만을 내리쬐고 있었다.달걀로 바위 치기라 여겼던 김희주와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여자가 누려온 안락한 삶 한가운데,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치욕스러운 오염 자국 하나는 남기게 되었다.그런데 이번에 그 누군가는 아예 나를 납치하려고 범죄까지 저지르려 하다니.그러니 내가 이대로 숨죽여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당연하죠.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 인간들이니, 그 죗값은 뼈저리게 치르게 해야죠.”김희주든, 차진철이든. 제삼자든.나를 정치라는 판에 발조차 들이지 못하도록 신변에 치명적인 위해까지 서슴지 않던 치밀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자취를 감춘 지금, 여론이 들끓어 누군가는 목이 죄어오는 듯한 공포 속에서 밤잠을 설치고 있을 터였다.앞으로 펼쳐질 완벽한 시나리오를 떠올리자 서늘한 희열이 등골을 탔다. 유독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고, 입안에서 터지는 이 귤처럼 달콤하고 잔혹한 반격의 봄이 오고 있었다.“와, 신 비서 언니 진짜 강심장이네요. 경찰도 따돌리고, 친구들까지 싹 속이고. 우리 오빠도 지금 난리 났을 텐데.”나를 신기한 생물 보듯 바라보는 차진아의 옆에서, 고미주 역시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이런 깡다구가 있으니까 김희주를 수렁에 처넣고 회장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거 아냐? 게다가 우리 차 대표를 완벽하게 휘어잡
강소희는 지금, 제 생애 그 어느 순간보다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었다.단 한마디 얹지 않아도, 고함치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모든 카메라의 렌즈가 오직 자신만을 향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였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해 플래시 세례 앞에 섰다.불합리한 악을 심판하듯 당당하게 마이크를 쥔 주원형의 모습은 대중의 뇌리에 강렬한 기준점으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주원형은 지금 모든 것을 걸고 연인을 지켜내는 기사, 그 자체였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추락할 리 없었다. 다시 한번 완벽하게 날개를 달 수 있으리라는 확신 속에, 강소희는 차분하게 기자회견장을 지켰다.기자회견장의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던 바로 그 순간, 날카로운 질문 하나가 정적을 갈랐다.[언제부터 사귀는 사이였습니까?]“저는 강소희 씨와 처음부터 가까운 사이였고, 최근 1년 전부터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강소희 씨는 김희주 의원에게 무슨 약점을 잡히신 겁니까?]“약점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세종동 서쪽 출신이었다가 부유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던, 안타까운 어린 시절의 배경만 있을 뿐입니다.”어차피 김희주와 사생결단을 내야 하는 판이었다. 숨기기보다 먼저 들추어내는 편이 유리했다. 이미 국민적 여론은 김희주라는 거대 악을 향한 마녀사냥으로 치닫고 있었으니, 이제 와 그녀가 무슨 입을 놀린다 한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터였다.강소희는 그저 주원형만을 의지하듯, 눈물 맺힌 눈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스피커를 타고 쏘아지는 기자들의 고성 속에서, 한 기자의 질문이 모두의 귓전에 박혔다.[1월 1일, 차준호 대표와 함께 있었던 일에 대해선 왜 함구하십니까?]화면이 강소희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클로즈업했다
차준호는 털썩 소파 위로 무너지듯 앉았다. 머릿속이 거센 폭풍을 맞은 듯 아득해졌다.자수라니. 불과 어제 대표실을 나설 때만 해도 강소희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던 녀석이었다.대체 최기범이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 설마 신하늘의 실종에 녀석이 직접 관여하기라도 했다는 뜻인가.“······허 실장, 자세히 말해 봐.”차준호가 겨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자, 허기찬은 데스크 위에 봉투 하나와 정갈하게 적힌 메모를 정돈해 올려놓으며 급히 설명을 이어갔다.“사직서를 놓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메모도 함께 남겨두셨고요. 아직 언론에 기사가 뜨거나 경찰 측에서 공식 수사 상황을 브리핑한 단계는 아닙니다.”사직서 봉투 위에 포스트잇으로 붙여진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준호야, 그동안 고민 많이 했다. 나 자수하러 간다. 나중에 통화하자.]어제 대표실을 나가면서 허기찬의 책상 위에 두고 간 듯했다.차준호는 가쁜 숨을 누르며 요동치는 심장을 겨우 가라앉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휴대전화를 들어 최기범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통화가 연결되었다.“······너 뭐야. 어제 나랑 대화할 땐 이런 말 없었잖아.”차준호의 날 선 추궁에 수화기 너머로 최기범의 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너랑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확실히 결심을 못 했지. 하지만 대표실 문을 나서면서 마음을 굳혔다.차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당황스러움이 차올랐지만, 결국 가슴속에 뭉쳐 있던 의구심을 터뜨렸다.
