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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아의 얼굴은 분노로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잠시 동안은 사람이 아니라 맹수처럼 보일 정도였다. "네가 정말 이 방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격앙되어 있었고, 눈동자에는 당장이라도 맨손으로 나를 찢어 버릴 듯한 살기가 번뜩였다. 5년 만에 처음이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가슴속에서 분노가 활활 타오르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아이패드를 세게 눌러 글자를 입력했다. 이번에는 손끝이 망설이지 않았다. 마치 공격이라도 하듯 빠르게 문장이 완성됐다. '내가 알기로는 아직도 법적으로 그의 아내는 나야.' '넌 그저 뻔뻔한 정부일 뿐이고.'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캐시아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졌다. 속으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역시 진실은 가장 아픈 법이었다. "이게 어디서 감히!" 그녀가 소리치며 손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아마 내가 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먼저 붙잡았다. 짝!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몸싸움이 벌어졌다. 캐시아는 놀란 표정으로 손을 빼내려 애썼다. "이 미친년! 당장 놔!" 나는 오히려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우습게도. 5년 전의 나라면 이미 뒤로 물러나 조용히 사과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울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마도...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끝이 정해진 사람은 더 이상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기서 무슨 일이야?" 빈센트의 차가운 목소리가 긴장을 단숨에 갈라놓았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곧바로 캐시아의 손을 놓았다. 그런데 내가 채 한 발짝도 물러서기 전에. "꺄악!" 캐시아가 갑자기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녀는 배를 감싸 쥔 채, 마치 끔찍한 폭행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신음하고 있었다. …와. 정말 연기상이라도 받아야 할 수준이었다. "캐시아!" 빈센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그녀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괜찮아?" 그녀는 힘없이 그의 품에 몸을 기댔다. "아니…." 괴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니엘이 날 너무 세게 밀었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악할 수 있어?"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저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솔직히 배우를 했어도 대성했을 여자였다. 빈센트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일으켜 세운 뒤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우리의 눈이 마주친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가 소리쳤다. 분노에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내 아이까지 잃게 만들 셈이었어?"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아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눈이 저절로 커졌다.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됐다. 캐시아가… 임신했다고? 그 사실은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잔인하게 나를 후벼 팠다. 그동안. 그 모든 시간 동안. 빈센트는 내가 그의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 왔다. 우리가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그는 마지막 순간이면 반드시 몸을 빼냈다. 내가 아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혐오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캐시아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이미 그의 아이를 품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정말 누군가 맨손으로 내 심장을 움켜쥐고 짓이기고 있는 것 같았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넌 정말 뻔뻔해졌군." 빈센트가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캐시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저 여자가 내가 이 방으로 들어오면 안 된대!" "뭐?" 빈센트가 즉시 나를 돌아봤다. "정말 그랬어?" 그는 차갑게 물었다. "도대체 네게 무슨 권리가 있다고 그런 말을 하지?" 그 말은 너무도 쉽게 내 가슴을 갈라놓았다. 쓴웃음이 나왔다. 5년 동안 그의 아내였는데. 나는 여전히 아무 권리도 없었다. 심지어 수년 동안 그와 함께 잠들었던 침실조차. 손이 심하게 떨렸지만, 나는 아이패드를 들어 천천히 글자를 입력했다. '난 당신의 아내야.' '그러니 이 방은 내 권리야.' '난 절대 나가지 않을 거야.' '당신은 한 달 동안 함께 지내겠다고 약속했어.' '약속을 어기면 나도 그대로 행동할 거야.' 빈센트는 끝까지 읽더니 싸늘하게 웃었다. "참 대단하네." 그가 차갑게 말했다. "조용한 사람이 더 무섭다더니." "이제야 네 본색을 드러내는군." 그 말은 생각보다 훨씬 깊게 박혔다. 본색. 마치 지난 5년 동안 그를 견디며 살아온 것만으로는 부족했다는 듯.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빈센트는 부드럽게 캐시아의 손을 잡았다. "이 방은 그녀에게 주자."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놀라 눈을 깜빡였다. 캐시아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뭐라고?" 그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왜 우리가 나가야 해?" "쟤가 나가야지!" 빈센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안 돼." "한 달만 참자." 참자. 마치 내 곁에 있는 것이 끔찍한 형벌이라도 되는 것처럼. 캐시아는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 그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나는 이미 무덤에 들어갔을 것이다. "좋아." 그녀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리고 빈센트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나갔다. 하지만. 그는 끝내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나는 천천히 침대 옆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거운 침묵이 나를 감쌌다. 그는... 나와 같은 방에 있는 것보다 자신의 침실을 포기하는 편을 선택했다. 허탈한 웃음조차 소리 없이 새어 나왔다.