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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Penulis: 오월이
밖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인은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며 태겸이 들어왔다.

실내로 스며든 발소리는 조심스러웠고, 점점 가까워지다가 해인 등 뒤에서 멈췄다.

이어 단단한 남자의 팔이 해인 뒤에서 감겨 왔다.

해인의 허리가 갑자기 조여 들었다.

“여보...”

태겸의 입술이 머리칼 위로 내려앉았다.

낮고 거친 숨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였다.

“여보, 나 진짜 보고 싶었어.”

밤공기를 머금은 태겸의 체온이 전해지자 해인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해인은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화났어? 너 찾느라 하루 종일 돌아다녔어. 용호지구 쪽도 가 봤는데, 사람 그림자도 없더라.”

태겸은 속았다는 사실에 화를 내기는커녕, 다정한 손길로 해인의 코끝을 살짝 긁었다.

“다음엔 이런 장난은 하지 마.”

해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래, 장난이지.’

‘사람이 죽을 뻔한 장난.’

‘용호지구에서 북쪽으로 오십 킬로...’

‘왕복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고태겸은 하루나 걸렸어.’

‘나를 구하러 오는 동안, 난 이미 끝났겠지.’

해인은 목 안쪽에서 올라오는 쓰라림을 삼키며 물었다.

“하예주 교통사고 났다며. 많이 다쳤어?”

태겸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는데, 곧바로 말을 이었다.

“우리 둘이 있는데, 왜 다른 여자 얘길 꺼내?”

남자의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해인의 몸을 가볍게 들어서, 태겸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남자의 손바닥이 해인의 뒷머리를 받치면서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이어서 해인의 입술을 향해 태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해인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태겸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목을 굴렸다.

“처음이라 무서워? 긴장하지 마. 내가 조심해서 할게.”

그 눈이었다.

수없이 해인을 빠져들게 했던 남자의 시선.

누굴 바라봐도 깊어 보이는 남자의 눈동자.

지금은 해인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도 해인의 속은 뒤집혔다. 태겸에게서 풍기는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의 냄새 때문이었다.

‘방금까지 하예주 옆에 있었겠지.’

‘이 상태로 나한테 이러다니, 안 더러워?’

공기마저 숨 막히게 느껴졌다.

해인이 입을 열었다.

“날 사랑한 적은 있어?”

태겸이 잠시 굳었다가 곧 깊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당연하지.”

해인은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태겸의 가슴을 세게 눌렀다.

“그럼 설명해 봐. 왜 네 몸에서 하예주 냄새가 나?”

태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지면서 어색한 기색이 스쳤다.

이내 소매를 들어 올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그래? 예주 사고 났을 때 병원까지 데려다 줬잖아. 그때 묻었나 보다.”

해인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아, 그래.”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가서 씻어. 냄새 때문에 좀 역겨워.”

태겸의 미간이 좁혀졌다.

“여보...”

해인은 미소를 지었다.

흠잡을 데 없이 단정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눈빛 안쪽에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한 태겸은 이유 없이 마음이 불편해졌다.

잠시 망설이다가 말없이 잠옷을 집어 들고 욕실로 향했다.

태겸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해인은 옆으로 돌아누운 채 잠든 듯 보였다.

침대 옆에 쪼그려 앉은 태겸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여보?”

대답은 없었다.

태겸은 한숨 섞인 표정을 지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발코니로 나갔다.

천천히 담배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면서, 태겸은 속에 쌓인 걸 흘려보내려는 듯 보였다.

잠시 뒤, 그는 낮은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내일 아침 K국 몰디도 가는 비행기표 두 장 끊어. 해인이랑 신혼여행 갈 거야.”

“결혼하자마자 일주일이나 출장을 갔잖아. 제대로 보상해야지.”

“아, 그리고 해인이 생일선물... 병원에 두고 왔어. 네가 직접 가져다줘. 집으로.”

“...”

해인은 침대에 누운 채 눈을 뜨고 있었다.

태겸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혹시 내가 오해한 거야?’

‘괜히 혼자 예민해진 건 아닐까?’

‘하예주랑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 때, 약 20분쯤 지났을 때, 태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미쳤어? 누가 집으로 오랬어?”

태겸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침대 쪽을 한 번 힐끗 봤다.

