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딸딸이가 낫다.”
준혁은 휴대전화를 쥔 채 침대에서 내려왔다.
영상은 여전히 재생되고 있었고,
그는 서윤이 이불로 몸을 가리는 동안에도 화면 속 여자를 훑어보며 바지를 챙겨 입었다.
“좆같은 씨발거. 이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니까?
보지가 살에 파묻혀 있는데 어디다가 고추를 쑤셔 넣으라는 건데.”
“그만하라고 했잖아.”
“내가 없는 말 했어? 네가 직접 내려다봐. 뭐가 보이나.”
준혁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아내의 몸을 모욕한 뒤 돌아서는 태도에는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었다.
서윤은 침대 끝에 앉아 그의 등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다.
생각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부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냉장고 문을 열고 있었다.
서윤은 하은이 먹다 남긴 생크림 케이크를 꺼내 포크도 없이 손으로 집어 먹었다.
이어 요구르트 뚜껑을 뜯어 단숨에 마셨고,
식빵과 크림빵, 반찬통에 남아 있던 멸치볶음과 장조림,
비닐도 벗기지 않았던 햄까지 식탁 위에 늘어놓았다.
단맛과 짠맛이 뒤섞였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씹고 삼키는 동안에는 준혁이 한 말이 잠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입안이 비워질 때마다 조금 전 침대에서 들었던 욕설이 되살아났고,
서윤은 그것을 다시 밀어 넣으려는 사람처럼 다음 음식을 집었다.
배에서는 이미 그만하라는 신호가 왔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멈추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정해야 했고, 인정하는 순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방에서 나온 준혁은 식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와, 씹돼지년이네. 진짜 하다 하다 별 꼴을 다 본다.”
서윤은 그를 보지 않고 햄을 베어 물었다.
“아, 너 이거 다 처먹고 바로 화장실 가서 토할 거지?”
준혁은 열린 냉장고 안과 식탁 위에 쌓인 빈 포장지를 번갈아 살폈다.
“야, 씨발. 그럼 이 음식은 어차피 변기통행인데 왜 사다 놓냐?
돈 내고 음식 사서 네 목구멍 한번 통과시킨 다음 변기에 처넣는 게 취미야?”
“내버려 둬.”
“내 돈으로 산 거잖아. 버릴 거면 처먹지나 말든가.
네가 먹고 토한 것까지 내가 생활비로 대줘야 해?”
“내가 사 온 것도 있어.”
“그래 봤자 내가 준 카드로 샀겠지.”
부부가 같은 집에서 각자의 방을 쓰기 시작한 것은 하은이 세 살이 되던 해부터였다.
준혁은 아이의 울음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고 했지만,
하은이 밤새 자게 된 뒤에도 안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제 자신의 침대와 욕실, 잠금장치가 달린 개인 방이 있었다.
서윤은 아내였지만 그 방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노크해야 했고,
준혁은 필요할 때만 안방으로 찾아왔다.
준혁은 자기 방문 앞에서 뒤를 돌아봤다.
서윤은 여전히 식탁 앞에 서서 크림이 묻은 손으로 빵 봉지를 뜯고 있었다.
“하, 존나 이해가 안 되네. 임신하고 애 낳고 살 빼는 것까지가 코스 아니야?”
그는 식탁 위 음식물을 가리켰다.
“왜 코스에서 살 빼기만 지 마음대로 빼버려? 내가 돼지 새끼랑 사는 것도 아니고.”
서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준혁은 마지막까지 한마디를 더 얹었다.
“야, 너 지금 밥 먹는 게 아니라 사료 처먹는 것 같아.”
준혁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난 뒤에야 서윤의 손이 멈췄다.
식탁 위에는 반쯤 뜯긴 햄과 으깨진 케이크,
열린 반찬통이 뒤엉켜 있었고,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잠시 뒤 속이 뒤집혔다.
서윤은 입을 막고 욕실로 달려갔다.
문을 잠근 뒤 수도를 틀었지만, 물소리로도 자신이 하는 일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먹었던 케이크, 햄, 반찬, 오만가지가 다 바닥에 흩어졌다.
문밖에서 준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윤이 욕실 문을 열었을 때, 복도 바닥에 떨어진 화면 위로 새로운 문장이 떠 있었다.
[오늘 두 번 가능해?]
