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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مؤلف: 오월이

제1화

مؤلف: 오월이
달빛이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버려진 제약 공장 안, 강해인의 몸은 거칠게 꼬인 밧줄에 묶여 있었다.

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기댄 채, 여자의 가느다란 손목은 높이 들어 올려진 채 벽에 고정돼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다가온 남자가 해인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얇은 여자의 허리가 남자의 손아귀 안에서 움츠러들었고, 남자의 입가에는 음습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강해인 씨. 아무도 몸값을 들고 안 오면, 그땐 미안하지만 말이야.”

해인의 뒤쪽에서 벨트를 푸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해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고태겸한테... 한 번만 더 전화하게 해 줘.”

납치범이 비웃듯 웃었다.

“열 번을 전화해도 안 오는 인간인데 뭐가 달라져? 돈이든 몸이든, 하나는 내가 가져가야 할 거 아냐.”

그 말이 해인을 자극한 듯해서 몸을 비틀며 간신히 저항했다.

“고태겸은 올 거야. 말귀 못 알아들어? 나한테 손만 대 봐. 고태겸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죽여 버릴 거야.”

해인의 눈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숨기지 못한 공포를 드러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납치범은 잠시 고민한 뒤 짜증 섞인 얼굴로 핸드폰을 던졌다.

“진짜 마지막이다.”

이번에는 신호가 이어졌다.

스피커폰으로 연결된 전화에서 해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태겸의 낮은 목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해인아, 예주 쪽에 일이 좀 생겼어. 생일은 나중에 다시 챙기자.]

해인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핸드폰 화면의 시간을 훑었다.

밤 10시 반.

한 시간 반만 지나면 생일은 끝이었다.

해인은 하루 종일 정성껏 차려입은 채 레스토랑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던 태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레스토랑을 나서는 순간 납치범에게 붙잡혀 차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지금 해인은 울음이 섞일 것 같은 목소리를 억눌러 말했다.

“나 납치당했어. 나 좀 살려줘.”

전화기 너머가 몇 초간 조용해졌다.

이내 태겸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예주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손목이 골절됐어.]

“그래서?”

해인이 전화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 지금 죽기 직전이야, 고태겸. 말이 그렇게 어려워? 네 아내가 납치범 손에 죽게 생겼다고!”

다시 침묵.

잠시 후, 태겸의 말투가 누그러졌다. 달래듯 낮아진 음성이었다.

[예주는 여기 연고도 없어. 손도 다친 채로 길바닥에 누워 있어. 내가 예주를 놔두면 예주는 어떡해? 해인아, 이런 걸로 농담하지 마.]

해인은 숨이 멎은 듯 굳었다.

‘농담이겠지?’

눈가에 시큰한 감각이 차오르면서, 머리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숨이 막혀 오는 느낌에 가슴이 조여 왔다.

“하예주는 손목이 부러진 거지, 죽은 게 아니야.”

해인의 입꼬리가 힘없이 올라갔다.

목소리에는 비통함이 배어 있었다.

“용호지구에서 북쪽으로 오십 킬로. 버려진 제약 공장이야. 고태겸, 내일 아침에 시신 수습하러 와.”

해인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마자 통화는 끊겼다.

납치범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이를 악물고 강해인을 내려다봤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잔머리 굴릴 여유가 있나 보네?”

해인은 스스로를 비웃듯 웃었다.

“뭘 걱정해. 고태겸은 안 와.”

...

하예주는 누구인가?

처음 예주를 도왔을 때, 해인은 자신이 그런 존재를 곁에 들였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예주는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성적이 뛰어났다.

해인은 태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대며 예주를 후원했다.

반년 전, 학업을 마친 예주가 직접 찾아와서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태겸의 회사 건물 아래에서 기다렸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소처럼 일해서라도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고씨 가문 같은 최상위 재벌가에게 기부는 체면과 명분을 위한 일일 뿐이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태겸 역시 깊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예주는 자꾸 태겸의 시야에 모습을 드러냈다.

얌전한 얼굴에 고개를 숙인 태도, 도움을 청하는 눈빛.

아마 그런 모습이 예주만의 무기였을 것이다.

해인이 이상함을 느꼈을 때, 이미 태겸은 예주 때문에 세 번이나 약속을 취소한 뒤였다.

