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객실 문이 열리자마자 서아의 귀를 때린 건 지은의 목소리였다.
“한서아! 왜 이렇게 늦었어!” “네가 호텔 지하 편의점까지 갔다 오라며.” “숙취해소제 샀어?” 서아가 말없이 종이 쇼핑백을 내밀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지은이 양팔을 벌렸다. “역시 내 사랑.” “사랑하면 직접 갔다 와.” “내일 결혼하는 신부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오늘 하루 종일 그 말 몇 번째인지 알아?” “내일까지만 써먹을 수 있잖아.” 서아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 사이, 뒤에서 태준이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지은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오빠는 왜 서아랑 같이 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어.” “거짓말.” “왜?” “오빠가 서아 따라왔지?” 서아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아니야. 그냥 로비에서 만났어.” “봐. 서아가 내 편 들어주잖아.” 태준이 자연스럽게 서아의 어깨 너머로 말했다. “오빠 편 아니거든요.” “아까보다 말투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서아가 홱 돌아봤다. “뭐가요?” “이제 나랑 좀 친해졌나 싶어서.” “전혀요.” 그 말을 들은 지은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뭐야.” “뭐가?” “둘이 나 없는 데서 뭐 했어?” “아무것도 안 했거든?” 서아가 너무 빠르게 대답했다. 순간 객실 안에 있던 친구들의 시선까지 그녀에게 몰렸다. 서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부정했지. 옆에서 태준이 낮게 웃었다. “아직은.” 서아가 태준을 노려봤다. “아직은 뭐요?” “아직은 아무것도 안 했다고.” “그냥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면 되잖아요.” “똑같은 말인데?” “안 똑같거든요?” 태준은 대답 대신 웃으며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지은이 서아의 팔을 잡아당겼다. “야.” “왜.” “우리 오빠 왜 저래?”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원래 재수 없는 건 맞는데.” “…….” “너한테는 더 재수 없어.” 서아는 지은을 빤히 바라봤다. “그걸 이제 왜 이제 말해?” “아니, 옛날부터 긴가민가 했어.” “근데 왜 안 말했어?” “재미 있으니까.” “너희 남매 진짜 똑같다.” “고마워.” “칭찬 아니거든.” 지은이 키득거리며 서아를 테이블 쪽으로 끌고 갔다. 객실 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는 배달 음식과 케이크, 와인, 맥주가 가득했다. 결혼 전날이라고 해도 거창한 파티는 아니었다. 대학 때부터 친했던 친구 몇 명과 지은의 가족들이 잠깐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서아는 아까부터 자꾸 한쪽이 신경 쓰였다. 정확히는 소파 끝에 앉아 있는 강태준이. 사람들과 별 대화도 하지 않으면서 어쩌다 한 번 웃고, 휴대폰을 만지다가 고개를 들고.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눈이 마주쳤다. 첫 번째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도. 세 번째쯤 되자 서아는 슬슬 의심스러워졌다. 왜 자꾸 이쪽을 보는 거야? 결국 네 번째로 눈이 마주쳤을 때 서아가 먼저 인상을 썼다. 태준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왜? 서아는 시선을 피했다.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런데 입꼬리가 자꾸 씰룩거렸다. 진짜 이상한 사람. “서아야.” “응?” “잔.” 지은이 와인 잔을 내밀었다. 서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나 오늘 안 마셔.” “왜?” “그냥.” “네가 술을?” “내가 무슨 알코올 중독자야?” “아니, 그래도 이런 날 한 잔 정도는 하잖아.” “오늘은 안 당겨.” “한 잔만.” “싫어.” 서아가 잔을 밀어내는 순간, 저 멀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마시지 말라니까 진짜 안 마시네.” 