“한서윤 대표님, 결혼하신 건 압니다.”첫 번째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명함을 거두지 않았다.그리고 그날 하루 동안 같은 말을 하는 남자가 세 명 더 나타났다.리본베이비 신제품 공개행사장.서윤은 무대 뒤에서 진행 순서를 확인하다 자신을 기다리던 남자를 발견했다.배우 강시온이었다.최근 가장 몸값이 높은 30대 배우였고, 리본베이비 측에서다음 광고 모델 후보로 검토 중인 사람이기도 했다.“처음 뵙겠습니다.”서윤이 손을 내밀자 시온이 악수했다.“전 처음 아닌데요.”“네?”“대표님 광고 봤습니다. 70kg대였을 때 찍으신 거.”서윤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또 전후 사진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시온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그 광고 카피 대표님이 직접 쓰셨죠?”“어떻게 아셨어요?”“모델보다 문장이 먼저 보였거든요.”시온이 웃었다.“그래서 광고하고 싶습니다.”“저희 모델 제안 검토 중인 거 알고 계세요?”“회사에서는요.”“그럼 방금 말씀은?”“저 개인적으로.”시온이 명함 뒤에 자신의 개인 번호를 적었다.“광고 아니어도 한 번 연락해보고 싶다는 뜻입니다.”서윤이 명함을 내려다봤다.“저 결혼했습니다.”“압니다.”“그런데도요?”“결혼한 사람한테 연락처 주는 것까지 죄는 아니잖아요.”능청스럽지만 선을 넘지는 않았다.“싫으시면 버리세요.”시온은 더 붙잡지 않고 무대로 향했다.두 번째는 윤태하였다.해외 패션위크까지 다니는 모델이었고, 리본베이비의 부모 공동착용 캠페인 때문에 행사장을 찾았다.촬영이 끝난 뒤 태하는 서윤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그녀가 제품을 들고 직원과 이야기하던 순간을 현장 사진가가 찍은 것이었다.“이 컷 쓰세요.”“제품이 잘 안 보이는데요.”“그래서 좋잖아요.”“저희는 제품 광고인데요.”“대표님은 모든 걸 상품으로만 보네요.”서윤이 그를 쳐다봤다.태하가 웃었다.“이 사진에서는 대표가 아니라 그냥 한서윤 같아서요.”그 말이 뜻밖이었다.요즘 사람들은 그녀를 CEO
서윤의 이번 달 정산금이 준혁의 연봉을 넘었다.그런데 그 사실이 기사로 나간 날, 리본베이비를 키운 사람처럼 인터뷰하고 있는 건 강준혁이었다.“처음에는 제가 많이 도와줬죠. 거래처도 그렇고, 사업적으로 조언도 해줬고요.”서윤은 사무실 모니터에서 그 장면을 봤다.다정이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했다.“대표님, 저거 언제 인터뷰한 거예요?”“나도 처음 봐요.”경제 프로그램 화면 아래 자막이 떠 있었다.〈전업주부 아내를 CEO로 만든 재벌가 남편의 내조〉서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이가 없어서 화조차 바로 나오지 않았다.화면 속 준혁은 익숙하게 웃고 있었다.“아내가 원래 감각은 있었어요. 다만 오랫동안 일을 쉬었으니까 시장을 잘 몰랐죠.제가 기업에 있으니 옆에서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알려줬습니다.”진행자가 물었다.“초기 사업 자금에도 도움을 주셨습니까?”준혁이 잠깐 망설였다.“부부 사이에서 굳이 네 돈, 내 돈을 나눌 필요가 있겠습니까?”다정이 서윤을 봤다.“대표님 초기 자금 결혼 전 퇴직금 아니었어요?”“맞아요.”“거래처도 대표님이 직접 찾았고요.”“맞고.”“생산 막은 사람도 저분이고요.”“그것도 맞아요.”다정이 기가 막힌다는 듯 화면을 바라봤다.준혁은 자신이 한 일을 하나씩 지우고 있었다.97.8kg의 아내를 조롱했던 일.생활비 카드를 막았던 일.제품을 장난이라고 비웃었던 일.회사가 팔리기 시작하자 지분 51%를 요구했던 일.거절당하자 생산처까지 압박했던 일.그 모든 일이 사라진 자리에 ‘아내를 성공시킨 남편’이 앉아 있었다.인터뷰는 더 노골적으로 이어졌다.“사실 리본베이비가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강림그룹 인맥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겁니다.”서윤이 그 말에서 모니터를 껐다.다정이 물었다.“대응할까요?”“아니요.”“저걸 그냥 둬요?”“오늘 인터뷰 있잖아요.”서윤의 시선이 책상 위 일정표로 향했다.그날 오후에는 이미 잡혀 있던 경제채널 생방송이 있었다.주제는 경력단절 여성의 창업