그리고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1층 현관 앞, 예주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오빠... 통화하는 거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선물 가져다드렸어요.”

태겸은 말없이 상자를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예주의 눈이 붉어졌다.

“상처가 아파서 잠이 안 와요. 언니도 주무시는 것 같으니까... 오빠, 병원에 같이 가 주시면 안 돼요?”

그 말을 끝까지 들은 사람은 2층에 서 있던 해인이었다.

해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예주야.”

해인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태겸 오빠가 어떻게 너한테 해 주길 바라? 마사지해 줄까? 아니면 안고 재워 줄까?”

“아니면 그냥 올라와. 침대 비워 줄게. 여기서 제대로 보여 줘.”

너무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아래에 있던 두 사람 모두 굳어 버렸다.

고개를 돌린 태겸이 해인을 보는 순간, 표정이 단번에 변했다.

해인은 더 말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집 안에 크게 울렸다.

예주를 그대로 돌려보내고, 복도에 선 태겸이 방문을 두드렸다.

“여보, 나랑 예주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냥 네 생일선물 가져다주러 온 거야.”

‘생일선물’이라는 말이 귀에 꽂히는 순간, 해인의 가슴이 더 조여 왔다.

“내 생일은 이미 하루나 지났어.”

“내가 언제 내연녀 손에 들린 선물 받고 싶다 그랬어?”

태겸은 다급하게 변명했다.

“말 좀 그렇게 하지 마. 예주는 내연녀 아니야.”

해인은 웃고 있었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럼 내연녀는 누구야?”

“그럼 나야?”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태겸은 더 두드리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해인은 생각해 보면 그럴 법도 했다. 태겸은 어디를 가든 떠받들어지며 살아온 재벌가의 도련님이니까.

K국 몰디도로 떠나는 신혼여행은 해인의 것이 되지 못했다.

대신,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

다음 날 오후.

전승아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고태겸 바람난 거야? 왜 하예주 데리고 K국 몰디도에 있어?”

사진 속 예주는 비키니 차림이었다.

왼손 약지에는 큼직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박혀 있었고, 시선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눈부셨다.

해인은 단번에 알아봤다.

그 반지는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한정판이었다.

‘일생에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은 디자인.

며칠 전, 정체를 밝히지 않은 재벌이 거액을 들여 경매로 낙찰 받았다는 기사가 돌았던 바로 그 반지였다.

지금 그 반지는 예주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예주는 푸른 바닷물에 앉아 있었고, 치맛자락이 반쯤 물결에 밀려 올라가 있었다.

가볍게 접으면서 드러난 다리선은 군더더기 없이 매끈했고,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몇 미터 떨어진 곳, 파라솔 아래에는 태겸이 있었다.

태겸은 손에 코코넛 주스를 들고, 시선은 오로지 예주에게 향해 있었다.

누가 봐도 신혼여행 중인 부부의 풍경이었다.

승아가 이를 악물 듯 말했다.

“야, 너무 속상해하지 마. 하예주 명문가 라인도 아니고, 백도 없고 가족도 없다며. 내가 같이 가서 그냥 확실하게 정리해 줄게.”

해인은 담담하게 답했다.

“네가 고태겸 새 여자 건드리면, 고태겸이 너랑 끝까지 가겠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 남자... 나도 이제 안 가질 거야.”

승아가 멍하니 굳었다.

“뭐라고? 고태겸을 버린다고?”

“너 진짜 그럴 수 있겠어? 그렇게 오래 같이 있었는데? 후회 안 해?”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해인은 16살 이후로 태겸의 집에서 살았다.

한 지붕 아래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고, 사랑을 떠나서도 태겸의 부모는 이미 해인의 부모나 다름없었다.

다퉈도 결국 집으로 돌아오면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야 하는 사이였다.

게다가 두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에 양가 부모가 혼인을 맺어 둔 관계였다.

20년이 넘는 시간, 겨우 여기까지 왔고 두 집안 어른들 역시 각별한 사이였다.

누가 봐도 쉽게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이었다.

하지만 해인의 생각은 달랐다.

...

그날 오후, 해인은 고씨 가문 본가를 찾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끝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현관으로 들어서는 해인을 본 이소정이 무심코 뒤를 살폈다.

“태겸은? 같이 안 왔어?”

해인은 차분히 대답했다.

“출장 갔어요.”

