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나를 잊지 마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4 21:16:37

해당 의식은 317년 동안.

엘라 에스텔을 기다렸습니다.

문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희미해서, 조금만 주변이 시끄러웠다면 놓쳤을 것 같은 소리였다. 그런데도 엘라는 그 한마디를 분명하게 들었다.

“이번에는.”

짧은 숨.

“나를 잊지 마.”

가슴 한가운데가 이상하게 당겼다.

기억은 없다. 목소리도 처음 듣는다.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모른다. 그런데 몸 어딘가가 먼저 반응했다. 오래전 잃어버린 것을 갑자기 눈앞에서 마주친 사람처럼, 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았다.

엘라가 무의식적으로 문 쪽으로 한 걸음 움직이자 단테의 손이 곧장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엘라.”

낮은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엘라는 멈춰 서서 자기 발끝을 내려다봤다. 분명 자신이 움직였다. 누가 끌어당긴 것도 아니고, 마법에 정신을 빼앗긴 감각도 없었다. 그런데 왜 움직였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단테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뭐가.”

“왜 가려고 했는지.”

“목소리가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아버지가 심장에 남긴 것

    황실 조사단이 임시 조사실로 사용하고 있는 서쪽 응접실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귀족 손님을 맞는 평범한 방이었지만, 지금은 탁자 세 개가 이어 붙여져 있었고 그 위에는 북부 지하에서 발견된 기록물과 황실 조사관들이 밤새 분류한 자료가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창가에는 증거 보존용 마법진이 겹겹이 펼쳐져 있었고, 방 중앙에는 열어 보는 것만으로도 별도의 기록을 남기도록 봉인된 검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엘라는 단테와 함께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상자를 봤다. 단테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복도를 걸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힘을 주어 붙잡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손가락 사이를 자연스럽게 얽고 있었는데, 그 평범한 온기가 오히려 엘라를 안심시켰다.조사단 책임자 마리엘 로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대공 전하. 공녀.”“기록은.”단테가 바로 물었다.“어젯밤 아시온의 진술을 토대로 지하 실험실의 폐기 문서를 다시 분류하던 중 발견했습니다. 정확히는 한 장의 기록이 아니라 세 개의 서로 다른 자료가 연결된 것입니다.”마리엘은 단테의 표정을 한 번 확인한 뒤 말을 이었다.“첫 번째는 전대 대공의 개인 기록, 두 번째는 당시 가문 주치의의 시술 기록, 세 번째는 아르젠트 직계 혈통 의식의 마력식입니다. 각각 따로 보았을 때는 의미를 확정하기 어려웠지만, 시간과 대상이 일치합니다.”엘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제국력 798년.단테가 일곱 살이던 해.그해는 이미 너무 많은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린 단테가 버려진 가능성을 처음 관측했던 해이자, 미래의 엘라가 잠시 그 시대로 흘러들어 갔던 해였고, 아직 한 살이던 루시안의 기억까지 최초의 문에 얽혀 버린 해였다.그리고 이제.또 하나가 나온다.단테는 의자를 당기지 않았다.“읽어.”마리엘이 잠시 망설였다.“전하께서 직접 보시는 편이.”“읽어.”단호했지만 감정적인 명령은 아니었다. 마리엘은 고개를 숙인 뒤 첫 번째 문서를

  •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미래가 없는 아침

    카엘이 엘라에게 붙잡힌 뒤 북부 대공성의 아침은 한동안 평화와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심각한 싸움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엘라는 눈밭 한가운데서 카엘의 외투 소매를 붙잡은 채 왜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그런 말을 가르쳤느냐고 따졌고, 카엘은 자신은 단지 객관적인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억울해했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미래의 엘라는 말릴 생각도 없이 웃고 있었고, 단테는 아렌을 품에 안은 채 어느 쪽에도 끼어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끼어들었다가 자신까지 교육 대상이 될 가능성을 빠르게 계산한 얼굴이었다.“객관적인 사실이요? ‘네 엄마 아빠는 생각보다 느리다’가 객관적인 사실이에요?”“틀렸어?”“오빠.”“청혼했지, 승낙했지, 반지도 줬지. 그런데 날짜는 안 정했지. 어디가 틀렸는데?”엘라의 입이 다물렸다. 반박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반박할 말이 없었다. 카엘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자기 소매를 빼내려 했으나 엘라가 더 단단히 붙잡았다.“그래도 아렌한테 그런 걸 가르치면 안 되죠.”“왜?”“애가 그대로 따라 하잖아요.”“똑똑하네.”“누구 조카인데.”카엘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내 조카.”엘라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갑자기 생긴 조카라며 눈물까지 글썽거리던 사람이 하루 만에 완벽한 외삼촌 행세를 하고 있었다.그때 아렌이 단테의 품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나 또 배웠어.”엘라가 불길한 얼굴로 돌아봤다.“뭘?”“결혼은 날짜를 정해야 한다.”“…….”“그리고 외삼촌이 그랬어. 약혼은 결혼하기 전까지 마음 놓으면 안 된대.”이번에는 단테의 시선이 카엘에게 향했다.카엘이 아주 자연스럽게 눈을 피했다.단테가 아렌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그 말은 맞군.”“단테까지 왜 그래요?”“날짜를 정하면 되잖아.”너무 간단하게 나온 말에 엘라가 오히려 멈칫했다. 단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마치 오늘 점심 메뉴를 정하듯 말했지만, 그의 시선은 엘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지금요?”“싫나