세 번째는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태겸은 오지 않았고, 혼인신고는 무산됐다.

하지만 사흘 뒤, 해인은 결국 결혼을 했다.

주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겸이 해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두 사람이 20년 넘게 함께 자라온 사이라는 것을.

예주는 고작 석 달 남짓 나타났을 뿐이었다.

20년과 석 달.

어디를 봐도 강해인이 질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해인은 자신과 태겸의 관계를 지나치게 믿고 있었다.

지금은 패배했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걸린 상황이었다.

해인의 속눈썹 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슬픔과 실망, 체념과 분노가 선명한 얼굴 위에서 뒤섞였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품고 있었다.

납치범은 침을 한 번 삼켰다.

망설임 없이 강해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며 천이 찢어지려는 그때.

쾅!

총성이 차가운 밤공기를 갈랐다.

바깥의 나무에 앉아 있던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일제히 날아올라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거친 말을 내뱉던 납치범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습기 어린 바닥 위에 반듯하게 누운 시신.

머리에 정확히 한 발이 박혀 있었다.

튀어 오른 피가 강해인의 뺨에 묻었다.

본래도 창백하던 얼굴에 더 깊은 파열감이 더해졌다.

두려움을 느낄 틈도 없이, 해인은 본능적으로 총성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연녹색 군복을 입은 남자가 어둠 속에 똑바로 서 있었다.

남자의 모습은 밤의 어둠과 거의 동화되어 있었고, 달빛 아래에서 어깨의 훈장이 차갑게 빛났다.

역광을 등진 채, 남자는 천천히 강해인 쪽으로 걸어왔다.

마른 낙엽을 밟는 군홧발 소리가 멀리서 가까워졌다.

그러다 발걸음이 멈췄다.

맑고 차가운 나무 향이 공기를 가르며 스며들었다.

코끝에 남아 있던 피 냄새가 흐려졌다.

놀라 고개를 든 해인이 마주친 남자의 눈은 고귀한 기품이 깔려 있었다.

남자는 한미터쯤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압도적인 기세 탓인지, 숨이 막히는 듯한 긴장감이 공간을 채웠다.

손에 들린 총에서는 아직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강해인의 얼굴에 남아 있는 공포를 본 남자는 입꼬리를 올렸다.

총을 허리 쪽에 꽂으며 한 발 물러섰다.

시선이 얽힌 채 한유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머리 위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강해인, 오랜만이네.”

...

해인이 신혼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 한 시였다.

해인은 곧바로 피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드레스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자, 차가운 물줄기가 머리 위에서 그대로 쏟아졌다.

그제야 얼어붙어 있던 몸이 조금씩 제 온도를 되찾았다.

해인은 젖은 얼굴을 한 번 훔쳤다.

‘조금만 어긋났어도, 다시는 못 돌아올 뻔했네.’

열여섯 살 이전의 해인은 가족 손바닥 위에서 자란 공주 같은 아이였다.

하지만 열여섯이 되던 해, 모든 것이 무너졌다.

아버지와 두 오빠가 동시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재혼을 선택했다.

연달아 닥친 불행은 한때 완전했던 가정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때 해인을 진흙탕에서 끌어올린 사람이 태겸이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시절, 해인을 바라보던 태겸의 눈빛.

아프게 젖어 있던 얼굴.

태겸은 그렇게 말했다.

“해인아, 나랑 같이 집에 갈래?”

그 말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켜진 불빛 같았다.

태겸의 가족은 곧 해인의 가족이 됐고, 태겸의 부모는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빠가 됐다.

그날 이후 해인은 태겸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는 날, 불안해하는 해인을 위해 태겸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해인아, 내 여자친구가 돼 줘. 평생 잘할게...”

조명 아래에서 태겸의 눈은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꽃을 좋아하는 해인을 위해서, 태겸은 수천 평의 꽃밭을 통째로 샀다.

오직 해인을 위해 피어나는 꽃들이었다.

명문가 집안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두 사람은 타고난 한 쌍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망설임 없이 뺨을 후려쳤다.

결국 증명된 건 하나였다.

남자의 약속이란... 호르몬이 가장 왕성할 때 내뱉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

귀로는 들을 수 있어도, 믿을 가치는 없었다.

