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제5장
유다는 숨을 죽인 채, 자신의 상사를 다시 바라보기 전까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베를린을 힐끔거렸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걱정할 것 없다. 나를 배신할 배짱 따위는 없는 여자니까." 마침내 데이브가 차갑고 나지막한, 절대적인 확신에 찬 목소리로 침묵을 깨뜨렸다.
그는 창틀에 한 손을 얹은 채, 엘린이 여전히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는지 확인하려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어 다시 비서를 바라보며 위엄 있는 톤으로 덧붙였다.
"아, 그리고 그 여자를 위한 정식 계약서를 준비해라. 약점과 허점도 모조리 파악해 두고. 우리를 배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모든 퇴로를 차단해."
유다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모든 지시를 명심했다.
"예, 대표님.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맨해튼 지사 문제 말인데…" 데이브는 눈살을 찌푸리며 노골적인 짜증을 드러냈다. "그런 사소한 일은 너 선에서 처리해라. 겨우 그런 것조차 해결 못 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대표님. 오늘 밤 안으로 해결해 놓겠습니다." 유다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는 몇 걸음 물러서더니 발코니 아래로 신속하게 내려가 저택의 울창한 정원 속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데이브는 창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은 뒤 천천히 돌아섰다.
방 한구석에서 엘린은 여전히 앞치마 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공포가 그녀의 온몸 구석구석을 들이쳤다.
데이브가 치밀하고 차갑게 전략을 세우는 모습을 지닌 채 바라보며, 그녀는 한 가지 섬뜩한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이 상상했던 그 어떤 괴물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였다.
단순한 억만장자가 아니었다.
폭풍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자였다.
데이브는 그녀를 향해 다가왔고, 그 거대한 그림자가 엘린의 작은 체구를 완전히 뒤덮을 때까지 거리를 좁혔다.
"이제 날 씻겨라." 아무런 감정 없는 명령이었다.
엘린은 흠칫 놀랐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모레노 님이 직접 씻으시면 안 되나요?" 공포심에 얼김에 목소리를 높였다가 황급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 말은… 혼자서 얼마든지 걷고 움직이실 수 있잖아요."
데이브는 입술을 살짝 올려 얇고 비꼬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몸을 살짝 숙여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여기서 네 역할이 뭔지 벌써 잊은 건가, 글래머 양? 넌 내 개인 간호사다. 지금부터 날 무력한 아기 취급해… 밖에 있는 그 배신자 여자가 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
엘린은 침을 힘겹게 삼켰다.
데이브의 따스한 숨결이 이마에 닿자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네-네, 모레노 님…" 체념한 듯 속삭인 그녀는 더 이상 따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데이브는 돌아서서 하얀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넓은 욕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엘린은 고개를 숙인 채 그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데이브의 어두운 눈빛은 과거의 기억에 다시 사로잡히며 차갑게 hardened.
그의 정신은 1년 전 그 저주받은 밤으로 되돌아갔다.
그 사고.
전속력으로 달리던 스포츠카가 도로 난간을 받으며 참혹하게 구르던 그 순간.
그 당시 데이브는 치명적인 충격으로부터 빅토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조수석 쪽으로 자신의 몸을 던졌었다.
결국 그만 중상을 입었다.
의사들조차 그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운명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밤 중환자실에서 데이브는 예상보다 일찍 의식을 되찾았다. 몸은 여전히 굳어 있고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의식만큼은 똑똑히 깨어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가장 역겨운 진실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어스름한 병실 안에서, 그는 아내 빅토리아가 소파 위에서 르몽… 즉 데이브의 친형과 격렬하게 키스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아내의 음란한 신음과 르몽의 가쁜 숨소리가 병실을 채웠고, 남편으로서 데이브의 자존심과 존엄을 산산조각 냈다.
하지만 더 최악인 것은 그다음이었다.
데이브는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
그 사고는 그들이 계획한 것이었다.
빅토리아는 데이브가 사업 제국을 확장하는 데에만 전념하느라 3년의 결혼 생활 동안 외로웠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욕구를 채우기 위해 르몽을 애인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빅토리아와 르몽은 데이브를 천천히 제거하고 모레노 가문의 유산을 독차지할 모의까지 하고 있었다.
