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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내 남자친구라고 했어요

Author: Rionha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4 20:06:15

# 9화. 내 남자친구라고 했어요

소문은 점심도 되기 전에 건물 전체를 돌았다.

서지안이 옥탑방 창문을 열었을 때 아래층 아주머니 둘이 빨래를 널다 말고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한 명은 지안을 보고 웃었고, 다른 한 명은 대놓고 옥탑 안쪽을 살폈다.

“지안 씨.”

“네.”

“남자친구 왔다며?”

최명숙이 퍼뜨린 게 분명했다.

지안은 창틀을 붙잡은 채 억지로 웃었다.

“잠깐 들른 거예요.”

“아프다던데?”

“감기요.”

“키가 엄청 크다며. 무슨 일 해?”

“그냥 회사 다녀요.”

벽 너머에서 낮은 헛기침이 들렸다.

지안은 미간을 구겼다.

지금 웃은 거야?

아주머니는 목소리를 낮추기는커녕 한층 신이 나서 물었다.

“둘이 결혼할 사이야?”

“아니요.”

지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전혀 아니에요.”

“아니긴. 월세까지 대신 내줬다는데.”

“그건...”

말끝이 막혔다.

밀린 월세를 대신 내준 사람은 맞았다.

그 이유가 연애가 아니라 은신 계약이라는 사실만 빼면, 최명숙이 퍼뜨린 내용은 전부 사실이었다.

“요즘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 잘 잡아.”

“잡을 생각 없어요.”

“다 그렇게 말해.”

아주머니들은 자기들끼리 웃으며 다시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지안은 창문을 닫았다.

돌아서자 무너진 벽 앞에 기대 선 남시헌이 보였다. 수도실에 있어야 할 남자가 허락도 없이 상체를 내밀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지안이 물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웃었잖아요.”

“안 웃었습니다.”

“내가 귀가 없어요?”

시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부분이 인상적이긴 했습니다.”

“당신이랑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죠.”

“나는 하자고 한 적 없는데.”

“그러니까 혼자 의미 부여하지 말라고요.”

지안은 행거에 걸린 이불을 잡아 내렸다.

시헌의 얼굴이 천천히 가려졌다.

“벽 넘지 말랬죠?”

“상체만 넘었습니다.”

“상체는 몸 아니에요?”

“소리가 들려서 확인했을 뿐입니다.”

“이제 아래층 아주머니들까지 감시하게요?”

이불 너머에서 시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아주머니들은 당신이 누군지 관심 없어요. 내가 연애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그게 다행이군.”

“뭐가 다행이에요?”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서요.”

지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건물 사람들은 검은 마스크를 쓴 남자를 봤지만, 잠적한 톱스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월세를 내주는 키 큰 남자친구로 기억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오히려 가장 안전한 위장이 된 셈이었다.

지안은 한숨을 쉬며 노트북 앞에 앉았다.

부산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 수 이백만을 넘겼다.

강태준은 후속 제보를 정리해 두 번째 영상을 만들라고 했다. 부산역과 호텔 주변에서 찍혔다는 사진이 수십 장이나 들어왔지만 대부분 체격도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지안은 사진을 분류하다가 휴대전화 알림을 확인했다.

박해솔이었다.

[너 남자친구 생겼어?]

[왜 나는 모르는데 건물 사람들이 먼저 알아?]

지안은 화면을 보자마자 눈을 감았다.

해솔은 태림하우스 1층 편의점의 야간 점장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이어진 유일한 친구이자, 지안의 월세와 통장 잔액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충 둘러댈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오해야.]

답장을 보내자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지안은 벽 쪽을 한번 확인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일하는 중이야.”

“남자친구 생겼다는 말보다 일이 중요해?”

“안 생겼어.”

“명숙 아줌마가 직접 봤다는데?”

“오해라니까.”

“월세도 대신 내줬대.”

“그건 사정이 있어.”

“무슨 사정?”

지안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수도실에 있는 시헌이 이불 뒤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친구야.”

“너 나 말고 친구 있어?”

“있을 수도 있지.”

“없잖아.”

“박해솔.”

“그럼 전 남친?”

“그것도 아니고.”

“그럼 누군데?”

지안은 이마를 짚었다.

해솔은 한번 의심하면 직접 확인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이대로 얼버무리면 퇴근하자마자 옥탑으로 올라올 게 분명했다.

“나중에 설명할게.”

“지금 해.”

“작업실 같이 쓰는 사람이야.”

“작업실?”

“영상 관련 일 하는데 잠깐 서울에 올라왔어.”

“그 사람이 네 월세를 왜 내줘?”

“선불 작업비 받았어.”

“그걸 집주인한테 남자친구라고 했고?”

“상황이 그렇게 됐어.”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해솔이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지안아.”

“응.”

“사기당한 거 아니지?”

