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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오월이
해인은 말문이 막혔다.

오늘의 유호는 그날의 단정한 군복 차림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해인 앞에 있는 유호는 검은 셔츠의 단추를 풀어 헤친 상태였고, 언뜻 드러나는 가슴 근육의 선이 거친 생기를 더했다.

해인이 앉은 자리에서는 그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음... 한유호... 몸은 정말 좋네...’

유호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별생각 없는 듯 물었다.

“손은 왜 다쳤어?”

해인은 멈칫했다. 고개를 숙이고서야 언제 그랬는지 모를 새, 유리컵에 베인 손바닥에서 선혈이 번져 나온 것을 알아챘다.

입술을 살짝 다문 해인은 손등을 위로 하고서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조금 베인 것 같아요.”

“조금?”

갑자기 유호가 여자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놀란 해인이 반응할 틈도 없이, 유호가 고개를 숙이고 살펴보았다.

해인의 손목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 상처를 유심히 내려다보던 유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조금이야? 살 속이 다 보이는데.”

해인의 등이 미세하게 굳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다가 유호의 깊고 어두운 눈과 마주쳤다.

입술을 다시 깨문 해인은 이 자리에 온 목적을 떠올리면서 말을 꺼냈다.

“인수 건은...”

“급한 거 아니잖아.”

유호는 고개를 낮춰 상처 위에 조심스럽게 숨을 불어 주었다.

태도는 느긋했고 손놀림은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웠다.

그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에 구급상자를 들고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강해인 씨, 상처를 처치해 드리러 왔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해인은 무의식적으로 유호를 바라봤다.

유호는 아까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입술에 문 채, 흐트러진 자세로 해인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해인은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부서진 유리 조각이 살 안쪽에 박혀 있었다. 집게로 유리조각을 빼는 순간, 통증에 미간을 저절로 찌푸린 해인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거의 동시에 차가운 유호의 시선이 직원에게 꽂혔다.

말없이 눌러오는 기세에 직원은 몸을 움찔하며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처치를 마치자마자 직원은 더 버티지 못하고 서둘러 문을 닫고 사라졌다.

해인은 손바닥을 가볍게 움직여 보았다. 붕대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감겨 있었다. 너무 급히 가버려서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

해인은 가방에서 YD그룹 관련 자료를 꺼냈다.

“한 대표님, 이건...”

“한 대표님?”

유호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해인을 바라봤다. 시선에는 묘한 불만이 실려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누군지 안 물어보네?”

해인은 잠시 말을 잃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뺨을 가려서, 턱선이 반쯤 드러났다.

‘이 남자... 은근히 뒤끝 있네.’

그 생각이 가장 먼저 스쳤다.

그날 밤, 유호가 납치범의 손에서 해인을 구해냈을 때였다.

해인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채, 무심코 유호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그 한마디가 유호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었다.

그 뒤로 유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인을 곧장 SUV에 태운 뒤, 집 앞에 내려놓고는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떠났다.

그때 뒤돌아보지도 않고 사라지는 유호의 뒷모습에서 나온 압박감은, 지금 해인이 떠올려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이틀이 지나서야 해인은 유호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유호와 태겸은 앙숙이었다.

둘은 같은 지역에서 손꼽히는 명문가 출신이지만, 성향은 극과 극이었다.

태겸은 늘 예의 바르고 부드러워서,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반면 유호는 혼자 다니는 시간이 많았고, 곁에 두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로 타인에게 늘 차가웠다.

해인이 알고 있던 유호에 대한 인상은 하나였다.

유호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

그 말은 태겸이 해인에게 해준 것이었다.

태겸과 유호는 중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다.

태겸은 늘 성적이 상위권이었고, 시험마다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유호는 반대로 시험지를 거의 백지로 내곤 했다.

서로 엮일 일 없던 두 사람이 한 번 맞붙은 계기가 있었다.

오토바이 대회였다.

대회가 끝난 뒤, 늘 침착하던 태겸이 집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유호를 ‘이상한 놈’이라고 불렀다.

경기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해인도 알지 못했다.

다만 태겸은 몇 번이나 해인에게 당부했다. 반드시 유호와 거리를 두라고.

그해, 해인은 막 16살이었다. 아버지와 오빠들은 아직 곁에 있었고, 어머니도 해인을 떠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태겸의 말이었기에 해인은 그대로 따랐다.

이후 유호는 군에 입대했고, 점점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다.

해인 역시 그 이름을 잊고 지냈다.

그녀는 꿈에서도 몰랐다. 자신이 언젠가 유호와 같은 룸에 앉아 사업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그런데 협상은 시작도 하기 전에, 해인은 이미 유호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았다.

해인이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면서 눈을 들었다. 원래 부드럽고 조용한 해인의 목소리는 꿀에 잠긴 것처럼 달콤했다.

“유호 오빠.”

유호의 등이 단번에 굳었다.

고개를 돌린 유호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해인을 바라봤다.