  •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미래가 없는 아침

    유안이 자신의 이름을 고른 뒤, 북부 대공성은 잠들지 못했다. 최초의 문과 예언 체계는 완전히 사라졌고 집단 명령식 역시 붕괴했지만, 그 안에서 분리된 수많은 의식까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미 육체를 얻어 현재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대로 남았고, 마지막 순간 명령식에서 빠져나온 이들 중 일부는 희미한 영혼핵의 형태로 지하 보관실과 복도를 가득 채웠다. 육체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이들은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은 누군가의 손바닥만 한 빛으로 떠다니거나 잠든 듯 움직이지 않았다.엘라는 한참 동안 그 광경을 바라봤다.숫자로 세면 많다.너무 많다.하지만 이제.숫자로만 보면 안 된다.“몇 명이에요?”테오도르가 기록 마법을 펼친 채 대답했다.“정확한 숫자는 아직 산출할 수 없습니다. 서로 뒤엉켜 있던 의식 중 완전히 분리된 것과 아직 안정화 중인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현재 독립된 영혼핵으로 확인되는 것만 천 개가 넘습니다.”엘라의 미간이 좁아졌다.“전부 육체를 만들 수는 없죠?”“현재 마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에드윈이 옆에서 덧붙였다.“그리고 가능하다고 해도 해서는 안 돼.”엘라가 그를 봤다.에드윈은 바닥 가까이 떠 있는 작은 빛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살고 싶은지부터 물어야 한다.”엘라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맞아요.”“누군가는 육체를 원할 거고, 누군가는 영혼 상태로 더 생각하고 싶을 수도 있어. 누군가는…….”에드윈이 잠시 말을 멈췄다.“이제 쉬고 싶을 수도 있고.”그 말을 듣는 순간 주변이 조금 조용해졌다.317년.혹은 그보다 훨씬 오래.이들은 명령 속에서 살아왔다.그러니 자유를 얻었다는 이유로 당장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하는 것 역시 또 다른 강요일 수 있었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아무것도 먼저 정하지 말죠.”테오도르가 물었다.“그렇다면 보존부터 해야 합니다.”“얼마나 가능해요?”카엘이 대답했다.“내가 하면.”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카엘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관리자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가면의 갈라진 틈 사이로 드러난 것은 예상했던 얼굴이 아니었다. 피부도, 입술도, 코도 없었다. 검은 명령문이 수천 겹으로 엉켜 만든 가면 안쪽에 희미한 흰빛 하나가 떠 있었고, 그 중심에서 사람의 눈 하나가 천천히 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사람처럼 초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정확하게 엘라를 향한 눈이었다.엘라는 검을 내리지 않은 채 숨을 골랐다. 방금 전까지 그녀는 저것을 하나의 관리자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번호를 붙이고 이름과 관계와 선택을 빼앗은 최초의 가해자, 그 모든 비극의 출발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갈라진 가면 안쪽을 본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저 검은 덩어리는 사람 하나가 아니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목소리와 규칙, 반복된 명령이 겹쳐져 하나의 의지를 흉내 내고 있었다.그리고 그 중심에.누군가 갇혀 있었다.“단테.”엘라가 낮게 부르자 단테는 그녀가 무엇을 보았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와 등을 지켰다.“말해.”“저 가면 자체가 사람이 아니에요. 안쪽에 있는 사람이랑 분리해야 해요.”에드윈도 이미 같은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미래를 보는 힘은 사라졌지만, 그의 마력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언이 끼어들지 않는 지금은 눈앞의 마력 구조를 더 차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에드윈이 손을 들어 검은 원을 따라 움직이는 마력선을 추적하더니 표정을 굳혔다.“엘라 말이 맞아. 하나의 영혼핵이 아니다.”테오도르가 즉시 물었다.“몇 명입니까?”“잠깐.”에드윈의 마력이 가면을 스쳤다. 검은 표면 위로 숫자가 떠올랐다.중첩 의식 분석.개체 수 산출 중.317.1,842.4,109.7,114.산출 실패.테오도르의 얼굴이 굳었다.“칠천 명 이상이라고요?”“최소한.”에드윈이 천천히 손을 내렸다.“그리고 저 숫자도 정확하지 않아. 너무 오래 겹쳐 있어서 어디까지가 하나의 의식이고 어디부터가 다른 의식인지 구분되지 않는다.”아시온이 그