이제 태겸의 마음에는 예주라는 다른 여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태겸이 해인에게 질렸을 수도 있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태겸은 변했다.

마음이 떠난 남자는 변기 닦은 칫솔보다 더 더러운 법이다.

해인은 화장대 앞에 앉아 꼬박 하루 밤낮을 보냈다.

태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해인이 포기하는 건 당연히 힘들었다.

고태겸이라는 남자는 강해인의 인생에서 너무 많은 중요한 장면에 함께 있었으니까.

해인이 멍하니 앉아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한 번 본 해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 고태겸이랑 이혼할 생각이에요.”

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이내 돌아온 말.

[너희 언제 결혼했어?]

해인은 시선을 떨궜다.

‘숨겼지.’

혼인신고를 하던 날도 그랬다.

태겸은 예주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자리를 떴고, 그대로 일주일간 출장을 갔다.

어제 해인의 생일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결혼식은 없었지만 태겸의 부모와 식사를 했고, 해인은 사실상 고씨 가문의 작은 안주인으로 인정받은 상태였다.

해인의 눈가가 붉어졌다.

“어쨌든... 그 사람이랑 끝낼 거예요.”

목소리에 묻은 억울함을 알아챈 도수희가 조용히 말했다.

[언제 나올 거야? 엄마가 차 보내 줄게.]

길고 짙은 머리카락에 얼굴을 가린 해인이, 희고 매끈한 턱선을 드러낸 채 말했다.

“제 일에 엄마는 관여하지 마세요. 엄마한테 갈 생각도 없어요. 부탁이니까 저랑 좀 거리를 두세요.”

그 말을 들은 도수희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

[해인아... 그때 엄마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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تعليقات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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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하~♡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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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71화

    아이가 태어난 뒤로 유호와 해인은 오랫동안 본가에서 지냈다. 집안 식구가 많다 보니 둘만의 시간도 자연히 줄어들었다.둘만 조용히 있을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옆에서 아이가 종일 재잘거리며 보채니, 유호 머릿속에는 해인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두 사람이 제대로 마음을 확인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유호의 머리에 칩이 삽입되는 일이 벌어졌다.유호는 해인을 마음껏 사랑해 보지도 못했고, 해인 역시 유호가 품은 뜨겁고 깊은 마음을 온전히 받아 볼 틈이 없었다.둘만의 연애는 아직도 한참 모자랐다.“여보.”유호의 눈빛이 더없이 진지해졌다. 깊은 눈동자에 잔잔한 빛이 어렸다. “우린 연애도 제대로 못 해 보고 바로 부부가 됐잖아.”해인이 눈을 깜빡였다.유호가 해인의 무릎 위에 놓인 손을 살며시 잡았다. “수학 선생님도 답만큼 풀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어. 그런데 너는 예태겸이랑 꽤 오래 연애했잖아. 내가 미쳐 버릴 만큼 질투가 날 정도로.”태겸의 이름이 나오자 유호의 눈매가 가라앉으면서 주변 공기마저 서늘해졌다.이 남자가 아직도 그 일로 질투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해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은 꿀이라도 먹은 듯 달콤하게 간질거렸다.유호가 손바닥으로 해인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눈빛은 다정하고 깊었다. “연인들이 하는 건 나도 너랑 전부 해 볼 거야. 그러니까 해인아, 기회 줘. 내가 너 다시 꼬실게.”참지 못한 유호가 몸을 기울여 해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오래 품어 온 보물을 조심스럽게 아끼듯 다정한 키스였다.입술은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마침 신호가 바뀌었다. 유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운전석에 바로 앉더니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반면 방금 전 키스 하나에 해인의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뭐야. 여기 도로에서인데?’‘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입을 맞춰 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운전을 하지?’유호가 던진 말 때문에 해인의 마음은 완전히 흐트러졌다.해인은 앞으로 유호와 평범한 부부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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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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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68화