차준호는 너무 놀라 당황한 기색을 미처 숨기지 못했다.불과 며칠 사이에 최기범의 얼굴은 마른 장작처럼 축나 있었다. 광대뼈 아래로 지나치게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수면을 완전히 잊은 자의 얼굴 그 자체였다.차준호는 말없이 냉장고를 열어 맥주 두 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캔 표면에 맺힌 차가운 이슬이 손바닥을 적셨다.“잘됐네. 찾아가려고 했는데.”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은 최기범의 목소리가 정적을 긁어냈다. 팔짱을 낀 두 팔이 보이지 않는 벽을 단단히 쌓아 올리고 있었다.“심란해. 신하늘 때문에. 한잔해.”“하긴, 술이라도 마셔야 살겠지. 난 됐다. 운전해야 해.”최기범의 건조한 말이 낮게 떨어졌다. 녀석이 방어막을 한 꺼풀 벗겨내자, 차준호 역시 돌려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내 아버지가 이상해. 선우현은 증발했고, 지금은 너마저도 지독하게 의심스러워.”최근 제 마음을 짓눌러온 불신과 울분이 오랜 벗을 향한 화살이 되어 쏟아졌다. 그러자 최기범이 실소를 흘렸다. 비릿하고 씁쓸한 웃음이었다.“난 우리 엄마 아들이고, 그 피를 고스란히 이어받았지. 근데 차준호, 넌 다른 줄 알아? 차진철 회장님이 얼마나 지독한 냉혈한인지. 그 핏줄 어디 안 가잖아.”차준호의 명치끝이 지독하게 달아올랐다. 정교하게 벼려진 말이었다. 역린을 찌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격분이 이성의 둑을 밀어붙이고 있었고, 그 단단했던 둑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그럼 내가 어떤 놈인지 잘 알겠네. 신하늘에게 티끌만큼이라도 위해를 가한 자는 절대로 가만히 안 둬. 미칠 것 같아. 그래서······.&
사고가 아니라, 명백한 범죄였다.게다가 수사기관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결정적 증거’라는 표현을 끌어썼다면, 그건 혐의를 입증할 완벽한 확증이라는 뜻이었다.도국과 이아준은 그 시절 ‘하늘 보육원’을 덮쳤던 참상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처참한 화염 이후, 신하늘의 삶이 얼마나 지옥 같은 진창 속으로 내던져졌는지 누구보다 아프게 알고 있었다.김희주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소름 끼치는 범죄자였다. 그러니 주원형의 한방은 꽤 강력한 무기가 된 셈이었다.옆에 서 있던 이아준 역시 온몸을 미세하게 떨며 도국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김희주, 그 여자는 악마야. 그냥 둬서는 안 돼.도국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신하늘이 지금 어떤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얽히고설킨 타래를 풀 열쇠가 김희주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해졌다.“하늘이와 연관된 것이라면 그 어떤 정보라도 주십시오. 저도 JW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지금은 주원형이라도 김희주를 들쑤셔 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 나도 모든 걸 걸었으니까. 관련 정보는 파일 보내줄게.주원형이 얼마나 악독한 인간인데. 강소희를 위해 감히 국회의원과 맞서려 하다니. 사랑이라는 감정이 냉혈한마저 얼마나 무모하게 만드는지 도국은 새삼 놀라게 되었다.전화를 끊은 뒤에도 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충격이 여운처럼 남아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도국은 차오르는 한숨을 겨우 눌러 담으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그때, 이아준이 도국의 어깨를 두드리며 잠시 입을 달싹였다.“국아, 하늘이는 너와 나를 걱정시킬 위인이 아니야. 분명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기자를 상대하는 동안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지고, 브리핑하거나 질문에 응답하는 순간에도 능숙 능란해져 있었다.차분한 척, 완벽한 듯, 긴장감이 첫날보다는 옅어졌다. 사람은 역시 학습의 동물이라고 무슨 아나운서가 된 양 나는 그리 기자들을 상대했다. -차준호 대표님이 대화가 가능하다던데. 확실히 강소희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확인하셨습니까? 답변 부탁드립니다!“차준호 대표님께서는 일체 사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사 측에서도 이번 사건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언제 CH에서는 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