사실 가문의 양자에 불과했던 르몽은 데이브의 성공에 대해 깊은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그날 밤 이후, 데이브는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전신 마비에 말도 못 하는 '살아있는 시체' 연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적들이 자신의 가짜 비극 위에서 춤추게 내버려 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지난 1년 동안 빅토리아와 르몽은 지나칠 정도로 치밀하게 움직였기에 데이브는 그들을 빠져나갈 수 없도록 감옥에 넣을 만한 재정적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었다.
"모레노 님? 왜 문 앞에 서 계세요?"
엘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의 어두운 생각을 순식간에 깨뜨렸다.
그녀는 두 손을 배 앞에 모은 채 욕실 입구에 서 있었다. 통통한 얼굴이 조금 파리해 보였다.
"어서요… 씻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따뜻한 물은 준비해 두었어요." 그녀는 경직된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온몸이 여전히 쑤시고, 조금 전의 격렬한 관계 때문에 은밀한 부위가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엘린은 프로답게 행동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이 일은 그녀가 500만 달러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육체적인 통증 따위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엘린은 천천히 다가가 데이브의 단단한 팔을 조심스럽게 받쳐 들며 욕실 안으로 안내했다.
데이브는 자신의 팔을 감싸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엘린의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감촉만큼은 따뜻하고 진실했다… 지난 1년 동안 그 누구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는 온기였다.
그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맡겼다.
그는 정확히 자신이 만들어낸, 엘린의 서툴고 다소 고통스러워 보이는 걸음걸이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대리석 욕조의 따뜻한 물에 작은 수건을 적셔 데이브의 넓은 어깨를 천천히 닦아내기 시작했다.
따뜻한 김이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채우며 어색한 긴장감을 감돌게 했다.
엘린은 감히 아래쪽을 내려다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정말 그를 무력한 아기처럼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몇 살이지?" 데이브가 갑자기 물었다.
그의 굵직한 목소리가 정적에 싸인 욕실 안에 울려 퍼졌다.
엘린은 살짝 흠칫하며 손길을 잠시 멈췄다.
"열아홉 살이에요, 모레노 님." 낮게 대답한 그녀는 다시 닦아내는 동작을 이어갔다.
"학교는 어디 다니나?"
"콜롬비아 대학교요.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어요… 모레노 님."
은근한 자부심이 섞인 목소리였지만, 그녀는 이내 그것을 숨기려 애썼다.
데이브는 따뜻한 수건이 자신의 오른팔을 천천히 훑고 내려가는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엘린의 통통한 얼굴이 수증기 때문인지, 아니면 두 사람의 거리감 때문인지 붉게 물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열아홉이라… 그런데도 조금 전 나와 함께 있을 때 처녀였지. 뉴욕에서는 흔치 않은 일인데." 데이브가 돌직구를 날렸다.
무심한 듯하지만 뭔가를 요구하는 듯한 톤이었다.
엘린의 손이 떨려왔다.
마치 커다란 돌덩이가 안에서 짓누르는 것처럼, 가슴속에 쓰라린 압박감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그녀는 데이브가 자신의 몸과 욕망받지 못하는 처지를 비웃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억눌린 고통에 입술이 꽉 다물어졌다.
"네… 맞아요." 목소리에 맺힌 원망을 숨기지 못한 채, 그녀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돼지처럼 뚱뚱하니까요… 그래서 그 어떤 남자도 절 만지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심지어 제 전 남친조차 제 키스마저 거부했었고요."
상처로 가득 찬,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을 들은 데이브는 엘린의 손길을 부드럽게 멈춰 세웠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는 그녀의 눈 속을 똑바로 파고들었다. 마치 그 안에서 거짓을 찾아내려는 듯이.
"정말인가?" 데이브가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가 뜻밖에 낮아졌고, 그의 눈 속으로 해석하기 힘든 빛이 스쳐 지나갔다.