서아의 손이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태준이 소파 등받이에 기대앉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지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뭐가.” “오빠가 왜 서아한테 술 마시지 말라고 했어?” 아. 서아는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저 인간 입을 어떻게 막지. 태준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취하면 귀찮잖아.” “서아 술버릇 본 적 있어?” 지은의 질문에 태준이 잠깐 멈췄다. “없는데.” “근데 뭘 귀찮아?” “얘 원래도 귀찮아.” “강태준 씨.” 서아가 낮게 불렀다. 태준은 웃었다. “왜.” “저 오늘 처음으로 오빠 때려도 돼?” 지은이 곧바로 대답했다. “돼. 내가 허락할게.” “야.” 이번에는 태준이 지은을 쳐다봤다. 객실 안에서 웃음이 터졌다. 서아도 결국 웃었다. 이상했다. 분명 강태준은 불편한 사람이었다. 잘생긴 것도 부담스럽고, 자기보다 한참 여유로운 것도 싫었다. 무슨 말을 해도 결국 자기가 말리는 것도 억울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덜 어려웠다. 아니. 조금 재미 있었다. 그게 더 문제였다. “자, 다들 잔 들어!” 지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일 나 결혼한다!” 누군가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벌써 울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서아도 웃으면서 탄산수 잔을 들었다. “강지은 유부녀 되는 거 축하합니다.” “왜 그렇게 말하니까 망한 것 같지?” “기분 탓이야.” “한서아 너 내일 울기만 해.” “절대 안 울어.” “너 백퍼 울어.” “너나 울지 마. 화장 다 번져.” “난 방수야.” “사람이?” “메이크업이!” 웃음이 다시 터졌다. 한동안 분위기는 시끌벅적했다. 술이 몇 병 비고, 케이크가 반쯤 사라졌을 즈음 친구들이 하나둘 객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결혼식 준비 때문에 지은도 일찍 쉬어야 했다. “서아야, 너 오늘 여기서 자지?” “응. 네 방 옆 객실.” “카드키 있지?” 서아가 가방을 뒤졌다. “잠깐.” 없었다. 작은 파우치. 지갑. 립밤. 이어폰. 휴대폰 충전기. 그런데 카드키만 보이지 않았다. “뭐야.” 지은이 물었다. “카드키가 없어.” “잃어 버렸어?” “아니. 아까 분명 받았는데.” 서아가 가방 안을 다시 뒤집었다. 없었다. 지은도 함께 찾다가 말했다. “프런트 내려가서 다시 받으면 되지.” “그러면 되긴 하는데.” “신분증 있지?” “응.” “그럼 됐네.” 그때 지은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확인한 지은이 한숨을 쉬었다. “아, 엄마.” “받아.” “또 뭐 빠뜨렸다고 할 것 같은데.” 예상은 정확했다. 전화를 받은 지은은 몇 초 만에 표정이 굳었다. “뭐? 지금?” 서아가 웃음을 참았다. “왜.” 지은이 전화를 끊으며 머리를 감쌌다. “부케 장식 확인해야 한대. 밑에 내려오래.” “가.” “같이 가줘.” “싫어.” “한서아.” “네 신랑 데려가.” “신랑 지금 부모님 모셔다 드리러 갔어.” “오빠 있잖아.” 순간 둘의 시선이 동시에 소파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태준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기고 있었다. “난 간다.” “어딜 가!” 지은이 소리쳤다. 태준이 문 앞에서 돌아봤다. “집.” “안 돼. 엄마가 부케—” “내가 결혼해?” “오빠!” “내일 보자.” 태준은 미련 없이 문을 열었다. 지은이 이를 갈았다. “진짜 저 인간은.” 서아가 피식 웃었다. “남의 오빠라서 웃기지?” “조금.” “가져가.” “필요 없어.” 문밖으로 나가려던 태준이 멈췄다. “다 들리거든.” 서아와 지은이 동시에 웃었다. 결국 지은은 투덜거리며 객실을 나갔고, 서아도 프런트에 내려가기 위해 가방을 챙겼다. 복도로 나오자 이미 엘리베이터 앞에 태준이 서 있었다. 서아가 걸음을 멈췄다. “안 갔어요?” 태준이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 “가려고.” “그런데 왜 아직 여기 있어요?” “엘리베이터 기다리잖아.” “아.” 당연한 말인데 괜히 민망했다. 서아가 그의 옆에 섰다. 잠시 조용해졌다. 아까까지 사람이 많던 객실 안과 달리 복도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서아는 괜히 휴대폰 화면을 켰다 껐다 했다. “뭐 잃어버렸어?” 태준이 물었다. “카드키요.” “또?” “또라니요.” “너 원래 물건 잘 잃어버리잖아.” 서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태준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 “지은이한테 들었지.” “지은이가 그런 얘기도 해요?” “가끔.”