“또 출장?”

이소정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얼마 전에 돌아온 거 아니었어? 결혼한 지 며칠 됐다고 이렇게 연달아 출장을 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부 사이에 문제라도 있는 줄 알겠다.”

이소정은 꽃을 다듬던 가위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안 되겠다. 내가 태겸이한테 한마디 해야겠어.”

그때 해인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문제가 있어요.”

이소정이 멈칫했다. 한참 지나서야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니?”

“태겸 씨... 밖에 딴 여자가 있어요.”

“말도 안 돼!”

이소정의 목소리가 즉각 높아졌다.

“내 아들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런 짓 할 애 아니야.”

말을 끝내고 나서 이소정의 시선이 날카롭게 해인에게 향했다.

“태겸이 마음에 누가 있는지 뻔하지 않니. 네 아버지 사고가 났을 때, 태겸이 너를 데려와서 얼마나 아꼈는지 다들 알잖아.”

“그동안 네 말고 태겸 옆에 다른 여자가 있었어? 해인아, 은혜도 모르고 그런 말로 태겸이 평판을 망치면 안 돼.”

해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손가락 끝이 천천히 오그라들었고,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네.’

‘사실관계도 따지기 전에, 먼저 감싸는구나.’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태겸의 부모는 해인에게 잘해 줬다.

해인 역시 진심으로 가족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자, 결국 편은 정해져 있었다.

잠깐의 씁쓸함이 지나가자, 해인은 고개를 들었다. 해인은 고씨 가문에 빚진 게 없었기에.

해인은 승아가 보내 준 사진을 이소정의 핸드폰으로 전송했다.

“하예주 씨... 아마 본 적 있으시죠?”

이소정이 화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사진 한 장 가지고 뭘 그렇게 단정해?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해일 수도 있잖아.”

해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K국 몰디도예요. 아무나 가는 곳도 아니고, 태겸 씨가 하예주 씨랑 단 둘이 거기 간 건데, 그게 무슨 오해예요?”

잠시 말을 고른 뒤, 해인이 조용히 덧붙였다.

“설마... 사설탐정 붙여서 침대에 같이 있는 사진까지 나와야 믿으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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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시장이라 사생활 보호를 철저히 챙겼다.차장섭은 이미 룸 안에 앉아 있었다.해인이 들어오자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선은 해인의 얼굴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배로 내려갔다.“고생이 많구나.”차장섭의 눈에는 격한 감정이 일렁였다.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아 보였다.하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한마디뿐이었다.“어서 앉거라.”차장섭은 지나칠 만큼 다정하게 메뉴판을 내밀었다.“네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라서 아직 주문을 못 했다.”해인은 자리에 앉았지만 메뉴판을 받지 않았다.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그녀가 담담히 말했다.“저는 가리는 음식 별로 없어요.”차장섭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결국 유호가 손을 뻗어 메뉴판을 받았다.“본인이 안 가려도, 뱃속 아기는 가리잖아.”유호는 메뉴판을 훑고 서빙 직원에게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마지막에는 따로 당부도 했다.“참, 제 아내는 파를 못 먹습니다. 고명에서도 빼 주세요.”서빙 직원은 적어 둔 뒤 메뉴판을 들고 나갔다.그제야 차장섭의 시선이 유호에게 향했다.유호는 해인의 취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들어온 뒤부터 해인에게서 거의 눈을 떼지 않았다.테이블이나 의자 옆을 지날 때도 일부러 손으로 사이를 막아 주었다. 해인의 부른 배가 혹시라도 시야가 가려진 틈에 부딪칠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이런 남자가 바람을 피웠다고?’차장섭은 이 일에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몇 분 뒤 서빙 직원이 차 주전자를 들고 들어와서 세 사람에게 따르려 했다.해인의 잔에 따르려고 하자 유호가 손으로 막았다.“지금은 늦은 시간이라 제 아내는 차를 마시면 밤에 잠을 잘 못 잡니다. 따뜻한 물로 바꿔 주세요.”룸 안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차장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최근 뉴스 말이다. 내가 희정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그 아이가 함부로 말을 했다.”실제로 이틀 동안 인터넷은 이 일로 들끓었다. KH그룹의 주가까지 영향을 받았다.오늘은 월요일이라 기자들이 KH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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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은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차장섭은 세상 풍파를 겪을 만큼 겪은 사람이었다.그런데도 해인의 목소리를 듣자 이상하게 긴장했다.[해인아, 나다. 아빠다.]해인의 미간이 곧바로 좁혀졌다.‘아빠’라는 호칭을 듣자 목소리는 차갑게 식었다.“죄송하지만, 제 아빠는 10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전화 잘못 거신 것 같네요.”말을 끝낸 해인이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전화 너머의 차장섭이 급히 말했다.[해인아, 네가 나를 원망하는 거 알아. 나도 변명할 생각 없어. 아버지로서 하루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건 사실이니까.][그런데 네 엄마 몸이 많이 안 좋다. 의사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어. 네 엄마가 너를 한 번만 보고 싶어 한다.]그 말을 들은 해인의 손이 멈췄다.“많이 아프신가요?”당당한 시장이었지만, 차장섭은 해인 앞에서 한없이 낮아져 있었다. 목소리는 바닥까지 내려앉았다.[그래. 맞는 신장을 찾지 못하면 길어야 넉 달이라고 했다. 해인아, 네가 우리를 미워해도 좋다. 그래도 내가 부탁하마.][네 엄마가 후회만 안고 떠나게 하지는 말아 다오. 생사를 앞둔 일 앞에서는, 미움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지 않겠니?]‘넉 달’이라는 말을 듣자 해인의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그녀는 줄곧 도수희를 원망하면서 자신을 버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도수희가 찾아와도 말을 섞지 않았고,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았다.그런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왜 있는 걸까? 친엄마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가슴 한쪽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듯 답답했다.해인은 전에는 도수희의 병이 동정을 얻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차장섭이 도수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거짓말을 해 가며 자신을 만나려 들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해인의 마음속 응어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생각해 볼게요.”[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그런데 오늘 나랑 밥 한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473화