    희정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서진의 얼굴에만 머물렀다.서진을 보지 못한 지 거의 한 달이 됐다.늘 자신감 넘치던 서진은 많이 말라 있었다. 볼이 움푹 꺼져서 오히려 이목구비가 더 또렷해 보였다.그 한 달 동안 희정은 하루도 서진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서진은 그저 한 지점만 멍하니 바라볼 뿐, 재판 내내 희정 쪽으로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희정은 쓸쓸하게 눈을 내리깔았다.‘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랑 한마디도 하기 싫은 걸까...’마지막 선고에서 재판장은 희정에게 징역 10년 3개월을 선고했다.서진은 스스로 자수했고 차장섭 사망 자체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며 수사 과정에서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진술했다는 점이 참작됐다. 최종 선고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었다.건훈의 경우 외도 자체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건훈의 변호인은 건훈이 건물 관리실의 영상을 없앤 이유도 희정과의 관계가 알려지는 걸 막으려고 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그 논리대로라면 영상 삭제 동기는 희정을 범행에서 빼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생활을 감추려는 것이 된다. 재판부는 건훈이 차장섭 사건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서 징역 3개월을 선고했다.건훈의 선고를 들은 희정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방청석의 진씨 집안 사람들은 자리에서 축포라도 터뜨리고 싶을 만큼 안도한 표정이었다.해인도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해인은 멀지 않은 곳에서 건훈의 어머니 하선미가 아들의 액운을 털어 낸다며 가족끼리 크게 식사 자리를 잡자고 하는 모습까지 봤다.“제일 좋은 식당으로 잡아. 메뉴도 비싼 걸로 다 시켜. 그 정도 돈 아낄 집도 아니잖아.”하선미는 곁에 선 집사에게 그렇게 지시했다.집사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재판 끝나는 대로 예약해 두겠습니다.”선고 절차가 끝나자 세 사람은 차례로 법정 밖으로 이동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건훈이 출입문 가까이 갔을 때 희정이 갑자기 달려들었다.사람들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67화

    진정화가 애원하듯 말했다. “언니, 서진이 어릴 때부터 봤잖아. 어떤 애인지도 알잖아. 경찰 조사에서도 장섭 오빠를 죽인 건 서진이가 아니라는 게 확인됐어.”도수희는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수술 뒤 의식을 되찾은 도수희는 정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탓인지 많은 일들을 담담하게 보게 됐다.차장섭의 시신을 처음 봤을 때는 자신이 무너져 울부짖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도수희는 그저 곁에 서서 잠든 듯 누워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차장섭의 곁에서 말없이 오후를 보내면서 창 너머로 지는 해까지 함께 바라봤다.도수희는 차장섭을 인생의 절반 가까이 사랑했지만 부부로 함께한 시간은 짧았다.젊었을 때 두 사람은 억지로 갈라져야 했다.중년이 돼 겨우 다시 만났지만, 행복하게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도수희가 병에 걸렸다.두 사람의 삶은 늘 어긋난 박자로 흘렀다. 길다면 긴 세월인데도 돌아보면 아쉬움만 가득했다.도수희는 울먹이는 진정화를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누가 옳고 누가 잘못했는지 나한테 와서 말할 필요 없어. 법원이 법과 증거대로 판단할 거야.”용서해 줄 생각은 없다는 뜻이었다.도수희는 해인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휠체어를 밀고 가자는 신호였다.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본 진정화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숨이 넘어갈 듯 울다가 쓰러질 뻔했다.유족이 합의해 줄 생각이 없다니. 그러면 서진은 어떻게 해야 할까?천호선은 묘비 앞에서 천천히 일어나 진정화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할 말 다 했잖아. 이제는 포기할 수 있겠어?”진정화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흐느꼈다.천호선이 달래듯 말했다. “법조계 아는 사람들 통해서 알아봤어. 서진이는 자수했고 수사에도 협조했어. 실형이 나온다고 해도 길어야 1년 정도일 거라고 하더라.”진정화가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건훈이는?”희정과 건훈의 관계가 알려진 뒤, 진정화는 친정에 찾아가 크게 싸웠고 이후 연락까지 끊었다.친조카가 자기 아들의 아내와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66화