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둘이 함께 올라탔다. 서아가 1층 버튼을 눌렀다. 태준은 지하 주차장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혔다. “근데 진짜 술 안 마셨네.” “누가 마시지 말래서 안 마신 거 아니거든요.”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까 했잖아요.” “기억하고 있었어?” 서아가 입을 다물었다. 아. 또 걸렸다. 태준이 고개를 돌렸다. 웃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요?” “귀여워서.” “……뭐가요?” “내가 한 말은 잘 기억하네.” “누가 기억을—”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덜컹했다. 서아의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어?”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붙잡았다. 태준의 옷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허리를 감싸는 손길이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는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둘은 그대로였다. 서아는 태준의 재킷을 꽉 붙든 채 그의 가슴에 거의 기대어 있었고, 태준의 한 손은 그녀의 허리를 받치고 있었다. 너무 가까웠다. 아까 장난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태준의 향이 느껴졌다. 샴푸 냄새인지 향수인지 모를 은은한 향. 서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눈이 마주쳤다.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웃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태준의 표정이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놔 주세요.” 서아가 말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았다. 태준의 눈이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네가 먼저 잡았는데.” “이건 넘어질 뻔해서 그런 거고요.” “알아.” “그러니까 놔 달라고요.” “놓으면 또 넘어질까 봐.” “이제 안 넘어져요.” “확실해?” “네.” 그제야 태준이 손을 풀었다. 서아는 빠르게 한 걸음 떨어졌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이건 그냥 놀라서 그런 거다. 엘리베이터가 덜컹해서. 갑자기 넘어질 뻔해서. 딱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옆에서 태준이 말했다. “근데.” “왜요.” “너 생각보다 겁 많네.” 서아가 눈을 부릅떴다. “누가 겁이 많아요?” “방금 나 꽉 잡던데.” “넘어지기 싫어서 잡은 거거든요?” “응.” “진짜예요.” “알겠어.” 전혀 안 믿는 얼굴이었다. “웃지 마요.” “안 웃는데.” “지금 웃고 있잖아요.” “기분 좋아서.” “뭐가요?” 태준이 대답하려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1층이었다. 서아는 기다렸다는 듯 먼저 내렸다. “나 먼저 갈게요.” “프런트?” “네.” “같이 가.” “오빠는 주차장 간다면서요.” “급한 거 없어.” “저 혼자 갈 수 있는데.” “알아.” “그럼 왜요?” 태준이 그녀 옆으로 걸어왔다. “같이 가고 싶으니까.” 서아는 그를 올려다봤다. 왜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 사람은 혼자 이상하게 만들어놓고. 태준은 여전히 태연했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또 도망가게?” “안 도망가거든요.” “그럼 천천히 가.” “제가 언제 빨리 갔다고.” “지금.” 서아는 자신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짜증 나. 이 사람 옆에만 있으면 계속 들킨다. 그것도 자기가 숨기고 싶은 것들만. 두 사람은 나란히 프런트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아는 몰랐다. 잃어버린 카드키 하나 때문에 시작된 일이, 오늘 밤 강태준과 단둘이 남게 되는 가장 완벽한 핑계가 될 줄은.지은의 결혼식이 시작되고 나서야 서아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적어도 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태준도 자기 옆에 붙어 있을 수 없을 테니까.