계속…
제40장디에고의 불쾌한 밀착 아래에서 엘린은 숨을 죽였다. 남자의 뻔뻔한 손길이 그녀의 셔츠 단추를 서툴게 잡아채며 아웅다웅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내면에서 강력한 아드레날린이 요동쳤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완벽한 분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남은 힘을 쥐어짜낸 엘린은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려 디에고의 발등을 향해 온 힘을 다해 힐로 짓밟아버렸다."아아악! 젠장!" 그가 거세게 비명을 질렀다.발끝을 찌르는 극심한 통증에 남자의 악력이 순간 단숨에 풀렸다.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엘린은 두 손으로 디에고의 가슴을 절박하게 밀쳐냈다. 풍만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온 필사적인 반동에, 통증으로 여전히 비틀거리던 청년은 균형을 잃고 말았다.쾅-!그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가며 건축학 책장에 거세게 부딪혔고, 두꺼운 책 몇 권이 바닥으로 어지럽게 떨어졌다."이 젠장할 년이, 엘린! 네가 감히?!" 아픈 발을 움켜쥔 디에고가 분노로 눈을 번뜩이며 침을 내뱉었다."다시는 내 몸에 손대지 마, 이 개자식아!" 떨리는 목소리로 엘린이 소리쳤다.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즉시 돌아서서 목재 격리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눈물이 뺨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채로 조용한 도서관 바깥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 나갔다.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늘 다정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디에고는 그저 잘생긴 얼굴 뒤에 자신의 몸을 욕탐하는 괴물에 불과했던 것이다.여자 화장실에 다다르자마자, 그녀는 칸막이 중 한 곳으로 빠르게 들어가 문을 쾅 닫고 떨리는 손으로 잠금장치를 걸었다. 그러고는 차가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려 무릎을 안은 채 절망적인 오열을 터뜨렸다."내 인생은 왜 이렇게 비참해야 하는 걸까?"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며 엘린은 흐트러진 셔츠를 바짝 움켜쥐었다. "내가 더럽혀졌다는 건 알아… 그 밀폐된 방 안에서 데이브 모레노의 은밀한 정부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이 내 몸
제39장그날 오후, 외딴 산길의 험준하고 가파른 도로는 순식간에 끔찍한 비극의 현장으로 변해 버렸다. 모레노 대마님이 탄 고급 세단이 위험한 비탈길을 이상한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차량 안에서 운전기사는 레이먼드의 하수인들에 의해 브레이크 시스템이 공작된 사실도 모른 채, 아무런 반응이 없는 브레이크를 몇 번이고 집요하게 밟아대며 완벽하게 패닉에 빠져 있었다.끼이익-!검은색 승용차가 죽음의 커브길을 돌려 하자 타이어가 지면을 긁는 찢어지는 듯한 마찰음이 메아리쳤다. 하지만 차량의 무거운 무게와 과도한 속도로 인해 제어력을 완벽하게 잃고 말았다. 차는 가드레일을 거세게 받친 뒤 허공으로 튕겨 나갔고, 수십 미터 깊이의 절벽 밑바닥으로 추락하며 통제 불능 상태로 뒹굴기 시작했다.콰앙-!파괴적인 폭발음이 깊은 심연의 바닥을 흔들었다. 거센 불길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고, 단 몇 초 만에 차량 전체를 완벽하게 삼켜버렸다.이른 시간 내에 해당 구역은 경찰 통제선과 구조대원들로 둘러싸였다. 몇 시간 뒤, 그 소식은 모든 언론 매체를 통해 폭발적으로 보도되었다. 경찰은 방송을 통해 브레이크 결함으로 인한 사고였다는 공식 발표를 내놓았으며, 타버린 차량 내부에서 사람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곧이어 모레노 대마님의 시신이 불길 속에서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을 것이라는 추측성 소문들이 파다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한편, 자신의 개인 집무실에서 레이먼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고급 시가를 천천히 태우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 빅토리아는 샴페인 두 잔을 따라 그중 한 잔을 그에게 건븸었다."완벽해요, 레이먼드! 모든 게 우리가 계획한 대로 들어맞았어요." 빅토리아가 승리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그 늙은 여네가 마침내 사라졌네요. 이제 모레노 홀딩스 이사회 안에는 그 어떤 걸림돌도 남아있지 않아요."레이먼드가 잔혹하고 오만한 폭소를 터뜨렸다."그 늙은이가 날 영원히 막아설 수 있을 줄 알았나 보지. 그 여자가 사라진 이