    해인 옆에는 도수희가 힘없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라 안색도 병색이 짙었다. 그래도 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목숨을 건졌고, 이제부터 긴 회복 기간을 견뎌야 했다.도수희는 계속 눈물을 참았다. 해인은 말없이 도수희의 손을 가볍게 잡아줬다.묘역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차장섭이 생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자리를 찾았다.천호선과 진정화도 나타났다.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 주변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차장섭의 죽음이 서진의 직접적인 범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진은 차장섭이 죽은 뒤 진실을 숨기려고 하면서 희정을 감싸려고 했다.게다가 천호선과 차장섭은 오래전부터 왕래해 온 사이였다.조문객 몇 명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천씨 집안 사람들이 여기 올 낯짝이 있나? 나 같으면 입구에서 돌려보냈어.”“그러게. 경찰에 잡혀 있는 아들 일 때문에 온 거 누가 몰라. 며칠 안에 선고가 나온다던데.”“결국 여자 하나에 눈이 멀어서 저렇게 된 거지.”“제일 악랄한 건 차희정 아니야? 두 남자 사이에서 그러고 다닌 것도 모자라서 친아버지까지 죽였잖아. 죽어서도 지옥 밑바닥에 떨어질 인간이야.”“...”주변의 수군거림은 끊이지 않았지만 천호선은 흔들리지 않았다.천호선은 차장섭의 묘비 앞으로 걸어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장섭아, 내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다. 내가 너한테 죄를 지었어.”천호선은 그대로 몸을 깊이 숙였다.거듭 큰절을 올리느라 이마가 바닥에 세게 닿았고, 결국 이마에서 피까지 배어 나왔다.하지만 누구도 다가가서 천호선을 말리지 않았다.천호선은 차장섭의 묘비 앞에서 오래도록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굴에는 죄책감이 짙었다.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 집안끼리도 가까웠다. 자신의 아들이 이런 일을 벌일 줄은 천호선도 상상하지 못했다.참 지독한 인연이었다.조문객이 전부 떠난 뒤에도 천호선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계속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하늘에서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2화

    밖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해인은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며 태겸이 들어왔다.실내로 스며든 발소리는 조심스러웠고, 점점 가까워지다가 해인 등 뒤에서 멈췄다.이어 단단한 남자의 팔이 해인 뒤에서 감겨 왔다.해인의 허리가 갑자기 조여 들었다.“여보...”태겸의 입술이 머리칼 위로 내려앉았다.낮고 거친 숨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였다.“여보, 나 진짜 보고 싶었어.”밤공기를 머금은 태겸의 체온이 전해지자 해인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해인은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화

    해인은 말문이 막혔다.오늘의 유호는 그날의 단정한 군복 차림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해인 앞에 있는 유호는 검은 셔츠의 단추를 풀어 헤친 상태였고, 언뜻 드러나는 가슴 근육의 선이 거친 생기를 더했다.해인이 앉은 자리에서는 그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음... 한유호... 몸은 정말 좋네...’유호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별생각 없는 듯 물었다.“손은 왜 다쳤어?”해인은 멈칫했다. 고개를 숙이고서야 언제 그랬는지 모를 새, 유리컵에 베인 손바닥에서 선혈이 번져 나온 것을 알아챘다.입술을 살짝 다문 해인은 손등을 위로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6화

    해인은 뒤로 밀리면서 중심을 잃었다.태겸은 뒤쪽에서 급히 끼어들었고, 그때의 반동으로 깨진 유리컵의 날이 해인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손끝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너무나 선명해서 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예주 앞을 가로막고 선 태겸이 난처한 표정으로 해인을 바라봤다.“이게 뭐 하는 거야? 예주는 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그 말을 듣자 해인은 쥐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눈가가 젖은 채 태겸을 향해 말했다.“내가 난리야? 고태겸, 하예주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한 번이라도 들어볼 생각은 있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3화

    이소정의 안색이 단번에 굳어졌다.“사설탐정? 사설탐정을 써서 태겸이를 조사했다는 거야? 해인아, 그런 건 하면 안 되지. 부부 사이에 상처만 남겨.”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란이 서재 안까지 전해졌다.문이 열리며 고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인을 보자 자연스럽게 음성이 누그러졌다.“해인이, 왔구나.”고민건을 바라보던 해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은 저분처럼 머리가 희끗해졌을까?’그해, 두 회사가 공동으로 추진하던 대형 프로젝트가 있었다. 원래는 고민건이 직접 협력사와 만나기로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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