그렇게 생각했다.딱 십 분 동안.“여기 자리 비었네.”익숙한 목소리에 서아가 고개를 들었다.태준이 너무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왜 여기 앉아요?”“자리가 비어 있으니까.”“가족석 따로 있잖아요.”“사진 찍고 왔어.”“그럼 다른 데 앉으세요.”“싫어.”서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오빠 때문에 지은이가 이상하게 보잖아요.”“뭘.”“우리요.”태준이 고개를 돌렸다.“우리?”또 저 말투.서아가 바로 정정했다.“저랑 오빠요.”“그게 우리지.”“아, 진짜.”태준이 웃었다.“목소리 낮춰. 결혼식이야.”“누구 때문에 이러는데요.”“나?”“네.”태준은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난 얌전히 앉아 있는데.”말은 맞았다.문제는 그 얌전히 앉아 있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팔이 조금만 움직여도 닿았다.서아가 슬쩍 의자를 옆으로 밀었다.태준도 따라 밀었다.서아가 다시 움직였다.태준도 다시.세 번째쯤 되자 서아가 이를 악물었다.“왜 따라와요?”“자리 좁아.”“아까는 안 좁았거든요.”“지금 좁아졌어.”“누가 좁게 만들었는데요.”태준은 대답 대신 웃었다.서아는 그냥 포기하고 앞을 봤다.그때 신랑과 지은이 서로 반지를 끼워주는 순간이 왔다.주변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서아도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예쁘네.”옆에서 태준이 말했다.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요.”“너 말이야.”서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태준은 앞만 보고 있었다.“……뭐라고요?”“식 예쁘다고.”“방금 저라고 했잖아요.”“잘못 들었겠지.”입꼬리는 이미 웃고 있었다.서아가 그의 팔을 꼬집었다.“아.”“조용히 하세요. 결혼식이잖아요.”태준이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숙였다.정말 초등학생도 이것보다는 덜 유치할 것 같았다.식이 끝나자마자 단체 사진 촬영이 시작됐다.“신
“안 같이 왔어.”“같이 왔는데.”두 사람의 대답이 동시에 튀어나왔다.서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태준은 아주 평온한 얼굴이었다.오히려 눈까지 마주치며 웃고 있었다.미쳤나.지은이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뭐야?”“뭐가.”태준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서아가 급하게 끼어들었다.“복도에서 만난 거야.”“아까는 안 같이 왔다며.”“그러니까… 같이 온 건 아니고, 오는 길에 만났다고.”“그게 같이 온 거 아냐?”“강지은.”“왜.”“오늘 결혼이나 신경 써.”지은이 눈을 가늘게 떴다.“수상한데.”서아의 심장이 철렁했다.반대로 태준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뭐가 수상해.”“둘이.”“우리?”태준이 굳이 ‘우리’라는 단어를 강조했다.서아가 바로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쳤다.“아.”“조용히 좀 하세요.”작게 말했는데 지은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뭐야. 방금 둘이 뭐 했어?”“아무것도!”이번에도 서아의 대답이 너무 빨랐다.태준이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참았다.서아가 이를 악물었다.지금 상황이 혼자 재미있지?“됐고.”지은이 손을 내저었다.“서아야, 나 귀걸이 좀 봐줘.”“응.”서아는 거의 도망치듯 지은 쪽으로 갔다.이제 살았다.그렇게 생각한 지 정확히 삼 분 뒤.“서아야.”등 뒤에서 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서아는 못 들은 척했다.“한서아.”계속 무시했다.“서아 씨.”결국 서아가 홱 돌아봤다.“왜요.”태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이제 보네.”“바쁘거든요.”“커피.”그의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서아가 멈칫했다.“제 거예요?”“응.”“왜요?”“왜긴. 아까부터 정신없어 보이니까.”“저 커피 안 마셔도 돼요.”“그럼 내가 먹지 뭐.”태준이 바로 빨대를 입에 가져갔다.서아가 반사적으로 컵을 빼앗았다.“제 거라면서요.”태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안 마신다며.”“갑자기 마시고 싶어졌어요.”“그래.”“왜 웃어요?”“그냥.”서아는 괜히 컵을 세게 쥐었다.