제38장아침 햇살의 첫 줄기가 창문 유리 표면에 겨우 다다랐을 무렵, 엘린은 간호사 유니폼 정돈을 마쳤다. 오늘은 아침 8시에 일찍 수업이 있었다. 병실을 나서기 전, 그녀는 다시금 딱딱하게 누워 코마 상태의 남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데이브의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엘린은 상체를 살짝 숙여 이미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던 데이브의 이불을 다듬어 주었다."도련님, 저 이제 대학에 다녀오겠습니다." 문 건너편의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엘린이 나지막이 속삭였다.데이브에게서 말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매 같은 눈이 1초간 살짝 열리더니, 어제 오후의 경고—'다른 남자에게 내숭 떨지 마라'—를 재확인시키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엘린은 그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서서 방을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저택의 분위기는 변함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빅토리아는 고급스러운 식탁에 우아하게 앉아 오렌지 주스 한 잔과 토스트를 곁들여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엘린의 발소리가 들리자 여인은 식사를 멈추고, 아름다운 얼굴에 깊게 새겨진 특유의 오만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빅토리아 사모님, 개인적인 일로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될지 허락을 구하고자 합니다." 엘린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빅토리아는 비단 수건으로 입술 모서리를 닦아낸 뒤, 게으른 한숨을 내쉬었다."내려오기 전에 저 살아있는 시체놈은 제대로 간호하고 온 거냐?" 빅토리아가 마치 성가신 짐덩이를 다루듯 퉁명스럽고 차갑게 물었다. "오늘 아침 비앙키 의사가 처방한 고농도 약을 저놈 입안에 이미 처넣었겠지?""네, 전부 준비해 두었습니다, 사모님." 엘린은 단 1초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여기 내려오기 전에 데이브 도련님의 모든 의료 처치를 완료했습니다.""그러는 게 좋을 거다. 어서 가고 지체하지 마라. 바깥에서의 네 사사로운 일이 저 개자식을 간호하는 시간표를 방해하게 두지 마." 빅토리아가 손을 휘저으며 엘린에
제37장크레이비어 씨와의 비밀 접견은 완벽하게 성사되었다. 레이먼드의 불법 사업을 뒤흔들 핵심 축이 될 대규모 협력 계약서에는 이미 서명이 마쳐진 상태였다. 건이 끝나자마자 데이브는 모레노 저택으로 서둘러 복귀했다. 그는 정문을 이용하지 않고, 옛 서재 벽 뒤에 숨겨진 비밀 통로를 지나 자신의 방으로 곧장 연결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 비밀 통로는 일 년 내내 빅토리아나 레이먼드의 의심을 사지 않고 안전하게 안팎을 오갈 수 있게 해준 은밀한 경로였다.비밀문이 소리 없이 슬라이딩하며 닫히자, 데이브는 방 안의 어둠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매 같은 그의 눈에 가장 먼저 포착된 것은 방 한구석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엘린의 형체였다. 미간을 찌푸린 채 두꺼운 책 더미에 둘러싸여 노트북 키보드를 분주하게 두드리는 여인은 지극히 집중해 있었다. 방 주인이 돌아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데이브는 여유롭게 다가가 잘생긴 얼굴의 반쪽을 가리고 있던 은가면을 벗어 침대 협탁 위에 놓아두었다. 나른한 동작으로 엘린의 바로 옆 빈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는, 턱을 괴고 여인의 진지한 측면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지극히 몰두해 있군." 데이브의 깊은 남성미 넘치는 목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불시에 깨뜨렸다.엘린은 놀라 깜짝 놀라며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놓칠 뻔했다. 서둘러 고개를 돌리자 데이브의 잘생긴 얼굴이 자신의 얼굴과 겨우 수 센티미터 거리에 다가와 있었다."네? 도련님... 벌써 돌아오셨어요?" 놀란 탓에 약간 가빠진 숨을 내쉬며 엘린이 물었다.데이브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대학 과제부터 마저 끝내. 그러고 나서 내 어깨 좀 마사지해라. 오늘 회의 때문에 전신이 뻣뻣하군.""네, 도련님. 거의 다 끝났어요." 엘린이 공손하게 답했다.데이브가 진심으로 피곤해 보이는 것을 본 엘린은 손길을 서둘렀다. 과제 문서를 서둘러 저장하고 노트북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데이브가 기대어 앉아 있는 의자