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이라도 맞으면 조금은 괜찮아질 것 같았다. 거의 30분 동안 샤워기 아래 서 있었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특히 그날 밤. 두 사람은 아예 조용히 할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 복도 너머로 캐시아의 나지막한 신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곧이어 빈센트의 낮고 거친 목소리도. 숨이 다시 막혀 왔다. 나는 급히 베개를 귀에 눌러 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눈물이 조용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5년을 그의 곁에서 살았는데도.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렇게까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결국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후드티를 집어 들고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뛰쳐나왔다.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세게 스쳤다. 눈물 때문에 번져 보이는 도시의 불빛 사이를 목적도 없이 걸었다. 두 손은 주머니 깊숙이 넣은 채. 술이나 한잔할까. 딱 한 번쯤은 취해도 괜찮지 않을까. 멍한 정신으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강한 손이 나를 붙잡았다. 거친 손바닥이 순식간에 내 입을 틀어막았다. 공포가 온몸을 덮쳤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상대는 훨씬 강했다. 다른 팔이 허리를 감아 그대로 뒤로 끌어당겼다. 있는 힘껏 몸부림쳤다.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발버둥칠수록 그의 팔은 더 세게 조여 왔다. 시야가 흐려졌다.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져 흔들렸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겁에 질린 내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짙은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빈센트“당신 아들은 이제 위험한 고비를 넘겼습니다.”의사의 말이 고요한 병원 복도에 울려 퍼졌다.“조금 더 안정을 취해야 하지만, 상태는 안정적입니다.”악몽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다시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것 같았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압박감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속으로 신에게 감사했다.대런은 무사했다.의사는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고, 나와 니엘은 병실 밖에 그대로 서 있었다.하룻밤 사이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나는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다. 니엘은 지쳐 보였다. 울어서 눈은 부어 있었고,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으며, 불길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옷소매에는 희미한 화상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그럼에도 그녀는 내가 본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살아 있었으니까.그때 불타는 집 앞에서 그녀가 고백했던 말이 다시 머릿속을 스쳤다.대런이…… 내 아들이었다.아직도 믿기지 않았다.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작게 웃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그러니까…… 지금까지…….”목소리가 떨렸다.“정말 내 아들이었던 거야?”니엘은 내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숙였다.“미안해.”그 짧은 두 마디에는 수년간 쌓여온 죄책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정말 여러 번 말하고 싶었어.”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하지만 모든 일이 벌어지고…… 우리가 그렇게 끝나고 나서…… 이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어. 당신에게서 대런을 떼어놓으면, 당신이 나한테 준 상처를 당신도 똑같이 느끼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그녀의 뺨을 따라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하지만 매일…… 후회했어.”나는 몇 초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그녀의 두 손을 조심스럽게 내 손 안에 감쌌다.니엘이 놀란 듯 나를 올려다봤다.“괜찮아.”나는 눈시울이 따끔거리는 걸 느끼면서도 미소 지으며 그녀의 얼굴에 내려온 머리카락 한 가닥을 쓸어 넘겼다.“내가 받아야 할 벌이
니엘집에 돌아온 뒤에도 뉴스에 나온 카시아의 얼굴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빈센트가 저녁을 차려주고, 유치한 농담을 늘어놓고, 심지어 “아무 생각도 안 나게 해줄 거야”라며 자신이 고른 영화를 틀어줬는데도, 배 속을 뒤틀어놓는 듯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마치 우리 집 담장 너머 어딘가에 위험이 숨어서, 공격할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5분째 같은 곳만 보고 있어.”빈센트가 소파 너머로 손을 뻗어 내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워 넣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최악의 상황부터 생각하지 마.”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지금 진심이야?”내가 물었다.“우리가 누구 얘기를 하고 있는지 기억해? 카시아야. 그 여자가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당신도 정확히 알잖아.”그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그는 내 손을 들어 올려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알아.”그가 조용히 인정했다.“무시하자는 게 아니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평온까지 망치게 두지는 말자는 거야.”“분명 무슨 일이 생길 거야.”나는 목소리에 떨림을 감추지 못한 채 속삭였다.“그 여자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아, 빈센트. 반드시 되갚아.”빈센트는 반박하지 않았다.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오더니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나는 잠시 버텼지만 결국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자…….”그가 내 머리 위에 턱을 살짝 얹으며 낮게 속삭였다.“숨 쉬어.”그의 손이 내 등을 천천히 위아래로 쓸어내렸다.“들이마시고…….”나는 떨리는 숨을 들이마셨다.“그리고 내쉬어.”나는 숨을 내뱉었다.“다시.”나는 그의 말대로 했다.빠르게 뛰던 심장이 그의 일정한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넌 안전해.”그가 속삭였다.“내 곁에 있잖아.”“하지만 대런은…….”“우리 아들도 안전해.”그의 말은 나를 안심시켜야 했다.그런데 오히려 가슴이 더욱 조여 왔다.