서아는 천장을 보며 한참을 누워 있었다.지은이 얼굴을 어떻게 볼지, 이 일을 어떻게 넘길지.결론은 하나였다.없던 일로 하면 된다.어젯밤은 분위기에 휩쓸린 사고였고, 아침이 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된다.서아는 최대한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옆에서 태준이 자고 있었다.평소처럼 입만 열면 사람 약 올리던 얼굴이 잠들어 있으니 의외로 얌전했다.서아는 잠깐 그 얼굴을 보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뭘 보고 있어.’급하게 시선을 거두고 바닥에 떨어진 옷을 챙겼다.지금 나가면 된다.씻고, 옷 갈아입고, 지은에게 가면 끝.서아가 침대에서 발을 내리는 순간이었다.“어디 가.”뒤에서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서아의 등이 굳었다.“……깨셨어요?”“응. 누가 도망가려고 해서.”태준은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웃고 있었다.서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옷을 정리했다.“도망가는 거 아니거든요. 제 방 가는 거예요.”“카드키도 없으면서?”“지은이한테 받을 거예요.”“나 두고?”“왜 제가 오빠를 데리고 가요?”태준이 몸을 일으켰다.“어제는 잘 데리고 있더니.”“오빠.”“응.”“아침부터 진짜 그러지 마세요.”태준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뭘 했다고.”서아는 대답 대신 가방을 집었다.“그리고 어제 일은 그냥 잊어주세요.”태준의 표정이 아주 잠깐 멈췄다.“왜.”“그냥요.”“그냥은 이유가 아닌데.”“저한텐 이유예요.”“난 싫은데.”너무 태연한 대답이었다.서아가 고개를 돌렸다.“뭐가 싫어요?”“잊는 거.”“오빠.”“응.”“어제 일 때문에 갑자기 이상하게 굴지 마세요.”태준이 침대에서 내려왔다.서아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그걸 본 태준이 피식 웃었다.“이상하게 구는 건 지금 너 같은데.”“제가 뭐가요.”“눈도 안 마주치고, 슬금슬금 도망가고.”“원래도 오빠 피했거든요.”“그러네.”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평소랑 똑같네.”“그러니까 그대로 하자고요.”“좋아.”너무 쉽게 받아들여서 서아가
“……네.”서아가 겨우 대답했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태준이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빼내며 속옷을 아래로 내렸다. 서아는 다리에 힘을 줬다가 이내 다시 힘을 풀었다. 태준이 자신의 바지와 속옷까지 벗고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뜨거운 것이 허벅지 안쪽에 닿자 서아는 숨을 들이켰다.“읏…….”태준이 천천히 밀어 넣었다. 서아는 그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며 소리를 참지 못했다.“하아…… 으응.”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서아는 눈을 질끈 감고 숨을 고르려 했다. 태준이 잠깐 멈춰 그녀의 호흡을 기다렸다.“괜찮아?”“…… 처음이라 아파요.“”너 처음이라고?”“네...”“그걸 왜 이제 말해.”“말하면 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서요.”원래라면 분위기를 깼어야 하는 게 맞고, 태준의 방에서 나왔어야 하는 게 맞다. 근데 처음 겪어 보는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태준이 본인을 좋아하고 있다란 말에 머리가 고장난 건지, 태준을 밀어내긴 커녕 더 이어나가고 싶었다.서아의 대답에 태준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처음이니까 아픈 건 아프다 말해야 돼.“아까와는 다르게 단호한 어투로 이야기하는 태준에 서아는 흠칫 놀랐지만, 놀랄 겨를도 없이 태준이 천천히 다시 움직였다.천천히, 깊게. 서아의 허리가 들썩였다. 숨이 가빠지며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하…… 오빠…… 하아.”태준이 그녀의 목을 물며 속도를 조금 올렸다. 서아는 다리를 더 벌리고 허리를 맞췄다. 태준의 손이 가슴을 감싸 쥐고 유두를 문질렀다. 서아는 그의 등을 긁듯 잡으며 소리를 냈다.“하앙…… 으응, 하.”태준이 낮게 웃었다.“괜찮아?”“으응, 읏! 괜찮, 아요... 하아.”서아는 얼굴을 그의 어깨에 묻으려 했지만 태준이 더 깊게 들어갈 때마다 몸이 들썩여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서아는 그저 그의 움직임과 현재 기분에 충실할 뿐이었다. 내일 일은 머릿속에서 점점 멀어졌다.