    희정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웃었다.“M국 나온 지 너무 오래됐잖아. 언어 감각도 안 쓰면 무뎌지는 법이야.”말을 주고받는 사이, 구급차가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유호는 희정이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들것에 실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차 안에서 희정은 애처로운 눈으로 유호를 바라봤다.“정말 나 병원까지 안 데려다 줄 거야?”마침 구급대원이 다가와 말했다.“동행자분 맞으시죠? 발목 부상이라 접수와 수속을 도와줄 보호자가 필요합니다.”유호는 눈가가 붉어진 채 무력하게 앉아 있는 희정을 바라봤다.유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468화

    유호는 차갑게 말했다.“그만 울어.”유호와 이 ‘동생’은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둘 사이에는 딱히 나눌 만한 공통 화제도 없었다.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라고는 해도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었다.이번 해외여행에 해인이 조우를 데려가겠다고 한 건 유호에게도 전혀 예상 밖이었다.더 서럽게 울던 조우는 해인의 팔을 꼭 붙잡고 불쌍한 얼굴로 물었다.“형수님, 우리 형은 나 같은 애한테도 이렇게 무서운데, 형수님은 대체 예전에 우리 형 어디가 좋아서 결혼한 거야?”해인은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말했다.“예전에는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466화

    “그래, 그럼 네 뜻대로 하자.”집안 식구들은 거실에 모여 밤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해인은 임신 중이라 권영자는 해인에게 방에 올라가 쉬라고 했다.유호도 해인을 따라 일어났다. 복도에 이르자, 해인이 고개를 돌려 유호에게 물었다.“왜 따라와?”유호가 어깨를 으쓱했다.“내 방에 가는 건데.”해인은 몸을 옆으로 비켜 주었다.“그럼 먼저 들어가.”유호가 문을 열자, 해인은 따라서 안으로 들어왔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유호는 해인을 문 뒤쪽으로 몰아세웠다.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사방이 어두웠고, 창밖에서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462화

    유호는 부하가 자신의 사적인 감정 문제에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유호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선을 알아야 했다.하지만 그 일들을 떠올리려고 애쓸수록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결국 유호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 가지 못하고 멈춰야 했다.주헌도 자신이 말을 지나치게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사모님께서 요즘 여러 발명가들을 만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연구 개발에 쓸 특허를 사들이려는 것 같습니다.][대표님, 어쩌면 며칠 안에 사모님께서 YD그룹을 직접 관리하겠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주헌의 말은 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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