지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기는 아니었다.

돈은 실제로 들어왔다. 상대방이 전 국민에게 쫓기는 톱스타라는 것만 문제였다.

“아니야.”

“그럼 오늘 저녁에 데리고 내려와.”

“안 돼.”

“왜?”

“감기 걸렸어.”

“명숙 아줌마랑 말이 똑같네.”

해솔의 의심이 더 짙어졌다.

“얼굴도 못 보여줄 정도로 심한 감기야?”

“너한테 옮으면 편의점 문 닫아야 하잖아.”

“그 정도면 병원에 가야지.”

“쉬면 낫는대.”

“혹시 유부남이야?”

“아니야!”

지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불 너머에서 다시 헛기침이 들렸다.

이번에는 확실히 웃음을 참는 소리였다.

지안은 벽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아무튼 올라오지 마.”

“그렇게 말하면 더 수상한 거 몰라?”

“해솔아.”

“오늘 밤 열한 시. 내가 올라가든 네가 내려오든 골라.”

통화가 끊겼다.

지안은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불이 살짝 들리더니 시헌이 얼굴을 내밀었다.

“유부남은 아닙니다.”

“누가 물어봤어요?”

“오해할까 봐.”

“당신은 조용히 숨어 있기나 해요.”

“저 친구는 누구죠?”

“당신이 알 필요 없는 사람.”

시헌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안은 그가 어제 자신에게 했던 말을 되돌려준 것에 만족하며 노트북을 바라봤다.

그러나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늘 밤 해솔을 어떻게 막을지 생각해야 했다.

해솔은 최명숙보다 눈치가 빨랐다.

남시헌에게 모자와 마스크를 씌운다고 해도 가까이서 얼굴을 보면 알아챌 가능성이 있었다. 무엇보다 지안에게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오늘 밤에는 밖으로 나가 있어요.”

지안이 말했다.

“어디로?”

“옥상 구석에 숨어 있든가.”

“건물 사람들이 내 얼굴을 봤습니다.”

“얼굴은 안 봤죠.”

“당신 남자친구라는 건 알고 있고.”

“그러니까 당신이 방에 없으면 되잖아요.”

“친구가 방을 살펴보면?”

“수도실만 안 열면 돼요.”

시헌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왜요?”

“밖으로 나가는 게 더 위험합니다.”

“그러면 해솔이 올 때까지 수도실에서 숨도 쉬지 말든가.”

“차라리 남자친구인 척하는 게 낫겠군.”

지안은 마우스를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뭐라고요?”

“이미 그렇게 알려졌다면서요.”

“해솔이는 집주인과 달라요. 내 사정을 전부 알아요.”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됩니다.”

“그게 말처럼 쉬워요?”

시헌은 무너진 벽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지안이 막기도 전에 그녀의 의자 옆에 섰다.

“어제는 잘하지 않았습니까?”

“어제는 급해서 그런 거고.”

“내 팔도 먼저 잡았죠.”

“그게 왜요?”

“어깨에 손을 올린 건 나였고.”

“상황극이었잖아요.”

“상황극은 연기입니다.”

시헌이 몸을 조금 숙였다.

좁은 방에서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연기는 내가 더 잘해요.”

낮아진 목소리가 귀 가까이 닿았다.

지안은 의자를 뒤로 밀려 했지만 등받이가 곧장 벽에 부딪혔다.

“너무 가까워요.”

“남자친구라면 이 정도 거리에서 불편해하지 않을 텐데.”

“가짜니까 불편한 거예요.”

“티가 나면 의심받겠죠.”

시헌이 지안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카메라 앞에서 십이 년을 살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사람을 어디까지 바라봐야 상대가 흔들리는지 알고 있었다. 목소리를 얼마나 낮춰야 그 말이 귓가에 오래 남는지도.

지안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 했지만 먼저 눈을 돌리고 말았다.

“그렇게 잘하면 혼자 연습하세요.”

“상대역이 있어야 하죠.”

“싫어요.”

“왜?”

“계약에 없는 일이니까.”

시헌은 잠시 생각하더니 식탁 위 계약서를 가져왔다.

“추가하면 됩니까?”

지안은 기가 막혀 그를 바라봤다.

시헌은 정말로 펜을 들었다.

[필요한 경우 상호 합의 아래 연인 관계를 연기한다.]

문장을 확인한 지안이 펜을 빼앗았다.

“상호 합의라고 써놓고 지금 강요하잖아요.”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해솔이 못 올라오게 하면 돼요.”

“실패하면?”

“그때 생각하죠.”

“당신은 거짓 영상을 만들 때는 치밀하면서, 자기 일에는 대책이 없군.”

“누구 때문에 생긴 일인데요?”

“나를 남자친구라고 한 건 당신입니다.”

또 그 말이었다.

틀리지 않아서 더 화가 났다.