제36장데이브가 떠난 뒤 병실 안에는 짙은 정적이 남겨졌다. 엘린은 다리가 약간 풀린 채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욕실로 향했다. 세면대 거울 앞에 서서, 그녀는 가만히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떠나기 직전 탐욕스럽게 퍼부었던 키스로 인해 입술은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얼얼한 얼룩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엘린은 손가락 끝으로 입술을 살며시 터치한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째서 그이의 소유욕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걸까…?" 거울 속 자신의 피곤한 눈을 응시하며 엘린이 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매일같이 날 만져대고… 마치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것처럼. 코마 상태인 척 연기하는 동안 일 년 내내 억눌러왔던 것 때문일까?"엘린은 고개를 저으며, 너무나 강렬했던 밀착감의 기억을 털어내려 애썼다. 데이브의 손길 뒤에 숨겨진 이유를 찾아봤자 자신의 마음을 허황된 기대 속에 자빠뜨릴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팅!휴대전화의 알림음 소리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엘린은 방으로 돌아와 작업대 위에 놓인 기기를 집어 들었다. 오늘 오후에 막 저장했던 번호로부터 위챗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디에고: [안녕, 엘린. 집에 잘 들어갔어? 마침 오늘 밤 시간이 비는데, 나랑 저녁 같이 먹으러 나갈래? 캠퍼스 근처에 정말 괜찮은 곳이 있거든.]엘린은 주저하는 마음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내심 자신을 신경 써주는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작은 기쁨이 피어올랐다. 간절히 나가고 싶었다. 저택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또래 여느 또래들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수다를 떨고 싶었다.하지만 여전히 방 안의 벽에 메아리치는 듯한 데이브의 엄중한 경고가 그녀에게 지독한 현실을 일깨워주었다.'데이브가 알아챈다면 분명 큰일이 날 거야.' 남자의 분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엘린은 덜컥 두려움이 밀려왔다.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엘린은 어쩔 수 없이 거절의 메시지를 적어 내릴 수밖에 없었다.엘린: [안녕, 디에고. 정말 미안한데 오늘 밤은 못 나갈 것 같아. 몸이
제35장열기의 잔재가 짙게 깔린 조용함 속에서 한 시간이 흘렀다. 엘린은 약간 떨리는 손가락으로 흐트러진 플란넬 셔츠의 단추를 다시 채우며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매트리스 위에는 데이브가 한쪽 팔로 머리를 받친 채 누워, 깊고 해독하기 어려운 눈빛으로 엘린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다.지난 한 시간 동안 데이브는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통통한 몸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마치 자신의 보호자를 잃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탐욕스러운 밀착감으로 엘린의 신선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빨아들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엘린에게는 그 모든 손길이 사실 가슴에 새겨지는 새로운 상처처럼 느껴졌다.엘린은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뜨거웠던 시간이 가라앉은 이후로 그녀는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침묵은 데이브의 마음을 거슬리게 만들기 시작한 듯했다."무슨 일 있어?" 데이브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낮고 쉰 남성미 넘치는 목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아까부터 말이 없네."엘린은 살짝 놀라 움찔하더니, 데이브의 매 같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도련님. 그저 온종일 캠퍼스에 있느라 조금 피곤해서 그래요."엘린은 침대 끝에 놓인 이불을 정리하는 척하며 몸을 돌렸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감정의 폭풍이 격렬하게 몰아치고 있었다.'내가 왜 이렇게 어리석은 걸까?' 가슴을 바짝 죄어오는 답답함을 느끼며 엘린은 속으로 자책했다. '왜 그가 다가올 때마다 내 방어벽은 완벽하게 무너져 버리는 걸까? 왜 상황에 쓸려 넘어가면서 그 사람의 여자가 될 수 있다는 미친 희망을 품게 되는 거지? 그건 완벽하게 불가능한 일이야, 엘린!'그녀는 데이브의 온기가 일시적으로 갉아먹었던 이성을 되찾으려 깊은 숨을 내쉬었다.'현실을 직시해, 엘린. 너희 두 사람은 신분부터가 달라. 사회적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이고, 나이 차이조차 엄청나지. 데이브는 천재 CEO이자 무자비한 비즈니스 거물이야. 저렇게 완벽한 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