“그 영상 지워. 대신 내 명품 매장 지분 줄게.”강미선은 사과 대신 계약서를 내밀었다.서윤은 첫 장도 넘기지 않았다.“이게 형님이 생각한 폭행값이에요?”미선의 얼굴이 굳었다.“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니?”“제 머리채 잡고 벽에 밀친 걸 뭐라고 부르면 되는데요?”“가족끼리 싸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가족이면 사람 때려도 돼요?”“그래서 내가 해결해주겠다는 거잖아.”미선은 계약서를 서윤 쪽으로 더 밀었다.강남의 수입 명품 매장.미선이 자랑할 때마다 연 매출부터 읊던 곳이었다.“지분 일부 넘겨줄게. 배당만 받아도 네가 손해 볼 장사는 아니야.”“대신?”“네가 찍은 영상 삭제하고, 그 일로 더 문제 삼지 마.”서윤은 그제야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미선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기색이 스쳤다.그러나 서윤은 서명란이 아니라 계약서 전체를 그대로 미선 앞으로 돌려놓았다.“안 받아요.”“금액부터 확인하고 말해.”“봤어요.”“그런데?”“싸네요.”미선의 표정이 변했다.“뭐?”“사람 때린 뒤에 돈 주면 끝난다고 믿는 형님 생각이요.”“야, 한서윤.”“돈은 좋아해요.”서윤은 미선의 말을 끊었다.“제가 직접 번 돈은 특히 좋아하고요.”“그래서 지금 너 잘났다고 이러는 거야?”“아니요.”서윤이 준비해온 종이 두 장을 꺼냈다.“돈 대신 이거 하세요.”미선이 첫 장을 읽었다.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공개 사과문.폭언과 신체적 폭행 인정.서윤에게 책임을 돌리는 표현 사용 금지.허위 후기 유포 관여에 대한 사과.두 번째 장에는 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한서윤 및 강하은에게 사전 동의 없이 접근하지 않는다.미선이 종이를 탁 내려놓았다.“미쳤어?”“왜요?”“내가 너한테 공개 사과를 해?”“네.”“내가 누구 망신당하는 꼴 보려고?”“제가 맞을 때는 제 망신은 괜찮으셨잖아요.”“그거랑 이게 같아?”“저한테는 형님 체면보다 제 안전이 더 중요해요.”미선이 코웃음을 쳤다.“안 쓰면?”서윤이 가방을 닫았다.
“서윤아, 엄마가 반찬 좀 해왔다.”새집 현관 앞에 박옥자가 서 있었다.한 손에는 보냉가방을 들고, 다른 손에는 명품 매장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서윤은 문을 더 열지 않았다.“무슨 일이세요?”“무슨 일이긴. 며느리 새집으로 이사했다는데 시어머니가 와보는 게 당연하지.”몇 달 전만 해도 서윤이 같은 식탁에 앉는 것조차 못마땅해하던 사람이었다.그런 옥자가 처음으로 서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하은이도 보고 싶고.”옥자가 안쪽을 기웃거렸다.“우리 하은이 할머니 왔다고 하면 좋아하겠네.”서윤은 문틀에 그대로 서 있었다.“미리 연락하시지 그러셨어요.”“가족끼리 무슨 연락까지 해.”옥자가 들어오려 했다.서윤이 비켜주지 않자 그제야 걸음을 멈췄다.“왜 그러고 서 있어? 무겁다.”“여기 제 집이에요.”옥자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그러나 곧 웃음을 만들었다.“알지. 네 집이지. 그것도 이렇게 좋은 집을 혼자 마련하고.”그 말에서 서윤은 이유를 알아챘다.옥자는 집을 보러 온 게 아니었다.달라진 서윤의 값을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들어오세요.”서윤이 문을 열자 옥자의 얼굴이 바로 밝아졌다.거실에 들어온 옥자는 집부터 훑었다.“전세야?”“제가 샀어요.”옥자의 걸음이 멈췄다.“샀다고?”“네.”“대출은?”“조금 있어요.”옥자는 소파와 창밖 전망, 주방까지 다시 훑었다.“요즘 사업이 정말 잘되긴 하나 보네.”역시 하은이보다 돈 이야기가 먼저였다.서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때 하은이가 방에서 나왔다.“할머니?”옥자가 두 팔을 벌렸다.“우리 강아지!”하은이가 달려가 안겼다.옥자는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도 계속 서윤을 봤다.“하은아, 엄마 회사 엄청 잘된다며?”“응! 엄마가 대표야.”“그래. 우리 며느리가 이렇게 능력이 있었어.”서윤의 시선이 옥자에게 박혔다.우리 며느리.그 표현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도 처음이었다.옥자가 보냉가방을 열었다.갈비찜.전복죽.나물.하은이가 좋아하는