지안은 계약서 아래에 조건을 하나 덧붙였다.

[연기 중 불필요한 신체 접촉 금지.]

시헌이 내려다봤다.

“불필요한 기준은?”

“내가 정해요.”

“일방적이군.”

“싫으면 수도실에서 숨죽이고 있어요.”

시헌은 잠시 종이를 바라보다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남시헌.

지안도 마지못해 서명했다.

“오늘 밤 한 번이에요.”

“알겠습니다.”

“해솔이 돌아가면 바로 끝.”

“그것도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오래 안 사람처럼 말하면 안 돼요. 만난 지 얼마 안 됐다고 할 거니까.”

“얼마나?”

“한 달.”

시헌의 시선이 지안에게 머물렀다.

실제로 그가 수도실로 들어온 시기와 같았다.

“한 달이면 충분히 오래됐군.”

“뭐가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에는.”

지안은 대꾸하려다 멈췄다.

시헌은 이미 그녀가 먹는 음식과 일하는 시간, 월세가 밀린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벽 너머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들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나에 대해 아는 척하지 마요.”

“아는 만큼만 말하죠.”

“그 아는 만큼이 문제라고요.”

지안은 계약서를 접어 서랍 안에 넣었다.

그날 밤 열 시 오십 분.

해솔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올라간다.]

지안은 곧장 벽을 돌아봤다.

시헌은 검은 셔츠와 바지를 입고 방 안에 서 있었다. 모자를 눌러썼지만 마스크는 아직 쓰지 않은 상태였다.

“마스크요.”

“집 안에서도 써야 합니까?”

“얼굴 들키면 끝이에요.”

“남자친구 얼굴도 못 본 친구가 더 의심하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었다.

지안이 대답하지 못하자 시헌은 모자를 벗어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조명을 낮추죠.”

그가 스탠드를 방 반대편으로 돌렸다.

얼굴의 절반이 그늘에 잠겼다.

그 정도로 가려질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마스크를 쓰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웠다.

계단 아래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지안은 긴장한 채 현관으로 향했다.

그 순간 시헌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뭐 해요?”

“남자친구라면서요.”

“아직 문도 안 열었어요.”

“손이 너무 차가워서.”

지안은 손을 빼려다 멈췄다.

시헌의 손도 차가웠다.

긴장하고 있는 건 자신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당신도 긴장해요?”

“안 합니다.”

“손 차가운데.”

“원래 그렇습니다.”

시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초인종이 울렸다.

지안은 그의 손을 떼어내고 문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게...”

박해솔이 말을 멈췄다.

그녀의 시선이 지안의 어깨 너머로 향했다.

시헌은 방 안쪽에 서 있었다. 조명이 등 뒤에서 비쳐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해솔은 눈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지안아.”

“응.”

“네 남자친구.”

해솔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화면이 켜지는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다.

시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뒤로 물러났다.

등이 벽에 부딪혔다.