등이 침대에 닿자 서아는 태준의 어깨를 밀어냈다.“잠깐만요.”태준이 바로 상체를 들었다.“왜.”“……숨이 안 쉬어져요.”“안 무거워.”“무거운데요.”태준이 팔꿈치로 몸을 받치면서도 얼굴을 완전히 떼지는 않았다. 서아는 시선을 피하려다 실패했다.“왜 그렇게 봐요.”“그냥.”“보지 마세요.”“싫어.”태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입을 맞췄다. 서아는 숨을 참았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손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의 어깨를 잡았다. 태준이 그 손을 내려다 봤다.“잡고 있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어서요.”“편하게 잡고 있어.”태준의 어깨를 잡고 있다는 것이 의식이 되어서 그런지 서아가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살살 잡아도 돼.”“아... 죄송해요.”“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고. 긴장하고 있는 것 같길래.”서아가 머쓱해하며 손에 힘을 살짝 풀자 태준이 낮게 웃으며 다시 입을 맞췄다. 키스가 길어지자 태준의 손이 그녀의 허리로 내려갔다. 블라우스 위를 천천히 쓸었다. 손가락이 옷단을 살짝 들어 올리자 서아의 몸이 굳었다.“여기.”“…….”“안 돼?”서아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완전히 떼지는 않았고, 그냥 붙잡았다. 태준이 손을 멈췄다.“싫어?”“……아니요.”“그럼.”서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태준이 다시 옷단을 들어 올렸다. 피부가 닿았다. 서아는 숨을 들이쉬며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태준이 입을 떼며 물었다.“계속 해도 돼?”“……물어보지 마요.”“물어봐야 알지.”서아가 눈을 피했다.태준이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단추가 풀릴 때마다 서아는 시선을 천장으로 돌렸다. 태준이 웃었다.“왜 눈을 피해.”“피한 거 아니에요.”“피했잖아.”“시끄러워요.”태준이 그녀의 쇄골에 입을 내렸다. 서아의 손이 그의 티셔츠 자락을 잡았다. 위로 잡아당기자 태준이 순순히 팔을 들어 올렸다. 티셔츠가 벗겨져 침대 옆으로 떨어졌다. 피부가 맞닿자 서아는 어깨를 움츠렸다.그 모습에 태준이 바로
“나 지금 장난 아닌데.”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태준이 너무 가까웠다.평소 같았으면 밀어냈을 것이다.한마디 쏘아붙이고 소파로 돌아가라고 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몸이 굳었다.강태준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했다는 사실도,친구의 오빠라는 것도,지금 이 순간엔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서아야.”“……왜요.”“싫으면 말해.”태준은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기다렸다.서아는 그게 더 곤란했다.싫냐고 묻는다면—싫지는 않았다.그렇다고 좋다고 대답하기도 싫었다.“모르겠어요.”“그럼 안 할게.”태준이 물러나려 했다.그 순간 서아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재킷 자락을 잡았다.둘 다 동시에 멈췄다.서아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왜 잡았지.태준이 낮게 물었다.“이건 가지 말라는 뜻?”“……아무 말 하지 마요.”“알았어.”태준은 웃지 않았다.그래서 더 긴장됐다.그가 다시 천천히 가까워졌다.입술이 닿았다.짧게.그리고 떨어졌다.서아가 숨을 들이마시는 사이 다시 입술이 겹쳤다.이번에는 조금 길었다.서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그래서 그냥 태준의 옷을 잡고 있었다.손끝에 힘만 들어갔다.태준의 손이 허리에 닿자 서아의 몸이 움찔했다.그가 바로 멈췄다.“괜찮아?”“……자꾸 묻지 마요.”“안 물으면 화낼 것 같은데.”“그것도 맞는데.”태준이 낮게 웃었다.“어렵네.”“누가 하래요.”“그럼 그만할까?”태준이 정말로 손을 떼려 했다.서아는 또 그의 옷을 붙잡았다.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태준의 눈빛이 달라졌다.“서아야.”“왜요.”“너 지금 나 되게 헷갈리게 하는 거 알아?”“저도 헷갈리니까 그렇죠.”솔직한 말이 튀어나왔다.말하고 나서야 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태준이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그리고 다시 입을 맞췄다.이번에는 서아가 생각할 틈이 없었다.허리를 감싸는 팔.가까워지는 체온.귓가를 스치는 숨.그 모든 게 너무 낯설었다.서아는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