니엘결혼식을 올린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같은 기분으로 눈을 떴다.아직도 믿기지 않았다.“좋은 아침, 자기야.”눈을 뜨기도 전에 빈센트의 다정한 목소리가 침실에 울려 퍼졌다. 갓 만든 아침 식사의 풍성한 향기가 뒤따라 방 안을 가득 채웠다.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빈센트는 한 손에 쟁반을 든 채 서 있었고, 우리의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이제야 일어나기로 마음먹었어?”그가 부드럽게 놀렸다.나는 졸린 신음을 흘리며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렸다. 어젯밤 그와 나눈 뜨겁고 열정적인 밤 때문에 온몸이 아직도 기분 좋게 나른했다. 전날 밤의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자 얼굴이 금세 뜨거워졌다.빈센트는 내 얼굴에 번진 홍조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쟁반을 침대 옆 탁자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그 표정, 나 잘 알아.”그의 눈에 장난기가 어렸다.“아무것도 모르면서.”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중얼거렸다.“그래? 그런데 왜 얼굴이 빨개졌을까?”“안 빨개졌거든.”“완전히 빨개졌는데?”내가 베개를 집어 들어 그를 가볍게 때리자 빈센트가 웃음을 터뜨렸다.지난 몇 주 동안 빈센트는 너무나 많이 변했다. 가끔은 내가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한때 내가 결혼했던 차갑고 무심한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지금의 빈센트는 매일 아침 직접 아침 식사를 만들겠다고 고집했다. 최근에야 겨우 배운 요리법이 절반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그는 내가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회사에도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면 거의 나가지 않았다. 회사는 자신이 몇 시간 자리를 비워도 잘 돌아가겠지만, 나와 떨어져 있는 자신은 견딜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우리의 신혼여행은 몇 년 전 처음 결혼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침묵 대신 웃음이 있었고, 오해 대신 대화가 있었으며,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벽 대신 입맞춤이 있었다.빈센트는 매일 새로
빈센트니엘의 속눈썹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마침내 흘러내렸다.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뺨을 타고 조용히 내려갔고, 홀 안의 모든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그리고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 거칠게 뛰어대며 다른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서봤지만, 그 몇 초만큼 나를 두렵게 만든 순간은 없었다.내 미래, 내 결혼, 내 두 번째 기회……그 모든 것이 지금 그녀의 입에서 나올 다음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니엘은 잠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손에 든 부케를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하얀 장미들이 그녀의 손안에서 파르르 떨렸다.마침내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눈동자에는 아직 흘러내리지 않은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수년 동안 그녀가 품고 있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충돌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숨 막힐 듯한 침묵을 깨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는…… 이 남자를 선택할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숨소리보다 조금 클 뿐이었다.“……수년 동안 나를 기다려줬으니까요. 한 번도 나를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았어요. 오늘이 오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도 멈추지 않았고요.”내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갔다.누군가 내 가슴속까지 손을 집어넣고 심장을 움켜쥔 것 같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세게 조여 와 심장이 뛰는 것조차 힘겨웠다.주머니 속에서 손가락을 꽉 말아쥐었다. 떨리는 주먹을 숨긴 채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붙잡고 있던 희망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져 내렸다.목이 고통스럽게 조여 왔다.설마…… 니엘이 니코를 선택하는 건가?수천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휩쓸었다.그럼 왜 나한테 키스한 거야?어제는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봤는데?그게…… 작별 인사였던 건가?나는 입술 안쪽을 세게 깨물었다. 모든 본능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라고 소리