“YD그룹은 계속해서 성장해 왔어요. 저희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회사에 모든 걸 쏟아부으셨고, 최근 몇 년 간도 실적은 안정적으로 오르고 있어요.”

해인의 입술에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올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무심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붉은 입술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유호의 시선이 짙어졌다. 눈꼬리 아래 자리한 눈물점이 조명 아래에서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오빠가 믿기 어렵다면, 자료를 직접 봐도 돼요.”

해인은 서류를 내밀었다.

유호가 손에 든 자료를 넘기는 동안, 해인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긴장을 풀지는 못했다.

눈앞의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인이 아는 유호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유호는 YD그룹에 가장 적합한 인수자였다.

B시 전체를 둘러봐도 고씨 가문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혔다.

해인도 자신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으로 적절한 인수자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해인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YD그룹은 줄곧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고, 그 방향은 KH그룹과도 잘 맞아요. YD그룹을 인수하는 건 한 대표님께 손해가 될 일은 아니에요.”

마침내 고개를 든 유호가 날 선 시선으로 물었다.

“왜 갑자기 ‘오빠’라고 안 불러?”

해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 유호를 ‘오빠’라고 부른 건, 단지 유호와 태겸이 같은 또래였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해인은 태겸의 뒤를 졸졸 태겸을 따라다니며 ‘오빠’라고 불렀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와 함께 다른 생각이 이어졌다.

“오빠가 고태겸이랑 사이 안 좋은 건 알죠. YD그룹을 사들이면, 고태겸이 임시 대표이사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그건 관심 없어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겸은 졸업 후 곧바로 YD그룹에 들어가서, 한 단계씩 자리를 다져 왔다.

이제 막 대표이사 자리에 안착한 참이었다.

태겸이 YD그룹에 쏟은 공은 자기 집안 회사보다 더 크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런 시점에 YD그룹이 경쟁자에게 넘어간다면, 태겸은 그동안의 노력을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계속 남자니, 결국 고용인일 뿐이고 해인은 언제든 태겸을 바꿀 수 있다.

그만두자니, 지금까지의 시간이 뭐가 되겠는가?

해인은 이 말이 유호의 흥미를 자극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유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고, 시선이 깊게 가라앉았다.

“고태겸한테 복수하려고 나 이용하려는 거야?”

해인은 놀라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해인 공주님.”

유호가 낮게 웃었다.

“계산이 너무 뻔해. 나를 너랑 고태겸 놀이에 끼워 넣겠다는 거잖아. 맞지?”

유호가 손가락으로 해인의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 익숙한 동작으로 그녀의 입술 위를 쓸어내렸다.

“그럼 나도 같이 끼면 어때. 괜찮지?”

나지막하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에는 설명하기 힘든 들뜬 기색이 섞여 있었다. 눈가의 점마저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해인은 그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호의 손이 갑자기 움직였다.

해인의 손목을 움켜쥔 유호가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어두운 조명의 방 안은 모든 소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해인의 심장 박동도 함께 멎은 듯했다.

유호가 바짝 다가왔다. 뼈마디가 또렷한 남자의 손이 해인의 뒷머리를 잡고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고개를 숙인 유호는 해인의 입술을 거칠게 탐하면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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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쪽의 감정이 더 격해지기 직전, 경찰 한 명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그 경찰도 이미 눈치를 챘다. 이 경찰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집안의 자제들이라서, 하나같이 다루기 까다로운 인물들이었다.경찰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이 사람들을 내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래서 바로 유호에게 절차를 밟으라고 재촉했다.유호는 서류에 서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현을 경찰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밖으로 나오는 길 내내 대현은 말이 많았다.“와, 오늘 싸움 진짜 시원했어. 제수씨가 알면 분명 잘했다고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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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사모님 생신은 잘 치르셨어요? 제가 사모님 드리려고 준비한 선물, 오빠가 대신 전해주셨어요?]예주가 이소정을 위해 준비한 건 브로치였다.급여가 많지 않은 예주에게는 반년치 저축을 몽땅 써야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물론 그 선물은 전해지지 않았다.이소정은 애초에 예주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예주의 선물을 받을 리도 없었다.태겸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너 임신했어?”전화기 너머에서 예주는 잠깐 멈칫하는 기색이었다.[해인 언니가 오빠한테 말했어요?]태겸의 목소리가 단단히 가라앉았다.“너 임신했냐고. 누구 애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165화

    공항고속도로는 시내와 제법 떨어져 있었다. 유호는 비즈니스 밴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앞자리에 앉은 기사는 액셀을 끝까지 밟고 당장 엔진에서 연기가 날 것처럼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이번 해외 일정은 아침 일찍부터 잡혀 있던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제 곧 공항에 도착할 참이었다. 그런데 유호는 전화 한 통을 받은 뒤, 곧바로 기사에게 차를 돌리라고 지시했다.무슨 일이 생긴 건지 기사는 감히 묻지도 못했다. 다만 백미러 너머로 얼핏 비치는 유호 표정을 보며, 지금 유호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밤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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