지안은 그가 숨을 들이마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새벽 세 시에 들었던 것과 똑같은 호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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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전 2화. 공개 연애의 조건남시헌의 첫 복귀 인터뷰는 오후 세 시였다.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세 시간.서지안은 거실 바닥에 앉아 질문 목록을 펼쳤다.정우현이 보낸 예상 질문은 열두 개였다.복귀를 결심한 이유.호텔 사건 이후의 심경.정우현과 백윤서에 관한 질문.서지안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일에 대한 책임.그리고 마지막 항목.[현재 서지안 씨와 교제 중입니까?]지안은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이 질문이 나오면 뭐라고 할 거예요?”소파 대신 맞은편 상자에 앉은 시헌이 대답했다.“교제 중이라고 말하겠습니다.”“끝?”“더 설명해야 합니까?”“질문이 이어질 거잖아요.”지안은 다음 문장들을 읽었다.“언제부터 만났는지. 동거 중인지. 결혼 계획이 있는지. 서지안 씨가 복귀작에 영향을 미쳤는지.”“사실대로 답하면 됩니다.”“결혼 계획도요?”시헌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없습니까?”“지금 나한테 묻는 거예요?”“질문이 나올 수 있다면서요.”“그래서 오늘 결혼 계획까지 정하자고요?”“계획이 없다면 없다고 답하면 되고.”그는 지나치게 침착했다.지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있는 것 같은데.”“생각은 해봤습니다.”“언제요?”“이 집을 계약할 때.”“같이 산 지 며칠이나 됐다고.”“기간이 중요합니까?”“중요하죠.”“얼마나 지나야 생각해도 됩니까?”지안은 말문이 막혔다.남시헌에게 연애는 여전히 기준이 없는 영역이었다. 기준이 없으니 매번 자신에게 확인했고, 답이 없으면 정하려 했다.지안은 질문 목록으로 그의 팔을 가볍게 쳤다.“오늘 인터뷰에서 결혼 이야기는 하지 마요.”“왜요?”“내가 아직 대답 안 했으니까.”“그럼 질문이 나오면.”“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요.”“정해지지 않은 이유도 말해야 합니까?”“그냥 웃고 넘어가요.”시헌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 적이 없습니다.”“배우잖아요. 웃는 것도 연기해요.”“당신과 관련된 질문에 연기하고 싶지 않습니다.”지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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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전 1화. 계약이 끝난 다음 날서지안이 눈을 떴을 때 남시헌은 침대에 없었다.옆자리에 남은 온기는 아직 따뜻했다.커튼 사이로 아침 햇빛이 길게 들어왔고, 거실 쪽에서는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쨍그랑.지안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이번에는 타는 냄새가 났다.“남시헌.”대답은 없었다.침대에서 내려온 지안은 바닥에 떨어진 셔츠를 주워 걸쳤다.자신의 옷은 아니었다.커다란 셔츠 자락이 허벅지까지 내려왔다.어젯밤 두 사람이 거실에서 시작한 입맞춤은 침실까지 이어졌다.계약도, 약속된 연기도 아니었다.누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지 정해놓은 규칙도 없었다.그런데 아침이 되자 남자는 사라졌고 주방에서는 연기가 나고 있었다.지안은 급히 방문을 열었다.남시헌은 프라이팬 앞에 서 있었다.한 손에는 뒤집개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휴대전화 화면을 내리고 있었다.화면에는 달걀 프라이 만드는 방법이 떠 있었다.“지금 뭐 해요?”시헌이 돌아봤다.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검은 티셔츠, 회색 바지 차림이었다.프라이팬 안에는 달걀로 추정되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아침 준비 중입니다.”“그건 이미 끝난 것 같은데요.”지안이 가스레인지를 껐다.“불은 왜 이렇게 세게 했어요?”“빠르게 익을 줄 알았습니다.”“요리할 때 강한 불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에요.”“설명에는 중불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그런데요?”“중불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습니다.”지안은 이마를 짚었다.톱스타 남시헌은 수백 명의 스태프 앞에서 감정을 연기할 수 있었다.백만 명이 지켜보는 생방송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중불은 몰랐다.“아침은 내가 할게요.”지안이 뒤집개를 가져가려 하자 시헌이 손을 피했다.“내가 하겠습니다.”“왜요?”“공동생활 규칙에 적혀 있습니다.”냉장고 문에는 두 사람이 작성한 규칙이 붙어 있었다.[집안일은 가능한 한 반씩 나눈다.]시헌은 그중 집안일이라는 단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어제 설거지는 내가 했으

  • 톱스타가 내 월세를 대신 냅니다   # 50화. 월세는 반씩 [본편완결]

    # 50화. 월세는 반씩 [본편완결]“전액을 보냈다고요?”서지안의 목소리에 남시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아침 햇빛이 커튼 없는 창문을 통과해 그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조금 전까지 잠결에 지안을 놓아주지 않던 사람은 사라지고, 잘못을 계산하는 얼굴만 남았다.“첫 달이라 내가 먼저 내는 편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누구한테요?”“집주인에게.”“나한테는 안 편한데요.”지안은 은행 앱을 다시 확인했다.월세 백이십만 원.입금자 남시헌.반드시 반씩 내자고 합의한 지 이틀도 지나지 않았다.“왜 마음대로 보냈어요?”“마음대로 한 건 아닙니다.”“그럼 나한테 물어봤어요?”시헌의 입이 다물렸다.지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돈 없는 합의서 다시 가져와요?”“그 합의서는 공동 대응에 관한 내용입니다.”“상대방 결정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아직 유효해요.”“내가 월세를 냈다고 당신 결정을 대신한 건.”시헌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지안의 눈빛을 확인했기 때문이다.“대신한 거 맞군요.”“네.”인정은 빨랐다.그러나 지안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처음에도 그랬어요.”“무슨 뜻입니까?”“돈을 주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잖아요.”월 오백만 원.밀린 월세.생활비.냉장고를 채운 음식.남시헌은 늘 지안보다 먼저 돈을 냈다.그 돈 덕분에 지안이 버틴 것도 사실이었다.그렇다고 같은 방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당신이 많이 버는 건 알아요.”지안이 말했다.“앞으로 나보다 훨씬 많이 벌 수도 있고요.”“아직 복귀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그건 나중 문제고.”지안은 시헌 앞에 앉았다.“나는 이 집에 얹혀살고 싶지 않아요.”시헌의 표정이 굳었다.“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당신이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느낄 수 있어요.”“내가 어떻게 해야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까?”“약속한 대로 하면 돼요.”“월세를 반씩?”“네.”“수입 차이가 나도?”“월세는 반씩.”지안은 단호하게 말했다.“관리비도 반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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