빈센트“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니코가 이를 악문 채 물었다. 목소리는 나에게만 들릴 만큼 낮았지만, 눈에 타오르는 분노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나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내가 뭘 하려는 것처럼 보여?”니코가 대답하기도 전에 홀 곳곳에서 퍼져나가던 속삭임이 점점 커졌다.사람들은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잠깐…… 저 사람 빈센트 헤일 아니야? 신부의 남편?”“무슨 소리야?”“못 들었어? 니엘이 5년 전에 사라졌잖아. 다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대. 그리고 빈센트가 니엘이 보낸 이혼 서류에 아직도 서명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었어. 법적으로는…… 아직 부부라는 거잖아.”그 사실은 순식간에 홀 전체로 퍼져나갔다.“세상에…….”“그럼 이 결혼식은 대체 뭐야?”“아직 결혼한 상태인데 다른 남자와 약혼한 거야?”“믿을 수가 없네.”“지금 가면 안 되겠다. 어떻게 끝나는지 꼭 봐야겠어.”“대체 누구를 선택할까? 자신의 남편…… 아니면 그동안 그녀 곁을 지켜준 남자?”“이런 건 처음 보는데.”수많은 시선이 나와 니코 사이를 오갔다.테이블 아래에서 몰래 휴대폰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도 보였다.심지어 연주자들마저 연주를 멈췄다.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건 평범한 결혼식보다 훨씬 더 극적인 일이었으니까.결국 니코의 인내심이 끊어졌다.“당장 여기서 꺼져.”그가 으르렁거리며 위협적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지금.”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대신 낮게 웃음을 흘렸다.“왜?”나는 여유롭게 물었다.“그녀가 나를 선택할까 봐 무서워?”니코의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무서워?”그가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내가 왜 무서워해야 하지? 네가 없는 동안 지난 5년을 내가 그녀 곁에서 보냈어. 그녀가 무너질 때 내가 붙잡아줬고, 대런도 그녀와 함께 키웠어. 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정확히 알아.”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바라봤다.그
빈센트“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로난은 내가 완전히 미쳐버린 사람이라도 된 듯 나를 바라봤다. 입까지 벌어진 채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내가 농담이라고 말해주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하지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답답하다는 듯 두 손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보스, 진심이에요? 그건 미친 짓이라고요! 5년 동안 보스는 죽은 사람처럼 살았잖아요.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매일 그녀를 잃은 걸 후회했으면서요.”그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그런데 이제 그녀가 돌아왔는데, 그녀를 되찾으려고 싸우기는커녕 웃고 있잖아요? 혼자 앉아서 왜 그렇게 실실 웃고 있는 건데요…… 그리고 왜 자꾸 입술을 만져요?”로난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보스…… 비 맞고 쓰러졌을 때 머리를 너무 세게 부딪친 거 아니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대답할 수가 없었다.내 정신은 이미 니엘의 집 앞에 세워둔 차 안으로 돌아가 있었다.아직도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던 감촉이 생생했다.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가 입을 맞추며 나를 침묵시켰던 순간도 선명했다.그 기억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손가락으로 입술을 쓸어보자 또다시 미소가 흘러나왔다.5년이었다.다시는 그녀를 품에 안을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시간.그녀를 영원히 잃었다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었던 시간.그런데 그녀가 먼저 내게 입을 맞췄다.그녀가 스스로 나에게 키스하기를 선택했다.그 단 한 번의 순간만으로도 그녀의 죽음과 함께 완전히 꺼져버렸다고 생각했던 내 안의 무언가에 다시 숨이 돌아왔다.로난은 내가 위험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아니…… 이건 정상이 아니야.”그가 과장되게 얼굴을 쓸어내렸다.“보스, 아무래도 그 열 때문에 뇌가 익어버린 것 같은데요. 의사 불러요? 다시 검사라도 받아보는 게 좋겠어요. 뭔가 확실히 이상해요.”나는 작게 웃었다.“로난.”“네?”“내 제일 좋은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