  •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관리자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아시온은 문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은 원을 가로지른 선은 분명 잉크로 그려진 문양이었는데, 방금 전부터 살아 있는 것처럼 아주 느리게 맥동하고 있었다. 한 번 빛날 때마다 손끝에서 시작된 불쾌한 감각이 손목과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것은 마력에 닿았을 때의 통증과 달랐다. 마치 몸보다 훨씬 깊은 곳, 영혼에 새겨진 오래된 상처를 누군가 손가락으로 눌러 확인하는 듯한 감각이었다.관리자가 깨어납니다.휴고가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아시온.”대답이 없자 휴고의 표정이 굳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시온은 오래된 기록을 하나씩 분류하며 자신이 기억하는 내용과 다른 부분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고, 문서를 쥔 손은 눈에 보일 만큼 떨리고 있었다.“이 문서를 놓으십시오.”휴고가 손을 뻗는 순간 아시온이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만지지 마.”휴고의 손이 멈췄다.“왜입니까?”아시온은 대답하려 했지만 입술만 움직였다. 설명할 수가 없었다. 기억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기억이 너무 오래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몸은 먼저 알고 있었다. 심장이 빨라지고, 숨이 얕아지고, 무릎에 힘이 빠졌다. 아주 오래전 이름조차 없었던 어린 자신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움직이지 않는다.질문하지 않는다.시키는 대로 한다.그리고.고개를 들지 않는다.아시온의 머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그 순간 휴고가 그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았다.“아시온.”몸이 움찔했다.“정신 차리십시오.”아시온의 초점이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굳었다.휴고가 낮게 물었다.“방금 무엇을 하려 했습니까?”“……모른다.”“고개를 숙였습니다.”“알아.”아시온은 이를 악물고 허리를 바로 세웠다. 아주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내가 한 게 아니야.”휴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명령입니까?”“아마도.”아시온

  •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예언이 끝난 다음 날

    황궁으로 보고서를 보낸 지 정확히 스물세 분 뒤였다.북부 대공성 집무실 한가운데 설치된 황실 직통 마법진이 갑자기 새하얗게 폭발하듯 빛났다. 평소라면 황궁에서 북부까지 긴급 문서를 전송하는 데 아무리 빨라도 한 시간 가까이는 걸렸다. 마력 좌표를 맞추고, 수신자를 확인하고, 황실 인장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절차를 전부 무시한 듯 마법진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봉투 하나가 허공에서 툭 떨어졌다.그 순간 집무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봉투를 바라봤다.테오도르가 가장 먼저 미간을 좁혔다.“이 속도는 황실 긴급 전송인데.”엘라는 불길한 표정으로 봉투를 내려다봤다. “설마 전쟁이라도 난 건 아니겠죠?”“전쟁이 났으면 붉은 봉투입니다.”“그럼 저건요?”“황제 폐하의 친서입니다.”엘라가 입을 다물었다.봉투 앞면에는 황제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문제는 평소 황실에서 사용하는 단정한 금빛 밀랍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밀랍이 얼마나 급하게 눌렸는지 황실 문장이 절반쯤 뭉개져 있었다.루시안이 엘라의 어깨 너머로 봉투를 들여다봤다.“엄청 급하게 보내셨나 본데요.”리안도 옆에서 물었다.“황제가 원래 저렇게 급해?”“아니.”테오도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러면.”리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엘라와 단테의 맞잡은 손으로 향했다.“저것 때문인가.”엘라는 천천히 손을 내려다봤다.그리고 놓으려 했다.단테가 안 놨다.“단테.”“왜.”“지금은 좀 놓죠.”“왜.”“왜긴 왜예요. 저 편지 내용이 뻔하잖아요.”“그러니까 더 잡아야지.”엘라가 그를 바라봤다.단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자세히 보니 아주 조금 재미있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혹시 즐기고 있어요?”“조금.”“황제 폐하가 화내는 걸?”“아니.”단테가 엘라를 내려다봤다.“네가 당황하는 걸.”엘라의 입이 벌어졌다.“와.”교육이.잘못됐다.분명 처음 북부에 왔을 때는 표정도 없고 말도 없고 사람을 얼려 죽일 것 같은 남자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