준혁은 캐리어를 끌고 서윤의 새집에 왔다.“내 방은 어디야?”서윤은 현관 안으로 들어오려는 준혁을 막았다.“당신 방 없어.”준혁이 들고 있던 캐리어 손잡이가 그대로 멈췄다.“뭐?”“여긴 나하고 하은이가 살 집이야.”거실에서는 하은이 새로 산 책장에 자기 책을 꽂고 있었다.박스마다 ‘하은 방’, ‘주방’, ‘리본베이비’라고 적힌 메모가 붙어 있었지만준혁의 이름이 적힌 상자는 하나도 없었다.준혁은 집 안을 훑었다.“장난하지 마. 이사한다길래 나도 짐 정리해서 왔잖아.”“누가 같이 오랬어?”“내 가족이 여기 사는데 내가 어디서 살아?”“원래 집.”“한서윤.”준혁이 캐리어를 현관 안으로 밀었다.서윤은 발로 바퀴를 막았다.“들어오지 마.”“며칠 전에 나랑 자놓고 이제 와서 집에도 못 들어오게 해?”하은이 있는 쪽을 본 서윤의 얼굴이 달라졌다.“애 앞에서 그 얘기 하지 마.”준혁도 하은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줄였다.“그럼 방에 들어가서 얘기해.”“들어갈 방이 없다니까.”서윤은 현관 밖으로 나와 문을 반쯤 닫았다.준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그날 같이 잔 건 뭐였는데?”“말했잖아.”“뭘.”“용서 아니라고.”준혁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서윤은 그날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설명해줄 생각이 없었다.준혁은 자꾸 한 번의 관계를 예전 자리로 돌아가는 입장권처럼 사용하려 했다.하지만 서윤에게는 아니었다.“이혼 안 한다며.”“아직은.”“그럼 부부잖아.”“서류상으로.”“하은이는?”“당신 딸이지.”“그런데 아빠를 집 밖에 세워?”“아빠로 오는 건 막지 않아.”준혁이 잠시 말을 잃었다.서윤은 휴대전화를 꺼내 일정표를 보여줬다.주말 외출.평일 저녁 식사.하은 학교 행사.준혁이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이 적혀 있었다.“하은이 보고 싶으면 미리 연락해. 약속 잡으면 돼.”준혁의 시선이 일정표에서 서윤에게 올라왔다.“내 딸 만나는데 예약하라고?”“내 집에 들어오려면.”“우리 집이야.”“아니
“대표님, 강림그룹 계열사 성장률을 넘었습니다.”리본베이비 본사 이전 첫날, 다정이 가장 먼저 들고 온 것은 축하 꽃다발이 아니라 실적표였다.그리고 같은 시각, 준혁의 책상에도 똑같은 비교 자료가 올라가고 있었다.육아용품 브랜드 리본베이비.아기띠 하나로 시작했던 회사는 수유쿠션, 외출가방, 유모차 액세서리,산후 체형에 맞춘 의류까지 제품군을 넓히고 있었다.새 사무실 한쪽 벽에는 제품별 고객 의견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제왕절개 부위가 눌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아빠가 착용해도 끈이 모자라지 않았으면 합니다.’‘쌍둥이 엄마도 혼자 착용할 수 있게 해주세요.’서윤은 가장 많이 반복된 요구에 표시했다.“다음 제품은 이쪽부터 잡아요.”마케팅 담당자가 노트북을 돌렸다.“대표님, 그런데 오늘 인터뷰 요청이 하나 더 왔어요.”“어디서요?”“여성 라이프 매거진이요. 제목까지 보내왔는데…….”다정이 먼저 읽고 표정이 굳었다.〈98kg에서 45kg,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의 인생 역전〉사무실이 잠시 조용해졌다.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조회수는 확실히 나올 것 같긴 해요. 전후 사진도 같이 쓰고 싶답니다.”서윤은 기획안을 한 번 읽고 돌려줬다.“안 해요.”“아예 거절할까요?”“네.”“대표님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면 브랜드에도 도움은 될 텐데요.”서윤이 벽에 붙은 고객 의견을 가리켰다.“우리가 뭘 팔죠?”“육아용품이요.”“그런데 왜 내가 몇 킬로였는지가 제품보다 앞에 나와요?”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서윤은 자신의 예전 사진과 최근 사진을 나란히 배치한 시안을 집어 들었다.97.8kg.45kg.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화살표까지 그려져 있었다.“이거 빼요.”마케팅 담당자가 시안을 받았다.“전부요?”“전부.”서윤은 다음 장을 펼쳤다.착용 체형별 반품률.제품별 재구매율.고객이 요청한 개선사항.안전검사 결과.“이걸 쓰세요.”“대표님 사진 대신 데이터요?”“내가 살을 빼서 회사가 큰 게 아니잖아요.”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